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22. 토요일
홍대 Madholic 2
Bluc
EDAWA
Pepnorth
‘소리헤다’는 ‘소리를 헤다’라는 뜻이다. 그 의미답게 소리헤다는 늘 좋은 음악을 선보였다. 2011년 초에 발표한 데뷔 앨범 [소리헤다]부터 시작해 그해 11월 마일드 비츠(Mild Beats)와 함께 작업한 [연우], 그리고 이듬해 비슷한 시기 선보인 정규 2집 앨범 [소리헤다 2]까지 그는 늘 소울, 재즈 등의 샘플을 기반으로 양질의 음악을 아낌없이 선보였다. 그 소리헤다가 약 2년 만에 3집 앨범을 발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집 앨범 발매 직후 그가 겪은 부침을 기억하고 있기에 새 앨범 소식이 무척 반가웠다. 그는 과연 어떤 음악을 들고 돌아왔을까? 전작과 비슷한 느낌일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앨범일까? 기대와 설렘이 뒤섞인 감정을 한 아름 안은 채 지난 11월 22일, 음감회가 열리는 홍대 매드홀릭 2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해 매드홀릭 내부로 들어갔다. 계단 아래쪽에는 판매용으로 준비된 소리헤다의 새 앨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MPC로 보이는 장비와 턴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으로는 크고 작은 의자가 줄 맞춰 정리되어 있었다. 음감회는 잠시 후 시작됐다. 이날 진행은 힙합엘이와 웨이브, 일다 등 다양한 매체에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 블럭(Bluc)이 맡았다.
음감회는 수록곡을 순서대로 들은 뒤 소리헤다와 블럭이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다시 음악을 듣는 식으로 진행됐다. 소리헤다는 곡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 이를테면 어떤 샘플을 어떻게 집어넣어서 소리를 냈는지 등에 관한 설명 대신 앨범을 작업하게 된 배경이나 앨범을 만드는 과정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현장을 찾은 관객들이 음악을 듣고 상상하며 느낄 즐거움을 뺐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소리헤다의 앞에는 낡은 Akai MPC60과 드럼 머신 E-mu SP-1200, 턴테이블 한 대, 그리고 7인치 LP 수십 장이 놓여있었다. 오로지 이 구성만으로 앨범을 작업했다고 한다. 단출하고도 고전적인 구성이었다. 그래서 앨범도 전반적으로 옛날의 느낌이 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앨범이 담고 있는 전체적인 음악의 색은 예상외로 무척 진보적이었고, 곡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가까운 쪽부터 E-mu SP-1200, Akai MPC60, 턴테이블, 7인치 레코드
샘플링을 그저 '쉬운 작곡법'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좋은 노래를 찾아서 잘라 붙이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샘플링’이라는 이름이 전해주는 단순함 때문이다. 하지만 샘플링은 녹록지 않은 작법이다. 악기에 따라서, 샘플을 선별하고 조합하고 뽑아내는 방법에 따라서 질감부터 느낌까지 많은 차이가 생긴다. 소리헤다는 샘플링의 방법론 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방식을 택해 앨범을 완성했다. 딜레이, 리버브 등 음악가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이펙터는 전혀 넣지 않은 채 순수한 모노 사운드만 썼다고 한다. 여기에 원곡 고유의 공간감을 살리는 데도 신경을 썼다고 한다. 힙합의 태동기를 함께 했던 작법과 결을 같이 하는 방식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이런 방법으로 앨범을 만드는 이가 얼마나 될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이런 방법을 따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소리헤다의 방식은 고집스럽기도, 뻔하기도 하다. 그도 이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헤다는 이 방법 속에서 본인을 대표할 수 있는, 일종의 오리지널리티를 찾고 싶다고 했다. 래퍼의 피처링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것도, 스트리밍 사이트와 대형 음반 판매점에서 그의 앨범을 만나 볼 수 없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음감회 도중 소리헤다는 로딩에만 긴 시간이 걸리는 그 낡은 장비로 즉석에서 트랙 두 개를 플레잉 하기도 했다. 보기 드문 장비로 선보이는 흔치 않은 라이브였다. 인상적이었다. 어쿠스틱으로 해야 꼭 라이브인 건 아니다. 이 고집스러움 때문에 소리헤다가 더욱 ‘소리의 장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간 소리헤다는 고집스러운 작법을 고수하지 않고도 좋은 음악을 선보였다. 2집 음반 같은 경우는 그해 열린 한국 대중 음악상에서 ‘최우수 랩&힙합 음반상’을 수상할 만큼 완성도를 인정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소리헤다가 갑작스레 작법을 바꾸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 내게 ‘무엇을 제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거기에서 말문이 막혔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그 취향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곡을 만든다는 놈이 본인의 취향을 알지 못한다는 것 자체에서 큰 반성을 하게 됐다. 난 설익은 놈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소리헤다는 그간의 작법을 서서히 놓고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게 바로 이번 음반에 사용된 7인치 레코드이다. “미친놈처럼 7인치 레코드를 모았다. 전 재산을 들이붓기도 했다. 옛날에는 샘플링을 하기 위한 레코드를 모았는데, 이 앨범을 준비하며 전부 팔아버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종의 컬렉션을 완성하는 데 집중했다. 그랬더니 아무거나 빼 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왔다. 내가 들어도 기분이 좋았고, 곡을 만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그전 앨범에는 이런 과정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발표한 앨범들은 ‘진짜’ 소리헤다의 음악이 아닌 걸까? “그렇다고 전작들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음악 하는 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그 앨범도 내 자식이다. 그러니 이번 앨범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만든 새 1집 앨범 정도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소리헤다라는 프로듀서가 만든 또 다른 앨범, 그게 바로 그의 3집 앨범이자 새로 탄생한 1집 앨범 [Time’s Arrow]인 것이다.
그만큼 앨범에는 흥미로운 요소가 가득하다. 우선, 1번 트랙부터 18번 트랙까지 제목을 이어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앨범을 구매한 이라면 트랙리스트를 쭉 훑어보길 바란다. 또한, 앨범은 LP와 CD라는 두 가지 포맷으로 발매되지만, LP에서 추출한 소리를 CD에 담았기 때문에 CD를 들어도 LP 특유의 질감을 감상할 수 있다. 소리헤다의 세심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날 음감회는 약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고 진지한 태도로 음반을 감상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곳곳에서 질문이 쇄도하기도 했다. 그만큼 현장은 뜨거웠다.
이번 앨범 [Time's Arrow]는 ‘소리헤다’ 하면 떠오르는 스타일과는 많이 다른 음악을 담고 있다. 한 관객이 이야기한 것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감상만으로 앨범의 좋고 나쁨을 판가름할 수는 없다. 일정 수준 이상의 음악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어떤 잣대도 들이댈 수 없다.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 소리헤다의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 'Time's Arrow'를 직역하면 '시간의 화살' 정도가 된다. ‘어쨌든 시간은 흐른다’는 뜻을 담아 지었다고 한다. 왠지 소리헤다라는 아티스트가 부침을 겪은 뒤 다시 한 번 성장하는 과정을 표현한 말처럼 느껴졌다. 앨범에서 묘한 깊이가 느껴진 건 그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