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ing Sounds 외전: AP Alchemy
수많은 음악이 마치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요즘, 많은 이가 음악을 ‘듣는다’의 개념보다는 ‘본다’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시대다. 그렇기에 ‘Seeing Sounds’에서는 음악을 구성하는 ‘들리는 소리’를 ‘보이는 글’로 보다 자세하게 해부하려고 한다. ‘Seeing Sounds’ 외전에서는 에이피 알케미(AP Alchemy)의 네 명의 프로듀서가 [AP Alchemy : Side A]에 삽입된 노래들을 직접 프로젝트 파일과 함께 소개할 예정이다. 두 번째 프로듀서는 혜민송(hyeminsong)이다. 아래는 앨범의 선공개 싱글인 “FREAKY”에 대해 혜민송이 직접 작성한 내용이다.
혜민송의 노하우 01 – 메인 루프
오늘은 에이피 알케미 컴필레이션 앨범의 선공개 곡인 “FREAKY”의 작업 과정을 제가 만져본 순서대로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지금 맨 위의 이미지는 “FREAKY”의 전체 프로젝트 파일이에요. 먼저 이 곡의 비트는 크게 메인 루프(MAIN LOOP), 드럼(DRUM), 인스트(INST)로 정리할 수 있어요. (위 이미지 빨간펜 참고) 곡을 처음 구상했을 당시의 저는 원 코드 형식의 808이 한 음으로만 쭉 끌고 가는 트랙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특이하고 재미있는 루프가 필요했죠. 그래서 메인 루프를 먼저 만져보게 됐어요.
(*이런식으로 노란색 길이의 하나의 패턴을 만들었습니다.)
메인 루프의 경우 90BPM의 멋있는 리얼 드럼 2마디 샘플을 들으면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 위에 새로 재조립할 큰 리듬을 흥얼거리다가, 오디오를 늘리고 자르고 붙이고 셀렉 하면서 새로운 2마디를 만들었어요. 마치 드럼 머신에 원하는 부분의 오디오들을 잘라 넣고 치는 것 같은 느낌 인 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루프 위에다 더 강조하고 싶은 박자에 Stomp와 Impact를 레이어 했어요. 여기서 머릿속에 있는 질감의 소리를 제일 비슷하게 구현하기 위한 저만의 팁이 있어요. 저는 먼저 상상한 완성된 소리에서 플러그인(이펙트)을 뺀 소리를 찾는 편인데요. 이렇게 하면 상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더 고민할 수 있고, 내가 어디까지 소리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 반대로 이건 만들 수 없으니 이제 알아야 하는 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깨닫게 되더라고요.
하이햇도 같은 방법으로 샘플링을 했고, 트랜스포즈를 이용해 음정의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위 이미지 빨간펜 참고) 저는 보컬의 튠을 정리하듯 드럼도 튜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귀로 들었을 때 이것이 다른 소리와 잘 어울리는가’에 대한 판단이에요. 이 소스가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거죠. 이런 사고의 과정을 거치면 각 소스의 역할을 분명히 정의할 수 있고, 어쩌다 괜히 쓸모없는 녀석으로 전락하게 두지 않을 수 있는 거죠. 결과적으로는 음악을 듣는 청자들에게도 이 녀석의 존재 이유를 무의식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고 봐요.
혜민송의 노하우 02 – 드럼
제가 미리 그려본 그림은 메인 루프를 앰비언스처럼 흐릿하게 사용해서 전체적으로 조금 산만하지만 그럼에도 굳건히 같은 헤르츠만 때리는 808, 그리고 메인 루프 사운드와는 대비되는 강인한 킥 스네어가 곡의 중심을 잡아주는 형태였어요. 그래서 강인한 킥 스네어가 메인 루프를 타악기보다 그저 음정이 있는 어떠한 소리처럼 들리도록 잘 유도를 해준 것 같습니다. 여기에 하이 대역 소리가 부족한 듯해서 가벼운 하이햇을 스트레이트로 올려서 완성도를 더했어요. 참고로 위 이미지에서 빨간 트랙은 사이드 체인 트랙입니다.
