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태국 파타야에서는 <롤링라우드 타일랜드(Rolling Loud Thailand)>가 열렸다. 해당 페스티벌에는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 센트럴 씨(Central Cee) 등의 서구권 래퍼들부터 한국의 하이어뮤직(H1GHR MUSIC)과 필굿뮤직(FEELGHOOD music), 일본의 에이위치(Awich)와 배드합(BAD HOP) 등 글로벌 스타들이 라인업에 대거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왜 하필 태국이었을까? 여러 여행객들이 몰려든다는 배경이 있겠지만, 동남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힙합 씬의 존재도 한몫했을 터. 이를 반증하듯, 여러 태국 힙합 아티스트들 역시 페스티벌 포스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번 기회를 통해 롤링라우드의 선택을 받은 태국에는 어떤 래퍼들이 활약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
원밀(1MILL)
Represent: Nakhon Phanom(นครพนม)
현재 태국 힙합 씬의 라이징 스타를 딱 한 명만 뽑는다면 원밀이 그 주인공이다. (낙후된 지역으로 인식된) 북동부 이싼 지방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10살 때 처음 랩을 시작했고, 당시에는 드물었던 본토의 트랩 사운드를 선보이며 큰 주목을 받는다. 이후 원밀은 빈곤 속에서 겪은 가족과 친구들과의 이별을 노래한 초기작들로 대중에게 존재를 각인시키며 커리어를 확장시킨다. 그리고 그의 성장세는 2018년, 태국의 인기 TV 프로그램 <Rap Is Now>에서 주최한 어워즈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하는 영예로까지 이어진다.
하나 더 흥미로운 건 원밀이 한국 힙합 씬, 특히 비슷한 색깔을 공유하는 영앤리치 레코즈(Yng&Rich Records)와 많은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교두보 역할을 한 아티스트는 태국 교포 출신의 래퍼 릴 김치(LIL GIMCHI). 둘은 원밀의 첫 번째 앨범 [NGU] 수록곡 "ไม่ดี"에서부터 협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여러 곡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고, 다수의 뮤직비디오에도 함께 출연하고 있다. 영앤리치 레코즈를 지지하고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원밀의 대표작 [NGU 2], [Painkiller 2]를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OR3uPXAih4
https://www.youtube.com/watch?v=Gj67QuoeUto
에프히로(F.HERO)
Represent: Chiang Rai(เชียงราย)
올해로 마흔에 접어든 에프히로는 태국 힙합 씬의 대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은 미얀마와 접경한 시골 마을로 힙합은커녕 해외 뉴스 자체를 접하기 힘든 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연히 학교 친구를 통해서 크리스 크로스(Kris Kross)의 "JUMP"를 접하게 되면서 에프히로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이는 본인뿐만 아닌 태국 음악 산업의 행운이었다. 20여 년 후, 태국 힙합 씬 굴지의 레이블인 하이클라우드 엔터테인먼트(High Cloud Entertainment)를 설립하는 '래퍼 에프히로'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
현재 에프히로는 솔로 커리어에 집중하기보단 많은 후배들, 그리고 아시아 타국 뮤지션들과의 교류를 통해 글로벌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일련의 활동을 통해 태국을 비롯한 아시아 힙합 씬을 엮을 소통의 장을 만들고자 한다고. 이런 포부를 뒷받침하듯, 에프히로는 싱가포르의 시가 셰이(ShiGGA Shay), 일본의 제이피 더 웨이비(JP THE WAVY), 캄보디아의 반다(VannDa) 등과 함께 곡을 발표하는 한편, 한국의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 타이거 JK(Tiger JK) 등과도 끈끈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MvJOZX2TKo
https://www.youtube.com/watch?v=cdt7WfRVXVk
밀리(MILLI)
