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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1~2년의 짧은 간격으로 거대한 볼륨의 앨범을 발매해왔던 박재범인 만큼, <The Road Less Traveled> 이후로 6년 만에 내놓는 이 앨범은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6년 사이에도 박재범은 늘 왕성했다. '모어 비전(MORE VISION)'이라는 레이블을 새로이 런칭한 것을 시작으로, 주류 사업도 성공시키고 E스포츠 구단의 고문으로도 위촉되는가 하면, 여러 TV쇼의 호스트로도 활약하며 그의 행보는 이미 음악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섰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음악 외적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와중에도 박재범이 꾸준히 음악들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힙합과 알앤비 양면에 두루 통달한 그지만, 모어 비전 설립 이후의 박재범의 활동은 확실히 알앤비와 팝에 가깝게 기울어 갔다. 새 레이블에서의 첫 싱글에서부터 아이유같은 케이팝 아이콘과 협업한데다, 아이오아이 출신의 솔로 아티스트인 청하를 모어 비전에 영입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찌보면, 박재범의 디스코그래피 가운데서도 가장 팝에 가까운 <THE ONE YOU WANTED>의 방향성 역시 상술된 변화와 확장의 연장선상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레이블은 바뀌었지만, 참여 프로듀서들의 면면만 놓고 보면 사실 AOMG-하이어뮤직 시절의 음악과 대동소이하다. 차차 말론, 우기 등 박재범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 크레딧에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나, SLO, SMMT 같은 상대적인 뉴페이스 부터 케이팝 씬에서 이미 잔뼈가 굵은 이름인 강욱진, 이제는 한국 알앤비의 블루칩이 된 슬롬도 눈에 띈다. 이들은 "어셔, 마이클 잭슨,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같은 에너지, 퍼포먼스"를 염두에 두었다는 박재범의 말대로, 알앤비의 댄서블한 부분의 고금을 수집하여 앨범에 성공적으로 전시해 낸다. 얼터너티브 알앤비에 가까운 "Ohx3"와 "Piece Of Heaven"이 시작과 끝을 장식해 내는 한편, UK 개러지("Taxi Blurr"), 저지 클럽("Why"), 칠웨이브("Dedicated 2 U", "Need To Know"), 아마피아노("Sip Ona Lil Sum’") 등 과거에 뿌리를 두고 지금의 유행이 된 서브 장르까지 영리하게 다뤄내는 솜씨는 역시 빼어나다 할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박재범의 모습도 앨범 곳곳에 여전하다. "Mayday"는 "몸매", "All I Wanna Do"에서 보여준 래칫 프로덕션 위에서의 끈적함과 청량감의 자장 안에 머무르며, "Love Is Ugly"에서 "Your/My"까지의 구간에서 드러나는 아날로그함도 "곁에 있어주길" 같은 박재범식 발라드를 좋아하던 이들이라면 익숙하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커리어 내내 지속되었던 글로벌한 협업이 이번 앨범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북미 힙합 씬의 숙장인 스캇 스토치(Scott Stoch)의 도움에 힘입어 그럴듯한 웨스트 코스트 식의 스웨거로 거듭난 "100 Days"가 대표적이다. 특히 일본에서의 협업이 Y2K 풍의 훵키함으로 발전한 "Gimme A Minute", 인도네시아 프로듀서의 타입 비트를 가져와 그럴듯한 네오 소울 넘버로 완성된 "Your/My"는 이러한 합작에 있어 <THE ONE YOU WANTED>의 과감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이다.
국제적인 협업은 게스트 라인업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베이 에리어 기반의 MC인 P-Lo 부터 YG, 타이 달라 싸인(Ty Dolla $ign)과 같은 슈퍼스타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은 특히나 상징적이다. 상술했듯이 기존에도 래칫에서 강점을 보였던 박재범인 만큼 이러한 서부 출신의 아티스트들과의 교류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국내 게스트로 눈을 돌리면 언제나처럼 협업의 광대함이 엿보인다. 장르 씬 내의 게스트로서 자이언티를 신스 팝 트랙에, 듀티(DUT2)를 얼터너티브 알앤비 트랙에 각기 배치하여 알앤비 씬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려 한 것 역시 눈에 띄나, 전작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 비중은 낮은 편이다.
