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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dalena Bay - Imaginal Disk를 듣고

TomBoy2시간 전조회 수 170추천수 9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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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3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타불라 라사에서 활동하던 미카 테넨바움과 매튜 르윈은 어느 날 그라임스의 <Art Angels>를 듣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비상식적인 발상을 접하고 나서야 공간이 활처럼 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 사람들처럼, 미카와 매튜는 음악이 어떤 형태로든 구부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라임스는 이미 컨셉츄얼한 신스 팝의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됐다) 바야흐로 막달레나 베이가 탄생한 것이다. 데뷔 앨범 <Mercurial World>를 통해 드러난 이들의 강점이자 결점은 바로 야심이었다. 이 듀오는 리듬을 자유자재로 확대하거나 축소하고 음성을 다채롭게 변조하고 모든 파트를 능숙하게 믹싱했지만, 이 모든 것을 한데 아우르는 데는 실패했다. Secrets, You Lose!, Chaeri 같은 곡들은 너무나 매혹적인 조각이었으나 그저 조각일 뿐 이것만으로 퍼즐이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소포모어 앨범 <Imaginal Disk>에서는 묘한 반전이 벌어진다. 앨범의 허리에 위치한 Vampire in the Corner, Watching T.V., Tunnel Vision 같은 곡에서는 후반부 약속된 과잉 연출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시종 절정을 향해 내달리며 끝없이 팽창하는 듯하던 <Mercurial World>의 분위기와도 대비된다. 그리고 통상 뮤지션들의 생애 주기가 자신이 천착한 장르와 형식을 비옥하게 살찌우다가 그것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내림세에 접어든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건 더욱 공감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그러나 바로 이 선택, 즉 팽창하던 에너지를 감소시키고 기술력이 야심을 따라잡도록 격려한 것이야말로 '상상 속 디스크'를 실현시킨 원동력이라 할만하다.

 

<Imaginal Disk>는 미카가 연기한 트루라는 캐릭터가 외계인에게 의식이 담긴 디스크를 강제로 삽입 당해 인간이 된다는 프로메테우스적 콘셉트를 갖고 있다. 미카와 매튜는 뮤직비디오의 내러티브가 '자아와 의식에 대한 탐구'라는 앨범의 주제를 보완해 줄 거라고 말했지만, 윈도 XP의 초록 들판에서 대체 무엇을 읽어야 할까. 그럼에도 앨범의 사운드는 그 어느 때보다 통일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통일성을 설명하려는 비유, 예를 들어 막달레나 베이의 스페이스 록, 그라임스, 체어리프트, 찰리 XCX, 아바를 커버하는 펫 숍 보이즈, 미국 중산층 버전 케로 케로 보니토 등은 우리의 이해를 돕긴 하나 어딘가 2% 부족한 것 같다. Killing Time에서 구절 사이 여백을 메우는 청량한 로즈 피아노부터 Death & Romance에서 닉 빌라의 현장감 넘치는 드럼 연주, That's My Floor에서 모든 믹스를 집어삼키는 강렬한 디스토션, 그리고 이 탁월한 작품의 일원이 된 이름 모를 수십 명의 관현악 연주자들까지, 고작 일주일 전 발매된 앨범에서 빛바랜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난다. 미카와 매튜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꽃다운 시절을 자신들이 만든 20분짜리 잼에 개연성을 부여하면서 보냈다. 20대의 끝자락에 당도한 지금 그들은 자신들이 쓴 신스 멜로디 위에 청춘을 바쳤던 악기들을 덧붙이며 보낸다. 앞서 비유들보다 더 낫다는 보장은 없지만, 나는 이 디스크에 프로그레시브 신스 팝이라는 헐거운 라벨 하나를 붙여주고 싶다.