Represent: Bangkok(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
태국을 넘어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거론되는 밀리. 2019년, 태국의 힙합 컴피티션 <THE RAPPER > 두 번째 시즌을 통해 발굴된 그녀는 대형 레이블 엽!(YUPP!)과 계약을 체결하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다. 그리고 1년 후, 첫 싱글 "พักก่อน"으로 데뷔하자마자 대박을 터뜨린 밀리는 글로벌 스타의 재목을 눈여겨 본 88라이징(88rising)과 국제 활동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며 본인의 무대를 한 층 더 확장한다. 그렇게 그녀는 2022년에는 <코첼라 페스티벌(Coachella Festival)>에, 2023년에는 <힙합플레이야 페스티벌(HIPHOPPLAYA Festival)>에 태국인 최초로 서는 등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밀리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두 가지 일화가 있다. 첫째는 태국 군사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하여 정부 측의 기소를 당했을 때,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국적인 #SaveMilli 운동이 전개되었던 것, 둘째는 코첼라 무대에서 망고 찹쌀밥을 먹는 퍼포먼스를 선보이자 망고 찹쌀밥 소비량이 두 배로 급증한 점이다. 한편, 밀리는 비비(BIBI), 스트레이키즈(Stray Kids)의 창빈 등 케이팝 스타들과도 적극적으로 협업하며 한국에서의 인지도 역시 늘려가고 있다. 아마 품 비푸릿(Phum Viphurit)의 다음 타자로 한국인들의 뇌리에 박힐 태국 아티스트는 밀리가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Vi5kQjyUVQ
https://www.youtube.com/watch?v=FZlBKl-spfY
오쥐 바비(OG BOBBY)
Represent: Florida(ฟลอริดา)
플로리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힙합을 처음 접한 태국의 래퍼 오쥐 바비. 원래 EDM 마니아였던 그는 힙합의 매력에 빠지며 점차 뮤지션의 꿈을 꾸게 된다. 유튜브에 테리야키 보이즈(Teriyaki Boyz)의 "Tokyo Drift"에 프리스타일을 하는 영상을 올리는 행위는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게 본인의 재기 발랄함을 뽐낸 소년은 결국 태국 힙합 씬에서 손 꼽히는 레이블 하이프 트레인(Hype Train)의 사장이자 프로듀서인 니노(NINO)에게 발탁되며 데뷔를 하게 된다.
미국 남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만큼 오쥐 바비의 음악은 애틀랜타 트랩 뮤직과 멤피스 랩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게다가 과반수의 가사를 영어로 쓰기 때문에 한국 팬을 포함해 외국 리스너들의 입장에서 경험하기에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태국 래퍼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는 이러한 장점을 무기로 삼아 태국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목적지는 일본이었다. 오쥐 바비는 에이위치(Awich)와 함께한 "YEAH"를 발표한 후 최근 <팝유어스 페스티벌(POP YOURS FESTIVAL)> 무대에 오르고, 제이피 더 웨이비와 콜라보 트랙 "Thai Gold"를 발표하는 등 일본 진출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rmsW2pchCk
https://www.youtube.com/watch?v=oMaqxf0eh8o
영옴(YOUNGOHM)
Represent: Bangkok(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
방콕을 대표하는 랩 스타 영옴 역시 태국 힙합 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유튜브 억대 조회 수의 히트 넘버를 7곡이나 보유한 그는 아시아의 여느 아이들처럼 인터넷을 통해 힙합을 처음 접했다. 추후 그가 밝히길 당시에는 50 센트(50 Cent)와 지유닛(G-Unit)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영 벅(Young Buck)의 예명이 유독 멋있어 보였다고. 그렇게 영 벅과 자신의 본명인 '옴 랏타퐁 푸리싯'을 합쳐 활동명을 짓게 된 소년은 2017년, 본격적인 데뷔를 알리며 래퍼 영옴으로 발돋움한다.
