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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HYPED: 반느와르(VAN NOIR)

title: [회원구입불가]Beasel2023.03.07 10:08추천수 2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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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HYPED:

‘UNHYPED’는 힙합엘이의 언더그라운드 큐레이션 시리즈로, 이 씬 안에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소개한다. 본 시리즈를 통해 소개될 아티스트들은 몇 년 안에 더욱 큰 주목받을 재능과 가능성을 지녔다. 그런 그들을 미리 발견하고, ‘하이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언하이프’의 상태의 그들이 만들어낸 솔직하고, 대담한 음악이 더욱 큰 울림을 줄지도 모른다.

 

‘UNHYPED’에서 서른다섯 번째로 소개할 아티스트는 반느와르(VAN NOIR). 2020년, 첫 EP [RUN (A) WAY]로 데뷔한 그는 <P2P>를 통해 한차례 조명된 바 있고, 지난 12월에 콘다(Conda)가 전곡 프로듀싱을 담당한 정규 1집 [YÉGAKDOSHI]를 발표했다. 그는 짧은 커리어를 보유한, 아직 많은 것을 보여준 아티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10년간 갈고닦았다는 스킬로 눌러 담은 자전적 서사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가치가 있다.

 

 

반느와르2.jpeg

 

반느와르: Stranger

"17살 때 첫 가사를 썼는데, 제가 26살이니까 딱 10년 차가 됐네요."

 

 

 

LE: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반느와르: 안녕하세요. 저는 래퍼 반느와르입니다.

 

 

 

LE: 첫 데뷔 EP가 [RUN(A)WAY]. 사실 낯선 분이라 디스코그래피부터 훑어봤는데, ‘패션학도였던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중퇴하긴 했지만 중앙대학교 패션디자인과를 나왔어요. 선배들 졸업 작품으로 런웨이를 할 때, 헬퍼로서 여러 경험을 해봤는데요. 모델과 디자이너 말고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뒤를 받쳐주는 직업군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이걸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래퍼의 입장으로 비유해서 만든 작품이에요.

 

 

https://www.youtube.com/watch?v=XJA2sowvSlw&list=OLAK5uy_lqoN4Y8tUXawxv8oT3prT4Sm7N8nbne94&index=3

 

 

LE: 그렇다면 앨범 소개에 적힌 ‘RUN AWAY FROM RUNWAY’도 패션에서 힙합으로의 진로 변경을 의미하는 건가요?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네요. 애초에 졸업할 생각으로 들어간 게 아니었어요. 부모님이 보수적이라, 가라고 해서 간 거였죠. 고등학생 때도 음악을 하고 있었으니 중퇴할 생각으로 입학한 것 같아요.

 

 

 

LE: 그럼 랩은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타 인터뷰에서 10년간 갈고닦으셨다고 들었거든요.

 

17살 때 첫 가사를 썼는데, 제가 26살이니까 딱 10년 차가 됐네요. 힙합을 접한 건 초등학생 시절, 프랑스에 있을 때였어요. 마크(Marc)라는 친구가 에미넴(Eminem)의 “Not Afraid”를 들려줬는데, 한국에 와서도 당시 한창이었던 프라이머리(Primary), 빈지노(Beenzino),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랐어요.

 

 

 

LE: 저는 뭔가 랩 빡세게 하고, 가사 잘 쓰는 뮤지션들 좋아하셨을 것 같았어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 한국에서는 쿤디판다(Khundi Panda) 님이나 김심야(Kim Ximya) 님 생각도 났고요.

 

어? 맞아요,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LE: 본인이 가사에 다 적어 놓으셨잖아요. (전원 웃음) 그게 아니라도 많이 느껴지긴 했어요.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한국에서는 말씀하셨던 계열의 래퍼들을 특히 좋아했어요. ‘그게 어떤 부류냐?’한다면 개인적인 견해지만 염세적인 계열이 있어요. 부정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그걸 멋으로 승화시키는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LE: 수면 아래에 있었을 뿐, 꽤나 오랫동안 해오신 건데요. 콘다 님의 [춤] 수록곡 “Once upon a Time”도 그 과정에서 겪은 자전적인 이야기였나요?