혜민송의 노하우 03 – 인스트
메인 루프를 더 명확한 음정으로 들리도록 만들고 싶어서 ELEC BELL을 레이어 했어요. (알고 보니 벨이 아니고 Omnisphere의 Velocity electrodrums라는 프리셋을 사용했는데, 당시에 제가 듣기에는 타악기보다 벨처럼 들려서 이렇게 사용한 듯합니다.) 그리고 피치 밴드를 이용해서 음정을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레이어를 할 목적이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좋은 테마로 나오게 되었네요. 그리고 드럼의 연두색 Perc 트랙도 같은 악기 소리입니다.
여기서 이름보다 더 중요한 의미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언젠가 어떤 방에서 여러 팀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대표님께서 저에게 사람들이 더 들어올 수 있으니 스토퍼를 내리라고 하시더라고요. 당시 저는 스토퍼가 뭔지 몰라서 잠깐 멈칫했지만, 곧장 다음 행동을 할 수 있었어요. 어떻게 불리든 (저는 그 장치의 이름을 말발굽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말발굽이라고 부르는 이 녀석이 문을 멈추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단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름은 그저 명칭을 붙인 사람의 단어이고, 이해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은 본질이라는 것을 배운 날이었어요. 가끔은 있는 대로 듣고, 있는 대로 보다 보면 오히려 새로운 것들을 은연중에 마주할 수 있어요. 이런 경험 자체가 정말 흥미로운 일이어서 꼭 소개해 드리고 싶었어요.
하나 더 얘기를 하자면, 메인 루프를 쭉 듣다가 중간중간에 이 곡의 무드와는 전혀 다른 공기를 가진 악기를 포인트로 넣고자 했어요. 잘 짜인 긴 스피치 속 짧은 유머처럼 환기의 효과가 나길 바랐죠. 그래서 GTR line을 넣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곡을 더 지저분하고 급해지는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메인 루프와 비슷한 질감으로 톤을 잡고, vox를 찹해서 넣게 되었죠. (위 이미지 두 번째 사진 참고)
혜민송의 노하우 04 – 후편곡
사실 처음 “FREAKY”의 비트를 만들었을 땐 2분 정도 길이였어요. 그래서 작업을 진행하면서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곡의 길이가 7분이 넘었을 땐 편곡에 대해 걱정이 많이 들었죠. 아예 새로운 테마를 중간에 넣을까 고민도 했지만, 이 흐름을 깨트리기 싫었어요. 그래서 각자의 파트마다 특유의 공기와 향에 집중되도록 힘을 보탤 수 있을 만한 포인트들을 넣어보고자 했습니다. 이 부분들은 가사와 함께 들으시면 더 재밌는 부분이 될 것 같습니다. (위 이미지 빨간펜 참고)
저는 작업에 있어서 단순한 걸 좋아해요. 편곡적으로도 단순하게 들리길 원하죠. 드럼을 예로 들면, 하이햇과 스네어를 한 세트처럼 들리게 묶고 싶을 때는 사운드적으로 비슷한 것들을 골라(또는 그렇게 만들어서) 그룹화하는 편이에요. 각 소리의 특성을 이해하고 내 나름의 분류를 해서 짝을 배정해 주는 것이죠. 여기서 그렇다면 '비슷한'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을 텐데요. 재밌는 건 사람마다 각자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비슷함의 분류도 달라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10명의 프로듀서들을 모아 ‘각자 A 같은 것을 만들어보자’고 하면 다 다른 곡이 나오는 거라고 봐요. 이런 다양성이 이 세상에 이만큼이나 다채로운 곡들이 나올 수 있게 된 이유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본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표현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곡 작업에 있어서 이런 포인트도 하나의 재미있는 관점으로 생각해 보시면 더 도움이 되실 거라고 봐요.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tlC9iu2nb0
Editor
hyeminsong
잘 봤습니다.
오홍 freaky 만드신 분이구나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