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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 물고 빨고 핥는 조용필입니다.
매번 들을 때마다, 기존에 있던 리뷰들이 아쉽기만 할 뿐입니다. 신현준 선생님이나 가슴네트워크나, 음악취향 Y가 조용필 앨범들을 칭찬하지만, 대체로 락킹한 4집 혹은 7집 위주로 고평가를 하고, 다른 작곡가들의 곡이 많이 수록된 앨범들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트로트 느낌이 날 경우, 조용필 작곡이라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신현준 선생님이나 다른 분들은, 조용필이 그룹사운드 출신인만큼 락이 그의 "작가적 본령"이고, 성인가요는 일종의 "타협"으로 여긴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조용필의 트로트, 혹은 성인 가요는 분명 재평가 받을 아이디어들로 가득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제가 볼 때 포인트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a) 한국 국악의 '창'을 현대화하려고 굉장히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1집에 있는 한오백년부터 시작해서, 2집의 창작곡인 간양록, 5집의 창작곡인 산유화나 한강, 황진이 모두 놀랄 정도로 뛰어난 "퓨전 국악"입니다. (다만 7집 이후로는 이런 시도가 거의 보이지 않네요.)
또 다른 포인트는 (b) 한국 가요를 일종의 "프로그레시브화", 즉 전자악기와 빵빵한 코러스, 관현악으로 세련화하려고 했던 작업입니다. 이 성향은 초기에는 퓨전 국악풍, 가곡풍, 발라드풍 노래들로 나오더니, 9집 이후에 굉장히 본격화됩니다. 이 과정에서 당대 발라드 작곡가/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퓨전 재즈/AOR/데이비드 포스터는 물론, 신스팝과 알앤비/신스 훵크 같은 것들의 영향도 조용필에게서는 선명히 보입니다.
이 글에서는 아주 짧게, 신스팝 혹은 신스를 녹아내려 했던 조용필의 곡 세 개를 소개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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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kD4N_aLUNo?si=ybDhbbxnkLwX4W1o
조용필 1집에 수록된 '단발머리'입니다.
여러 호의적인 평도 많고 그렇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노래를 스티비 원더와 비교하는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게 처음으로 저 뿅뿅 거리는 신스 사운드가 나온다는 점에서, 신스팝과 많이 비교하는데 제가 볼 때는 스티비 원더의 영향이 더 강해보입니다.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스티비 원더는 신스가 나오자마자 알앤비에 넣어서 자기만의 곡을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알앤비의 영향을 더 강하게 느끼는 이유는, 우선 곡 전체에 넘실되는 베이스입니다. 그리고 흔하지 않게 조용필의 (나름) 부드러운 가성을 들을 수 있는 곡이라는 점, 그리고 여성 코러스가 나온다는 점이죠. 모두 전형적인 알앤비 편곡입니다.
(3)
https://youtu.be/BexlNfcw4Mg?si=pu_ZXDqoZy0ALYmh
조용필 5집에 수록된 '우울한 주말'입니다.
이호준 작곡인데, 원래 송창식 등이 참여했던 오리엔트 레코드의 하우스 밴드였던 동방의 빛 소속이셨습니다. (조동진, 강근식 등등이 함께 했었죠.) 거의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신스를 연주하셨던 분 중 하나죠.
여하튼 이 노래는 클래식 느낌이 굉장히 강하지만, 동시에 신스도 섞인, 일종의 '뉴에이지'라고 부를 수 있을겁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라던가 당시 뉴에이지라고 불렀던 곡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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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10yxyIsXABk?si=MsZGdDO3aq50-vqV
조용필 6집에 수록된 '눈물의 파티'입니다.
이건 발라드 곡을 주로 작곡한 이범희씨 작품인데, 전혀 이범희씨 작품처럼 안 들립니다. 왜냐하면 진짜 신스팝이거든요. 훵크의 느낌이 강한 단발머리와 다르게, 차갑게 가라앉은 리듬과 건조한 조용필의 창법이, 이건 신스팝을 레퍼런스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조금 과장하면 크라우트락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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