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PHOPLE
LISTENING SESSION Vol.6:
Rude Paper


날짜

2015. 11. 8. 일요일

장소

홍대 Zion Boat

진행

Bluc

사진

Zion Boat

취재

Pepnorth


지난 11월 8일, 홍대 자이온 보트(Zion Boat)에서 힙합엘이 음감회가 열렸다. 루드 페이퍼(Rude Paper)와 그들의 새 앨범 [Destroy Babylon]을 위한 자리였다. 루드 페이퍼의 신보 소식은 전부터 들어 익히 알고있었다. 더블 케이(Double K)가 참여한 싱글 “New Rasta Virus”를 인상 깊게 듣기도 했었다. 한국의 레게 씬은 기반이 그리 넓은 편이 아니라고 하지만, 레게 뮤지션들은 항상 그 협소한 발판을 딛고 일어서 좋은 음악을 선보였었다. 그 대표주자가 루드 페이퍼다. 쿤타(Koonta)와 RD는 이름만 들어도 음악을 기대하게하는, 일종의 ‘믿을맨’ 뮤지션이다. 그래서 음감회 소식을 듣고 설레지 않을 이유도, 가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음감회는 오후 여섯 시, 앨범 수록곡 “꿈이라도 좋아”로 문을 열었다. 진행은 힙합엘이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 블럭(bluc)이 맡았고, 그 옆으로 루드 페이퍼의 멤버 RD와 쿤타(Koonta), 그리고 새로 합류한 기타리스트 케본(Kevon)이 자리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자이온 보트는 발 디딜 틈 하나 찾아보기 어려웠다. 루드 페이퍼는 지난 3년의 공백기 동안 음악적 변화를 모색했다. 레게의 끝이 아닌, 레게의 뿌리인 루츠 레게로 방향기를 돌린 것이다 기타리스트 케본의 합류는 그 변화의 상징과도 같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은 레게의 본고장인 자메이카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직접 다녀온 RD와 쿤타, 그리고 영상 디렉터 인스피(Insp)가 생생한 자메이카 여행기를 풀어내며 루드 페이퍼의 음감회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들이 자메이카로 향한 이유는 간단하다. 레게를 더 잘 이해하고 작곡하고 구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자메이카 여행은 그 이름에서 오는 느낌과는 달리 그리 낭만적이진 않다. 한국에서의 거리도 문제지만, 좋지 않은 치안이 더 큰 문제다.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Kingston)은 전 세계 살인율 1위로 악명 높다. 그래서 레게 음악을 구사하는 아티스트라도 쉽게 가기는 어려운 곳.

“자메이카 루츠 레게를 해야 하는데, 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 자메이카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음악적으로 뚜렷한 목적이 있었기에 어려움도 감내한 것이다. 물론 그들의 여행은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차 사고로 절벽에서 굴러떨어질 뻔했고, 그 문제로 차주에게 살인 위협을 받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루드 페이퍼는 자메이카의 유명 스튜디오인 터프공 스튜디오(Tuff Gong Studio)에 도착해 세션 녹음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놀라운 일을 마주했다고 한다. 진행이 잘 안 되던 곡을 내놨는데, 세션 하는 분들이 5분도 안 돼서 모든 작업을 한 큐에 마무리한 것. 평생을 레게에 쏟아 부은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목격하고, 경험한 건 그들에게 적지 않은 수확이었다.

“레게에 대한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 장르가 달리 이해되기 시작했고, 확신도 생겼다.”
음감회에서는 10트랙가량 들을 수 있었다. 앨범의 정식 발매일이 다음 날이어서 무척 빨리 들은 편은 아니지만, 하루 먼저 들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게 느껴질 만큼 [Destroy Bablyon]은 훌륭한 작품이었다. 단순히 레게의 전설적인 뮤지션을 만나 세션을 받아오고, 작곡했기 때문이 아니다. 루드 페이퍼가 보여준 음악적, 가사적 면모가 남달랐고, 그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의미 있었기 때문이다. 쿤타가 직접 풀어낸 가사에는 레게 음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물질주의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 정신적 자유 등이 고스란히 베여있었고, RD의 프로듀싱과 케본의 기타 소리에는 루츠 레게의 바이브가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듣는 내내 몸이 절로 들썩였다. 그 와중에도 특유의 퓨전 레게 사운드가 튀어나올 땐 ‘역시 루드 페이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이 끝날 때마다 루드 페이퍼는 각 곡의 의미, 관련 에피소드 등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개개 곡을 넘어 앨범 자체에 들인 공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이야기는 5번 트랙 “Sons of Liberty”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가사를 쉽게 썼다. 정치학과 교수인 사촌형과 대화하는데, 어려운 용어를 써가면서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 ‘정말 잘 알면, 초등학생도 알기 쉽게 설명해줘야 한다.’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진짜 쉽게 썼다. 들어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다 알아들을 것이다.”

쿤타는 그 말대로 “Sons of Liberty”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누구나 다 아는 단어로 풀어냈다. 그래서 뻔한 곡 같지만, 오히려 가장 강한 임팩트를 선사하는 곡이다. 쉬운 노랫말과 어렵지 않은 논지의 힘이다. 이 부분은 앨범의 타이틀 [Destroy Babylon]의 뜻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Babylon’이란 부당한 사회 시스템 따위를 일컫는다(동명의 가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번 음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유쾌한 음감회였다. 자메이카 관련 에피소드는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고 재밌었다(여행과 관련된 더 자세한 내용은 얼마 전부터 차례대로 공개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Road To Jameica>에서 확인할 수 있다). 루드 페이퍼 멤버 간의 입담도, 호흡도 좋았다. 그래서 음감회에 온 게 아니라 라디오 공개 방송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2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음감회의 러닝타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갈 정도였다. 관객들도 중간중간 박장대소를 터뜨리기도, 음악에 진지하게 집중하기도 하며 음감회에 푹 빠져든 모습을 보였다. 루드 페이퍼가 음악적 고민을 이겨내고 레게의 더 깊은 뿌리로 파고들어 이렇게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건 멤버들의 끈끈한 유대와 유쾌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미 발매가 된 상태라 많은 분이 들었겠지만, 아직 못 들은 분이 계신다면 꼭 들어 보기를 권한다. 3년이란 공백기 동안 자신들의 레게 사운드를 더 단단히 구축한 루드 페이퍼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