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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ing Sounds – 플립(Flip_00) EP. 01

title: [회원구입불가]Beasel2023.03.15 23:59추천수 2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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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ing Sounds:

수많은 음악이 마치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요즘, 많은 이가 음악을 ‘듣는다’의 개념보다는 ‘본다’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시대다. 그렇기에 ‘Seeing Sounds’에서는 음악을 구성하는 ‘들리는 소리’를 ‘보이는 글’로 보다 자세하게 해부하려고 한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개성이 출중한 총 여섯 명의 장르 프로듀서가 참여하며, 사운드에 대한 그들의 철학을 담은 인터뷰와 각자의 프로듀싱 노하우가 자세히 기록된 에세이가 매주 시리즈로 공개될 예정이다. ‘Seeing Sounds’를 통해 창작자와 감상자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교감하고, 조금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섯 번째 프로듀서는 플립(Flip_00)이다.

 

 

LE: 오늘은 프로듀서의 ‘소리’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하려고 해요. 가볍게 요즘 꽂혀 있는 소리는 뭔가요?


저는 빈티지한 질감의 트랙에 보컬 소스들이 레이어링된 것들에 꽂혀 있어요. 제가 한동안 음악을 멀리하다가 다시 듣기 시작했거든요. 얼마 전에는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의 “No Time To Die”를 들었는데요. 스트링 사운드를 통해서 음악적인 기승전결을 주고, 인생을 가사로 담은 구조가 너무 좋은 거예요. 프로듀서가 기승전결이 다 들어있는 곡을 만들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고, 이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연습해야 할지 생각해 봤어요.

 

 

 

LE: 프로듀싱을 시작했을 때 가장 본인에게 영향을 준 프로듀서, 혹은 플레이어는 누구였나요?


저는 브렌트 페이야즈(Brent Faiyaz)와 두 명의 프로듀서인 아투(Atu)와 디팟(Dpat)으로 구성된 손더(Sonder)의 음악을 너무 좋아했어요. 빌리 아일리시랑 피니어스 오코넬(Finneas O'Connell)도 좋아했고요. 또, 보컬과 프로듀서로 구성 된 데이(They.)라는 그룹을 너무 좋아했어요. 이렇게 저는 세 그룹의 음악을 듣고 프로듀싱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가 힙합 씬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런 음악들을 좋아했는데, 막상 커리어를 시작한 건 트랩 계열의 음악이예요.

 

 

 

LE: 손더와 데이 같은 경우에는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나네요.


네. 뮤지션이 사운드클라우드에 음악을 올리는 게 유행인 시기가 있었잖아요. 그때 제가 ‘사클병’에 걸려서 복잡한 음악만 음악이라 생각했거든요. 마치 ‘대중음악은 음악 아니야.’ 이런 느낌으로 말이죠. (전원 웃음) 그러다 보니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복잡한 음악, 딥한 음악을 하는 소울렉션(Soulection) 같은 외국 프로듀서들이 어떤 DAW를 쓰는지 궁금했어요. 찾아보니까 다들 에이블톤 라이브를 쓰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에이블톤 라이브를 쓰게 됐죠.

 

 

 

LE: 처음에는 어떤 DAW를 사용했나요?


제가 처음에는 음악을 FL 스튜디오(FL Studio)로 만들었어요. 그다음에 큐베이스(Cubase)를 사용했고요. 이후에는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활동하는 프로듀서들이 에이블톤 라이브를 쓰게 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지금처럼 에이블톤 라이브에 정착했어요. 세 개 다 써본 결과, 에이블톤 라이브가 제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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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어떤 점에서 에이블톤 라이브가 제일 좋으셨나요?


에이블톤 라이브는 오디오 에디팅이나 편곡할 때 너무 쉽고, 간편하고, 직관적이에요. 큐베이스는 플러그인을 열 때마다 창을 하나 더 켜야 하고, 샘플을 불러올 때 창을 눌러서 끄집어내야 하거든요. 그런데 에이블톤 라이브를 쓰면 창을 다시 켜고 꺼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지는 거죠. 그 때문에 작업 면에서 효율을 추구하고 싶은 분이라면 에이블톤 라이브를 쓰면 좋을 거예요. 또, 저는 FL 스튜디오를 쓰는 친구들과 가끔씩 세션 작업을 하는데요. 하다 보면 ‘왜 저렇게 불편하게 만들어 놓은 거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에이블톤 라이브가 세션 작업이 편해요.

