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에서 팝(Pop), 그러니깐 어떠한 생활 관습/이미지 그런 것과 관계가 없이, 그저 대중들이 좋아하고 선호하는 음악으로서의 팝은 크게 세 가지 밖에 없다.
일제 강점기부터 1970년대 정점을 찍고, 80년대 디스코에 섞여서 사라진 트로트. 70년대 후반 시작되어서 80년대 후반 90년대 정점을 찍고 아직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발라드. 그리고 이제 자기만의 정체성을 만들기 시작한 아이돌-케이팝.
내가 볼 때, 이것 외의 어떠한 장르의 음악도, 락이든 포크든 팝이든 진정한 팝/가요였던 적이 없다. 락을 예로 들면, 대중들이 들은 락은 결국 락-트로트거나 락 발라드였고, 힙합을 예로 들면, 대중들이 들은 것은 랩-댄스거나 감성 힙합인 셈이다.
(2)
한국 음악에서 더 발굴되어야 하는 시대는 70년대다. 대마초 파동으로 생긴 암흑기라 다들 생각하고 있지만, 막상 음악을 들어보면 좋다. 게다가 죄다 트로트 혹은 트로트 고고로 묶기에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최병걸의 음악은 세련된 발라드에 가깝고, 송대관과 심수봉의 음악은 스무드 재즈와 라틴 재즈/훵크의 영향이 강하다. 윤시내, 최백호도 훵크와 소울의 느낌이 강하고, 심지어 이때 윤복희와 이미자의 음반은 재즈와 창, 트로트를 넘나든다. 트로트와 포크가 섞인 혜은이도 빼놓을 수 없다.
(3)
한국 트로트의 마지막 불꽃은 원더걸스의 <텔 미>다.
텔미 특유의 복고는 아무리 들어도, 80년대 주현미의 쌍쌍파티나 나비소녀의 카페리호 같은 트로트-디스코-신스팝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이 텔미의 성공이, 티아라, 포미닛 같은 뽕삘 댄스 음악으로 이어지니, 대중에게 먹힌 마지막 트로트 히트곡은 텔 미다.
(4)
임영웅은 분명 재평가 받을 것이다. 사실, 트로트도 할 뿐 임영웅은 케이팝을 제외한 모든 음악을 소화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제 케이팝을 제외한 음악으로 돈을 벌고 싶다면, 트로트 시장으로 가야한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다만 조용필처럼 게임 체인저로 기억될까? 이는 물음표다. 곡은 꽤 괜찮지만, 사실 조용필이 올해 낸다고 예고한 곡들의 싱글을 난 더 높게 평가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트로트 시장과 케이팝 시장을 가로지르려 하는 게 정동원인데, 과연 가능할까....싶다. 이제 아이돌 시장과 트로트 시장이 굴러가는 방식이, 매체와 돈을 버는 방법, 대중과 의사소통할 때 요구되는 능력 등등이 너무 달라져버렸다.
(5)
국힙이 어디로 갈거냐 묻는다면, 난 감성 힙합으로 간다 말할 것이다.
(6)
난 케이팝을 무시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케이팝은 진짜 자본의 정수 그 자체다. 유튜브 쇼츠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3분 동안 절대로 청자가 귀를 못 돌리게 설계되어있다.
예전에 케이팝만의 특징이 뭐냐 묻는 길에 형식이라 답한 적이 있는데, 그걸 구체적으로 쓰고 싶어서 자주 들었던 곡들을 분석한 적이 있었다. 에스파의 <아마게돈>, 엔믹스의 <대쉬>, NCT 드림의 <브로큰 멜로디>였는데 참....보면서 미친 놈들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마게돈>과 <대쉬>는 전주 없이 바로 프리-코러스로 들어간다. 그런 다음 1절 벌스를 하는데, 이미 여기부터 작은 기승전결이 있다. 처음에는 랩에 가까운 싱잉, 그 다음에는 더 높은 싱잉. 그런 다음 코러스/훅에서는 오히려 힘을 뺀다. (다만 여기서는 포인트 안무가 나오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더 집중되는 편이다.) 그런 다음 2절이 나온다. 그런 다음 훅 - 브릿지인데, EDM 드랍파트처럼 순간적으로 공백을 만들다가 변주를 넣고 바로 떨궈버린다. 흩어져버린 집중력을 다시 잡겠다는 거다. 그리고 고음을 지르고 다시 훅으로 들어가는데 참....매 순간이 어떻게든 청자를 잡겠다는 고도의 계산이 느껴진다.
