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HYPED:
‘UNHYPED’는 힙합엘이의 언더그라운드 큐레이션 시리즈로, 이 씬 안에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소개한다. 자신만의 위치에서 힘껏 소리를 내고 있지만, 아직 많은 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기회가 없는 그들. 장르, 경력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본 시리즈를 통해 소개될 아티스트들은 몇 년 안에 더욱 큰 주목받을 재능과 가능성을 지녔다. 그런 그들을 미리 발견하고, ‘하이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언하이프’의 상태의 그들이 만들어낸 솔직하고, 대담한 음악이 더욱 큰 울림을 줄지도 모른다.
UNHYPED: hiko & Otis Lim
‘UNHYPED’에서 스물일곱 번째로 소개할 아티스트는 히코(hiko)와 오티스 림(Otis Lim). 1997년생 동갑내기인 두 아티스트는 지난해 자신들의 음악 커리어에서 첫 명함이 될 솔로 EP를 발표하며 알앤비/소울 음악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20년대 한국의 알앤비/소울 씬을 이끌어 나갈 차세대 주자들이 궁금하다면, 바로 여기 두 음악가의 이름을 주목해보자.
LE: 일단 힙합엘이 회원분들에게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히코(이하 H): 안녕하세요. 저는 곡 쓰고 노래하는 히코라고 합니다. 힙합엘이 회원분들 인터뷰로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오티스 림(이하 O): 안녕하세요. 시엘이(오티스 림의 반려견) 오빠 오티스 림이라고 합니다.
LE: 요즘 근황이 어떠세요?
H: 저는 작년에 앨범을 발매하고 나서 앨범 관련 콘텐츠 촬영과 공연을 했었어요. 이제는 새로운 작업물을 들려 드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O: 저는 다음에 나올 싱글과 EP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개인 유튜브로 저의 세계관을 넓혀 나가기 위해 여러 가지 구상들을 하며 지내는 중이에요.
LE: 두 분의 활동명 때문에 교포 출신 뮤지션으로 오해하시는 장르 팬분들이 더러 있을 거 같은데요. 특별히 해명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O: 교포 출신? 뭔가 간지라 굳이 해명하고 싶지 않네요. (전원 웃음)
H: 히코라는 제 이름을 보고 '히키코모리'에서 따온 거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그거랑 전혀 관련이 없어요. 친구들이 예전에 아무 뜻없이 이름을 지어준 건데요. 정이 생겨서 지금까지 어쩌다가 쓰고 있어요. 저는 신내동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계속 살고 있기 때문에 교포 출신이 아닙니다.
hiko & Otis Lim: 과거
“입시를 준비했던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져요.”
LE: 그렇다면 두 분의 시작을 짚어볼게요. 두 분은 언제 음악을 접했고, 당시에 어떤 곡을 들었는지 기억 나시나요?
O: 저는 부모님이 음악을 하시는 건 아니었지만, 팝을 되게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릴 때부터 퀸(Queen)을 비롯한 팝, 록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흑인음악도 접했고요. 그러다 우연히 도니 해서웨이(Donny Hathaway)의 “A Song For You”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를 기점으로 음악에 푹 빠지게 된 거 같아요.
H: 저는 원래부터 음악을 했던 건 아니었고요. 어릴 때부터 미술 공부를 계속 쭉 하고, 예중, 예고를 다니면서 전공도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림을 그릴 때 저의 친형이 저에게 MP3 플레이어를 선물로 줬었거든요. 그때 들었던 게 나얼의 [Back To The Soul Flight]였어요. 그걸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사실 미술과 음악은 표현하는 방법이 비슷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음악으로 뭔가를 표현하는 게 자신이 있었고, 좀 더 재미있게 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과감하게 미술을 관두고 음악을 시작했어요.
LE: 오티스 림 님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을까요?
O: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그저 학교 다닐 때 노래방을 굉장히 좋아해서 일주일에 다섯 번씩이나 가고 그랬어요. 코인노래방이 없던 시절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한창 노래방을 다닐 때 처음엔 다른 친구들과 노래 실력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는데요.
시간이 점점 지나니 제 노래 실력이 친구들보다 월등히 빨리 늘었던 게 느껴졌어요. 옆에서 친구들도 같이 잘한다고 말해주니까 호기심에 보컬 학원에 다니게 되었어요. 또, 그때가 하필 흑인 음악에 제대로 빠졌을 때라 자연스럽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어요.
LE: 그렇다면 본인의 음악 세계에 가장 영향을 준 아티스트, 혹은 롤 모델이 되는 아티스트로는 누가 있을까요?
H: 저는 나얼 음악을 많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나얼이 속해 있는 브라운 아이드 소울(BROWN EYED SOUL)도 많이 들었고요. 또, 그분들이 좋아하는 블랙스트릿(Blackstreet),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같은 그룹의 음악도 계속 들으면서 그룹 하모니 사운드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또, 제 곡들을 들어보면 패드 코러스 계열, 코러스 플레이가 주를 이루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스펠도 접하게 되었고, 그때 당시 레전드 싱어들의 음악들을 많이 찾아 들으며 사운드적인 영향을 받았던 거 같아요. 이렇게 저는 그때 영향을 받았던 사운드를 기반으로 저의 음악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풀어낼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해요.
O: 저의 EP [Walkin!] 앨범을 들으면 잘 안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사실 제 보컬 스타일은 펑카델릭(Funkadelic)이나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소울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어요.
제가 [Walkin!]에서 그 느낌들을 보여드리지 못한 건, 이런 음악들은 보컬을 비롯해 연주나 프로덕션도 같이 맞춰서 소울적인 느낌을 동시에 줘야 하는데요. 제가 아직 그런 음악을 구현할 실력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알앤비를 하게 된 거거든요.
그래도 “FINGER FIGHTER”나 “Less”를 들어 보시면 저의 소울 몇 스푼을 느껴볼 수 있어요. 안 하는 게 아니라 아직 못 하는 거라서 요즘에는 점점 이런 음악들을 과감하게 시도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또, 제가 나중에 꼭 해보고 싶은 음악은 마빈 게이(Marvin Gaye), 라파엘 사딕(Raphael Saadiq) 같은 뮤지션의 모타운 음악을 해보는 게 꿈이자 목표예요.
https://www.youtube.com/watch?v=mf-4GSt-g7s
LE: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두 분의 음악적 근본력이 느껴지네요. (전원 웃음) 그렇다면 두 분은 이런 음악들을 어떤 경로로 접하셨나요?
H: 아버지께서 음악을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분이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 차를 타게 되면 차 안에서 부모님이 항상 음악을 항상 틀어 주셨고 덕분에 올드 팝이나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을 엄청 많이 접했던 것 같아요. 그때 저는 제대로 가사를 몰랐지만 나름대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그랬어요. 요즘은 유튜브 같은 곳에서도 음악을 접할 수 있지만, 그때 자연스럽게 듣게 된 음악들이 지금의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거 같아요.
