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리뷰]

Changstarr [Highdigger] 해설과 그에 부쳐

모싱모싱2017.11.27 19:01조회 수 623추천수 4댓글 0



Changstarr [Highdigger] 해설과 그에 부쳐


FREEWORD(@Freeword_89)


"하나의 유령- 리릭시즘이라는 유령이, 한국힙합씬에 떠돌고 있다"  


힙합 리스너로서 오래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힙합을 좋아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둔탁한 드럼 비트 위에 쏟아지는 ‘언어의 리듬’이 주는 쾌감은, 다른 음악 장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즐거움이다.ᅠ 그렇기에 다른 장르에서도 ‘시적인 가사’ 혹은 ‘문학적인 가사’라는 설명은 종종 등장하지만, 유독 힙합은 ‘시’ 혹은 ‘문학’과 관련지어 설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허나 나는 종종 의문이 들곤 했다. ‘힙합에서 “잘 쓴 가사”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힙합 리스너들은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에서 ’Lyricist’라고 불리는 나스, 켄드릭 라마, 탈립 콸리 같은 래퍼들의 가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는 잠들지 않아, 잠은 죽음의 친척이기 때문이지 I never sleep, cuz sleep is cousin of death” 같은 가사들은 왜 ‘위대한 가사’라고 불리는 걸까?


돌이켜 보면, 이러한 의문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미국에서 리릭시스트라고 하니까’, ‘전설이라니까’ 정도의 해답을 제시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러한 질문 자체를 회피하거나, ‘리릭시스트라서 리릭시스트이다’ 수준의 대답들이었다. 어쩌면 한국 힙합씬에서 ‘리릭시스트’는 근거가 없고, 주장만 있는 개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다보니 한국힙합에서는 단순히 진보적인 정치적 스탠스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난해하고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심지어는 가사를 알아듣기 쉽게 쓴다는 이유만으로 리릭시스트라고 불리는 래퍼들이 등장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 나는 그들의 가사에서 감동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가사들을 ‘문학적이다’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 존재해왔다.


다행히 스윙스 덕분에 2008년 즈음부터 등장한 ‘펀치라인’이라는 개념은 내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졌지만, 갈증을 전부 해소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위대한 문학작품들을 배우면서 알게 된 ‘문학성’이라는 개념은, 힙합에서 ‘잘 쓴 가사’의 개념과 비슷한 면모가 간혹 있긴 했지만 보통은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이러한 ‘랩의 문학성’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의 앨범이나 싱글을 가지고 이것이 가진 문학적 의미에 대해서 시나 소설의 비평처럼 치열하게 분석하고 설명한 글을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나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궁극적으로, ‘랩이 정말 하나의 문학이거나 문학이 될 수 있다면, 랩의 문학성을 증명하는 시도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되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한 의문은 종종 떠올랐을 뿐이었다. 확인할 수 있는 문학적 성취가 없어도 랩과 힙합은 기본적으로 ‘음악’이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게다가 2010년대에 등장한 트랩이라는 장르는 문학성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였다. 그 결과로 힙합이 가진 다양한 면모들의 지분은 청각(음악)과 시각(뮤직 비디오)이 대부분 가져가버렸다. 청각과 시각이 주는 즐거움이 넘치니, 가사의 의미를 곱씹을 필요를 거의 못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주류가 되니 반작용으로 리릭시즘이나 90년대 동부 힙합, 컨셔스 랩에 대한 갈증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런 갈증은 시원하게 해소되지 못한 채 일종의 신화, 혹은 유령이 되어버린 것으로 보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글의 첫머리에서, "하나의 유령- 리릭시즘이라는 유령이, 한국힙합씬에 떠돌고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다가 Changstarr를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난 건, Changstarr가 아직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였다. 방학 때 한국에 놀러온 챙스타는 내게 랩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래퍼가 되고 싶다’는 말은 수많은 ‘힙합 덕후’들이 살면서 보통 한 번쯤 하는 소리이기에 당시의 나는 ‘그런가 보다’하고 생각하고 말았다.


다행히 챙스타는 꾸준히 작업을 했고, 결과물들을 내게 계속 들려주었다. 90년대 동부 힙합의 사운드와 힙스터의 감성을 함께 가진 챙스타의 초창기 음악들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독 가사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의 가사에는 예술 작품과 그것을 만든 천재들이 종종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학교에서 배운 문학, 특히 시의 작법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챙스타의 음악을 계속 들으며 의문을 키워가던 나는 어느날, 챙스타에게 물어보았다. 