(7)
전체 대중 음악 장르의 미래는?
Vaporwave.
백퍼 바이퍼웨이브다.
(8)
평론이 참 어려운 것이 있다.
동시대 음악은 뭔가, 그냥 싸지른다. 좋으면 좋은거고 나쁘면 나쁜건데. 디깅을 할 때는 이게 참 어렵다. 예를 들어, 숙자매의 아리랑. 이거 좋은 노래인가? 일단 특이하고 들을 구석이 분명 있는 노래다. 그래서 이게 형식적 완성도나 뭐 그런 것이 있나? 애매하다. 자주 들을 노래인가? 아....닐걸? 그냥 한국에는 그 시대 이런 특이한 음악이 있었습니다, 하는 느낌이다.
동시대 음반처럼 평가하기가 참 어렵다.
(9)
한국과 일본 음악이 갈라진 게 어느 지점일까?
난 두 가지가 있다 본다.
(트로트랑 엔카가 같진 않지만, 여하튼 쌍둥이쯤은 되니) 한국은 일본보다 트로트의 영향력이 훨씬 오래 가고 길었다. 자국의 가요를 미국의 팝처럼 세련되게 만들려는 (혹은 트로트/엔카의 느낌이 나지 않게 하려는) 시도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있었지만, 일본은 그게 70년대 초중반에 이미 성공한 반면, 한국은 80년대, 발라드가 등장하고 나서야 성공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한국에서 라틴 재즈/스무드 재즈/훵크는 트로트의 영역으로 들어간 반면, 일본에서는 시티팝, 즉 가요의 영역으로 흡수되었다.
그래서 일본의 시티팝은 상대적으로 리듬이 강한 반면, 한국의 발라드는 굉장히 정적이고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청자를 잡아두는 것처럼 보인다.
두번째는 펑크다.
한국은 검열과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이후로 70년대 영미권 대중 음악의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덕분에 한국에는 70년대에 레드 제플린 같은 하드락도 거의 없고, 프로그레시브 락도 거의 없고, 펑크도 없으며 당연히 포스트-펑크도 없다. 이러한 장르적 시도는 80년대에 뒤늦게 시도되지만, 뭐 그때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마이클 잭슨 붐에 휩쓸린 상황이었다.
반면 일본은 하드락도, 프로그레시브 락도 펑크도 포스트펑크도 충실하게 만들었다.
(10)
국힙의 게임 체인저는, 한국어로 이상한 멈블을 하는 사람이 나올 때라고 생각한다.
장기하가 다시 살려낸, 송골매 - 산울림 - 송창식의 대충 흥얼거리는 음악.
YDG가 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양동근씨는 어째 피처링이나 불후의 명곡에서는 날아다니면서 자기 앨범 낼 생각을 안하신다. 몇 년 전에는 머쉬베놈이 이걸 해줄거라 생각했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
장기하가 해줄려나? 모르겠다.
사실 송골매, 산울림, 송창식처럼 부를려면 버벌진트가 구축한 오늘날 한국어 랩 패러다임보다 훨씬 글자수를 빼고, 느슨해야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멈블랩이란 참 잘 맞을 것 같은데, 이쪽 방향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잘 안 보인다.
중간중간 참고할 것도 많긴한데. 예전으로 올라가면 30년대 만요도 있고,50년대 만요도 있고. 90년대에는 김흥국의 이상한 레게도 있고....
조선 인디씬의 장르적 다양성이 상대적으로 좁아보이는 이유가 포스트펑크의 조류를 거의 스킵해서 그런게 아닐까 가끔 생각합니다. 물론 포펑이 아예 없단건 아니지만,,
저도 동의합니다. 뭔가 락으로 이것저것 하고 이상한 것도 해야 장르적 다양성이 있을텐데, 그러기에는 검열도 있고 시장도 좁고....이상한 걸 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싶어요.
