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14. 토요일
홍대 Madholic 2
Melo
Libbiegraphy
Beasel
‘잘하는 형’이 돌아왔다. 그것도 정공법을 택해서 말이다. 힙합다운 힙합을 외치던 돈키호테는 다시금 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앨범을 택했다. 한국 힙합의 클래식이라 불리는 [Heavy Bass], 가감 없는 변화를 추구한 [The Vintage], 랩 그 자체의 매력을 극대화한 [Rap]까지, 그의 매 작품은 묵직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1년 8개월 만에 발표하는 정규 4집 앨범, 그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담긴 거리를 응시했다. 우리가 실제로 걷고 느끼는 그 거리 말이다. 한국 힙합의 대표적인 베테랑 MC, 피타입(P-Type)은 그렇게 돌아왔다. 그의 새 앨범 [Street Poetry]를 미리 접할 수 있는 자리가 지난 3월 14일 토요일, 홍대 매드홀릭 2에서 열렸다.
‘힙합엘이 리스닝 세션: 피타입 [Street Poetry]’에는 피타입의 명성에 걸맞게 많은 관객이 참여했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과반수의 의자가 채워졌고, 상당한 인원이 계속해서 매드홀릭 2로 들어섰다. 음감회 당일은 화이트데이였기에 많은 커플의 등장을 기대해봤지만, 안타깝게도 남녀의 성비는 9:1에 가까웠다. 숱한 남성들의 열기가 클럽을 감쌌고, 전투적인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이와 함께 인상적이었던 점은 가족 단위의 팬이 음감회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16년이라는 피타입의 경력에 걸맞게 그의 팬 역시 한 아이의 아빠, 엄마가 되어있었다. 연륜과 깊이를 더해가는 아티스트와 그의 음악을 듣고 자란 관객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자체가 감명 깊었다. 6시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행사의 막이 올랐다. 힙합엘이 에디터 멜로(Melo)의 진행 아래 음감회는 이어졌고, 피타입은 [Street Poetry]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냈다. 본 작에 담아낸 주제 의식, 전작과 달라진 음악적 지점, 각 곡에 대한 간단한 설명 등, [Street Poetry]를 관통하는 전체적인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Street Poetry]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기점으로 음감회가 시작되었다. 피타입은 이번 앨범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부족했던 3집을 교훈 삼아, [Street Poetry]에는 확실한 주제 의식을 담아냈다고 피력했다. 이번 앨범은 ‘세상’, ‘힙합’, ‘나’라는 세 가지의 카테고리가 중추를 형성하고 있다. ‘내가 보는 세상, 내가 보는 힙합, 내가 보는 나’, 피타입은 거시적인 관점과 미시적인 관점을 결합하여 결과물을 꾸려내었다. 특히, 세상과 힙합 씬의 민낯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의 민낯 역시 감추지 않음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를 이어가면서 뚜렷한 음악적 가치관을 내비치기도 했다. 베테랑의 애정과 비판이 담긴 메시지는 꽤 진솔했다. 피타입은 힙합을 씬의 개념이 아니라 장르의 개념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날렸다. 힙합이 음악 장르로 여겨지면서, 단순 비즈니스 혹은 직업 수단으로 인식됨에 안타까움을 표출하였다. 그가 잠시 씬을 떠나있던 기간에도 한국 힙합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개선 의지조차 전무한 현실을 지적했다. 피타입은 이번 앨범이 단순 음악의 영역을 넘어 이 문화 전체 즉, 넓은 세상에 날리는 메시지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타입은 [Street Poetry]에 담긴 음악적 변화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는 기존의 정석적인 리듬 체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음을 드러냈다. 특히, 언어 체계에 있어 많은 변화가 느껴졌다. 그간 다소 어렵게 느껴졌던 작품 중심의 어휘에서 벗어나 일상의 언어를 중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폭력적인 잡종문화”, "이방인"과 같은 곡에서 여과 없이 펼쳐지는 거친 언어는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반해 프로덕션은 조금 더 과거의 색채를 담아내었다고 말했다. 피타입으로 대변되는 강렬한 비트와 묵직한 타격감, 붐뱁에 기반을 둔 사운드는 본 작에 집약되어 있다. 그는 샘플링 작법을 기반으로 한 날 선 질감을 담아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피타입은 페서네이팅(Fascinating), 디프라이(Deepfry)와 합을 맞추었다고 한다. 특히, 앨범의 절반 이상을 동고동락하며 작업한 패서네이팅에 대해 고마움을 전하기도 하였다. 피타입은 DJ 프리미어(DJ Premier),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 노 아이디(No I.D.)보다 자신에겐 페서네이팅이 최고의 프로듀서라는 찬사를 건네며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만족감을 내비쳤다.
