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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Blood Orange - Freetown Sound를 듣고

TomBoy2017.09.26 09:59조회 수 1008추천수 7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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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인생을 함께하는 뮤지션은 자꾸만 '무언가'를 건드린다. 그 무언가는 단순히 음악 취향일 수도 있고, 새로운 세상으로 자신을 초대하는 길잡이의 손짓일 수도 있고, 사무치는 그리움을 간직한 향수일 수도 있다. 다프트 펑크는 내 인생 최고의 밴드였고, 샤데이와 프린스는 내 청춘을 함께 했으며, 프랭크 오션은 쉽게 잊지 못할 여운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여기 블러드 오렌지(데브 하인즈) 또한, 내가 속한 원에서는 자꾸만 무언가를 건드리는 뮤지션이다. 2016년은 확실히 싱어송라이터의 해였다. 저스틴 버논(본 이베어), 솔란지, 차일디시 감비노, 맥스웰, 프랭크 오션, 에스페란자 스팔딩, 프랜시스앤더라이츠, 알리샤 키스, 캔디스 스프링스, 앤더슨 팩, 나오, 갈란트, 프랭크 맥콤, 그레고리 포터, 제임스 블레이크, 코린 베일리 래 등등의 뮤지션들이 자신의 커리어 최고작 혹은 그에 비견될만한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두 명의 프랭크가 이룬 작은 업적은 길이길이 회자될 것이다. 하지만 내게 어떤 이름 모를 권위가 주어져 이 걸작들에 순위를 매길 수 있다면, 나는 블러드 오렌지의 세 번째 앨범 <Freetown Sound>를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려놓을 것이다. 나는 정확히 데브가 무엇을 건드리고 무엇을 불러일으키는지 알 수 없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이 앨범이 귀담아들을 만한 가치와 소리를 담고 있다는 것, 오로지 그것뿐이다.       
 

   비평과 대중의 호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걸작들에 비해, Freetown Sound는 음악평론가들에게 좀 더 큰 지지를 받았고 음악팬들에게는 좀 더 작은 열광을 얻었다. 양쪽 다 동의하는 명제는 앨범 속의 인상적인 '소리'이다. 집중해서 듣거나 대충 듣거나, 이 앨범은 어떤 방식으로 감상하든지 간에 알앤비면 알앤비, 일렉트로닉이면 일렉트로닉처럼 명확한 장르 구분을 원하는 이들에게 환영받을만한 앨범이 아니다. 원인은 데브의 이력에 있다. 블러드 오렌지가 되기 전까지 데브의 인격은 Lightspeed Champion이었고, 약간은 직설적이고 유치하기까지 한 예명과 함께 Test Icicles라는 밴드에서 음악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데브의 장난기 가득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때는 세 명의 청소년이었고 결과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은 클락손스와 함께 동 런던 밴드의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데브는 이 인터뷰에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더 언급했다. 이 시기의 경험을 통해서 데브는 더 많은 아티스트와 교우하고, 더 많은 장르에 집중하고, 더 많은 악기를 배울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데브의 손길을 만나 비로소 알을 깰 수 있었던 수많은 여성 뮤지션들, 데브의 음악에서 물씬 풍겨오는 영국의 인디 신과 개러지 신의 체취, 형식과 조합의 유한성에 구애받지 않는 악기 구성, 이런 것들은 이 시기 사색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의 통감이 어쩌면 알앤비와 일렉트로닉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오늘날의 블러드 오렌지를 있게 한 청사진이 되었을 것이다. 