 

일례를 들자면 편곡적으로 세션 작업을 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다양한 효과를 내야 할 경우가 많거든요. 그럴 때 에이블톤 라이브를 쓰면 오토메이션(Automation) 같은 기능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아요. 이런 직관성과 편리성 때문에 라이브 퍼포먼스를 하는 뮤지션들이나 더 많은 테크닉이 들어가는 EDM 아티스트 분들도 에이블톤 라이브의 기능이 필요하다고 들었어요.

 

특히 오디오 워프(Audio Warp) 부분이 좋아요. 요즘은 좋은 샘플이 너무 잘 나오니까 에디팅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하는지가 중요한 시대거든요. 이럴 때 워프(Warp) 모드를 쓰면 샘플의 소리, 질감, 컨트롤도 기본적으로 가능하고 샘플을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타이밍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어요. 워프를 쓰면 트랙의 비트가 프로젝트의 타임라인에 떨어지는 위치를 알려주거든요. 또, 워프를 누른 상태에서 샘플 BPM을 바꾸면 오디오 품질이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로 바꿀 수도 있어요. 덕분에 다양한 BPM의 샘플도 쉽게 활용할 수 있죠. 결론은 에이블톤 라이브입니다. (*플립이 사용하는 Ableton Live 11을 무료로 다운로드하세요.)

 

 

 

LE: 플립 님이 최근 사운드나 음악에 대해서 이해도가 매우 높잖아요? 또, 무브먼트를 일으키려고도 하시고요. 이런 행보에 가장 영향을 준 프로듀서 집단이 혹시 있을까요?


인터넷 머니(Internet Money)의 영향이 가장 컸던 거 같아요. 스머글러스(SMUGGLER)도 처음에는 인터넷 머니를 레퍼런스로 잡았어요. 이들이 그룹을 확장시키는 방법에서 영감을 얻었죠. 사실 인터넷 머니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이름이 인터넷 머니가 뭐냐, 프로듀서 가오 상한다.”는 식으로 욕을 많이 먹었어요. 인터넷 머니는 그룹에 너드(Nerd)가 많아서 프로듀서하면 떠오르는 ‘멋’과 정반대의 지점에 있거든요. 그래도 닉 미라(Nick Mira)가 그룹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시장적인 측면에서도, 멋이란 측면에서도 증명해낸 집단이죠. 스머글러스도 한국에서 그런 움직임을 변형해서 가져가 보고자 해요.

 

 

 

LE: 그렇다면 요즘 자기만의 사운드가 뚜렷하다고 생각한 프로듀서가 있나요?


저는 원다걸(WondaGurl)이 가지고 있는 러프한 질감의 사운드를 좋아해요. 소위 말하는 질감, 박자감이나 텍스처 적인 영역에서 ‘돕하다’고 하는 사운드 말이죠. 또, 저는 좋아하는 노래를 프로듀싱한 티마이너스(T-Minus)에게도 영향을 받았어요. 그 외에는 랜시 포(Lancey Foux)의 프로듀서인 나이지(Nyge)도 사운드가 다르다고 느껴져요. 트랙만 놓고 보면 브록햄튼(Brockhampton)도 있고요.

 

 

 

LE: 좋은 소리에는 여러 기준이 있잖아요? 플립 님이 생각했을 때 좋은 소리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예전에 프로듀서 선배가 “프로듀서가 잘할수록 트랙이 미니멀하다”라는 말을 해줬어요. 어느 분야나 단순함이 최고라고 하잖아요. 요즘 저는 소리를 캐릭터에 비유하고요. 트랙은 의도가 있는 소리만 단순히 배치하는 게 제일 좋아요. 프로듀서가 중요한 프로젝트나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걸 작업할 때 레이어링을 많이 하려 하거나 힘이 과하게 들어갈 때가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진짜 잘하는 프로듀서일수록 트랙에서 소리를 덜어낸다고 생각해요. 트랙이 의도가 분명한 소리만 배치돼서 미니멀한데도 꽉 찬 느낌이 드는 거죠. 그 외에도 저는 약간 거칠고, 옛날 질감이 나는 ‘돕’한 소리들이 좋은 소리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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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렇다면 플립 님은 본인의 시그니처 사운드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지금까지 발매한 곡 중에 마음에 드는 곡도, 자주 듣는 곡도 없어요. 아직은 이게 플립의 사운드라고 말할 것이 없어요. 다만, 저는 머릿속에 구현하고 싶은 게 많아서 배워가는 중이에요. 사실 외국 힙합 씬. 특히 트랩 씬은 단순한 비트를 좋아해요. 크레딧이 필요한 프로듀서로서는 아티스트나 회사가 원하는 거에 맞춰줄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저도 예전 프로젝트에서 드럼이나 편곡, 반전을 주는 사운드 효과를 몇 번 시도 했는데 시장에서 반려됐어요. 그러다 보니 제 사운드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기회가 없었죠. 나중에 크레딧이 많이 쌓이고, 힘이 생기면 제 사운드를 증명할 수 있을 거 같아요.