<THE ONE YOU WANTED>의 게스트 라인업의 핵심은 단연 케이팝의 영역 내에서 끌어들인 수많은 디바들이다. 모어 비전의 연습생인 이솔처럼 우리에게 낮선 이름도 있겠지만, 에스파의 닝닝, 키스 오브 라이프의 나띠를 비롯한 라이징 스타들은 최근의 케이팝에 촉각이 예민한 리스너라면 더욱 반갑게 다가올 것이다. 이 젊은 별들이 아마피아노, UK 개러지 등 장르적인 영역의 옷을 입었을 때 생기는 절묘한 조화를 예리하게 캐치하여 앨범에 성공적으로 선보인 것이야말로 <THE ONE YOU WANTED>가 지닌 제일의 미덕이다. 경험치 있는 보컬들과의 교류는 보다 안정된 영역 안에서 움직인다. 이미 검증된 조합인 화사의 농염함과 우기의 블루지함의 조화도 그렇지만, 앨범에서 가장 팝스러운 트랙인 "GANADARA"에 아이유를 배치하고, 제일 훵키하고 흥겨우며 동시에 앨범의 리드 싱글인 "Gimme A Minute"에 청하의 시원한 퍼포먼스를 할당하는 용병술은 '당연함'의 영역 내에 위치하지만, 그만큼 명확한 시너지를 발산한다. 협업, 합작에 능통한 박재범의 강점이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
박재범의 커리어는 언제나 도전의 반복이었다. 아이돌로 시작했던 커리어가 불의의 사건으로 좌초된 이래로, 그는 자신의 열정의 방향을 명확히 파악하여 밀어붙였다. 그 열정에 각 분야의 수많은 사람들이 널리 호응하였고, 덕분에 박재범은 소위 '거물', '스타'같은 여러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THE ONE YOU WANTED>의 '도전'은 무엇이었을까? 새 레이블에서의 첫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앨범의 음악은 상당히 안전함의 범위 안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고금의 팝 사운드를 수집하고, 이를 자신의 사단을 통해서 세련되게 녹여내는 과정을 언뜻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 깃든 도전들을 엿볼 수 있다. 일본에서의 새 프로젝트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을 앨범의 타이틀 넘버로 밀어붙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타입 비트를 이용한 트랙을 과감히 선공개 하였던 것은 이러한 도전의 대표적 예시다. 한편으로는, 숱한 시도들의 동력이 되는 꾸준한 열정이 이 앨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간 발매되었던 수많은 싱글들을 정규에 편입시킨 것도 '그 수많은 도전 와중에도 나는 내 본연의 열의, 음악에의 사랑을 놓지 않고 있다'라는 선언적 맥락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열정과 도전이 한 줄로 엮이며 형성되는 진정성은 자연스레 음악의 부단한 퀄리티로도 이어진다. 결국, 이후 발표될 일본에서의 새 프로젝트부터 "Piece Of Heaven"에서 드러난 모어 비전의 아이돌 프로젝트의 편린에 이르기까지, 박재범의 도전과 확장이 <THE ONE YOU WANTED>에도 뜨겁게 배어있는 셈이다. 그 뜨거운 시도들이 무엇을 빚어내게 될지, <THE ONE YOU WANTED>의 세련미는 이를 계속 지켜볼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Bset Track: Taxi Blurr (Feat. 나띠 of KISS OF LIFE), 100 Days (Feat. YG, P-Lo), Piece Of Heaven (Feat. ISOL of MORE VISION)
https://drive.google.com/file/d/18DhKYARQZC5MjdVwITBypcynvH4Tdq94
본 리뷰는 HOM#18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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