O: 저는 학생 때 음악 디깅하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또, 음악이 좋으면 다른 사람한테도 공유하고 싶잖아요. 그래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서 음악을 올리곤 했어요. 페이지에 정말 좋은 음악들을 많이 공유했고, 팔로워도 만 명이 넘고 그랬어요. 그래서 페이지에 올려야 할 많은 음악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주로 네이버나 구글에 아티스트 일대기를 검색하고, 자료를 찾아봤던 것 같아요.
LE: 재밌습니다. 사실 저는 두 분의 첫 만남이 고등학교 때라고 알고 있어요. 맞나요?
H: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 거 같아요. 사실 저희가 노원구 출신인데 같은 학교에 다닌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고3 때 잠깐 같이 다니긴 했지만요. 그래도 노원구에 노래를 좀 한다는 애들끼리 알음알음 알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호승이(오티스 림)하고도 서로 노래 잘하는 친구라고 알고 있었는데요. 하루는 구윤회 님이 광운대학교에서 강의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 저희가 음악을 공부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생판 모르는 사이였던 호승이한테 “우리 같이 강의 들으러 가지 않을래?” 하고 만나서 강의를 같이 봤어요.
제 성격이 좀 까불기도 많이 하고, 사고도 많이 치고, 약간 또라이 같은 기질이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제 성격을 감당할 사람들이 많이 없거든요. 그런데 호승이를 딱 만났는데, 서로를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맞더라고요.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저희는 똑같아요. 그때부터 함께 하면서 지금까지 음악을 한 거 같아요.
LE: 그러셨군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깐요. 두 분 다 실용음악과를 준비한 거 같은데요. 언제부터 준비하셨고, 실용음악과를 준비한 과정이 본인의 음악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친 거 같나요?
H: 저는 고1 때부터 실용음악과 입시를 준비했어요. 그러면 노래 연습이랑 카피를 진짜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역량이 뛰어난 보컬리스트가 아니거든요. 가고 싶었던 대학은 낙방하고, 붙었던 학교는 제가 가고 싶었던 곳이 아니었어요.
학교를 안 다니고 저 스스로 생각을 해보니까요.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고, 보컬 실력으로만 승부를 보면 앞으로 음악을 해나가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제 곡을 쓰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입시를 준비했던 시간 때문에 어디서 라이브를 하거나 공연 준비를 하면 당황하지 않을 수 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느껴요.
O: 저도 입시를 준비한 기간은 승원이(히코)와 비슷해요. 심지어 저는 재수까지 했거든요. 그런데도 못 붙어서 결국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게 되었죠. 그런데 저도 승원이와 정말 똑같이 생각하거든요. 입시생 때 노래 연습을 엄청나게 해왔기 때문에 갑자기 어디선가 노래를 해야 하는 상황을 주면 당황하지 않고 바로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랩하우스 온에어(Rap House ON-AIR)>도 방송 이틀 전에 갑작스레 연락을 받아서 출연하게 된 거였거든요. 그런 면에서 입시생 때 노래를 연습했던 시간이 기본기를 비롯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거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R4sJGc6Hw5g
LE: 그렇다면 오티스 림 님이 당시 진학하고 싶었던 대학은 어디였나요?
O: 당시 저는 스스로 취해 있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쓰리 탑 대학교. 서울예대, 동아방송대, 호원대가 이렇게 있고, 그다음에 한양대, 서경대가 있는데요. 그 밑으로는 지원을 절대 안 했어요. 그래서 결국 떨어졌죠. 대학에 낙방하고 헤매고 있을 그때. 승원이와 주변 친구들이 먼저 곡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걸 옆에서 보며 많이 배우고 저도 같이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LE: 사실 두 분이 1997년생이잖아요? 업계에서는 1997년생이 황금라인이라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대표적으로 동갑내기 뮤지션 중에는 피셔맨(Fisherman) 님이나 쿤디판다(Khundi Panda) 님이 있고요. 그런 만큼 1997년생 음악가분들이 서로 교류를 하는 커뮤니티가 있나요?
H: 커뮤니티나 모임 같은 건 따로 없어요. 그냥 같이 술 마시고, 족구하고 그런 게 다예요.
O: 할 일 없을 때 불러서 작업실에서 노가리 까고요. (전원 웃음)
H: 저희끼리 음악 얘기는 진짜 안 하는 것 같아요.
LE: 그렇다면 동갑내기가 아니더라도 추천해주고 싶은 동료 음악가들이 있을까요?
H: 블라(Blah)라는 굉장히 잘하는 친구가 있어요. 곧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이 있는데 나오면 앨범을 꼭 한 번 들어보세요. 그리고 채(CHE) 형, 픽보이(Peakboy) 형, 다운(Dvwn) 형도 제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형들이에요. 또, 소니 뮤직(Sony Music)에 있는 미스피츠(Misfitz)도 얼마 전에 앨범이 나왔는데요. 앨범이 커머셜하고 되게 듣기 편했던 거 같아요.
O: 채(CHE) 형이 상반기에 앨범 발매를 할 예정으로 알고 있는데요. 앨범이 정말 엄청나요. 많은 분들이 기대할 만하여요. 같이 있으면 항상 배워가게 되는 형이에요.
LE: 다시 돌아와서 두 분 주변에는 실용음악과를 지원해서 대학을 다녔던 친구분들도 계실 거 같은데요. 그분들과는 어떻게 교류를 하고 계세요?
O: 실용음악과에 다니는 친구들은 음악 공부를 하고 있고, 저희는 대중분들에게 음악을 들려드리려 하는 점에서 방향성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연락하고 같이 잘 놀고 있어요. 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노래나 음악 면에서 자문할 때도 많아요. 또, 기악하는 친구들이 주위에 여럿 있는데 곡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악기나 연주가 있으면 친구한테 연락해서 연주 파트를 싣기도 하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EJbnulJMVnM
LE: 재밌어요. 뭔가 두 분을 비롯한 친구분들끼리 재미있는 움직임을 만들고 계신 거 같아요. 사실 또, 두 분은 SNS에 재미있는 영상을 많이 올리시잖아요? 이런 두 분의 캐릭터나 영상은 어디에서 영감을 받으신 건가요?
O: 그런 건 오히려 유튜브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어덜트 스윔(Adult Swim)에서 방송된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의 로이터 스쿼드(Loiter Squad)를 진짜 좋아했거든요. 그리고 미국 바인(Vine) 문화를 진짜 좋아해요. 한국에서 바인 문화가 이슈너블해진 적은 없지만요.