 

 

 

LE: 프로듀서가 소리를 만들 때 음악 내 밸런스, 질감, 무드 등 특정 목적지를 설정하기도 하는데, 처음에 어떤 설계로 시작하는 편이세요?


저는 트랙에서 가장 중요한 건 7초 안에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테마라 생각해요. 그래서 첫 3초나 5초 안에 들리는 멜로디 테마를 만드는 데 집중한 뒤 나중에 디테일을 잡아요. 혹은 스튜디오에서 특정 아티스트와 세션을 하고 있다는 상상을 하며 작업하는 경우도 많아요.

 

 

 

LE: 프로듀서한테는 리듬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가 중요하잖아요? 그런 만큼 소리를 모아 리듬 파트를 만들 때 가장 집중하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저는 박자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예요. 곡을 들을 때 리듬 패턴을 분석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사실 트랩 리듬은 다 비슷비슷 한대요. 최근 브록햄튼을 비롯한 얼터너티브 계열의 아티스트들이 재밌는 질감이나 박자를 트랙에 쓰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그런 실험적인 사운드를 가져와서 트랙에 섞을 때가 많거든요. 이럴 때 주로 리샘플링(Resampling) 기능을 많이 써요. 미디로 찍은 멜로디나 드럼 룹을 리샘플링을 통해 오디오로 뽑은 다음에 찹핑(Chopping)을 하거나 리버스(Reverse) 테크닉을 써서 실험적인 사운드를 트랙에 도입해요.

 

 

 

LE: 그렇다면 자신만의 샘플 혹은 라이브러리를 따로 만들어 두시기도 하나요?


저는 열려 있고, 다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플라이스(Splice) 샘플을 그대로 쓸 때도 있고, 변형하는 때도 있고, 혼자서 만들 때도 있어요.

 

 

 

LE: 어떤 식으로 사운드와 샘플을 정리하세요?


저는 바이브에 맞춰서 ‘누구 타입’, ‘어떤 무드’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분류하는 편이에요. 제가 내고 싶은 분위기나 맞추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으면 마치 도구 상자처럼 폴더에 들어가 바로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둬요. 에이블톤 라이브의 기능 중에 색 기능을 쓰면 파일에 라벨링을 할 수 있거든요. 덕분에 저는 미리 분류한 소스를 필요할 때 빠르게 찾아 쓸 수 있어요. 이처럼 에이블톤은 소스 정리도 간편하고 효율적이에요.

 

 

 

LE: 플립 님이 음악을 만들 때 즐겨 사용하는 용어도 궁금하네요.


다들 쓰는 용어기는 한데요. 저는 자주 ‘야마’란 단어를 쓰고, 레슨생들에게도 말해요. 저에게 ‘야마’는 무드랑 바이브이거든요. 듣는 사람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음악. 그게 ‘야마’가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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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소리 혹은 악기 사운드가 있을까요?


저는 요즘 070 셰이크(070 Shake)나 마이크 딘(Mike Dean) 음악에서 들리는 빈티지한 신시사이저 소리를 좋아해요. 

 

 

 

LE: 선호하는 가상악기나 플러그인이 있을까요?


요즘 하이퍼팝 아티스트.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나 이트(YEAT!) 같은 힙합 음악에서 세럼(Serum)을 많이 쓰는데요. 사실 제가 세럼 특유의 쨍쨍거리는 소리를 별로 안 좋아해요. 대신에 저는 아투리아(Arturia)에서 나온 아날로그 랩(Analog Lab)을 많이 써요.