영옴의 대표곡들을 살펴보면 대중적인 싱잉 랩이 그의 주된 무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태국 갱스터를 연상시키는 외모와는 달리 그는 중학교 시절의 순수했던 첫사랑("Very Very Small")에 대해 노래하거나, 마약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ดูไว้ (Doo White)")는 가사를 쓰는 등 반전 매력을 선보인다. 그런 한편, 2020년에 벌어진 태국 민주화 시위가 정부의 탄압을 받자 "บางกอก เลกาซี่ (BANGKOK LEGACY)"라는 곡을 통해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감 없이 뱉기도 하면서 그는 국가 사회적인 이슈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옴이 태국의 대중들에게 받는 엄청난 사랑은 이런 면모들이 한데 모인 결과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X7oPIjsofY
https://www.youtube.com/watch?v=7XBfxGV5DpU
투피 사우스사이드(Twopee Southside)
Represent: Phuket(ภูเก็ต)
이름에 걸맞게 태국 남부의 대도시 푸켓을 대표하는 래퍼 투피 사우스사이드. 태국 힙합 씬에서도 유독 훤칠한 외모의 소유자인 그는 뮤지션인 동시에 배우를 겸하는 이른 바 셀러브리티다. 이를 뒷받침하듯, 원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던 그는 영화 업계로 커리어를 쌓을 계획이었지만, 우연하게 태국 힙합 OG인 타이태니엄(Thaitanium)의 지원을 받아 래퍼로 데뷔한다. 그리고 이후, 10여 년간 꾸준히 활동해 온 투피 사우스사이드는 힙합 컴피티션 <THE RAPPER>의 고정 심사위원까지 역임 중인 명실상부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난 20년간 일렉트로닉의 인기가 태국을 뒤덮고 있었기에 힙합이 장르 음악으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한다. 따라서, 힙합의 인기가 상승한 지금까지 꾿꾿하게 버틴 자신을 생존자로 여긴다고. 여담이지만, 그의 랩 네임에 붙은 사우스사이드도 그가 속한 듀오의 이름이었으나 현재는 투피만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존버(?)의 아이콘인 그는 박재범, 제이피 더 웨이비 등 여러 아시아의 스타들과도 협업을 이어가며 본인의 음악적 역량을 계속 증명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LjcxmBSvRc
https://www.youtube.com/watch?v=HOixU4AW5iA
쑤나리(Tsunari)
Represent: London(ลอนดอน)
태국인 어머니와 트리니다드계 영국인 아버지를 둔 쑤나리는 영국 케터링에서 태어났다. 이후, 태국과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치며 자란 그녀는 태국에서는 외모로 인한 괴롭힘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보수적인 환경을 겪으며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다. 그런 쑤나리에게 치유처럼 찾아온 것이 음악이었다. 당시에 쑤나리의 마음을 달래줬던 창구는 바로 MTV. 화면 속의 리한나(Rihanna)를 동경하며 꿈을 키운 그녀는 2015년 영국 런던으로 돌아와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고, 2020년 두 번째 싱글 "Mula"가 좋은 성적을 거두며 아티스트로 도약한다.
쑤나리는 자신의 음악을 '리한나, 도자 캣(Doja Cat), 즈네이 아이코(Jhené Aiko)가 푸켓의 작은 섬에 발을 들이면 나올 음악'이라고 표현한다. 위 언급처럼 쑤나리는 전형적인 힙합부터, UK 드릴, 클래식 알앤비 등 다양한 색채를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도 밀리, 픽스드와 같은 태국 힙합 씬의 스타들과 협업하고 있는 쑤나리는 태국 음악이 케이팝처럼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는 날을 꿈꾼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1zzq8nmki0
https://www.youtube.com/watch?v=fqQTbMJ6fh0
픽스드(FIIXD)
Represent: Khon Kaen(ขอนแก่น)
원밀, 영옴, 영구(Younggu), 다이아몬드 엠큐티와 같은 태국 힙합 스타들로 구성된 올스타 크루 얼레디 데드(ALREADY DEADD). 그 중심에 있는 맏형이 픽스드다. 그는 원래 비보이 출신으로 23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니노와 벤 비지(Ben Bizzy) 등의 동료들과 어울리며 여러 장의 싱글을 발표해 나간다. 그러던 2017년, 우연히 만난 귀인을 만나게 되는 데 그가 앞서 언급한 원밀이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만든 정규 1집 [More Nights in Thonglor]의 성공으로 픽스드는 스타덤에 올랐을 뿐 아니라 대형 레이블 1000 체이서(1000 Chaser)를 설립하며 커리어를 꽃피운다.