그래서 저는 제 캐릭터랑 그런 모습이 잘 부합하는 거 같아 바인 문화에 맞닿아 있는 걸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또 저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엔터테이너의 욕심도 크거든요. 페이크 다큐멘터리에도 꼭 출연하고 싶어요. 한국에서는 <음악의 신>, <SNL KOREA> 같은 데 말이죠. 제 인생 목표 중 하나예요.
H: 저는 유튜브를 자주 보진 않는데요. 그래도 365일 매일 보는 게 <거침없이 하이킥>이랑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예요. 그러다 보니 인생이 시트콤이 되었어요. (전원 웃음) 저는 밥 먹을 때 시트콤을 안 보면 소화가 안 될 정도로 계속 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시트콤에 나오는 배우분들의 말투도 따라 하려 하는 편이고, 제 일상생활도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처럼 살려고 해요. 저는 제 일상과 삶을 시트콤처럼 살려고 하는 욕심이 엄청나게 커요.
제가 나중에 잘되고, 이런 시트콤이 생긴다면 배역을 하나 하고 싶은 게 제 꿈이에요. 음악도 음악이지만, 시트콤 배우가 되는 게 목표예요. 그리고 저희 둘이 이야기한 게 네이버에 저희 이름을 치면 SBS 공채 개그맨 타이틀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때문에 개그맨 지원이나 오디션을 엄청나게 찾아봤고, 연기 학원 다니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공채를 아예 안 뽑더라고요. 그래서 채 형이랑 호승이랑 저랑 셋이서 시트콤 같은 걸 만들까 하고 있어요. 지금은 기획 단계지만요.
hiko & Otis Lim: 현재
“우리가 잘하고 있구나. 이거 제대로 가고 있다고 느꼈어요.”
LE: 이야기를 들으니 두 분의 SNS에서 보이는 스타성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 거 같아요. (전원 웃음) 재밌습니다. 이제 오티스 림 님에게 개별 질문을 해 볼께요. 2019년에 [Airbag]이란 EP를 발표하시기 전에 밴드 활동을 한 걸로 알고 있어요.
O: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입시에 떨어지고 나서 이제 저의 음악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당시에 시퀀서를 아예 만질 줄 몰랐어요. 그러다 보니 음악을 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밴드였고, 당시에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를 좋아해서서 재즈 밴드 같은 걸 했었어요.
이 중에서 제 앨범에 전곡 참여한 형(Hyung)이란 베이스 치는 친구가 밴드 때 만난 친구고요. 또, “Walkin!”에서 드럼을 쳐 준 홀리 그레일(Holy Grail)이란 친구도 밴드 때 만났던 친구예요.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라 악기 친구들 어깨 너머로 노래를 어떻게 만드는지 많이 배웠어요.
LE: 당시에 클럽 공연도 하고 그러셨나요?
O: 오히려 밴드 할 때보다 학생 때 무대를 되게 많이 섰어요. 대관 공연을 유난히 많이 했어요. 홍대에 있는 롤링홀(Rolling Hall), 프리즘 홀(Prism Live Hall) 등 여러 공연장에서 해봤어요. 승원이랑도 고등학교 때 크리스마스 공연을 같이 해봤네요.
LE: 밴드 때 만드셨던 곡은 따로 발표를 안 하셨나요?
O: 발매는 따로 안 했어요. 곡도 많고, 그중에 진짜 좋은 곡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때 노래를 발표 못 한 게 조금 아쉬워요. 그래서 저는 나중에 무조건 밴드를 할 거예요. 밴드에 대한 욕심은 항상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rTVjnBo96Ug
LE: 그럼 지금의 활동명은 솔로 활동을 하면서 짓게 되신 건가요?
O: 네 맞아요. 제가 [Airbag]을 다 준비하고, 이제 활동명을 뭘로 지을지 생각 중이었거든요. 근데 그때 마침 제가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을 듣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제 성 앞에 오티스를 넣어봤는데 ‘오티스 림’ 뭔가 되게 깔끔한 거 같고, 흔하지도 않고 마음에 들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요.
LE: [Airbag]은 언제부터 준비하시고, 작업 기간은 대략 어느 정도 걸렸나요?
O: 일단 [Airbag]은 현태, 그리고 형이라는 친구 둘과 함께 작업한 앨범이에요. 당시에 밴드가 파투 나게 되었고, 제가 음악을 낼 수 있는 경로가 사라졌던 상황이었어요. 반면에 당시 승원이는 어 홈 비디오(a home video)로 앨범을 냈던 상황이었고, 주위 친구들도 음악을 내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빨리 음악을 내야겠다고 생각해서 바로 맥북을 사서 앨범 제작에 들어가 1년 정도 준비를 하고 급하게 앨범을 내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퀄리티 적으로 너무 미흡했던 부분들이 많아서 지금은 결국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내리게 되었어요. 근데 곡들 자체만 봤을 때 뼈대는 되게 좋은 곡들이어서 다시 재편곡을 해보고 있고 다음에 재발매를 할 생각이에요.
LE: 조금 전에 현태 님과 형 님을 이야기하셨는데요. 또 세 분은 학교 친구이신 거 같은데, 이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O: 저와 현태는 중1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어요. 그만큼 인간적으로도 엄청 가깝고, 처음으로 저에게 시퀀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려 준 친구예요. 그래서 현태는 저의 첫 작업물부터 지금까지 모든 음악 작업물에 참여했어요. 그래서 저희끼리 오티스 림은 사실 솔로 가수가 아니고, 3인조 그룹이라는 농담도 해요. ‘오티’가 현태이고, ‘스’가 형이고요. 그리고 저는 겨우 ‘림’이란 성만 챙긴 셈인 거죠. (웃음)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로 둘은 저의 음악에서 코어 역할을 해 주는 친구들이에요. 그리고 사실 현태는 원래 전자 음악을 하는 친구인데요. 아직 자기가 앨범을 내기엔 이르다고 생각해서 외주로 맞춰주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데도 이렇게 음악을 잘 뽑아내는 게 정말 대단해요. 그만큼 음악을 잘하는 친구이고, 그런 친구들과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게 저한테는 영광이에요.
LE: 현태 님에 관해 이야기를 쭉 해주셨는데, 형 님도 보니까 솔로 앨범이 있으시더라고요. 그런 만큼 형 님에 대해 소개를 더 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O: 희영이(형)는 정말 한국에서 제일 또라이같이 베이스를 치는 친구 같아요. 그 친구의 아이덴티티가 센 게 연주에서 다 묻어나요. 만약 앞으로 제가 희영이랑 작업을 안 하게 된다면, 제 음악색이 엄청나게 바뀔 거에요. 그만큼 저의 음악에 엄청나게 영향을 주는 친구예요. 함께 앨범을 만들 수 있어서 영광이고, 지금도 같이 음악을 만드는 게 너무 행복해요.
