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찰리(Charli xcx)의 음악들은 항상 미묘한 면이 있었다. 물론 미묘하다는 말이 곧 그녀의 앨범 전체적인 커리어를 부정하거나 음악이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녀의 음악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팝스타와 힙스터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한 인물이 떠오른다. '과연 찰리의 음악들이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혹은 '힙스터에게도 이런 음악도 통한다고?' 같은 여러 잡생각들. 한데, 유독 <BRAT>은 다른 찰리의 작품들보다도 미묘한 색감이 더욱 짙은 작품으로 느껴진다. 당장 빈 초록색 바탕에 버릇없는 애새끼(brat) 같은 단어가 버젓이 앨범 재킷을 차지한 광경을 보아라. 이제는 밈이 되어버린 Brat Summer를 주도한 것이 찰리의 개성인지, 치밀한 마케팅이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의가 어찌 되었든, 그녀는 항상 솔직한 음악을 해왔고, 늘 그렇듯이 증명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 <BRAT>의 증명은 더욱 각별한 면이 있다. 유난히 공격적인 레이브 리듬,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하이퍼 팝, 퀸 등의 여러 수식어들이 앨범 사이사이를 맴도는 기분이다. 한편으로는 취약한 그녀의 일면이 등장하는 모습이나, 그녀와 그녀 주변을 향한 여러 물음들 역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내게는 이 사이의 교집합이 주된 물음표로 등장한다. 철없어 보이는 모습이 드러난 뮤비부터 시작해서, 개인의 일화가 간략하게 담긴 가사들까지 언더그라운드 레이브 클럽과 일기장 사이를 배회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꼭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는 것이, 찰리가 주최한 클럽 파티장은 청자를 위한 일종의 배려마저 느껴지기 때문이다. 세밀하게 분배해놓은 멜로디들이 청각적 쾌감을 중시하는 듯하며, 이윽고 리스너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클럽으로 초대한다. 클럽의 흥쾌한 분위기는 유지하되, 본인의 이야기 구조나 플롯 역시 유지한 채로. 이렇게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항목을 적절하게 섞어둔 모양새를 자랑한다. 의도였든 아니든(의도가 다분하지만) 그렇게 <BRAT>은 더욱 대중의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세세한 이야기 사이로 놓치지 않은 것은 찰리의 예술적 자아를 중심으로 한 메시지로 보인다. 도발적인 문구 아래에 드러나는 <BRAT>의 진면모는 본인을 중심으로 리스너를 향하여 확장하는 메시지에 있다. <BRAT>의 메시지. 사실 <BRAT>처럼 행동한다고 하여, 모든 것을 애새끼처럼 행동하는 막가파식은 아니다. 분명 <BRAT>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면이 눈에 익음에도, 어른의 갑갑한 고충 역시 함께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닐 일이다. 어쩌면 찰리를 둘러싼 혼돈 속에서 <BRAT>이라는 선언적인 메시지가 지난 찰리의 지난 행적과 합치하고서는, 현재의 <BRAT>이 탄생하지 않았나. 본 작품을 위한 <BRAT>과 어른 사이의 어중간한 이들, 혹은 'LGBTQ+ 커뮤니티'나 현재의 어른 아이들, 그리고 등장하는 광란의 레이브 파티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요소들을 향한 메시지와 같달까. 가령 "360"의 직설적인 메시지부터 "Sympathy is a knife"의 솔직한 진심, "Girl, so confusing"의 친구를 향한 곤란한 심정 등 다양한 곡에서 찰리의 다양한 감정이나 영감, 선언 등이 한 데 모이고서는 현재의 <BRAT>을 완성한다.