 

콘다 형이 부탁한 주제는 '힙합 씬에서 동경하던 래퍼들이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술자리에서 뒷담이나 까고 있는 신물 나는 경험’이었어요. 실존 인물과의 일화를 담은 곡이긴 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95IR7TcKRGI

 

 

LE: 주제 선정은 콘다 님이 하셨지만 반느와르 님도 겪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트랙이었군요.

 

그렇죠. 누구나 한 번은 겪는 일이잖아요. 신물이 났다고는 했지만 술자리 뒷담화를 단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누군가에게는 제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디스곡이냐?' 묻는다면 잘 모르겠어요.
 

 

 

LE: 그 외에도 콘다 님하고 작업을 많이 하는 걸로 알아요. [YÉGAKDOSHI]의 전곡 프로듀싱도 맡으셨던데, 두 분은 언제, 어떻게 만났나요?

 

드라마틱한 만남은 아니었어요. 정규 앨범을 구상하면서 프로듀서 명단을 짜고 있는데, 마침 콘다 형의 [박쥐]가 나와서, 생판 모르지만 연락을 넣었죠. 만나보니까 말도 잘 통하고, 스타일도 잘 맞아서 친해지게 됐어요. 

 

 

 

LE: 그 만남이 결국 앨범으로 이어졌고요.

 

네, 저는 [박쥐]가 나오자마자 접선을 했잖아요. 그 앨범이 예상보다 입소문이 퍼져서... 어떻게 보면 저점의 콘다를 매수한 거죠. (웃음) 형도 판매자의 입장이 아니라 함께 만든다는 기분을 느꼈는지, 본인 정규 앨범에도 피처링 해달라 하더라고요. 콘다 형과는 앞으로도 많은 작업을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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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느와르: YÉGAKDOSHI

"유년기에 겪었던 날카로운 일들과 그 일들을 극복하는 과정."

 

 

 

LE: 그렇게 나온 1집 [YÉGAKDOSHI]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봅시다. 작업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내용 스크립트를 짜는 건, 20살 때 이미 완료되어 있었어요. 전부터 정규 1집은 무조건 이 내용으로 가고 싶었거든요. 비트 받고, 가사 쓰고, 녹음하는 실제 작업은 1년 정도 걸렸죠.

 

 

 

LE: 작중 배경도 그렇고, 앨범 아트워크에 그려진 게 에펠탑이라는 건 금방 유추됐어요. 그런데, ‘예각도시’는 무슨 뜻인가요? 친숙한 워딩은 아니잖아요.

 

‘예각, 직각, 둔각’ 할 때 그 '예각'이에요. 90도보다 뾰족한 각도를 예각이라고 하잖아요? 뾰족하고 날카로운 건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유년기에 겪었던 날카로운 일들과 그 일들을 극복하는 과정을 의미해요. 프랑스 에펠탑을 연상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5druf0ds8JM&list=OLAK5uy_mwd-oEGGU3zCL6GKqehgqeQG2vCOYucN8

 

 

LE: 예각도시에서 보낸 학창 시절은 어땠어요? 플롯이 명확한 앨범이었으니,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공무원 아버지의 파견으로 가족들과 프랑스 파리로 가게 됐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였으니 2009년이네요. 약간의 적응 기간을 가진 다음 국제 학교에 입학했고요. 앨범 안에서 두 공간에서의 학창 시절을 다뤘는데, 프랑스에서 보낸 학창 시절은 좋았어요. “CAFE ROUGE”에서 그렸듯, 여러 인종의 친구들과 카페테리아에서 어울렸던 추억이 있어요.

 

 

 

LE: '마크'라는 분도 그 친구들 중 하나였나요? 앨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잖아요.