피처링진에 대한 언급도 눈길을 끌었다. 피타입은 [Street Poetry]에 담긴 바이브를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들을 물색했다고 한다. 그간 많은 교류를 이어온 넋업샨, 마이노스(Minos), 허클베리피(Huckleberry P), 스크레치 세션에 힘을 더한 DJ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 DJ 주스(DJ Juice)까지, 피타입과 커리어를 함께 이어온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외에도 차붐(Chaboom), 바버렛츠(The Barberettes), 선우정아 등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각자 오리지널한 분위기와 독보적 색채가 가득한 아티스트들이기에 협업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다.
이어 본격적으로 1번 트랙부터 10번 트랙까지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이어졌다. 공식 음원이 공개되기 전이었기에, 많은 관객이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뮤직비디오와 음원을 번갈아 가며 사용한 음감회의 구성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둔탁한 질감을 담은 사운드는 클럽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욱 강렬했고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피타입이 [Street Poetry]에 쏟은 열과 성은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피처링진부터 프로듀서진까지 모든 호흡은 피타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났다. 앞서 언급한 ‘힙합’, ‘세상’, ‘나’ 라는 주제는 매 곡에서 얽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거시적인 외침이 서린 “광화문”, 힙합씬에 대한 일갈을 담아낸 “이방인”, 인간 강진필에 대한 서사가 중심을 이루는 “최악의 남자”까지, 매 트랙은 그 결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곡은 피타입이라는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모이며 설득력을 획득하고 있었다. 10곡을 통일감 있게 조리하는 베테랑 래퍼의 여유와 경험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해졌다. 각 트랙에 대한 감상을 조목조목 알리고 싶지만, 곡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은 직접 들어보고 음미해보기를 바란다.
[Street Poetry]를 통해 피타입은 힙합에 대한 자부심과 장인정신을 표현하였다. 특히, 샘플 클리어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샘플링 문제는 국내에서도 화두가 되는 이슈이기에 그의 발언이 어떨지 궁금했다. 피타입은 이번 앨범에서 닐 영(Neil Young)의 “Southern Man”, 산울림 밴드의 “어느 날 피었네”, “골목길”,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등을 토대로 작업을 진행하였다고 밝혔다. 직접 외국에 연락해서 클리어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도 있었지만, 차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깔끔히 처리했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힙합 본연의 오리지널한 형식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고 말했다. 음악에 대한 베테랑 아티스트의 진정성과 고집이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피타입은 앨범 아트워크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사운드적인 측면뿐 아니라 앨범 커버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였고, 그 결과물에도 매우 만족한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로우디가(Row Digga)와 윤협 작가의 콜라보레이션은 단연 놀라웠다. 각자의 독창성을 표현하면서도 균형 있는 조화를 구축한 둘의 합작은 최고 수준에 가까웠다. 높은 퀄리티의 아트워크만으로도 [Street Poetry] 앨범은 충분히 구매할 가치가 있어 보였다.
2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음감회는 피타입의 “광화문” 라이브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Street Poetry]를 처음 선보인 것도 모자라, 그의 음성을 직접 들을 기회였기에 더욱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피타입은 역시나 명불허전의 실력을 선보였다. 독보적인 라이밍과 탄탄한 호흡은 유려했고, 관객을 사로잡는 아우라도 여전했다. 라이브 무대는 한 곡에 불과했지만, 베테랑의 힘과 여유는 작은 클럽 안을 가득 채웠다.
[Street Poetry]는 피타입에게 있어 큰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근 10년 동안 그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Heavy Bass]였다. 하지만 데뷔 앨범은 그에게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과거의 찬란한 영광이었지만 뛰어넘어야 할 산이기도 했다. 대중들의 잣대 역시 늘 [Heavy Bass]가 기준이 되었다. 피타입은 이번 앨범을 계기로 과거의 굴레를 깨부순 듯하다. 그것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짜 힙합’을 통해서 말이다. ‘힙합다운 힙합’이 오히려 희소성이 있어진 아이러니한 씬에서 [Street Poetry]는 분명 가뭄에 단비와도 같다. ‘잘하는 형’이 들고 온 ‘잘 만든 음악’을 우리는 그저 ‘잘 듣기’만 하면 된다. 피타입의 새로운 대표작 [Street Poetry], 지금 당장 느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