 

<Mercurial World>의 성공으로 인해 코로나 시대 틱톡 영상의 주무대였던 LA의 작은 아파트를 벗어난 덕에 스튜디오에서의 옵션이 늘어났다. 인디펜던트의 유니버설이라 할만한 Mom + Pop과의 계약도 더 많은 자원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종전 이 듀오는 현악기 샘플을 오려내고 신시사이저 필터를 활용해 <Mercurial World>의 화려한 스트링 사운드를 빚어냈다. 반면 이번에는 스웨덴의 한적한 스튜디오에서 편곡가 올리버 힐 그리고 20명에 달하는 현악 세션과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생생한 연주를 앨범 속에 담아냈다. 아닌 게 아니라 <Imaginal Disk>는 편곡만 놓고 보자면 흡사 <Mercurial World>의 오케스트라 버전처럼 들린다. Angel on a Satellite의 후반부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은 스웨덴의 스튜디오로 우리의 감각을 단숨에 이동시킨다. 그런데 전반부 평화롭게 흘러가는 피아노와 퍼커션은 요즘처럼 접근성이 좋은 시대에 어떤 지망생이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앨범 작업이 한창이던 어느 날, 매튜는 주피터-8의 아르페지오레이터를 사용해 구운 식빵 위에 좋아하는 재료를 올리듯 즉석에서 화음을 축조했다. 미카는 곧장 프로펫-5를 통해 매튜의 그루브를 보조해 줄 마림바 같은 음색을 찾아낸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The Ballad of Matt & Mica는 그렇게 즉석에서 탄생했다. 분명 <Imaginal Disk>는 더 많은 돈, 더 많은 악기, 더 많은 야심이 집적된 작품이다. 하지만 그 풍요로운 앙상블 사이사이 LA의 작은 아파트에서 피어올랐을 법한 유쾌한 아마추어리즘이 넘실거린다.

 

앨범을 듣다 보면 '자아와 의식에 대한 탐구'를 주제로 하고 있고 콘셉트의 뼈대가 더욱 단단해졌음에도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의아할 때가 많다. "내가 이렇게 초월적인 인간일 줄은 전혀 몰랐어."처럼 자의식 충만한 트위터 멘션처럼 느껴지는 가사도 있고 꼭 제프 트위디가 쓴 것처럼 묘하게 일그러져 있으면서 입에 착착 감기는 라인도 있다. "내 모든 찌꺼기를 내 자손에게 남겨줘." 가장 인상 깊었던 구간으로 나는 훵키한 베이스와 박자감이 돋보이는 Killing Time과 디스코와 신스 훵크의 핵심 감성을 제 식대로 풀어낸 Image를 꼽고 싶다. 한 곡은 로렐 캐니언에서 꽃피운 사이키델리아의 황금기를 연상시키고, 다른 한 곡은 프로그레시브를 하다가 이제 막 팝의 세계에 발을 들인 앳된 미카와 매튜를 떠오르게 한다. 한 곡의 가사에는 조니 미첼이나 스틸리 댄이 썼다고 해도 좋을 만큼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철학이 담겨 있고, 다른 한 곡의 노랫말은 철 지난 후크 송처럼 운율감 외에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위대한 앨범들이 으레 그렇듯 서로 상반된 성질의 곡들이 이질감 없이 공존한다. 미카와 매튜는 고스 문화와 신스 선율을 결합한 Vampire in the Corner의 로맨틱하다 못해 유치하기까지 한 세레나데를 선택했다. 다소 의아한 선택에 대한 미카의 해명 아닌 해명은 어쩌면 예술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가사(음률)를 하나하나 분석해야 한다면, 그럼으로써 모든 가사를 이해하게 된다면 이상할 것 같아요. 방금 끝내주는 마술을 펼쳤는데 곧바로 그 신비로움을 망쳐버릴 순 없잖아요."

 