 

 

 

LE: 그 외에도 플립 님이 선호하는 이펙터가 있을까요?


사운드토이(Soundtoys)에서 나온 것들을 많이 써요. 앰프 같은 기타릭(Guitar Rig)도 자주 쓰고요. 대신에 저는 기타릭을 기타에 안 걸고, 다른 소스에 걸어서 사용해요. 소스에 기타릭의 프리셋을 적용하다 보면 이상한 소리가 날 때가 있거든요. 저는 그걸 잘라서 트랙에 녹여내는 식으로 질감적으로 포인트를 줘요.

 

 

 

LE: 그렇다면 플립 님의 평소의 워크 플로우가 궁금한데요. 보통 데모 트랙을 계속 만들어 두나요? 아니면 그때마다 의뢰에 맞춰 여러 곡을 만들어 두나요?


사실 저는 제가 아티스트로서의 재능이 많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아티스트로서 재능이 좋은 분들은 그때의 바이브에 맞춰 작업을 하잖아요. 저는 그걸 정리하는 방식으로 매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한창 열심히 할 때는 소스부터 레퍼런스 트랙까지 다 분류해놨어요. 누군가에게 의뢰가 들어오면 제가 바로 꺼내 쓸 수 있게 말이죠. 또, 열심히 할 때는 일어나서 잠자는 순간까지 음악만 생각하려 했어요. 잠자기 전에는 튜토리얼 영상을 보다 잠들고 그랬거든요. 독기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안 그래요. 

 

 

 

LE: 지금은 그러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예전에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강박이 심했어요. 음악도 빨리 내야하고, 귀에 꽂히는 음악을 만들어야만 할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저는 평생 음악을 하고 싶거든요. 이런 강박 때문에 마음이 지치면 음악을 즐기지 못할 거 같았어요. 지금은 좋은 음악을 길게 하려고 천천히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춰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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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플립 님이 스머글러스 분들과 함께 공동 프로듀싱을 하시잖아요? 보통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시나요?


스머글러스는 각자 생각을 던져서 의견을 취합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요. 오히려 콜라주를 하는 느낌인 거죠. 보통 스머글러스는 오프라인으로 모일 때도 있고, 디스코드(Discord)로 공유 화면을 보면서 의견을 나눌 때도 있어요. 다른 사람이 어떤 의견에 호응하면 시도해보죠. 아닌 거 같으면 다른 의견을 시도하고요. 이렇게 의견 충돌은 있긴 하지만 고집을 내세우지는 않아요.

 

 

 

LE: 해외 아티스트와의 매칭 과정 같은 경우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보통 매니지먼트가 있으면 특정 아티스트를 말하면서 “이런 곡 있어?”라 물어볼 때가 있고요. 혹은 여러 아티스트를 맡는 매니지먼트의 경우에는 “데모 팩을 보내 줄래?”라 할 때도 있어요. 때로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A&R에게 비트를 보내면 알아서 피칭해주는 경우도 있어요. 이 경우에는 매칭될 확률이 높지 않아요. 저의 데뷔곡이 다베이비(Dababy)에게 보낸 “Prolly Heard”인데요. 당시 제가 다른 사람이랑 같이 만든 비트 팩이 있었어요. 그때 작업을 해 놓고 들어 보니 ‘이거 다베이비 바이브네.’ 정도로 생각했어요. 드럼도 다베이비에 걸맞은 소스였고, 박자감도 그랬고, 멜로디도 다베이비가 딱 생각나는 바이브였거든요. 

 

어느 날 자고 있을 때 아침에 비트 하나가 되었고 일주일 후에 발매된다고 메시지가 온 거예요. 저도 당시에는 무명 프로듀서이고, 다베이비도 지금처럼 위상이 높지 않을 때라서 알겠다고 했는데요. 그렇게 발표된 [KIRK]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달성하면서 저에게 새로운 기회들이 왔고, 다베이비도 말 그대로 떡상을 했죠. 정말 예상하지 못하게도 비트가 제 주인을 찾아간 거죠. 왜 이런 일이 저한테 벌어졌는지 저도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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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다베이비 이후에 외국 아티스트와 작업할 기회들이 많이 생기진 않았나요?