LE: 세 분이서는 같은 작업실에서 음악을 만들고 계신 건가요?
O: [Airbag]을 만들 때는 온라인으로만 작업했었어요. 그땐 음악 작업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냥 파일을 주고받는 식으로만 작업했거든요. 근데 요즘에는 거의 만나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음악을 만들다 보면 나중에 변수들이 생기거든요. 그게 보통 초반에 메이킹에 있어서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았을 때 생기더라고요. 지금은 처음부터 같이 만나서 음악을 하니까 퀄리티도 더 좋게 나오고 변수도 줄일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메이킹을 떠나서 만나서 음악 작업하는 거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요. 낭만적이기도 하고, 큰 희열이 느껴져요. 어떻게 보면 음악도 저의 일이잖아요. 그런데 친구들과 만나서 음악을 만들면 일인데도 마냥 재밌고 스트레스를 하나도 안 받아요. 그런 김에 요즘엔 또 다른 프로듀서랑도 작업해 보려고 슬슬 컨택을 해보고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u-NDlbGon4I
LE: 진짜 즐기는 법을 아는 오티스 림 님의 미래가 기대되네요. 또, 저희는 “FINGER FIGHTER”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오티스 림 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요. 노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리고, 뮤직비디오에 대한 에피소드도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O: 일단 “FINGER FIGHTER”는 1년 동안 작업을 했고, 제가 제일 작업을 오래 한 곡이기도 해요. 저는 전 EP [Airbag]을 음원사이트에서 내렸는데요. 그 이유가 앨범 레코딩하면서 문제도 많았고, 사운드나 소스에 대해 아쉬움도 느꼈고, 메이킹에 있어서 여러모로 미숙함을 많이 느꼈거든요.
“FINGER FIGHTER”는 그런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걸 다 담아내고자 노력했던 곡이에요. 처음으로 드럼 녹음도 받았고, 음악 내외적으로 제가 시도하고 싶었던 걸 다 해봐서 저에게 의미가 제일 큰 곡이기도 해요.
뮤직비디오는 웃긴 컨셉으로 해보자는 그저 대책 없는 계획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발매 날짜가 다가오고 급하게 승원이와 동네 친구들에게 연락하게 되었어요. 대책 없이 또라이 같이 나오고, 그런 걸 비디오로 담아보자 얘기했어요.
H: 제가 그때 뮤직비디오에서 목욕 가운 같은 걸 입고 나왔는데요. 또라이 같아 보이려고 직접 가운을 산 거였어요. (전원 웃음)
O: 제가 최근에 찍은 뮤직비디오들은 콘티를 치밀하게 짰는데요. “FINGER FIGHTER” 때는 정말 아무 계획도 안 세우고 일단 만났어요. 완전 러프하게 찍었어요. 그러다 보니 당시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승원이가 뮤직비디오에서 가운을 입고 총을 들고 다니거든요. 근데 다른 주민분께서 승원이를 보고 이상한 사람이 총을 들고 다닌다고 경찰에 신고한 거예요.
경찰차들이 돌아다니면서 승원이를 찾고 그랬는데, 저한테도 혹시 이 주변에 총들고 다니는 이상한 사람 못 봤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전원 웃음) 그래서 제가 경찰 아저씨께 그 사람 저희랑 같이 촬영하는 친구라 말을 했더니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경찰차를 함께 타고 가서 해명을 하고 그랬어요. 저희 이거 장난감 총이고, 그저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거라고요. 그때 진짜 재밌었어요.
LE: 친구분들에게도 엄청난 추억으로 남으셨을 거 같아요.
O: 맞아요. 경찰 아저씨들과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가 잘하고 있구나. 이거 제대로 가고 있다고 느꼈어요.
LE: 이제 히코 님에게 개별 질문을 드려볼게요. 먼저 히코 님의 솔로 데뷔 이전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H: 저는 20살에 처음으로 저만의 곡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혼자 할 수 없으니까 누구한테 곡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싶은 거예요. 그때 저는 ‘저랑 생긴 것도 비슷하고, 노래하는 것도 비슷한 사람은 무엇을 했을까?’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눈길이 간 게 지금의 죠지(george) 형이었어요. 당시 죠지 형은 앨범이 없는 시절이었고 죠지라이프란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계셨거든요.
죠지 형에게 곡 쓰는 법을 알고 싶어서 연락을 했는데요. 죠지 형이 레슨을 굳이 안 받아도 될 거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래도 꼭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죠지 형이 그러면 다음 날 아침 9시에 이태원에서 보자는 거예요. 다짜고짜 찾아갔더니 죠지 형이 개를 좋아하냐고 물어봐서 좋아한다고 대답했거든요. 그랬더니 진짜 큰 허스키를 데려와서 산책하라고 시켰어요. (전원 웃음)
또, 산책하다가 길거리에서 노래를 불러 보라고 시키는 거예요. 그때 비가 왔는데, 길에서 아마 뮤지끄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 노래를 세 곡이나 불렀어요. 그러고 죠지 형에게 음악을 배우게 되었고, 당시 제가 곡을 1주일에 한 곡씩 써갔어요. 이처럼 죠지 형은 지금 제가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서 방향을 설정해 준 형이에요. 그만큼 저에겐 너무나도 고마운 형입니다.
LE: 죠지 님과의 재미있는 인연이 있으시네요. 그렇다면 애시드폰드(acidpond) 활동은 비슷한 시기에 하신 건가요?
H: 제가 그때 창동에 있는 지하 연습실에서 혼자 살면서 돈도 없고, 배고프면 롯데리아에서 받은 케첩에다가 밥을 비벼 먹고 그랬거든요. 그러다가 저에게 고등학교 친구 두 명이 찾아오는데요. 그중에 한 명이 스윔래빗(swimrabbit)이었고, 한 명은 MNWT(현재는 원트). 이게 사실은 ‘미남 원태’의 약자예요. (전원 웃음) 이 두 친구도 현재 본인의 앨범들이 있는데 정말 좋아요.
그 친구들이 저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저한테 혼자서 곡만 쓰지 말고 사람들에게 들려주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당시에 사운드클라우드를 몰랐는데, 그 친구들이 사운드클라우드를 알려 주면서 요즘은 이런 사운드가 유행이다, 이런 사람이 유명하다면서 강의를 해 줬어요. 물론, 저는 집중을 잘 못 하는 성격이라서 그렇구나 하면서 과자를 먹고 있었죠. (전원 웃음)
그러다 곡을 써서 올리라고 하길래 마인드디자인(MNDSGN) 비트에다 노래했어요. 그렇게 작업한 트랙을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렸는데, 의외로 제 노래를 들어주시는 분들도 많고 댓글도 달려서 너무 놀랐어요. 이때부터 제 목소리로 음악을 하면 사람들에게 이런 피드백과 반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음악을 만드는 재미를 느껴서 사운드클라우드에 한 5~6곡 정도를 더 올렸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알게 되고, 제가 좋아하는 가수분들에게도 연락이 오더라고요. 이런 아티스트분들이 내 음악에서 뭔가를 느끼고 나한테 연락을 했으니, 내가 뭔가 할 수 있겠다, 더 열심히 해 봐야겠다는 원동력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 친구들 덕분에 제가 지금도 곡을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어서 친구들에게 고마워요.
