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오늘, 홍익대학교 정문 맞은 편 네스카페 근처에 있던 사운드 홀릭 시티(Sound Holic City)에서는 평소와는 다르게 힙합이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주로 록 공연이 많이 열리는 거로 보이는 라이브 클럽이었지만, 이날 주인공은 5명의 DJ와 호스트 격의 래퍼 2명이었다. 그 두 래퍼 중 한 명은 ‘Positive Vibe’를 외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냈고, 또 한 명은 연신 ‘나는 자유롭다(I’m Free)’고 부르짖으며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의 야성을 분출했었다. 플로어의 사람들은 한 손에 제각기 다른 술을 든 채로 중지와 약지를 접은 다른 손을 위로 치켜세웠다. 그날은 하이라이트레코즈(Hi-Lite Records)의 1주년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그 이후로도 하이라이트레코즈는 하루에도 몇 개씩 간판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홍대이기에 지금은 당연히 사라진 코쿤(Cocoon), 벡스(Bexx) 등에서 4월마다 돌아오는 자신들의 생일을 자축했다. 어떤 주년 파티에서는 어렴풋이 기억나기로 팔로알토(Paloalto)가 디제잉을 하다가 장비에 술을 엎지르는 바람에 1시간이 넘게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기도 했지만, 그들이 팬들과 함께 벌인 축제는 늘 즐거웠다. <쇼미더머니>와 함께 힙합에 돈이 밀려들어오고, 힙합 씬이 홍대를 떠날 채비를 하기 전이었기에 그런 투박한 면이 있었어도 하이라이트레코즈가 만든 것에는 늘 마음을 들끓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음악, 사람, 삶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었다.
오프라인 이벤트로 그 DNA를 이어받은 것은 2012년 대선에서 투표율 70%를 달성하면 만 원짜리 공연을 열겠다고 하고, 실제로 소규모 공연장 DGBD(구 드럭)에서 피자 한 조각을 든 채로 관객들을 맞이한 허클베리피(Huckleberry P)의 <분신(焚身)>이었다. <분신>은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졌다. 도장 깨기라도 하듯 홍대의 롤링홀(Rolling Holl), 브이홀(V-Hall), 무브홀(Move Hall, 현 왓챠홀)을 넘어, 나중에는 예스24 라이브홀(Yes24 Live Hall, 구 악스홀)이 있는 광장동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이 있는 방이동으로 향했다. 어느새 <분신>은 “Good Times”의 가사마냥 한국힙합의 주역들이 모두 나오는 ‘대축제’가 되어 레이블이 추구하는 모든 것에 화합까지 더했다.
그 화합으로 나아가기까지의 과정은 명징하게 찬란했다. <분신>이 시작한 해와 같은 해 발표된 첫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Hi-Life]는 그 모든 일의 신호탄과도 같았다. 이 앨범에서 허클베리피, 오케이션(Okasian) 등이 더해진 무적과도 같은 라인업의 멤버들은 삶에 대한 긍지로 가득찬 메시지를 던지고, 서던을 지나 당시 유행하기 시작했던 맥시멀한 사운드의 트랩 음악을 전면적으로 시도했다. 그 이후로 하나둘씩 나온 멤버들의 주옥 같은 앨범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음악은 재밌고 좋아야 하고, 삶은 즐겁고 밝아야 한다’
[탑승수속]과 [Orca-Tape]은 간지를 머금었고, [희망]과 [Korean Dream]은 낙관과 열망으로 가득했다. [PINOcchio]와 [her]에는 따뜻한 이야기가 있었고, [gOld]에는 존경과 헌사가 새겨져 있었다. [Chief Life]는 수장인 팔로알토의 앨범답게 책임감을 세련되게 담고 있었다. 이러한 하이라이트레코즈의 디스코그래피에는 멋과 공감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었다. 그만큼 팬들은 아티스트와 함께 삶의 호흡을 가져간다고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부흥해 사람들을 리드하는 듯한 스탠스를 보인 일리네어 레코즈(Illionaire Records)와는 달랐다. 무엇이 맞다 틀리다랄 건 없지만, 어쨌든 하이라이트레코즈의 아티스트와 음악은 다른 레이블보다 상대적으로 듣는 이의 앞이나 위에 있기보다 옆을 지켜줬다.
