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Me The 밑바닥:
힙합의 사회학, 가난도 스펙이 되는 시대를 말하다
힙합은 무엇일까? 다소 뻔하고 유치한 질문이다. 쉽게 생각하면 고민할 필요도 없지만, 깊게 생각하면 힙합의 뿌리까지도 파헤쳐 봐야 한다. 정답은 없다. 음악 장르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대답해도 정답이다. 음악 장르로만 받아들일 게 아니라 하나의 문화이자 생활 양식이라고 대답해도 정답이다. 힙합의 정의는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달라진다. 한 번 시시콜콜한 질문을 던져봤다. 지루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작에 앞서 평소보다는 조금 더 진중한 자세로 힙합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오늘 이야기할 내용은 그저 즐기기만 하면 다일 줄 알았던 힙합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음악 강연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5일과 26일, 홍대 근방에서 생활밀착형 도서전 <2014 홍대앞 골목길 북페어>가 열렸다.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와 ‘홍대 앞 동네 잡지’를 표방하는 스트리트 H(Street H)가 주최했으며,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에 속한 인문, 사회과학 전문 40여 개 출판사와 인디 서점, 북카페들이 행사에 참여했다. 북페어의 중심 무대였던 상수동 북카페 ‘정원이 있는 국민 책방’에서는 행사 기획전인 <행간의 기억> 전시회와 강연이 열렸다.
다양한 전시 행사와 강연 가운데서도 내가 다녀온 강연은 26일 오후 5시 지하 1층 컨퍼런스 홀에서 열린 음악 강연 <Show Me The 밑바닥: 힙합의 사회학, 가난도 스펙인 시대를 말하다>이다. 음악 웹진 [weiv]에서 글을 쓰는 사회학도 김신식이 진행을 맡고, [weiv]와 힙합엘이의 칼럼니스트 블럭(Bluc)과 ADV의 수장 JJK가 패널로 참여했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자 JJK가 등장해 관객들과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후 곧장 랩을 시작했다. 첫 곡은 차기 앨범의 타이틀 곡이라고 밝힌 “고결한 충돌”이었다. 가정과 가정의 충돌로 탄생한 또 다른 가정을 멋지게 표현한 곡이며, 얼마 전 탄생한 아들 “고결”의 이름을 따 제목을 지었다고 밝혔다. 이후 연이어 두세 곡을 내리 부른 뒤, 강연의 진행자 김신식과 칼럼니스트 블럭이 입장하며 강연은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강연은 <힙합의 사회학, 가난도 스펙이 되는 시대를 말하다>라는 타이틀답게 힙합에서 서사의 중심이 되는 가난과 이의 극복부터 시작해 ‘힙합이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인 물음까지 다루었다. 이를 위해 ‘인맥’, ’가족’, ‘가난’, ‘홍대’ 등을 주된 키워드로 삼았다. JJK와 블럭은 키워드와 관련된 질문에 차례로 대답하며 각자의 견해를 밝혔다. 래퍼와 칼럼니스트가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아티스트의 생각과 아티스트의 생각이 깃든 가사를 바라보는 칼럼니스트의 생각을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힙합을 표현하는 JJK는 자기 가사에 드러난 부분과 경험을 통해 얻은 견해를 가감 없이 풀어냈고, 글로 힙합을 담아내는 블럭은 조금 더 학구적인 관점에서 힙합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특히 힙합의 가사를 단순한 자기 과시 또는 'Started From Bottom'으로 대표되는 성공의 신화 정도로 여기는 게 아니라, 돈과 여자 등 관습화된 플롯을 담은 가사, 서사가 담겨 구술생애사로서의 기능을 하는 가사로 나눠 바라보는 시각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패널들의 관점과 생각은 흥미로운 방식으로 교차했다. 관객들 또한 대부분 메모장을 꺼내 들고 이야기를 듣고 받아적으며 강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현장의 분위기는 조용하지만 뜨거웠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분위기는 그랬다.
마지막으로 ‘힙합’이라는 근본적인 키워드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JJK는 힙합이 자기에게는 ‘삶’이라고, 블럭은 ‘문화이자 태도,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답했다. 시선의 방향만 다를 뿐, 본질에서는 같은 이야기였다. 아티스트와 칼럼니스트는 서로 표현 방법이 다르기에 함께 힙합에 대해 논하게 되면 많은 부분에서 이견을 드러낼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는 아무래도 나의 뇌피셜에 불과했던 것 같다. 강연이 끝날 무렵 JJK는 소위 말하는 ‘힙합 정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진행자 김신식의 질문에 감명 깊게 본 다큐멘터리에 나온 문구라며 한 영어 문장을 읊었다. 'Hip-hop didn’t invented anything. Hip-hop re-invented everything.' 지난 2012년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 출품된 힙합 다큐멘터리 <Something From Nothing: The Art of Rap>에 나오는 구절이다. JJK가 이 문장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JJK는 문장을 말한 뒤 간단한 뜻풀이를 하며 이에 대한 생각을 밝혔지만, 난 이를 언급하지 않을 작정이다. 내가 문장을 듣고 한 번 의미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본만큼, 여러분도 마치 현장에 있던 관객처럼 이에 대해 생각을 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Show Me The 밑바닥: 힙합의 사회학, 가난도 스펙이 되는 시대를 말하다>는 앞서 시작할 때처럼 JJK의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강연은 2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알찬 내용으로 가득했다. 따라서 힙합을 하나의 음악 장르가 아닌 문화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조금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관심 가져도 좋을 강연이었다. 다행히도 단순한 이벤트성 강연은 아니었다고 한다. 앞으로 열린다면 꼭 찾아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글 | Pepnorth
사진 | 홍대앞골목길북페어 페이스북 (링크)
다음에 또 개최하면 꼭 참석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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