LE: 사운드클라우드에 대한 각별한 추억이 있으시네요?
H: 네. 지금은 많이 업로드하고 있지는 않아요. 저는 그때 음악들을 지금 들으면 되게 만족도 안 되고, 진짜 창피해서 1초도 잘 못 들어요. 그래도 그 트랙을 내리지 않는 이유는 그때 저도 저이고, 그런 추억들이 다 있어서 삭제는 절대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고 있어요.
O: 저는 그냥 내렸어요.
H: 그런데 그건 오피셜이고, 이건 사운드클라우드라서 가볍잖아요. 만약 정식 등록을 한 음원이라면 바로 내렸을 거 같아요. 제 커리어에 문제가 되거든요. (전원 웃음)
LE: 또, 오티스 림 님의 “수정”에서 프로듀서로 참여한 섹폴(Sec Paul) 님과 함께 어 홈 비디오라는 듀오를 결성하셨잖아요. 이 듀오는 언제부터 결성이 된 거고, 섹폴 님과는 언제부터 아시게 된 건가요?
H: 아마 제가 21살인가, 22살 때 히코라는 이름으로 첫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때 제가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윤태(섹폴)가 알게 되었어요. 어느 날 윤태가 저에게 전화해서 할 말이 있으니 만나자고 하는 거예요. 저는 윤태한테 뭐 잘못한 줄 알고 무서워서 나가기 싫다고 했는데, 그런 거 아니니까 나오라고 하는 거예요.
마지못해 나갔는데 윤태가 “요즘 앨범 준비하는 거 어떻냐? 혼자 말고 우리 듀오로 해보는 거 어떻겠냐?”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당시 윤태는 저랑 음악적으로 교류를 하는 게 아니라 친구 사이였어요. 만나면 서로 술 마시고 작업실에서 같이 자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런 동갑내기 친구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흔쾌히 제안에 응했어요.
LE: 어 홈 비디오라는 이름은 어떻게 정하시게 된 건가요?
H: 앨범을 다 만들고 나서 저희의 이름을 정해야 하는데 뭐 귀여운 이름이 없을까 하다가 짓게 된 거예요. 그때 저희가 생각한 건 일상에서의 소소하고, 따뜻한 이미지를 생각했거든요. 당시에 저는 스케이트보드 비디오를 보는 걸 되게 좋아했는데요. 그런 영상이 홈비디오 컨셉이거든요. 그래서 홈비디오를 떠올렸고, 앞에 어를 붙이니까 딱 귀엽더라고요. 그렇게 활동명을 정하게 되었죠.
LE: 그렇다면 어 홈 비디오는 어떤 음악을 지향했던 팀인가요?
H: 어 홈 비디오의 음악 장르를 뭐라고 말씀드리기 힘들어요. 그런데 저희가 프로듀서랑 플레이어 형태의 듀오로 작업을 하잖아요. 그래서 이 팀으로 한국에서 아직 하지 않고 있는 좋은 음악을 만들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희는 각 곡이 지녀야 할 이미지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고요. 노래를 들으면 딱 떠오르는 날씨나 분위기 같은 걸 많이 생각했어요.
신기한 게 보통 트랙을 작업할 때 어떻게 작업할까 하면서 레퍼런스 같은 걸 정하잖아요. 그런데 저와 윤태는 그런 레퍼런스를 안 정하고 색을 정했어요. 예를 들면 오늘 보라색 같은 걸 써보자, 혹은 시간대도 오후 8시나 새벽 4시 같은 걸 써보자면 저도 그런 식으로 곡을 쓰고, 윤태도 그런 트랙을 저한테 넘겨줬어요.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니 둘의 합이 잘 맞더라고요.
LE: 신기하네요. 그렇다면 두 분은 실제로 만나서 작업을 하셨나요?
H: 그때그때 다르긴 한데요. 제가 피아노를 치다가 괜찮은 멜로디 테마가 짧게라도 나오면, 그걸 바로 핸드폰으로 녹음해서 윤태한테 파일로 보내주고, 윤태가 그걸 가지고 리믹스를 해서 비트를 만들고요. 제가 그 비트에다가 다시 멜로디를 짜기도 하고, 윤태가 만들어 놓은 비트가 좋으면 그대로 제가 갖고 와서 멜로디를 짜기도 했어요. 작업 방식에 대해서는 딱히 제약을 두지 않았어요.
LE: 그렇다면 어 홈 비디오는 계속 활동을 하실 생각이 있으신 거죠?
H: 저희의 원래 계획이요. 저번에 [a home video 2]가 나왔잖아요. 그러고 나서 제 솔로 앨범을 내고, 윤태도 솔로 앨범을 내고, 그다음에 어 홈 비디오의 싱글을 내자는 계획이 있었거든요. 물론, 계획대로 딱딱 되지가 않아서 좀 지연이 되고 있는데요. 그래도 트랙은 다 나왔고, 이걸 어떻게 발매를 할지 생각을 하는 단계예요.
LE: 계속 팀으로 하실 생각이 있으시군요.
H: 네. 무조건이죠. 어 홈 비디오랑 히코랑은 약간 음악적 색깔이 달라요 히코는 좀 더 팝스럽고, 커머셜하고, 제가 보여주고 싶은 음악에 집중하는 거고요. 어 홈 비디오는 제가 솔로에서 할 수 없고, 윤태가 아닌 다른 프로듀서랑 할 수 없고, 특이하지만 과하지 않은 청각적인 재미를 좀 더 사람들에게 주려 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 홈 비디오의 음악은 히코보다는 약간 더 마니아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면 괜찮을 거 같아요.
LE: 좋습니다. 두 분이 그리시는 큰 그림이 다 너무 멋있네요. 이제 다시 오티스 림 님에게 EP [Walkin!]에 대해 여쭤볼게요. EP의 작업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O: 전체적인 작업 기간은 다 합쳐서 1년에서 1년 반 정도 걸렸어요. 이번 EP는 제가 디테일하게 앨범적인 구상을 해서 만든 앨범은 아니에요. 그냥 이런 곡, 저런 곡을 만든 뒤 모아서 낸 음악, 이야기 모음집 같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이번 EP는 저라는 사람의 1년 반 동안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LE: 만약 [Walkin!]을 지금 오티스 림 님이 다시 만들면 작업 기간이 많이 단축될 거 같나요?