에미넴(Eminem), 드레이크(Drake), 제이콜(J. Cole) 등을 듣고 자랐다는 만큼 픽스드의 음악은 미국 메인스트림의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러한 음악과 더불어 픽스드의 식견은 지난 3~4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 태국 힙합 씬을 대변하기도 했다. MTV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시대의 음악에는 더 이상 국경은 없으니 아시아 힙합의 가능성을 펼쳐야 할 때'라고 밝힌 그는 한 단계 더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mkp16ueD2U
https://www.youtube.com/watch?v=euK8mpmkbmY
사란(SARAN)
Represent: Bangkok(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
2005년생, 아직 미성년자 신분인 사란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밀리를 발굴했던 힙합 컴피티션 <THE RAPPER> 세 번째 시즌의 우승, 그리고 <RIN AWARDS 2021>에서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되는 등 랩 스타의 엘리트 코스를 빠르게 밟는다. 일찍이 남다른 새싹임을 반증한 그는 지난 2022년, 1년 동안 총 6억 5천5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유튜브에서 세 번째로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태국 아티스트가 되기에 이른다. 이후 도합 10억 뷰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사란을 상징하는 단어는 '다작'이다. 그는 투어를 병행하는 와중에도 2021년 한 해에만 200곡에 달하는 트랙을 발표했고, 그중 30곡을 히트시켰다. 2022년에는 영국 어학연수 탓에 상대적으로 작업량이 일부 줄었지만, 한국의 래퍼 왈리(XWALLY)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셀프 타이틀 EP [SARAN]을 발표하여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냈다. 현재 영국에서 귀국한 이후 사란은 올해에도 활발한 활동을 재개하며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zVqJYaJBfw
https://www.youtube.com/watch?v=ud2LtH3LW78
다이아몬드 엠큐티(DIAMOND MQT)
Represent: Phatthalung(พัทลุง)
사란과 함께 신진 아티스트들의 중심에 있는 다이아몬드 엠큐티 역시 힙합 컴피티션 <THE RAPPER>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프로그램이 방영된 2018년 당시 16살이었던 그는 앳된 겉모습 뒤에 창창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었고, 이를 눈여겨 본 심사위원들에 의해 발탁된다. 비록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물오른 하입을 끌고 가는 데 성공한 다이아몬드 엠큐티는 원밀, 영옴, 사란, 픽스드 등과 교류하며 얼레디 데드 크루에 합류했고, 별도로 독자적인 크루 엠큐티 스쿼즈를 이끄는 리더로도 등극한다.
다이아몬드 엠큐티의 장점은 미국의 사운드를 충실히 재현한다는 점이다. 원밀을 소개하며 서술했듯 태국의 대중들은 서구권의 힙합 사운드를 접한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그렇기에 다이아몬드 엠큐티가 선보인 사운드가 자국의 리스너들에게 신선하게 작용했고, 결과적으로 다수의 히트곡을 보유한 랩 스타가 된 것. 분명, 다이아몬드 엠큐티는 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본토의 힙합 사운드를 소개하는 문익점 같은 존재다.
https://www.youtube.com/watch?v=3IuFYmyPIu8
https://www.youtube.com/watch?v=qiMRbVu54es
Editor
Destin
태국이나 일본과 협업한 음악들 소개도 부탁드려요!!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톤이나 스타일만으로도 듣기에 괜찮게 들리고 퀄리티들이 다들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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