‘너가 쓰는 것도 펀치라인이야?’ 


챙스타의 답변은 내 예상과 달랐다. 


‘레퍼런스라는 건데, 미국에서는 트랩이 아니면 보통 다 이렇게 랩을 해. 켄드릭도, 나스도, 제이콜도, 루페도. 걔넨 내 것보다 훨씬 촘촘하고 복잡해. 그냥 이런 식으로 쓰는 게 기본이라고 보면 돼.’ 


나는 처음에 챙스타의 답변이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온 수많은 미국 래퍼들의 가사에 이렇게 복잡한 의미가 숨어있었나? 그래서 나는 또 물어보았다.


‘리릭시스트가 되려면 이렇게 써야하는 거야?’


챙스타의 답변은 내 예상을 또 뒤엎었다.


‘리릭시스트라 불리는 사람들은 보통 이런 레퍼런스 작법을 기본으로 쓰지’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지니어스닷컴Genius.com을 들어가 전설, 혹은 리릭시스트라고 불리는 래퍼들의 가사들을 보니 매 라인마다 빽빽하게 해설이 들어가 있었다. 심지어 그 설명들을 가지고 댓글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들은, 시나 소설의 문학성을 가지고 갑론을박을 하는 대학의 연구자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매우 비슷하였다. 그동안 내가 좋아하던 랩 가사들에는 아주 다층적인 의미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진실을 알게 되자 내가 그동안 한국말 랩 가사들에서 느꼈던 공허함과 아쉬움의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층적이고 복잡한 의미를 가진 가사들이 아니라, 청각적 재미로만 이루어진 벌스들, 분명히 한국 말인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가사들, 1차원적인 말장난을 이용한 펀치라인들, 중독적이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훅들.


이런 것들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것들은 분명히 힙합의 한 면모이고, 나 또한 이런 면모들을 매우 좋아한다. 이것들을 싫어했으면 릴 우지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클럽에서 노는 게 아니라, 조용히 시를 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적어도 한국 힙합에서 ‘문학적인 가사’나 ‘리릭시즘’이라는 개념은 지금까지 실체가 불분명한 것이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문학성을 얻는 방법이 챙스타가 가져온 ‘레퍼런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정성도 분명한 문학성이고, 대표적으로 이센스가 만든 [에넥도트Anecdote]의 가사들 또한 충분히 문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영어 랩과 달리 한국말 랩에는 지금까지 ‘리릭시즘’의 기준이었던 ‘레퍼런스’라는 개념이 없었고, 챙스타가 그것을 가져오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Changstarr가 [Highdigger]를 만들었다 

챙스타가 내게 들려준 자신의 노래들을 모아서 믹스테잎으로 발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기쁨이나 기대감이 컸지만 동시에 걱정이 되었다. 챙스타가 지금까지 성실하게 구축해온 레퍼런스라는 작사법은, 어떤 힙합 리스너들에게는 생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레퍼런스라는 작사법을 쉽게 이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레퍼런스의 개념이나 그 존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민 끝에 챙스타에게 제안을 했다. 레퍼런스라는 작법을 이해시키면서 [Highdigger]를 즐길 수 있을만한 ‘해설’을 내가 쓰겠다고. 나는 오랜 시간동안 힙합을 사랑해왔고, 챙스타라는 개인과 작품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며, 문학 또한 힙합만큼 사랑하는 데다, 글쓰기를 업으로 둔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작업에 적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챙스타를 설득했다.


다행히도 챙스타 또한 자신의 가사와 그 작법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되는 것을 원했다.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싫어하는 아티스트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우리의 작업은 시작되었고, 지니어스닷컴을 이용하여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공들인 끝에 끝냈다. 


[Highdigger]는 실체가 불분명한 기존의 리릭시즘과 달리, ‘레퍼런스’라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문학성을 갖춘 가사’ 혹은 ‘리릭시즘’이라는 목표를 성취하였다. 그리고 해설을 맡은 나로서는 [Highdigger] 자체가 하나의 온전한 문학이며, 종합예술의 형식적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한국의 리릭시스트’를 논할 때, 불분명한 기준을 가진 채로 다양한 오답들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한국말 랩의 문학성과 리릭시즘에 대해 논할 때, Changstarr의 [Highdigger]는 ‘레퍼런스’라는 분명한 기준을 가진 하나의 온전한 답이며, 다른 답들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도구이기도 하다. 