O: 많이 단축 될 거 같긴 해요. 저의 캐릭터를 찾고 발현시키는데도 꽤 시간이 들었기 때문에 음악 내외적으로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LE: EP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했나요?
O: 저는 주로 친구들이 스케치 버전의 비트를 보내주면 그 위에 이제 멜로디를 얹어서 작업했어요. 가사도 항상 제일 마지막에 썼어요. 근데 요즘에는 먼저 주제에 대한 영감을 받고, 곡을 쓰고, 가사를 쓰기도 하고요. 먼저 가사를 그려놓기도 해요.
제가 [Walkin!]을 통해서 제일 크게 배운 것 중 하나가 가사의 중요성인 거 같아요.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가 대표적이고요. 어쨌든 노래라는 게 말에 소리를 입혀서 감정을 전달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잖아요. 제가 그걸 놓치고 있었죠. 그런 점 때문에 [Walkin!]부터는 가사에 더 신경을 썼고, 조금 더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온 거 같아요.
LE: 후반 편곡 작업이 되게 오래 걸렸을 거 같아요.
O: 네. “FINGER FIGHTER”는 1년 동안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음악이 순수하다고 느낀 게요. 공들인 만큼 퀄리티가 나오더라고요. “FINGER FIGHTER”가 가지고 있는 곡 중에서 가장 예전의 곡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앞으로 “FINGER FIGHTER” 같은 곡을 못 쓸 것 같기도 해요. 정말 많은 공을 들였던 곡이라서. 어쨌든 편곡을 되게 오래 하는 편이에요.
LE: 그렇다면, ‘오티스 림’인 세 분이 꾸준히 작업할 생각은 있으신가요?
O: 네. 저희는 지금도 꾸준히 작업하고 있어요. 요즘엔 승원이 앨범을 프로듀싱했던 솊스포(schpes4)라는 친구와도 같이 작업을 하고 있고, 악기를 연주하는 다양한 동료들과도 같이 하고 있어요. 제 곡에서 원래 기타 사용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기타 사운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조금씩 제 음악 세계를 넓혀가고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2P_SD-Iry0o
LE: 정말 기대되는 팀이네요. 이제 영국의 작가 도미닉 케스터톤(Dominic Kesterton)이 참여한 [Walkin!]의 커버 아트워크 이야기를 해볼까요? 작가분과는 어떻게 섭외가 된 건가요?
O: 원래부터 제가 알고 있던 작가님이 아니었어요. 앨범을 다 만들고 커버를 뭐로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인스타그램을 디깅하다가 우연히 이제 도미닉 케스터톤 님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 보자마자 ‘무조건 이걸로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저의 노래들과 함께 난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앨범을 내려 하는데 당신의 작품을 제 앨범의 커버로 써도 되겠냐고 여쭤 보내는 내용을 메일을 보냈거든요. 근데 작가님이 그 메일을 읽고 오랫동안 답장을 안 해 주셨어요. 그래서 안 되나 보다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작가님이 그동안 바빠서 연락을 못 했다고 답장을 주셨고, 결국에 사용 할 수 있게 되었죠.
또, 재밌는 게 제가 뷰티풀 디스코(Beautiful Disco) 형이랑 친한데요. 알고 보니 뷰티풀 디스코 형이랑 도미닉 케스터톤 님이 친하더라고요. 그래서 도미닉 케스터톤 님이 뷰티풀 디스코 형에게 “혹시 오티스 림이라고 아냐?”라고 물어봤는데, 거기서 뷰티풀 디스코 형이 저를 되게 좋게 말해준 거예요. 덕분에 이 앨범 커버가 탄생한 거 같아요. 뷰티풀 디스코 형한테 정말 고마워요.
LE: “두유노 오티스림?”이 이런 거군요. (전원 웃음) 또, EP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알앤비/소울, 팝 뮤지션인 수민(SUMIN), 후디(Hoody) 님이 참여했어요.
O: 수민 님의 경우는요. 너무 제가 존경하는 뮤지션이라서 예전부터 수민 님의 개인 이메일로 계속 음악을 보내 드렸어요. 그러다 컨택이 되어서 수민 님의 번호까지 받게 되었어요. 후디 님의 경우는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맞팔이 되어 있던 거예요. 그래서 무작정 수민 님에게 피쳐링 연락을 카톡으로 드리고, 마찬가지로 후디 님에게도 무턱대고 인스타그램 DM을 보냈거든요.
솔직히 저는 당연히 안될 줄 알고 다른 분들을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두 분 다 흔쾌히 좋다고 같이 하자고 해주셔서 너무 행복했어요. 꿈인가 싶었죠. 두 분이 보내주신 보컬을 들어 보니 너무너무 좋았어요. 두 분 다 제 곡을 잡아먹으셨죠. 약간 수민의 “Walkin!”이고, 후디의 “수정”이죠. (전원 웃음) 어쨌든 그때의 작업을 계기로 수민 님은 지금도 재밌는 작업을 같이 하고 있어요.
LE: 그렇다면 EP의 트랙리스트는 어떻게 정하셨나요?
O: 트랙리스트엔 의미를 크게 담지 않았어요. 노래를 다 만들고 최대한 귀가 안 지치고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식으로 배치를 해 봤어요. “Less”란 트랙이 마지막 트랙인 이유는 있는데, “Less”란 트랙이 앨범에서도 가장 돕한 느낌의 트랙이거든요.
앞으로는 이번 앨범보다 좀 더 돕한 음악들도 해보고 싶고, 음악적으로 시도하고 싶은 게 많은 아티스트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 다음 이야기들을 예고하는 듯이 “Less”를 마지막에 배치한 의도가 있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wqPnPR9dr54
LE: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대답을 잘 하셔야 하는 질문 하나 드릴게요. (전원 웃음) 사실, 이번 EP에 수록된 “Walkin!”은 동명의 선더캣(Thundercat) 트랙,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Ribbon In The Sky”, “FINGER FIGHTER”는 맥 밀러(Mac Miller)의 향취가 강하게 느껴지는데요. 이들의 음악을 본인의 작품에 일부러 티를 내서 담아낸 의도가 혹시 있을까요?
O: 저는 레퍼런스로 참고한 음악, 그걸 드러내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 레퍼런스 트랙을 숨기는 게 아니라 한번 대중들이 노골적으로 느끼게끔 만들고 싶었어요. 그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 트랙이 “Walkin!”이에요. 곡은 많이 다르지만 제목이 똑같거든요.
저는 이런 것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때 사람들이 “어? 이거 이 곡인데?”하고 재밌어하면서 노래에 집중을 확 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어떤 노래 들을 때마다 ‘어 이 라인? 원래 이 곡에 있던 건데?’란 생각이 들면 그 노래는 기억에 항상 남거든요. 그래서 “Walkin!”은 제목을 아예 똑같이 가 버려서 강렬하게 인상을 남기고 싶은 의도가 있었어요.