<BRAT>의 장르는 어떤가. <BRAT>은 하이퍼 팝, 언더그라운드 레이브, 2000년대의 댄스 음악들 등의 어떤 수식어 들을 종합한 그 무언가로 예상된다. 그것도 아니면, 찰리의 디스코그래피를 총망라해놓은 형태로도 볼 수 있겠다. 덕분에 여러 독특한 수식들이 앨범 곳곳을 맴돈다. 전형적인 팝도 아니며, 전형적인 일렉트로닉 음악도 아니다. 우리가 알던 일렉트로 팝이라 뭉뚱그려 설명하자니 되려 미안해진다. 차라리 그 경계선 어딘가를 맴도는 음악이라면 납득 갈 것 같기도 하다. 이전 <How I'm Feeling Now>, <Pop 2> 만큼의 실험성 혹은 대담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전 작품 <Crash>처럼 대놓고 팝 노선으로 우회하지도 않는다. 마치 일렉트로닉과 팝 사이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소화해 내는 모습. 이것이 더 많은 대중들 혹은 힙스터들 양쪽 모두에게 음악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동기이자, 더 많은 소구력을 자랑하는 계기라면 맞는 설명이 될 수 있겠다. 선공개 곡 “360”, “Von dutch”의 짜릿한 일렉트로 선율이 있다면, 반대로 개인적 소회를 보편적 어법으로 승화한 “So I”, “b2b”, “rewind” 같은 곡 역시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BRAT>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을 만큼 자신에게 솔직한 음악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레이브 클럽 전역을 맴도는 것은 <BRAT>의 서사이자 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큼의 농도 짙은 자극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끝내 모순적인 이야기가 남아있다. 만일 인간이 모순적인 동물이라면, 찰리 역시 인간이기에 모순적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 앨범 <BRAT> 역시도 자연스레 자신의 모순을 맴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문자(XCX)에서 소문자(xcx)로 탈바꿈한 이유도, 모종의 이유로 모든 앨범의 재킷을 퇴색된 단색 배경과 글자로 바꾼 이유도 마찬가지다. 30대로 들어선 찰리는 본인이 이룩한 위치를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녀는 클럽 위 빛나는 잇 걸을 위시하면서도, 사이사이에 자가 모순을 발견하고는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반대로 <BRAT>처럼 클럽을 즐기며, 자신의 취약한 순간을 거리낌 없이 토로하며 노래하고 춤추기도 한다. 레이브 파티는 숨 막힐 만큼의 고뇌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의 해방감도 선사하기 때문에 더욱 각별해진다. “360”와 “365”의 수미상관으로 순환하는 과정은 끝없이 반복되는 파티, 찰리의 특별한 진심이 담긴 매일이 연상되지만, 그 사이의 아주 인간적인 모순들 역시 눈에 익을 수밖에 없다. 결국 팝스타의 삶과 놓치는 것들에 대한 후회나 기시감 그리고 숱한 질문들을 찰리는 빠짐없이 공개할 뿐이지, 애써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단지 털어놓는 데에서, 선언과도 같은 질문을 세상에 남김으로써 더욱 인간적인 모습이다.
경우에 따라 <BRAT>은 끝없는 파티의 연속으로 보일 수도 있겠고, 이제껏의 찰리 'XCX'를 다시금 모아 찰리 'xcx'로 재창조한 결과물로도 볼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게 볼 요소는 찰리의 태도에 있지 않은가. '어리숙하지 않고 영리하다. 그리고 섬세하고 치밀하다.' 그 밖에도 그녀를 표현할 문장은 많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영리한 마케팅, 섬세한 감성, 치밀한 음악까지 가히 탁월하다. <BRAT>을 새로운 팝의 활로를 열었다고 보는 정도의 시선도 이해가며, 그 정도의 하이프를 이해할 수 없는 시선도 이해된다. 하지만 나는 그 사이에 어떤 정답이 있으리라 믿는다. 혹은 찰리가 이미 그 중간을 보여주었는지도 모르지만, <BRAT>은 팝 음악의 새로운 이정표로 먼 미래에 거론되리라 믿는다. 모든 어중간한 이들을 위한 음악이 여기 있다고.
올해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이자 AOTY를 꼽으라면 당연하게도 찰리의 <BRAT>을 꼽을 것 같네요. 어쩌면 어중간한 제 자신이 가장 많이 찾게 된 음악이기도 하네요. 그래미 어워드에서 큰일을 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암욜남바완..암욜남바완..암욜남바완..
맛있다… 이게 리뷰고 이게 글이지
brat 그래미 수상 기원합니다
노미네이트만 7개인가 한 것 같음
올해 BRAT만큼 즐겁게 들은 앨범이 없네요 그래미 가자!!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찰리의 음악이 언제는 대중적이면서도, 또 어떨 때는 힙스터 성향을 띠는 게 미묘하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공감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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