  데브 하인즈와 Freetown Sound는 이제껏 당신이 경험해보지 못했을 정말 독특한 한 쌍이다. 신구문화의 양극단을 정말 기가 막히게 접목시키면서 장르의 국경선을 자비 없이 무너뜨린다. 세련되고 매끄러운 앨범의 소리는 앨범의 주제까지 예측하게 하지만, <Freetown Sound>의 주제는 <Black Messiah>, <To Pimp A Butterfly>같은 앨범들과 공명할 정도로 의식적이다. 앨범 준비가 한창이었을 시기인 2015년, 데브는 스튜디오가 아닌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최선봉에 서있었다. 평온한 인터뷰가 아니라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하는 이들을 위해 외치고 노래했다. 그곳에서 흑인들과 성적 소수자들을 아울렀고, 세심하게도 여성들을 잊지 않았다. 데브는 말했다. "저의 다가올 앨범은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일환이고, 페미니즘과 연대하며, 성적 소수자들을 대변할 것입니다." 이 문장에 앨범에 담긴 모든 테마들이 함축되어 있다. 앨범이 디디고 있는 의식적 토양의 성분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 땅은 디 안젤로와 켄드릭 라마의 스튜디오보다 더 척박했을 것이다. 데브는 인종차별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의로운 감정에 관계없이 그들이 좀처럼 신경 쓰지 않는 부끄러운 이면을 들춘다. 시적인 가사와 샘플링된 다큐멘터리 클립을 대조시켜 소외된 사람들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들려주는 사운드만으로도 Freetown Sound는 충분히 걸작이다. 하지만 이 앨범의 소리에만 탐닉하고 가사를 신경 쓰지 않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앨범의 인트로인 By Ourselves에서는 에슐리 헤이즈가 미시 엘리엇을 위해 헌사한 시 "For Colored Girls"가 인용되어 있다. "I did not grow up to be you But I did grow up to be me"


  데브의 세계관은 Freetown Sound에 와서 더 진화했다. 인디 록밴드에서 일렉트로닉 포크로, 포크에서 뉴웨이브와 일렉트로닉 소울로, 다시 거기서 80년대의 펑크와 소울 음악을 흡수한다. 다양한 장르를 접목시키는 와중에도 정치적이고 복합적인 사안들에 효율적으로 접근한다. 이런 창의성을 관류하는 건 오로지 데브의 섬세한 보컬 톤이다. 데브의 보컬 톤은 80년대의 프린스와 마이클 잭슨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뿐만이 아니다. 프린스의 교태와 마이클의 리듬이 데브의 춤사위를 타고 흐르는 듯하다. 이 앨범을 들으면서 펑크 그룹 Blondie의 전설적인 트랙 Heart Of Glass가 떠오르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데브는 앨범의 제목에서 아버지의 고향인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과 자신이 뉴욕으로 오기 위해 떠나온 런던을 등치 시킨다. 프리타운의 소리는 런던의 소리라고도 할 수 있다. 형식은 대안적이고 복합적이다. 터전도 흑인음악이 아니다. 음악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허물어 버린다. 인디 락, 인디 팝, 일렉트로닉, 힙합, 알앤비 등 자신이 발 담가왔던 모든 세상을 한데 엮는다. 질감과 양감은 모두 이질적이지만 난해하지 않다. 과거에서 그 답을 찾지만 질문은 항상 미래를 향한다. 참신하면서 친숙하다. 70년대의 디스코 음악, 80년대의 콰이어트 스톰, 90년대의 뉴잭스윙, 2000년대의 일렉트로닉,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블러드 오렌지가 남았다. 끊임없이 환경이 변화하는 대지에서 고전과 혁신이 절충한다. 이것이 바로 Freetown Sound이다. 2009년에 사진작가 디아나 로슨이 찍었던 사진은 7년 뒤 운명처럼 데브 하인즈에 의해 앨범 커버로 간택되었다.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포옹하고 있다. 여자는 우리와 눈을 맞춘다. 마이클 잭슨의 가호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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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정리하던 와중에
작년에 다녀왔던 블러드 오렌지의 공연이 떠올라서 리뷰를 써봤습니다.
제일 좋았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정말 독특하고 인상 깊었던 공연이었어요.
그 분위기, 그 목소리, 그 몸짓, 미리 계산한 지는 모르겠지만
움직임 하나하나가 의도한 거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앨범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도한 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마음 속에 떡하지 한자리 차지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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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title: Kanye Westido
    9.26 16:03
    훌륭한 글 잘보고 갑니다.
    진짜 많이 들은 앨범이에요. 이거 듣고 뻑가서
    이 앨범이랑 전작을 충동구매 했는데 하나도 후회 안합니다
  • 9.26 21:39

    가장 좋아하는 2016년의 앨범 중 하나인데,

    리뷰를 보고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D

  • 9.27 10:39
    잘봤슴니다 가사를 꼭 잘 읽어야겠어요
  • 9.28 23:12
    항상 들을때 마다 앨범 인트로가 소르끼치도록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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