그래도 확실히 철칙은 있어요. 표절에도 기준이 있잖아요. 아닌 거는 아닌 거니까요. 그래서 코드나 화성은 당연히 다르게 했어요. 여러 부분들이 레퍼런스 곡과는 많이 다른데 귀로 들을 땐 그 느낌을 비슷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들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uDgPMOIlu2g
LE: 좋습니다. 그러면 EP의 하이라이트 트랙인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이 곡의 작업과정은 어땠나요?
O: 사실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는 가사가 제일 빨리 나온 곡이에요. 일단 작업을 할 때 인스트루멘털이랑 탑 라인은 나와 있었어요. 이제 가사만 짜면 되는 건데 가사가 너무 안 나오는 거예요. 그 멜로디에 어떤 가사를 붙여도 어색했고요.
그러다 제가 거실에 나가서 어쩌다 시엘이를 봤는데 너무 귀여운 행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혼잣말로 ‘귀여워…’ 했는데 그 단어가 갑자기 뇌리에 스치더라고요. 바로 작업실 방으로 들어가서 ‘우리 집 강아지 귀여워’, ‘너네 집도 강아지 귀여워’라는 가사를 쓰고 바로 벌스 가사를 이어서 썼어요.
LE: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는 특히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어요.
O: 저는 노리고 만든 게 하나도 없거든요. 그런데 EP를 발매하고 조금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가 릴스에 저를 태그한 거예요. 들어가 보니까 제 노래를 사용한 릴스가 한 400여 개 가까이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지금은 벌써 릴스도 10,000회가 넘었고 유튜브 조회 수도 10,000회가 넘었어요. 더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어요.
LE: 그렇다면 본인에게 [Walkin!]은 어떤 의미인가요?
O: 뻔한 말일 수도 있는데요. 저한테 정말 모든 걸 가져다준 앨범이에요. [Walkin!]을 낸 뒤에 팬이라는 게 처음 생겼고, 누군가가 제 음악을 소비해 주고 사랑해 준다는 기분을 처음 느껴봤어요. 팬분들이 메시지도 많이 보내주셨는데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팬분들과 앞으로도 더 많이 소통하고 싶어요. 그런 만큼 지금의 팬분들과 동료분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저에겐 너무 의미가 깊어요.
LE: 이제 히코 님의 [police]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해요. 일단 EP의 작업 기간은 얼마나 걸렸고, 컨셉은 어떻게 정한 건가요?
H: 앨범을 작업한 기간은 대략 1년 반 정도였던 것 같아요. 제가 앨범을 만들던 와중에 연애를 하고 있었거든요. 한 4년 정도 연애를 했는데요. 그 때 앨범을 만들면서 헤어졌다가 재회를 하고, 이후에는 완전히 끝났고요. 그러다 보니 앨범에 자연스레 저의 연애 이야기가 담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앨범에 제가 보낸 4년 동안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한 곡 한 곡 당시의 추억이 담겨 있어서 신기했어요. 제작 기간이 1년 반이었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이러한 이유들로 제작 기간은 4년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들이 기억이나 지나간 추억들을 담아두려고 하는 습성이 있잖아요. 일기도, 비디오도, 사진도 기억을 붙잡아 놓으려 하는 행위들이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앨범을 만드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비슷한 까닭이더라고요.
제가 작업한 곡을 들으면 그때가 생각나고, 제 추억들과 사람들이 생각나고요. 그래서 저에게는 이 앨범이 남들한테 일기나 사진 같은 게 아닐까, 그러면 도망치는 기억을 붙잡는 앨범의 되자 해서 앨범 이름을 'police'로 짓게 되었어요.
LE: 이번 EP는 앞서 이야기한 솊스포 님과 대부분의 트랙을 작업했잖아요? 그런 만큼 이 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H: 용재(솊스포)는 처음에 제 음악을 듣고 이메일로 음악을 보냈던 2002년생 친구예요. 저는 이메일로 음악이 오면 다 듣고 답장까지 다 하거든요. 왜냐하면 자신한테 엄청 소중한 트랙을 저에게 들려주신 거잖아요. 그런데 용재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어요. 그때 용재 나이가 고 3이었는데 음악 센스가 너무 좋은 거예요. 제가 다음 날 만나자고 해서 저희 집에서 보게 되었어요. 만나 보니 둘이 성격도 잘 맞고 이야기도 잘 통하더라고요.
처음에는 헛소리를 하면서 놀다가 이제 앨범을 같이 하게 됐는데요. 저에게 이메일로 보내줬던 노래를 가지고 앨범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곡이 “bad news”였어요. 처음에는 퀄리티도 낮고, 지금 느낌의 곡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그 곡 작업만 1년 반을 했거든요. 믹스 때도 사운드 소스 때문에 골머리가 아팠고요. 그럴 정도로 EP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곡이고, 진짜 너무 많이 들어서 진절머리가 나는 곡이에요. (웃음) 물론, 그만큼 사랑하는 저의 트랙이기도 하고요.
LE: 두 분이 같이 작업하면서 어떤 시너지를 느꼈나요?
H: 제가 용재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듀서와도 함께 작업을 해봤는데 용재와 작업을 했을 때 느끼는 게 있다면요. 용재는 음악의 포인트를 빠르게 캐치하는 능력이 있어요. 음악 센스도 뛰어나고요. 거기다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 저희의 작업에서 좋은 시너지가 난 거 같아요.
또, 용재는 올드, 빈티지 신스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리얼 드럼 톤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만큼 자기가 변태적으로 느껴질 만큼 먼저 나서서 구현을 하려 하는 친구예요. 물론, 작업을 하면서 당연히 마찰도 있었지만, 이 앨범을 서로 얼마나 소중하게 작업하고 있는지에 대한 방증이라 생각해서 덕분에 저도 에너지를 얻고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LE: 사실 아티스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요. 알앤비, 팝 같은 음악에 가사를 얹어내는 게 쉽지 않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히코 님의 경우는 어떠셨나요?
H: 저도 가사를 한국어로 써 내려가는 게 굉장히 숙제처럼 느껴졌어요. 어 홈 비디오 앨범 들어보면 한글 가사가 아예 없거든요. 그런데 이번 앨범의 경우에는 타이틀곡이나 마지막 트랙처럼 한글 가사가 대체적으로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police]가 한국어 가사에 대한 숙제를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갈 수 있게 만든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가사로 담아낼 내용에 대해서는 어려움이 별로 없었고, 가사로 담아낼 경험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많이 느꼈어요. 제 이야기나 경험이 없었다면 가사 쓰는 게 더 어려웠을 거예요. 요즘에는 울거나 혹은 슬픈 일들, 저의 감정들이 요동칠 만한 사건들이 별로 없거든요. 가슴 아픈 짝사랑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저를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 절실해요. 저는 사랑할 때 저의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LE: “요즘 나는”을 듣고서는 하림 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만큼 좋았던 발라드 트랙이었는데, 염두에 둔 트랙이나 노래가 혹시 있었을까요?
