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7. 목요일
합정 Back In The Day
Melo
EtchForte
Beasel
2015년은 유독 굵직한 정규작들이 쏟아진 해였다. 그리고 그 목록에는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발표된 작품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Street Poetry], [양화], [The Anecdote]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본 작의 타이틀은 공공연하게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떠돌아다녔고, 매해 기대되는 앨범 리스트의 상위권을 차지하곤 했다. 그러나 꽤 오랫동안 그 실체를 마주할 수 없었다. 그렇게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올겨울 드디어 우리는 그 작품을 만나보게 됐다. 그것도 21곡이라는 엄청난 양의 풀렝스 앨범으로 말이다. 한국힙합을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버벌진트(Verbal Jint)의 [GO HARD Part 1 : 양가치]는 오랜 침묵 끝에 그 진면모를 드러냈다.
지난 12월 17일, 아직 공개되지 않은 [GO HARD Part 1 : 양가치]의 후반부를 미리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홍대 백인더데이(Back In The Day)에서 개최됐다. 버벌진트의 신보에 대한 기대감은 음감회 공지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5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선착순 신청이 완료됐고, 이후에도 5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참석 문의를 보내왔다. 그 열기는 리스닝 세션 당일에도 이어졌다. 이른 시간부터 버벌진트의 팬들이 해당 장소를 찾았고, 그의 등장을 기다렸다. 당일 백인더데이에는 “원숭이띠 미혼남”, “기름 같은걸 끼얹나”, “Favorite”, “이게 사랑이 아니면” 등 버벌진트의 히트곡이 울려 퍼졌고, 관객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분위기를 즐겼다.
음감회는 힙합엘이 에디터 멜로(Melo)의 진행으로 시작됐다. 7시가 되자 주인공 버벌진트가 등장했다. 버벌진트는 [GO HARD Part 1 : 양가치]를 창작하며 자신이 경험한 생각과 감회를 직접 기록해 와서 팬들에게 전했다. 그는 한국어 랩이 건드리지 않은 지점을 건드리고 싶었다는 책임감과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을 자극해온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고 싶었던 욕심에 대해 말하며 준비 기간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사실 버벌진트는 긍정적인 바이브가 가득한 [Go Easy]를 발표했을 때부터 이와 상반되는 부정의 힘이 가득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반대된 개념의 타이틀을 생각했고, 어떤 하나의 현상과 사건에 대해 느껴지는 상반된 평가와 느낌의 ‘양가치’라는 단어를 더했다. 본 작에서 버벌진트는 직접 세션을 연주하고, 대다수 곡을 프로듀싱하며 연구실에서 연구하듯 음악을 준비했다고 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음감회는 전체적으로 기존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버벌진트는 당일 행사에 참여한 팬들을 위해 직접 피자와 음료를 제공했고, 그 역시도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지인들과 대화를 이어가듯 조곤조곤 말을 건넸다. 별도의 Q&A 시간 없이도 팬들은 자유롭게 버벌진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특히, 왜 [GO HARD Part 1 : 양가치]의 준비 기간이 그리 길었는지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 버벌진트는 중간중간 참여해 온 방송과 자신의 주위를 산만하게 하는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창작 활동에 지장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또한, 앨범의 전반부가 공개된 이후 다소 불거졌던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의 유사성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버벌진트는 의도는 안 했지만 일정 부분 영향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영향은 플로우나 보이스 등의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있었다고 한다. 켄드릭 라마가 힙합이라는 틀을 넘어 다양한 주제를 겁 없이 다루는 모습에서 감명을 받은 그는 자신도 그처럼 다양한 주제의식을 다각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욕망을 앨범에 담아냈다고 전했다.