 

다섯 명의 베프 무리가 있었어요. 이탈리아에서 온 프란체스코, 미국에서 온 맥스, 루마니아에서 온 블라드, 한국에서 온 저, 그리고 우리 중 유일하게 프랑스 출신의 흑인인 마크까지요.

 

 

 

LE: 2, 3번 트랙을 인종 차별에 관한 주제로 할애하셔서 좋지 않은 기억일 줄 알았어요.

 

국제 학교 안에서는 혼혈도 많고, 동양인도 많아서 심하지 않았어요. 시기가 조금 꼬여서 한 학년 밑의 친구들이랑 수업을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제가 월등하게 키가 컸어요. “RACELINE (il est là)”에서 보면, 제게 인종 차별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도, 체격으로 우위를 점했던 묘사가 있어요.

 

하지만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달랐죠. 아이에게 대놓고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유독 그렇게 굴던 흑인 아저씨가 있었거든요. “RACELINE (il est là)” 말미에 '울타리 밖에서는 그 남자를 조심해'라는 가사가 나와요. 건장한 흑인 남성이 동양인 꼬맹이를 해코지하려 했던, 직접 겪은 일을 다룬 곡이에요.

 

 

 

LE: “DEAR MR. B”에 나온 것처럼 그런 이유로 싸움이 잦았나?' 싶기도 했어요. 학교 밖에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떻던가요?

 

“DEAR MR. B”가 그 아저씨와의 일화를 담은 건 맞는데, 마지막에 등장하는 다툼이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에요. 디스곡 마냥 랩으로만 화를 낸 거죠. 8번 트랙에 '곡으로만 화를 냈는데, 실제로도 갚아주고 싶었다'라는 가사가 그래서 나온 거예요. 전반적으로 본다면 프랑스는 백인도 많고, 흑인도 백인만큼 많아요. 동양인이 전체 인구 비율에서 가장 소수니까 천대받는 경향이 있긴 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ABwMAskQdY4&list=OLAK5uy_mwd-oEGGU3zCL6GKqehgqeQG2vCOYucN8&index=3

 

 

LE: 좋았다고 하셨지만 그런 환경에서의 향수가 "NOSTALGIE!"에서 물씬 느껴지던데요?

 

어린 나이에 그런 경험을 하니까 제가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프랑스가 아닌 대한민국이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라고 여겼어요. 절 지켜주는 울타리가 국제 학교에서 모국으로 바뀐 거죠.

 

 

 

LE: 그렇게 트랙이 지나 프랑스에서의 시간은 막이 내리고, 5번 트랙부터는 한국에서의 학창 시절이 펼쳐져요.

 

초등학교 친구들을, 그러니까 프랑스에 가기 전에 사귄 친구들을 중학교 2학년이 돼서 만났어요. 너무 반가운데, 친구들은 저를 잊은 상태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너무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갔는지는 몰라도, 애들이 되게 약게 굴었어요. 적응을 못했죠. 학교 폭력도 당했고요.

 

그랬던 시기를 묘사한 게 "SAFE ZONE / DEFENCE GAME"이었고,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했던 심리와 과정을 묘사한 게 "흉내쟁이"였어요. 모든 왕따에는 꼬투리 잡을 모종의 명분이 있어요. 제가 왕따를 당할 이유도 걔네들에겐 존재했을 거고요. 하지만 '그 이유가 뭐가 됐던 정당하냐?'라고 하면 아니거든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당시에는 '그 이유를 제거하면 학교 내에 존재하는 계급의 위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따라잡으려 했어요. 다른 아이들을 모방하면서 '이런 행동을 하면 인정을 받는구나'라는 걸 알아가는 일종의 사회화 과정을 거쳤죠.

 

 

 

LE: 학급 내에 암묵적인 계급이 있다는 건 결코 부정할 수 없죠. 그 와중에 검은색 신발과 하얀색 신발의 대비가 참 흥미로웠어요.

