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8. 토요일
홍대 Madholic 2
Bluc
Pardro
Pepnorth
펜토(Pento)가 정규 앨범 [ADAM]으로 돌아왔다. 2008년에 1집 앨범 [Pentoxic]을, 2010년에 [Microsuit]를 발표했으니 무려 5년 만이다. 물론 이 기간 펜토가 활동을 쉰 건 아니다. 그는 꾸준히 음악계에 몸담고 있었고, 싱글도 여섯 장 정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싱글들의 스타일은 그간 펜토가 보여준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었다. 펜토 특유의 ‘건 랩(Gun Rap)’이라는 본질은 여전했지만, 그 주위를 감싸는 테두리는 조금 낯설었다. 그래서 펜토의 새 앨범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1집과 2집에서 보여준 그 독창적인 스타일이 살아있을까? 아니면 흘러간 시간 만큼이나 새로운 음악을 추구했을까?
‘힙합엘이 리스닝 세션: 펜토 [ADAM]’이 지난 2월 28일 토요일, 홍대 매드홀릭 2에서 열렸다. 음감회의 구성은 전과 비슷했다. 오늘의 주인공 펜토와 행사의 진행을 맡은 칼럼니스트 블럭(Bluc)이 테이블에 앉아있었고, 그 앞으로는 의자가 줄 맞춰 정리되어 있었다. 입구 쪽에는 관객들을 위해 간단한 주전부리와 [ADAM]의 가사집이 놓여있었다. 관객이 하나둘 입장했고, 잠시 후 본격적인 음감회의 막이 올랐다. 음감회는 펜토가 [ADAM]을 제작하게 된 배경에 관해 간략히 이야기한 뒤, [ADAM]을 다 같이 감상해보는 식으로 진행됐다. 한 번에 두세 곡을 들었고, 그 뒤 펜토가 곡에 얽힌 이야기를 풀었다. 펜토가 전한 앨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그는 자기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번 앨범을 제작했는지 그 작업 과정과 계기를 소상히 전했다.
펜토는 그가 구축한 서사의 일부를 담당하는 작품이 [ADAM]이라고 밝혔다. 그 서사의 시작은 1집이 아닌 2집 [Microsuit]이다. 그 뒤 [Omega]라는 작품을 거쳐 [ADAM]이라는 앨범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1번이 아닌 25번 트랙에서 앨범이 시작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25번 트랙이자 앨범의 맨 앞에 수록된 “Monolith”가 정작 이번 앨범에 싣기 위해 제작한 트랙은 아니라는 점이다. 진짜 [ADAM]의 시작은 26번 트랙 “Meteor”다. 이 곡은 그가 [Omega]에서 재창조한 무언가가 운석처럼 지구에 떨어지는 걸 사운드로 디자인한 곡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다시금 최초의 음악적 자아를 되찾은 펜토의 여정이 새로 시작되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앨범의 타이틀은 [ADAM]이다. 종교적 색채가 묻어난다고 볼 수도 있는 단어지만, 그는 오로지 ‘최초의 인류’라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썼다고 한다.
펜토가 구축한 앨범의 흐름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게 [ADAM] 앨범 그 자체라고 한다면, 여기에 담긴 의미를 하나로 응축해 놓은 건 앨범의 커버와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검은색 두상이다. 두상은 펜토의 얼굴을 직접 마스킹한 뒤 다듬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잘 보니 가운데에 웬 기둥이 하나 박혀있었다. 이 기둥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놀리스를 모티브로 만들었으며, 사람의 정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람의 두상과 그 가운데를 파고든 기둥 모놀리스. 이 결합을 통해 펜토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세상에는 정해진 일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두상의 가운데에 꽂혀있는 기둥이 자신의 진화를 도모할 수도, 파괴를 앞당길 수도 있다. 외부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이미 안에 있는 셈이다.” 펜토의 이런 생각은 앨범의 가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텍스트에 신경을 많이 썼으니, 이점을 유념해 감상해달라. 분명 와 닿을 부분이 있을 것이다.” 펜토의 이야기처럼 가사 속에는 그의 생각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탐구적이고 철학적인 자세로 사회를 논하고, 그 맥락에 놓인 자신을 성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본인의 의지가 놓여있었다.
앨범의 아트워크는 살롱 01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에이조쿠(Aeizoku)가 담당했다고 한다. 앨범의 작곡과 편곡은 펜토가 직접 작업했다고 한다. 물론 두 번째 앨범 [Microsuit]를 냈을 때 프로듀싱은 L.S.V(Laser Sound Vision)이라는 영국계 쌍둥이 일본인이 담당했었다. 당시 [Microsuit]를 두고 “펜토와 L.S.V의 합작 앨범이다.”라는 평도 많았는데, 사실 L.S.V는 펜토의 얼터 이고(Alter Ego)라고 한다. 그러니까 2집 앨범도 펜토가 다 했고, 이번 앨범도 펜토가 다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ADAM”과 “MMM”의 뮤직비디오도 감상하는 시간도 있었다. 뮤직비디오에도 힙합보다는 펜토라는 아티스트의 색채가 묻어있었다. 앨범의 컨셉, 주제, 서사, 그리고 다른 아트워크와 잘 어우러지는 기분이었다. 자고로 앨범이라면 한 편의 영화처럼 다양한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표현해야 한다는 펜토의 지론이 만든 결과물처럼 보였다.
5년의 공백기 동안 펜토는 다양한 작품을 준비했다고 한다. 쌓여있는 결과물이 EP로만 5장 분량에 이르고, 앞서 말한 앨범 [Omega]는 이미 트랙이 다 나와 있는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 앨범 [ADAM]을 기점으로 펜토의 작품을 자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감회는 펜토의 라이브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Funeral”을 부를 땐 이그니토(Ignito)가 깜짝 출연했다. 오랜만에 보는 펜토의 라이브 무대였다. 그래서 괜히 반가웠다.
펜토는 지금까지 늘 새롭고 신선한 음악을 선보였다. 1집과 2집은 지금 들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사운드를 담고 있고, 그의 랩은 그 자체가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독창적인 개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펜토는 앞선 작품들로 기반을 잡아 놓은 자신의 개성을 이번 앨범 [ADAM]에서 단단하게 응축시켜 놓았다. 겉모습부터 시작해 내용의 흐름까지 각 요소는 빈틈없이 촘촘하게 얽혀있다. 전개, 절정, 결말 등 그 앨범의 흐름이 뚜렷한 것도 앨범의 유기성에 한몫한다. 더욱 단단해져 돌아온 펜토와 그의 고민이 가득 담긴 앨범 [ADAM]. 5년을 기다린 팬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