국게가서 해야할말 같긴 하지만 전 국힙의 게임체인저는 현재로써는 씨잼이라고 생각해요.. 작성자분이 말씀하신 감성힙합과 멈블 랩을 전부 받아들인 후 킁이라는 명반을 냈으니까요.. 지금은 입지가 좁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킁의 가치와 영향력은 더욱더 넓어질 거에요
전 다음 단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킁이 명반인 것은 맞지만, 버벌진트처럼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가져왔는진 잘 모르겠거든요.
한국어 이모랩의 명반은 계속 킁이겠지만, 버벌진트 이후의 한국어랩에 대해서는 킁에는 아직 어떤 단초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번 노비츠키에 있는 Train만큼은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랩에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대로 꾸준히 앨범을 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씨잼이 그런 스타일로 계속 꾸준히 작업물을 자주 냈다면 진짜 좋았을텐데...
어디 갔니...
씨잼은 유일무이한 존재지만 게임체인저?킁은 멈블의 범위에선 대단한 성취이지만 현 씬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준건 아니라봅니다.현 게임체인저는 아직은 언에듀가 맞다고 보이네요.
(6) 저도 케이팝이 (당연히 곡마다 다르겠지만) 장르 자체가 막 구린 장르라고는 생각이 안 들긴 합니다. 애초에 그 돈 부어서 그렇게 만드는데 구리면 만드는 애들이 먼저 알아서 고치지 않을까 싶고... (그럼에도 구린 경우는...) 실제로 좋아하는 곡이나 앨범이나 아티스트들도 있고요. (레드벨벳은 신이야 신) 그런데 먼가 음악 장르로서 다른 장르들이랑 다르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면 제작 방식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개인적 견해이고 제 맘대로 생각하는 거긴 함) 요즘 메인스트림의 거대한 가수들이 안 그런 경우도 적겠지만, 케이팝은 특히 더더욱 (방식의 측면에서) 공장 같은 느낌이 나요. 창작자가 머리 싸메고 만들어낸 예술의 결과물보단 그 기업과 프로듀서와 수많은 제작진들이 달라붙어서 자기 파트를 만들어서 조립하는 제품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런 거에 당연히 누가 맞다 틀리다는 없지만, 그냥 저는 골방에서 홀로 창조해낸 무언가에 왠지 더 가치를 주고 싶고 더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더라고요.
(1) 팝 말씀 극 공 감....
(10) 한국어로 랩을 그만큼 연구하면 말씀하신 방향을 누군가가 분명 할 것 같은데, 그런 움직임이 크진 않은 것 같네요. 그럴 바에 영어로 멈블 하는 게 솔직히 래퍼 입장에서도 쉬울 만 하고, 랩의 방식만이 아니라 이외의 사운드적 요소까지도 잘 해내지 않으면 솔직히 올드하고 촌스럽고 이상하다고 (진짜 이상하긴 해) 느껴져서 매력보다 거부감이나 이걸 왜... 싶은 의문이 들기도 쉬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장기하나 머쉬가 그런 맛을 매력적으로 만들어낸 게 대단하기도 하고요,
사실 케이팝만 유독 공장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미국 팝스타들도 뜯어보면 과연 얼마나 공장이 아닐지....아무도 모르죠 ㅎㅎ.
아무래도 어린시절부터 빡세게 굴리는 연습생 시스템 때문인거 같은데, 이제 이 시절도 바이바이니....어떻게 될지 지켜봐야겠죠.
우리나라는 음악뿐만 아니라 뭔가 문화전반적으로.. 전쟁이나, 군부통치 등등 시대적 상황땜에 어딘가 중간이 툭하고 단절된 느낌이 강함.
아무래도 디깅의 역사가 얇으니깐요 ㅎㅎ.
영화도 박찬욱, 봉준호 대쯤 와야 의식적으로 옛 한국 영화를 따라하고, 음악도 신해철 쯤 와야 그런 시도가 보이니 이제 겨우 30년이네요.
임영웅 케이팝도 하지 않나요?
제가 모르는 곡이 있을 수도 있는데, 임영웅 댄스곡인 Do or Die는 이걸 케이팝이라...해야할까요...? 전 그보다는 미국 빌보드 스타일 EDM 같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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