 

일단 파리에는 하얀 비둘기 똥이 상당히 많아요. 낭만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청결이 좋지 못한 곳이거든요. 자주 밟기도 했고, 인종 차별을 당할 때 제 신발에 내뱉어진 침을 의미하기도 해요. 프랑스에서의 학창 시절을 내포해요. 반대로 검은색 신발은 한국에서의 학창 시절이죠. 학교 폭력을 당하면서 짓밟힌 실내화를 표상화시켰고, 일부러 대비 효과가 나도록 표현했어요.

 

 

 

LE: 그다음 이어지는 "FUCK YOUR ROLEMODEL"은 서사와 조금 동떨어진 트랙이라고 느꼈는데, 어떤 의도가 담겨있을까요? 

 

"흉내쟁이"에서 '완벽하게 친구들을 모방해 사회화가 되니까, 되려 그 위로 올라서고 싶더라'라는 내용이 등장해요. 왕따를 당하던 아이가 상황을 벗어나니까 역으로 찍어누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거죠. 각자 자신을 지키는 무기를 지녔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어떤 애는 공부 잘하는 게 무기고, 어떤 애는 게임 잘하는 게, 어떤 애는 물리적인 힘이 센 게 무기인 것처럼요.

 

제가 무기로 삼은 건 말싸움에서 지지 않을 언변이었어요. 당시에 다른 학생들을 찍어누르고 싶었던 욕구를 랩 게임에 입각해서 풀어 본 트랙이에요. 부가 설명을 하자면 '티키타카'하는 트랙을 만들고 싶었어요. 쿤디 형도 제일가는 테크니션이다 보니 청각적인 카타르시스에 집중해서 만들어보자 했죠.

 

 

https://www.youtube.com/watch?v=JumdWUWGwts

 

 

LE: 그러고 보니, 피처링으로 참여하신 쿤디판다 님과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사운드클라우드에 함께한 다른 트랙도 올라와 있더라고요.

 

쿤디 형이 엠씨 메타(MC Meta) 님을 디스 했던 사건이 있었어요. 그때 페이스북으로 비트 뭐냐고 물어봤던 게 첫 대화였네요. 추후에 [쾌락설계도]랑 [농]이 나오면서 팬이 됐고, 제가 믹스테입을 냈을 때 들어봐 달라고 연락을 넣었어요. 그렇게 친분을 맺어서 지금은 각별한 사이가 됐죠. 예전에 피처링을 부탁했는데, 이 형이 '안 해줄 거야, 정규 때 해줄게'라고 딱지를 논 적이 있어요. 이번에는 '이제 정규입니다, 도와주십쇼'라며 돌아와서 흔쾌히 도와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웃음)

 

 

 

LE: 쿤디판다 님이 도움을 주는 몇몇 신예들이 있다는 건 들은 적이 있는데, 그중 하나신 거네요.

 

네, 저도 그중 하나죠. 나비99(NAVI99)라는 친구들도 있고요. 아무쪼록, 쿤디 형은 참 고마운 분입니다. 제가 머지않아 넘어서겠지만.

 

 

 

LE: 인터뷰하는 입장에서 이런 발언 너무 좋습니다.

 

넘어선다는 말, 꼭 기재해 주세요. (전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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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느와르: Fence

"각자의 울타리를 태워서 손을 내밀면 서로에게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LE: 전반부에서 시간 순서로 스토리텔링 해나갔다면 "LOST&FOUND"부터는 본격적인 내면의 혼란으로 이어지잖아요? 이 구간에서 서사의 흐름이 전환되더라고요.

 

"LOST&FOUND"는 분실물 보관소라는 뜻이에요. 보관소에 방문한 제가 불어로 '내가 뭘 찾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해요. 어느 순간 가치관에 혼란이 왔었어요. 제가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게 됐죠. 이전의 트랙에서 다룬 가사들을 한 번씩 되짚고, 각 트랙들에서 나온 사운드도 중간중간 삽입하는 식으로 표현했어요. 

