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PHOPLE
LISTENING SESSION Vol.10:
Crucial Star


날짜

2016. 03. 27. 일요일

장소

합정 터미너스


크루셜 스타(Crucial Star)의 작업 이력을 보면, 그가 꾸준히 작업물을 내는 아티스트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세 번째 믹스테입을 냈다. 무려 열두 트랙임에도 피처링 게스트가 한 명도없다. 솔직하고 담담한 각 트랙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작품에 온갖 감정을 다 담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3월 27일 일요일, 합정 터미너스(Terminus)에서 [Drawing #3: Untitled]를 미리 들어볼 수 있는 음감회가 열렸다.
입장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팬들의 표정에선 설렘이 느껴졌다. 그 설렘 속에서 음감회는 시작되었다. 진행은 힙합엘이의 에디터 멜로(Melo)가 맡았다. [Drawing #3: Untitled]는 [Drawing #1: A Dream Spokesman], [Drawing #2: A Better Man]을 잇는 세 번째 믹스테입이자 'Drawing' 시리즈의 마지막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완벽한 작품을 하려 하기보다는 스케치하듯이, 하지만 정규 앨범을 만들 때처럼 애착을 가지고 작업했다고 한다. 그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았고 필터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음감회는 분위기가 비슷한 트랙별로 듣고, 중간중간 질문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처음으로 "이자성"과 "Desperado"를 감상했다. "이자성"은 영화 <신세계>에서 배우 이정재가 맡은 캐릭터 이름이다. 이자성이라는 캐릭터가 선과 악에서 갈팡질팡하는 인물인데, 그러한 캐릭터에 자신을 빗대어 자신의 불완전함과 과오를 표현했다고 한다. 음악을 하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높아진 기준에 답답함을 많이 느끼면서 슬럼프를 겪은 내용을 담았고, 그럼에도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어 "Desperado"는 제목처럼 어두운 분위기를 가득 머금은 곡이었다.
"Can't Take My Eyes Off You"는 많은 이의 '최애' 영화이기도 한 '비포'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라고 한다. 내용적인 면에서 비슷한 점은 없지만, 본인의 연애사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그 컨셉을 따와 곡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조금은 딱딱했던 분위기가 금세 까딱까딱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다음으로는 "사계절방학"과 "One"을 이어 들었다. 크루셜 스타는앨범의 분위기가 너무 어둡다는 느낌을 받아서 이 두 곡을 최대한 신나고 재밌게 만들려고 했다고 전했다. 훅 때문인지 대중적인 느낌이 강한데, 훅 이야기가 나오자 다른 아티스트들이 피처링을 부탁할 때 훅만 맡기는 편이라 조금 힘든 경향도 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했다.
"My Porsche"가 나오며, 앞서 밝았던 분위기가 조금 차분하게 전환되었다. 차를 얼마 전에 바꿨는데, 그 기분을 곡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어 "Seize The Day"가 흘러나왔는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영감을 받아서 쓴 노래라고 했다. 사람들은 사는 환경부터 모든 게 다르고, 또 그렇기에 의도치 않게 방황하는 사람도 많으며, 그에 따라 하고 싶은 걸 못 찾은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이런 주제를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어 분노가 드러나는 곡들을 감상했다. "입양아"는 소울 컴퍼니(Soul Company) 시절 이야기를 담았는데, 단순히 욕을 많이 먹어서 쓴 곡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을 바탕으로 만든 곡이라고 했다. 다음으로 들은 두 트랙에는 어두운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는데, "Satan / Shit"에는 우울해졌을 때 느꼈던 자기혐오와 자기부정을 담았고, "신경안정제"엔 '안정이 정말 안정인가?'에 대한 의문을 담았다고 한다.
어둡고 우울한 곡들을 뒤로하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듯한 곡은 크루셜 스타 목소리가 들어간 마지막곡 "Luv"였다. 앨범 전체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둡다가 마지막에 밝아졌는데, 크루셜 스타는 치유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것은, 사람들에게 밝고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앞으로의 행보를 엿볼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을 끝으로 질문 타임이 이어졌고, 크루셜 스타는 답변을 미리 적어오는 꼼꼼함을 보이며 팬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마지막으로 "The Last Drawing"이 흘러나왔고, 함께해준 팬들이 요청하는 싸인과 사진 촬영에 응하며 음감회는 훈훈하게 마무리 지어졌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떨리고 어색했는데 함께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전하며,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서의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또한, 이번 믹스테입은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 같고, 정규 앨범 작업 준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루셜 스타의 이번 믹스테입은 사랑, 분노, 꿈, 좌절, 자기혐오, 불안함 등 많은 감정이 솔직하게 담고 있다. 랩을 잘하기보다는 본능적인 부분에 충실하려고 했다는 크루셜 스타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울하고 어둡지만, 곡의 끝이나 마지막 트랙에서 볼 수 있듯 결국에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닐까 한다. 트랙들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남겠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성적인 사랑 노래로만 대표됐던 크루셜 스타의 이미지가, 이 날것의 믹스테입으로 인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