그러나 빛이 밝은 곳에 어둠도 깊다고, 2010년대 중반부터 하이라이트레코즈는 음악만큼이나 다른 가십들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주축 멤버들의 계약 만료, <쇼미더머니> 출연, CJ E&M 인수합병, 키스 에이프(Keith Ape)의 “Korean Rap Sucks” 인터뷰 발언, 그에서 파생된 심바 자와디(Simba Zawadi, 현 손 심바)와의 갈등 등 이슈의 연속이었다. 삶을 멋지게 찬미한 덕에 많은 팬을 끌어모으는 데 핵심적이었던 [Hi-Life]는 오히려 올드 팬들이 ‘하이라이트레코즈 예전이 나았네’라는 이야기를 꺼내기 좋은 소재가 되었었다. 형세상 <쇼미더머니 5>에서 비와이(BewhY)와 씨잼(C Jamm)이 말 그대로 ‘크래쉬(Crash)’를 일으키면서 새롭게 생겨난 힙합 팬들에게 당시 하이라이트레코즈는 그저 유약해진 비겁자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그들이 선택한 카드는 다시, 계속, 여전히 멋진 사람들과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전의 기조와 무관하게 재능이 있고 음악이 좋으면 뉴욕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윤비(YunB)도, 팔로알토가 욘(YON)이었을 때부터 알아보고 반스(Vans)의 <뮤지션 원티드(Musician Wanted)>로도 인연을 맺은 저드(jerd)도 하이라이트레코즈의 멤버가 될 수 있었다. 같은 기간에 레디는 무려 3장의 풀렝스 앨범을 냈고, 스월비(Swervy)는 새로운 제네레이션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건 물론, [Undercover Angel]로 불세출의 히로인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색깔을 버무려 만든 두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Legacy]는 하이라이트레코즈가 변화 속에서 무엇이든 받아들일 용기와 흔들리지 않을 기백을 가진 유연한 개체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듯한 음악적 결정체였다.
그리고 지금에 오기까지 12년, 사춘기에 놓여 있던 한 사람이 교복을 벗고, 휴학을 하고, 전역을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 기간이다. 그동안 힙합은 스웩(Swag)에서 시작해 댑(Dap)을 지나고 플렉스(Flex)를 거쳐 아이시(Icy)나 노 캡(No Cap)까지 왔다(그조차 이미 지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머리가 굳기도 하고, 문화는 어려지거나 혹은 이전의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는 그 모든 시간에 걸쳐 근본 있게 힙합, 알앤비 음악을 만들어온 하이라이트레코즈에게 무한한 사랑과 감사, 그리고 경의를 표한다. 당신들의 움직임이 있었기에 젊은 날의 우리가 더 당당해질 수 있었다고. 당신들의 음악은 한국힙합/알앤비 씬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만큼 멋진 유산이라고. 당신들이 있었기에 음악이 재밌었고, 삶이 즐거웠으며, 어디서든 다음에 또 봤으면 좋겠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_CFm565XbW0
Editor
melo
🤟🤟🤟🤟🤟
EVERYBODY PUT YOUR HILITE SIGNS IN THE AIR
🤟🤟🤟🤟🤟🤟🤟🤟🤟🤟🤟🤟🤟🤟🤟🤟
리스펙!
'어쨌든 하이라이트레코즈의 아티스트와 음악은 다른 레이블보다 상대적으로 듣는 이의 앞이나 위에 있기보다 옆을 지켜줬다.'
오랜 팬으로서 정말 와닿는 표현이네요....
정말...🤟
따듯하듯이 감싸주었던 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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