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8. 금요일
합정 터미너스
Melo
EtchForte
Pepnorth
몇 해 전만 해도 우리에게 믹스테입은 낯선 음반 형태였다. 앨범 같지만 앨범은 아니고, 그렇다고 맥시 싱글도 아닌 작품. 여러 뮤지션이 믹스테입을 발매하면서 이제는 꽤 익숙해졌는데, 얼마 전부터 오피셜 믹스테입이라는 개념이 새로이 등장했다. 정규 앨범보다는 힘을 빼고, 새로 만든 비트를 쓰지만, EP는 아닌 작품. 주목받는 래퍼, 오왼 오바도즈(Owen Ovadoz)는 자신의 첫 정규 작품으로 오피셜 믹스테입을 선택했다. 그는 왜, EP도 앨범도 아닌 믹스테입을 커리어의 디딤돌로 놓은 것일까. 음악과 방향성에 대한 그의 진솔한 이야기가 몹시 궁금했다.
오왼 오바도즈의 음감회가 지난 1월 8일, 홍대의 라운지 터미너스(Terminus)에서 열렸다. 음감회 진행은 힙합엘이의 에디터 멜로(Melo)가 맡았다.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트랙을 하나씩 감상해보는 순서로 진행됐다. 오왼 오바도즈는 오피셜 믹스테입 [P.O.E.M.(Piece of Evolutinary Mind)]을 작업하게 된 계기, 그리고 그 작업 과정에서 느낀 감정을 관객들에게 가감 없이 전했다. 그는 이번 작품의 시작이 ‘믹스테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겁게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큰 그림을 그리고 시작한 게 아닌, 마음에 드는 비트에 가사를 하나씩 써가며 시작했다고 한다. 작업 초반, 그 비트는 대부분 일리네어 레코즈(Illionaire Records) 소속 뮤지션 더콰이엇(The Quiett)의 비트. 곡을 만들면, 피드백을 받은 후 수정해보고, 다시 녹음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작업을 거듭하며 점차 틀이 잡혔고, 본인의 기획이 더해져 지금과 같은 믹스테입이 탄생했다고 한다. 작업 시작 시기는 2014년 말.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셈이다.
작업의 시작이 간단했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이야기까지 가벼운 건 아니다. 믹스테입의 타이틀 [P.O.E.M]은 영어 단어로 ‘시’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오왼 오바도즈에게는 ‘Piece of Evolutinary Mind’를 의미하기도 한다. 오왼 오바도즈는 평소 가사 작업을 시시때때로 한다고 밝혔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자다가 일어나서도, 친구들과 놀다가도 가사 작업에 몰두하는 편. 믹스테입 작업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항상 머리에 담아두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조금 더 발전시켜 정갈하게 정리하고, 비트에 녹여낸 것이다. 그래서 [P.O.E.M.]이 단순한 믹스테입이 아닌, 오피셜 믹스테입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믹스테입의 수록곡을 들어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믹스테입의 수록곡은 총 10곡이었다. 참여한 프로듀서는 더콰이엇부터 프리마 비스타(Prima Vista), 그루비 룸(Groovy Room), 24 & 죠 리(24 & Joe Rhee) 등이다. 프로듀서의 면면에서 볼 수 있듯, 수록곡 대부분은 샘플링에 기반을 두면서도 적지 않은 무게감을 갖추고 있었다. 5번 트랙 “작업”을 앞두고는 이날의 스페셜 게스트, 래퍼 루피(Loopy)가 등장했다. “작업”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그는, 오왼 오바도즈와 함께 해당 곡을 라이브로 소화했다. 오왼 오바도즈의 묵직하고 단단한 랩과 루피의 그루브 있는 탄탄한 랩이 서로 맞물리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다. 루피는 라이브를 끝낸 이후, 오왼 오바도즈와 함께 작업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오왼 오바도즈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이 기대 이상으로 멋졌고, 작업물도 마음에 들어 함께 곡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15일 나올 완성된 곡의 퀄리티를 무척 기대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곡 감상을 다 마친 이후에는 10번 트랙 “11 in morning”과 6번 트랙이자 타이틀 곡인 “Hip Hop”의 뮤직비디오가 상영됐다. 전자는 부드러운 곡의 비트처럼 깔끔한 분위기를 갖추면서도 곡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풀어낸 영상이, 후자는 제목답게 힙합의 라이프스타일적인 측면에 보다 집중한 영상이 담겨있었다. 오왼 오바도즈가 말하던 힙합,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영상 작품으로 더욱 구체화된 모습이었다.
오왼 오바도즈는 시간을 내 자리를 찾아준 관객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감기 때문에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탓에 생각을 정리해 휴대폰에 담아왔다’며 진행자의 질문에 시종일관 진지하게 대답하던 오왼. 그가 쉬지 않고 꾸준히 음악을 발표하고 공연에 임하는 것도 모두 그 열정적인 자세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오왼 오바도즈는 이번 믹스테입 외에도, 스무 곡가량을 담은 정규 앨범을 올해 안에 낼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오왼 오바도즈의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는 이러한 그의 마인드와 실행력,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의 힘 덕분이다. 젊은 아티스트, 오왼 오바도즈가 공식적으로 내디딘 첫 발걸음 [P.O.E.M.]. 오는 15일, 우리 모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