다베이비의 “Prolly Heard”를 작업한 이후로 저에게 여러 기회가 많이 생겼어요. 제가 기회를 못 잡은 것도 많아요. 심지어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DONDA] 송캠프에서도 저에게 연락이 왔었어요. 곡을 보내 보라는 거예요. 너무 설렜죠. 다베이비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달성했는데, 칸예 웨스트의 앨범까지 참여한다? 끝난 거죠.

 

그런데 막상 작업을 하니까 곡이 너무 안 나오는 거예요. 제가 실력이 안 되니까 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스스로 납득할 만한 작업물이 안 나오더라고요. 결국 안 됐고, 슬럼프가 왔어요. 이런 과정을 겪다 보니 제가 히트곡을 내면 더 좋은 기회가 생기고, 나중에는 분명히 저에게 작업적인 자유를 줄 거 같다는 걸 느꼈어요. 그때 또 다른 히트곡을 내는 식으로 저의 사운드를 증명하는 거죠. 저는 저의 커리어에서 이런 과정들이 여러 번 더 필요한 거 같아요.

 

 

 

LE: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신스(SINCE) 님의 앨범 작업 같은 경우에는 아티스트와 피드백을 직접 하시면서 색다른 재미를 느끼셨을 거 같아요.


예전에는 제가 너무 거물급의 사람들과 작업하다 보니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힘들었거든요. 반면에 신스는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가는 게 많아 재밌었어요. 총괄 프로듀싱은 아티스트와 같이 피드백을 주고받고, 프로듀서가 전체적인 컨트롤을 하는 식으로 작업을 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업은 “탑승”이었어요. 당시에는 훅이 비어 있어서 저희가 “신스야, 기존에 안 하던 형식대로 한번 가보자.”고 요구했어요. 

 

그러다 신스가 훅에 아카펠라를 얹어서 보내줬는데요. 신스가 “이건 너무 과한가?”라 말할 정도로 아카펠라에 화가 느껴졌어요. 사실 제가 그런 거친 느낌을 원했거든요. 단톡방에서 멤버들 반응도 좋았던 거 같고요. 그렇게 저희가 의도했던 대로 비트, 바이브, 훅이 나와서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외에는 전체적으로 러프한 느낌이 들게 만들고 싶었어요. 특히 “봄비”는 대중들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야마 있게 녹인 트랙이라 생각해요. 드럼 질감도 되게 좋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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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케이팝 작업을 할 때 레퍼런스가 명확히 주어질 때가 있잖아요. 플립 님은 레퍼런스가 명확한 트랙을 잘 만드시는 편인가요?


레퍼런스가 명확하게 있으면 오히려 작업하기 어려워요. 레퍼런스가 어느 정도만 있으면 요소에 맞춰서 제 바이브에 맞는 소스를 쓰면 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해달라는 레퍼런스가 분명하면 작업이 잘 안 돼요. 저의 스킬 부족이죠.

 

 

 

LE: 그렇다면 본인이 레퍼런스를 잡을 때는 어떻게 작업하세요?


예전에 나영석 PD님의 학교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요. PD님이 “창의성은 잘 되는 A와 B가 부딪힐 때 생기는 균열에서 나온다.”라 한 말이 기억에 계속 남더라고요. 또, 좋은 노래를 만들 때 섞는다고 표현하잖아요. 저는 레퍼런스를 잡을 때 잘 섞을 수 있도록 작업하기 전부터 bpm, 바이브, 편곡 별로 작업하기 전에 소스 분류를 다 하고 소스끼리 충돌을 계속 시키려 해요.

 

 

 

LE: 그 외에도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업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예전에 070 셰이크의 세션에 참여해서 만들어진 곡이 있는데요. 아직까지도 070 셰이크의 멜로디가 귀에 멤돌아요. 평소에 정말 팬인 아티스트이기도 했는데, 보컬 라인이 정말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노래가 발매되면 좋겠는데 2년이 지나도 안 나오네요. (웃음)

 

 

 

LE: 프로듀서로서의 보람은 보통 어디에서 오는 편인가요?