 

 

 

LE: 가치관의 혼란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중학교 때와 달리 암묵적인 계층의 상위에 위치했던 것 같아요. 그때 가장 심했어요. 누군가를 괴롭힌 적은 없지만, 괴롭힘당하는 아이들을 보고 '왜 노력을 안 하지? 자신만의 방어기제를 만들고, 무기를 갖추면 나처럼 벗어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고 나니까 '나도 저걸 당했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난 뭐지?'라는 혼란에 휩싸였어요. 이외에도 원인은 복합적이었죠. '거기서는 날 한국인 취급했는데, 여기서는 왜 프랑스인 취급하냐'라는 가사가 있듯이요.

 

 

 

LE: 그러셨군요. 연장선상으로 "BRAIN LAUNDRY"를 들을 땐 과거의 그림자에서 기인한 혼란을 술로 푸는 20대 초반의 그것이 연상됐어요.

 

그렇죠. 혼란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 성인이 됐어요. 플롯에서는 화자가 술에 취해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게 "CAFE ROUGE"의 시발점이에요. 만취 상태로 과거 회상을 하면서 1번에서 9번 트랙까지 온 거죠. 그래서 "BRAIN LAUNDRY" 후반부 스킷에 '나 얼마나 잤지? 여덟 트랙 정도 잤어'라는 대화가 나와요. 이 트랙은 실제로 술로 모든 걸 잊자는 상황이에요. 제 이십 대에 술이 큰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지금도 술을 너무 좋아하고, 마시다가 기억을 잃는 게 다반사라...

 

 

https://www.youtube.com/watch?v=OKnHZYtlAlg&list=OLAK5uy_mwd-oEGGU3zCL6GKqehgqeQG2vCOYucN8&index=9

 

 

LE: 해당 파트부터 결말로 치닫기 시작하죠. 이러한 구성 뒤에 뉴스를 접하는 묘사가 나오는데, 실제로 술 마시던 와중에 그 뉴스를 접하신 건가요?

 

아니요. 2015년이었으니 전 고등학생이었어요. 시간적으로 각색한 부분이에요. 

 

 

 

LE: 뉴스 내용에 단서들이 있었어요. 찾아보니 기억이 나더라고요. 2015년 11월, 13일의 금요일에 있었던 파리 테러 사건. 고통스러우실 수도 있지만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1번 트랙부터 언급했던 다섯 명의 베프 무리가 있었다고 했잖아요? 저를 포함해서 다들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마크는 프랑스인이니 유일하게 그곳에 남아있었죠. 저희는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받아 왔는데, 딱 그 뉴스를 기점으로 마크의 연락이 끊겼어요. 계속 그 친구를 찾으려 했던 상황이 "DEAR MARC"에 담겨있어요.

 

 

 

LE: 하지만 결국 바타클랑 콘서트홀(최다 사망자 발생지)에서 사망하셨다는 소식을 들으셨군요.

 

네, 소식을 들었을 당장은 슬프기보다 놀랐어요. 살았던 곳에서 그런 참사가 일어났다는 충격도 컸고... 전 세계의 랜드마크에서 프랑스 국기로 조기를 걸었던 기억이 나요. 광화문에도 불을 켰었는데, 결국 잊혀지더라고요. '인생이라는 게 잠깐 분노하고, 잠깐 애도하는 사건들의 연속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LE: 아무래도 씁쓸할 수밖에 없죠. 저는 이야기가 끝맺어지는 "소각장"이 가장 인상 깊은 트랙이었어요. 앨범의 주제가 이 트랙에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코멘터리를 가감 없이 부탁드릴게요. 

 

사실, 앨범에서 등장하는 마크도 마크 한 사람만을 기리려는 의도는 아니에요. 불가항력적인 참사로 희생된 모든 사람들을 마크의 이름으로 대변하고 싶었고, 그들을 위한 추모곡이 "소각장"인 거죠. 앨범 내내 언급해왔던 '울타리'가 프랑스의 국제 학교였다가, 한국으로 바뀌었다가, 또 내면의 방어기제로 바뀌었어요.