이어 본격적으로 후반부 트랙을 감상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버벌진트는 곡을 순서대로 듣기보다는 다소 즉흥적으로 듣고 싶은 곡을 선정하여 팬들에게 전하는 식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유도했다. 첫 시작은 “My Bentley”였다. [Go Easy]에 담긴 “My Audi”와 연관된 트랙이지만, 그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아마 [GO HARD Part 1 : 양가치]를 통틀어 가장 어둡고 부정적인 정서가 가득한 곡이었다. 버벌진트는 “My Bentley”를 통해 과거와 반대된 자신의 정서와 감정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자 했고, 이를 약간의 과시를 통해 조금 더 극적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어 2xxx!가 프로듀싱에 참여한 “Karma”, 경멸과 혐오의 부정적인 정서가 짧은 시간에 응축된 “Fear"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앨범에서 버벌진트는 피처링 진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주제의식을 더욱 배가시켰다. 대표적인 곡이 “보통사람”과 “Seoul State of Mind”다. 버벌진트는 음감회 자리에서 피처링 아티스트들과의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각 곡의 컨셉과 아티스트가 걸어온 커리어와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춰 동료들을 섭외했다고 한다. 음악이 가지는 맥락과 피처링 진과의 연계가 유기적이길 원했다고 밝힌 그는 자신과 참여진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음감회에서는 개코와 베이식(Basick), 타블로(Tablo)가 참여한 “Seoul State of Mind”를 미리 들을 수 있었다. 쭉 서울에서만 자라 온 버벌진트는 가끔 자신을 지치게 하는 서울의 단상을 담아냈다고 한다. 그는 가사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자신이 앨범을 만들며 경험한 서울에 대한 감정을 알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이어 “The Grind 2”를 들을 수 있었다. [누명]에 실렸던 “The Grind”와 연결되는 시리즈 곡인 본 트랙에는 제리케이(Jerry.K)가 함께 했다. 두 베테랑 래퍼는 서로 대칭된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며 균형을 맞춰냈다. 이어 “Fast Forward (빨리감기)”가 흘러나왔다. 버벌진트는 특히 본 곡에 대해 많은 애정을 드러냈다. [GO HARD Part 1 : 양가치]에 수록된 트랙 중 아마 라이브를 가장 즐겨할 곡일 거라고 말하기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버벌진트는 “Fast Forward (빨리감기)”의 구조적인 멋과 형식미에 대해 스스로 만족한다고 말하며 일부 가사를 직접 현장에서 간단히 선보이기도 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솔직함 역시 가사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어 “건물주flow”와 “Gone” 등을 들으며 후반부의 트랙을 감상하는 시간은 마무리가 지어졌다.
버벌진트는 앨범과는 별개로 자신의 새로운 레이블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아더사이드(Otherside)라는 이름을 단 레이블에는 자신 외에 소속 아티스트는 없지만, 다양한 지점을 바라보고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리고 아티스트와 회사의 분배 비율 역시 아티스트 위주로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인 신생 레이블이지만 그가 밀고 나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곧 선보여질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음감회는 유독 따뜻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로 마무리됐다. 직접 버벌진트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케이크를 만들어 온 팬의 축하가 이어졌고, 한 아티스트를 위해 모인 30명은 그에게 축하의 노래를 불러줬다. 버벌진트 역시 직접 포스터 증정, 사인회, 사진 촬영 등으로 당일 참석한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3년이 넘는 긴 기다림에 걸맞게 [GO HARD Part 1 : 양가치]는 연일 리스너들 사이에서 호평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힙합을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버벌진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과 날카로운 가사적 각도를 드러냈다. 물론, 본 작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 [GO HARD Part 1 : 양가치]는 버벌진트의 말처럼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불친절하고 어두운 앨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벌진트의 음악성과 방향성은 그렇기에 본 작에서 더욱 빛난다. 대중적인 잣대와 일반적인 시선에서 벗어난 가치관이 여과 없이 담긴 [GO HARD Part 1 : 양가치]는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앨범이 될 것이다. 버벌진트의 새로운 대표작 [GO HARD Part 1 : 양가치], 지금 당장 들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