저는 요즘 몰입의 즐거움을 모토로 두고 있어요. 몰입에 대한 정의가 ‘시공간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잖아요. 저에게는 음악이 몰입감을 줘요. 집이나 스튜디오에서 술을 마신 뒤 음악을 들으면 정말 좋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서 ‘나도 이걸 하는 사람이지. 여기에 발을 담고 기여하고 있는 사람이지.’란 생각이 들 때 자부심을 느끼고 행복감에 젖어요.

 

 

 

LE: 한창 타입 비트를 통해 프로듀서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만큼 프로듀서 역시 본인을 마케팅해야 하는 시대가 왔는데, 이런 브랜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요즘에는 타입 비트의 수준이 너무 높아졌어요. 타입 비트는 양면성이 뚜렷해요. 장점은 기회가 열린다는 거죠. 인터넷 공간에서 방구석에 있는 프로듀서도, 스튜디오에 있는 프로듀서도 비트 퀄리티로 증명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씬에 진입한 경우도 있고요. 근데 리스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곡의 가치가 너무 낮아졌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굳이 그 프로듀서랑 작업을 안 해도, 그런 느낌을 낼 수 있는 곡이 시중에 너무 많아졌죠. 

래퍼로서는 유명 프로듀서의 곡을 쓰고 싶을 때 몇만 원 정도면 원하는 사운드를 쓸 수 있거든요. 굳이 돈을 프로듀서에게 지불할 필요가 없어진 거죠. 그래서 타입 비트는 겉으로만 보면 기회가 생긴 거 같지만, 프로듀서의 희소성이 사라져서 상품성이 낮아지는 양면성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살아남기 위해 다음 스텝의 비즈니스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옛날처럼 ‘타입 비트는 예술이 아니다.’ 이런 건 지난 이야기인 거 같아요. 심지어 최근에는 제이콜(J.Cole)도 타입 비트를 사서 화제가 되었잖아요? 그래서 저는 프로듀서들의 희소성이 사라지는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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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앞으로 어떤 사운드, 장르를 구현하고 싶나요?


얼터너티브 장르의 요소를 많이 담아내고,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요. 

 

 

 

LE: 플립 하면 어떤 사운드가 먼저 떠오르는 프로듀서였으면 좋겠나요?


저는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타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요. 저는 아티스트 느낌에 가까운 앨범이 별로 와 닿지 않더라고요. 앨범도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범위 내에 들어야 같이 즐길 수 있는 건데, 그런 앨범을 들으면 마치 혼자만 ‘나 아트 했어.’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저는 그런 걸 아슬아슬하게 걸치면서 둘 다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렵지만 말이죠. 

 

 

 

LE: 마지막으로 플립 님이 앞으로 들려주고 싶은 소리에 대해서 예고해 준다면요?


아직 뚜렷하게 예정된 작업물은 없어요. 당분간 저는 계속 몸집을 불리면서 시스템을 파악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올해 말에는 조금씩 앨범을 준비해서 차근차근 만들어보고요. 자신감 넘치게 앨범으로 씬을 휩쓸어보고 싶다는 야망이 있어요. 아예 없던 음악을 해 보고 싶죠.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요. 제가 히트곡도 뚜렷하게 없고, 작업물도 없거든요. 힘을 더 길러야 할 시간 같아요.

 

 

 

LE: 마지막으로 다음 주 공개될 플립 님의 노하우가 담긴 에세이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오늘 말씀드린 내용들이 녹아 있는 음악 구성을 프로젝트로 보여드리려고 해요. 저만의 이야기가 구성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여드리려고 하니 재미있게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해당 프로젝트는 Ableton과의 협업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총 여섯 명의 프로듀서가 Seeing Sound 프로젝트에 함께 합니다."

 

*비앙(Viann) EP. 01: 링크
*비앙(Viann) EP. 02: 링크

*홀리데이(HOLYDAY) EP. 01: 링크
*홀리데이(HOLYDAY) EP. 02: 링크

*판다곰(Panda Gomm)  EP. 01: 링크

*판다곰(Panda Gomm)  EP. 02: 링크

*엘라이크(L-like) EP. 01: 링크

*엘라이크(L-like) EP. 02: 링크

*이안캐시(Ian Ka$h) EP. 01: 링크

*이안캐시(Ian Ka$h) EP. 02: 링크

*플립(Flip_00) EP. 01: 링크

*플립(Flip_00) EP. 02: 링크

 

 

CREDIT

Editor

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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