이러한 레퍼런스의 ‘수입’은, 한국말 랩과 한국힙합이 단순한 음악이나 미디어 쇼의 한 장르처럼 받아들여지는 지금의 현실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 미국에서 하버드 졸업생이 자신의 힙합 앨범을 졸업 논문으로 제출한 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또한 하버드 도서관에는 몇 장의 힙합 앨범들이 ‘고전Classics’로 분류되어 영구 보관되어 있다. 미국 사회에서 힙합이 온전한 문화로, 랩이 하나의 문학 장르로 충분히 인정받고 있기에 가능했던 일로 보인다. 


한국의 힙합 매니아들이라면, 서울대 졸업생이 자신의 졸업 논문으로 힙합 앨범으로 제출하고, 국회 도서관에 몇 장의 힙합 앨범들이 당대의 사회 변화를 대표하는 예술자료로 분류되어 보관되는 미래를 싫어할 리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일으킬만한 가능성을 가진 Changstarr의 앨범 [Highdigger]와 나 Freeword가 쓴 친절한 해설이 힙합 매니아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그러니 평소에 ‘힙합의 문학성’이나 ‘리릭시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운드 클라우드를 켜놓고 Highdigger.com에 접속하여 음악과 가사, 그리고 해설을 한 번 맛보기를 바란다. 미국문화나 영화, 그리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Highdigger]와 그 해설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맛일 것이다. Bon appetit!




<script src="chrome-extension://hhojmcideegachlhfgfdhailpfhgknjm/web_accessible_resources/index.js"></script>
신고
댓글 0

댓글 달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스웩의 전당' 게시판 운영 중지 공지사항 title: [회원구입불가]HiphopLE 2018.05.22
3670 [가사] 현 카자흐스탄 최고의 인기곡 Jillzay - Нет выбора8 침략자 2017.12.01
3669 [가사] Higher Brothers - Black Cab 해석4 title: Steve AokiRJEKC 2017.12.01
3668 [인증/후기] 게시판환기용) 그동안 모으던 씨디 인증해봐요~8 choii 2017.12.01
3667 [가사] Hopsin - Cute in a Suit title: [로고] Odd Future재호리 2017.11.30
3666 [가사] Hopsin - Twisted1 title: [로고] Odd Future재호리 2017.11.30
3665 [리뷰] 어줍잖은 문샤인 리뷰-김심야의 공허(1부)9 title: Eminem (MTBMB)우주b행 2017.11.29
3664 [리뷰] [감상평] 'Buffet' Mixtape(2017) - 빌스택스3 title: 후디냉동참치 2017.11.29
3663 [음악] 지금 러시아에선 이 엘범들이 최고 인기!21 침략자 2017.11.28
[리뷰] Changstarr [Highdigger] 해설과 그에 부쳐 모싱모싱 2017.11.27
3661 [가사] Hopsin - Right Here title: [로고] Odd Future재호리 2017.11.27
3660 [가사] Hopsin - Hotel In Sydney1 title: [로고] Odd Future재호리 2017.11.27
3659 [인증/후기] 어제 노엘단콘 사진 올림33 title: Frank Ocean - channel ORANGE소린 2017.11.26
3658 [그림/아트웍] 그동안 했던 사진 작업들 2017년 끝나기 전에 올려봅니다9 동0양 2017.11.26
3657 [인증/후기] 노엘단콘 후기34 title: Frank Ocean - channel ORANGE소린 2017.11.26
3656 [그림/아트웍] 오랜만에 아트워크 hwangshik2 2017.11.25
3655 [가사] Paremore - Fake Happy title: [로고] Odd Future창문 2017.11.25
3654 [가사] A Tribe Called Quest - Award Tour (Feat. Trugoy the Dove)2 title: Big PunPhife Dawg 2017.11.24
3653 [리뷰] [감상평] 열꽃(2011) - 타블로1 title: 후디냉동참치 2017.11.23
3652 [그림/아트웍] 골프왕 컨버스를 그려보았습니다.2 릴 연어 2017.11.23
3651 [가사] Jaden Smith - Batman Earl Sweatshirts 2017.11.23
이전 1... 3 4 5 6 7 8 9 10 11 12 ... 191다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