앨범 전체에 걸쳐 기묘한 키 변화와 장르 변주, 장대하지만 한눈에 파악할 수 없는 이야기, 자꾸 흥얼거리게 되는 후렴과 적당히 춤추기 좋은 리듬, 80년대 신스 팝과 세기말 감성을 향한 노스탤지어가 일렁인다. 하지만 이런 특성을 가진 뮤지션이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막달레나 베이와 한둘이 아닌 뮤지션들을 나누는 차이점이 대체 뭘까. 나는 막달레나 베이가 힙스터와 틱톡의 경계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퇴근 후 2번째 삶이 주어졌을 때, 언젠가 보관함에 담아둔 앨범을 들으며 보내는 사람과 현재 밈의 풀 속에서 제일 핫한 음악을 틀고 춤추는 사람. 두 유형은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영원히 서로를 공감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실은 미카 테넨바움을 묘사한 것이다. 그녀는 주말이면 제프 골드브럼이 출연한 영화를 보거나 ELO의 미공개 데모를 들으며 취향을 갈고닦지만, 동시에 틱톡 촬영을 도저히 멈출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막달레나 베이 열풍을 불러일으킨 건 레딧이나 RYM이 아니라 편당 7만 뷰를 자랑하는 틱톡 계정이므로) 이들은 온라인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인식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SNS를 통해 리뷰 유튜버들을 코미디 소재로 삼기도 했다. 비평지의 부정적 평가나 여론의 악플이 자신들을 실망시키긴커녕 진정으로 성공했다는 인상을 줬다고 매튜는 술회한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거나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정말 관심 없는 밴드에게는 나쁜 말조차 아끼기 때문에 이런 반응은 이 정도의 아티스트가 됐다는 일종의 신호인 셈이죠." 우리도 이제 근심을 털어놓고 머릿속에 디스크를 욱여넣자. 흥겨운 리듬에 몸을 한 번 맡겨보자.

 

 

 

 

 

---

 

카펜터스, 아바, 화이트 스트라입스, 그리고 스위트 트립까지.

불후의 혼성 듀오들을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단순한 남녀 관계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꼭 지금의 막달레나 베이처럼요.

 

미카가 없는 막달레나 베이를 상상해 보세요.

티어스 포 피어스의 오자발이 매튜와 팀을 이뤄

제2의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가 나온다고 해도

미카가 없다면 너무 허전할 듯해요.

 

이번에는 매튜가 없는 그룹을 상상해 보세요.

콘셉트에 과몰입한 틱톡커가 한 명 더 생기는 셈입니다.

여러분 모두 비요크와 그라임스를 사랑하지만,

비요크 2명, 그라임스 2명은 어딘가 벅차지 않습니까. ㅎㅎ

 

 

여름이 끝날 듯 안 끝나고 있는데

강렬한 날씨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름 끝자락에 좋게 들은 앨범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Imaginal Disk 정말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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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
  • 2시간 전
  • 1시간 전
  • 1시간 전

    아직까지도 이 앨범의 맛을 전혀 못 느끼고 있는 나 🥺

  • 1시간 전
    @예리

    저도...

  • 1시간 전
    @예리

    전 6트째 조금 맛있어지고 있습니다..

  • 53분 전
    @예리

    저도 잘..ㅋㅋㅋ

  • 28분 전
    @예리

    사실 저도 모르겠습니다..ㅋㅋㅋㅋ

  • 1시간 전

    미국 중산층 버전 케로케로보니토라니 ㅋㅋㅋㅋㅋ 정말 재밌는 비유네요

    앨범에 막 빠지기 시작했을때 컨셉이 궁금해서 몇 인터뷰를 찾아보긴 했지만 아직까지 전체적인 스토리를 잡기에는 아직 나온것들이 부족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추가적인 뮤직 비디오가 나와야지 알수있을듯하네요. 찍어놓은건 더 있는듯해서..

    와 근데 인터뷰 찾아보면서 느낀게 이런 정보들을 찾는데도 시간이 들고 내용을 정리하는것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리뷰글을 쓰기전까지 얼마나 많은 작업을 하신건지 상상조차 되지않네요..

    잘읽었습니다!

  • 1시간 전

    긴 글 감사합니다

  • 글 너무 멋져요

  • 1시간 전

    힙스터 & 인터넷 너드 취향저격 그 자체

  • 1시간 전

    제 머리속에 난잡하게 돌아다니던 생각들에 플러스 알파까지 더해서 너무 멋진 글을 써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개추~

  • 54분 전

    좋게 들은 앨범에 대한 너무 좋은 글입니다

  • 53분 전
  • 19분 전

    조금 더 들어봐야겠어요...

    처음 들었을 때의 기억을 뒤집어봐도 좋은 인상들뿐이었는데 하필 앨범의 발매일은 8월 23일이었고 전 고양에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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