 

여기서 '내가 나 자신을 방어할 수 있을지 언정,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는 없는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점점 배타적이고, 원자화되는, 개인주의적으로 변해 가는 세상과 반대로 각자의 울타리를 태워서 손을 내밀면 서로에게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젠더, 연령, 빈부를 떠나서 손을 내밀어 줘'라는 가사를 썼는데요. 이런 갈등이 너무 많았잖아요? 서로가 본인이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면 인정을 해주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프랑스에서 'Mr. B'에게 당했던 것도 똑같아요. 결국 다양성을, 소수를 존중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니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자는 이야기예요. 

 

 

https://www.youtube.com/watch?v=ntY_Sry5KQY&list=OLAK5uy_mwd-oEGGU3zCL6GKqehgqeQG2vCOYucN8&index=11

 

 

LE: 괘념치 않았거나, 배척했던 문제도 자신의 이야기가 되면 사뭇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이죠. 

 

맞아요. 저도 무슨 연설가나 깨어있는 시민인 것 마냥 비치고 싶지 않거든요. 저부터도 제가 해당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 배타성을 갖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두 번째 벌스 마지막에 '나는 단지 이 문제에 해당되는 사람이라 이 가사를 썼다'라고 쓴 것 같아요. 음악 하는 사람이니까, 손을 내미는 방식이 제게는 이 앨범이었던 거죠. 

 

 

 

LE: 잘 들었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유명한 래퍼가 아닌 이상, 사람들이 이런 전기적인 풀 렝스 앨범에 큰 관심을 기울이진 않잖아요. 신예로써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현실적인 고민은 없으셨어요? 

 

물론 있었죠. (웃음) 그래서 20살 때 구상한 앨범이 25살이 되어서야 나온 것 같아요. 살면서 단 한 번 밖에 쓸 수 없는 이 주제를 충분한 관심을 얻은 뒤에 다루고 싶었지만, 막말로 그때가 안 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반대로 이걸로 터뜨려서 주목의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고, 더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희미해지면 내기 싫어질 수도 있으니, 우선 매듭을 지으려고 만들었어요.

 

 

 

LE: 아티스트 분들이 간혹 '성과와 별개로 이걸 내야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라고 말하는 앨범들이 있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군요.

 

네, 말씀 그대로입니다. 

 

 

 

반느와르5.jpeg

 

Next Chapter: 반느와르

"보람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아요."

 

 

 

LE: 좋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한 챕터의 매듭지음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반느와르 님의 포부나 음악적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더욱 멋있는 걸 만들 거고요. 한 번 서사적으로 풀었으니까,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좀 더 청각적인 부분에 치중한다던가, 음악의 본질적인 요소에 집중할 수도 있겠죠. 콘다 형이랑 계속 교류하면서 구상하고 있고, 다른 래퍼나 프로듀서들과도 작업 중이라 저도 어떤 게 나올지 궁금해요.

 

 

 

LE: 반느와르 님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요?

 

보람이 아닐까요? 예전에는 보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끝도 한도 없겠더라고요. 뭔가를 발표했을 때 보람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아요.

 

 

 

LE: 언젠가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로 하겠습니다. 전화번호만 있다면, [YÉGAKDOSHI]를 들려주고 싶네요. (웃음)

 

 

 

LE: 반느와르를 정의할 수 있는 키워드나 문장이 있을까요?

 

저는... 래퍼의 본질에 해당하는 요소를 갖고 있는 사람이죠. 그런 사람이 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LE: 마지막으로, 힙합엘이 유저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저 좀 많이 퍼나르고 다녀주세요. (전원 웃음) 감사합니다.

 

 

 

LE: 인터뷰 고생하셨습니다.

 

 

 

CREDIT

Editor

Destin

신고
댓글 4
  • 3.7 15:34

    예각도시 너무 잘 듣고있습니다. 시디도 사야겠어요..!

  • 3.7 19:39

    정말 더욱 하잎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작업물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 3.7 21:02

    ㄹㅇ 더 하잎 되야댐

  • 3.8 16:35

    파리 테러 관련 이야기는 ㄹㅇ 충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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