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PHOPLE
LISTENING SESSION Vol.13:
김태균


날짜

2016. 12. 26. 월요일

장소

아트나인


래퍼 테이크원(TakeOne). 처음 그를 알게 됐을 때가 기억난다. 믹스테입 [Takeone For The Team]을 통해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에 따른 기대감은 자연스럽게 서서히 커져갔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테이크원이라는 래퍼에 대한 여론은 여러 차례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의 정규 앨범이 너무나 기다려진다는 기대 어린 반응이 지배적이었으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어째서 앨범을 내지 않는 거냐는 의문이 쏟아져 나왔다. 몇몇 사람만이 그랬다고 하기에는 꽤 많은 리스너들이 그에 대한 실망을 표하기도 했다.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르자 그가 예고했던 [녹색이념]이라는 첫 정규 앨범은 나오지 않을 앨범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급기야 커뮤니티에서는 그저 그런 드립으로 그의 이름과 앨범을 사용하는 단계까지 다다르게 됐다. “이제는 떳떳하다”에서 외친 “1년이면 돼”라는 말이 그렇게 선명함을 잃어갈 때쯤 그는 자신의 본명, 김태균이라는 이름으로 [녹색이념]의 발매를 확정 지었다. 힙합엘이는 발매에 앞서 리스너들에게 [녹색이념]을 들려줄 수 있는 음감회를 진행하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26일 이수 아트나인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그의 첫 정규앨범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행사 당일은 비가 와서 그런지 꽤나 추운 날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이크원, 아니 정확하게는 김태균을 기다렸던 많은 팬들이 와주었다. 티켓과 포스터를 받아가는 팬들에게서 기대감 넘치는 표정을 엿봤지만, 단순한 기대감만이 아닌 일종의 걱정이 섞인 듯한 복잡한 표정 또한 볼 수 있었다. 입장은 본 행사 시작 15분 전부터 진행되었다. 시작 시간이 다가올수록 자리가 조금씩 채워졌다. 빈자리가 꽤 보였는데, 개인적으로 노쇼(No-show)들이 적었다면 조금 더 많은 회원들이 [녹색이념]을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정 시간보다 조금 지연됐지만, 김태균과 그의 동료들이 도착하고서 곧바로 힙합엘이의 스완(Swan)이 본 행사의 진행 방식을 알리면서 음감회는 그 시작을 알렸다.
이번 음감회는 크게 김태균의 무대인사와 1부, 2부, 그리고 그사이 잠깐의 휴식을 위한 인터미션으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첫 트랙부터 8번 트랙인 “막다른 길”까지 청취하고, 잠깐의 휴식 후 2부에서는 이후 9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청취한 후 종료되는 형식이었다(라이브 무대는 따로 없었다). 스완의 간단한 안내와 감사 인사 후, 김태균의 무대 인사가 이어졌다. 예정에 없었던 무대 인사라고 밝히며 말을 이어가던 그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번 앨범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없을 것 같다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아주 어렸을 적 부모님의 삶을 보며 느끼던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이번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의 일들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자신이 만드는 음악에 대한 혼란이 야기한 슬럼프와 병원 생활을 할 정도로 아팠었던 과거 또한 들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후, 그는 한 가지 당부를 전했다. 자신의 음악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결코 그것을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자신을 해방하고 앞으로 희망찬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그는 우리를 [녹색이념] 속으로 초대했다.
이윽고 본격적으로 1부가 시작되었다. 카운트 다운되는 시작 화면이 흡사 영화의 시작을 연상케 하며, 긴장감을 자아냈다. 첫 트랙 “섬광”이 재생되었고, 까만 화면 속에서 스텔라 장(Stella Jang)의 나레이션이 끝나자 영상과 함께 다음 트랙들이 차례로 재생되었다. 2번 트랙부터는 사진을 활용한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틸트는 정면으로 고정된 채 카메라가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진중하면서도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했다. 각 영상 속의 사진 중심에는 언제나 긴 머리의 한 여성이 자리했다. 그 화면들은 각 트랙의 이야기 속에 등장할 법한 장면 같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왠지 모르게 그 여성은 김태균의 과거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그렇게 [녹색이념]에 빠져들었을 때쯤, 1부가 끝이 났다.
10분 정도의 휴식 후, 곧바로 2부가 진행되었다. 인터루드의 역할을 하는 9번 트랙 “잔상”이 그 시작을 알렸고, 1부와 다르지 않게 트랙별로 다른 장소에서 촬영된 사진들이 나오며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1부에서 들었던 1번부터 8번까지의 트랙들이 일련의 사건으로부터 나오는 김태균의 내면에 집중하는 느낌이었다면, 2부에서 나오는 트랙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었다. 후반부로 다다르면서 그의 목소리에서 격앙된 감정과 이에 반대되는 차분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는데, 이에 따라 분위기 역시 자연스럽게 고저를 반복했다. 마지막 트랙 “암전”에서는 곡명처럼 까만 화면에서 가사만 나온 채 곡이 진행되었고, 끝남과 동시에 말 그대로 암전됐었다.
조명이 밝아지면서 3번 트랙이었던 “입장”과 함께 크레딧이 올라왔고, [녹색이념]의 음감회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녹색이념]은 김태균이라는 아티스트에게도 그렇겠지만, 이를 기다렸던 청자들에게도 참으로 많은 사연을 안겨준, 그리고 많은 사연이 담긴 앨범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앨범 속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더욱 진솔하게 느껴지는 앨범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개인적인 감상과는 별개로 앨범에 대한 평가는 추후 팬들에게 달려 있다. 솔직히 그의 이번 앨범을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혀 예측이 가지 않는다. 허나 무대 인사에서 말한 그의 이야기와 앨범 속 김태균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앞서 말한 것과는 별개로 그에게 고생했다는 심심찮은 위로의 말을 괜스레 전하고 싶어졌었다. 인고의 시간을 지나 세상에 공개된 [녹색이념]에 많은 성원을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