H: 머릿속에 염두에 둔 트랙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요즘 나는”은요. 제가 뭘 계획을 하고 쓴 노래가 아니라 용재가 친 피아노에다 그냥 멜로디를 뱉은 노래였어요. 당시에 제가 헤어진 여자친구한테 편지를 썼는데 그걸 못 보냈거든요. 이런 편지의 내용을 그대로 노래에 담았어요. 실제로 작업할 때도 막 울면서 녹음했어요. 가이드 트랙에 담긴 보컬은 너무 울먹거려서 본 녹음을 다시 했어요.
제가 카테고리로 따지자면 알앤비에 속해 있지만, 사실 가장 많이 듣는 건 발라드예요. 저는 딱히 음악을 가려서 듣지 않거든요. 특히 김연우 2집이나 예전 한국 발라드 트랙을 들어보면요. 지금 발라드와 다르게 엄청 담백하고, 솔직하거든요. 저는 그게 가슴에 더 와닿았고, 어릴 때부터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자라서 발라드 트랙을 써 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이번 기회에 하게 되었고, 저는 앨범에서 “요즘 나는”을 가장 좋아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8TvZI2fzcWI
LE: 히코 님이 많이 들었던 발라드 트랙이나 가수를 짚어 주시면 어떨까요?
H: 저는 어렸을 때 김동률을 많이 들었고 입시 준비할 때도 많이 따라 불렀어요. 특히 김동률의 “Replay”를 굉장히 좋아해요. 김연우의 [연인]은 통째로 좋아하는 앨범이고요. 윤종신의 노래도 MP3 플레이어에 넣고 미술을 하던 당시에 많이 들었고요. 하림의 “출국”도 좋아해요. 그리고 이상순의 음악들, 그분의 팀 베란다 프로젝트의 음악도 정말 많이 들어요.
LE: 그렇다면 “요즘 나는” 같은 발라드 트랙을 이번 EP에 수록한 이유가 있을까요?
H: 앨범을 들어 보시면 “시간이 지나서” 같은 트랙은 알앤비가 기반이 되지만, 조금 더 커머셜하고 현대적으로 푼 트랙이에요. “room 402”나 “for a while”은 돕하고 테크니컬한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트랙이고요. 마지막 트랙에 발라드를 넣었던 이유는 저의 확장성과 다양성을 이번 EP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부분은 아버지한테 영향을 받은 게 있어요. 아버지가 록 밴드와 일본 음악을 되게 좋아하셨거든요. 특히 안전지대라는 밴드를 좋아하셨어요. 아버지가 항상 저한테 “아빠는 타이틀곡도 좋지만 앨범에서 가장 잔잔하고 조용한 노래를 찾아 들어. 그게 가장 보석 같은 곡이야. 그러니 너도 앨범을 만들 때 그렇게 만들렴”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이런 조언이 저한테 자연스럽게 녹아든 거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OhfJJXK4eXU
LE: 이렇게 가정 교육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원 웃음) “시간이 지나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요? 노래를 들으면서 1990년대의 알앤비 트랙에 있던 내레이션 파트가 생각나더라고요.
H: 네. 1990년대의 알앤비에 영감을 받았어요. 그런데 솔리드(Solid) 같은 분들은 정말 멋있기 위해 내레이션 파트를 넣으신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멋있으려고 한 게 아니라 웃기고, 다른 분들이 듣고 피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내레이션을 넣었어요. 아마 제가 나이가 좀 더 있으면 이런 의도가 다른 분들에게 설득되지 않았을 텐데, 아직 젊어서 설득력 있게 웃기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어요.
LE: 너무 웃겼어요. 특히 '아저씨 돼서, 할아버지 돼서' 이런 가사를 읊을 때마다 웃음이 지어지더라고요.
H: 그런데 이 말은 제가 지어낸 게 아니라 실제로 좋아하는 이성분한테 한 말이에요. 당시에 제가 잠깐 좋아했던 이성 분한테 “지금 너랑 잘 안되면 아저씨, 할아버지 돼서 후회할 거 같다”라고 이야기를 했거든요. (전원 웃음) 그랬더니 걔가 그 말을 듣고 너무 어이없어하는 거예요. 결국에는 잘 안됐죠.
이후에 “시간이 지나서”를 작업했는데, 멜로디는 단숨에 나왔는데 가사가 쓸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 재미있는 거 없나? 싶어서 카톡을 들어가 보니 제가 그분에게 보낸 카톡 내용이 있는 거예요. 그걸 복사해서 바로 “시간이 지나서”의 가사로 때려 넣었어요. 그렇게 해서 노래가 탄생되었어요.
LE: 김광진 님의 “편지”에 관한 일화를 현대 버전으로 뒤틀면 이런 느낌일 거 같아요. (전원 웃음)
H: 저는 작업할 때 저에게 보내는 개인 카톡 방에 들어가거든요. 거기 보면 이상한 글이 되게 많아요. 제가 꿈을 꾼 내용이나 했던 말, 평소에 잘 쓰지 않는데 썼던 단어와 문장을 꼭 적어두고 나중에 가사를 써요. 또, 비하인드 이야기가 있는데요. “시간이 지나서”를 발매하고 사람들이 들어주시면서, 곡의 주인공도 듣게 된 거예요.
그래서 연락이 닿았었는데 듣자마자 본인의 이야기인 걸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앨범의 목표이기도 했던 저의 음악으로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뿌듯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지나간 추억일 뿐입니다.
LE: 아름답습니다. (전원 웃음) 그렇다면 히코 님에게 [police]는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가요?
H: 지금 제가 히코란 활동명을 쓰고 있지만, 본명은 이승원이거든요. [police]는 정말 이승원 같은 앨범이었어요. 솔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작업해서 정말 나다운 앨범이 나왔다는 생각을 했어요. 누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들어온 음악들이 있잖아요.
이번 앨범은 혼자 작업하는 앨범이다 보니 제가 듣고 자라고, 그러면서 하고 싶었던 음악을 정해진 기간 속에서 최대한 구현하려 노력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 앨범을 들으면 그때 그 생각이 나고 추억들이 정말 많아요. 무엇보다 저의 소중한 기억들을 담아놓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후회 없는 저의 앨범이에요.
hiko & Otis Lim: 미래
“음악 외에도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준비 중이에요.”
LE: 좋습니다. 이제 두 분에게 마무리 질문을 몇 가지 드릴게요. 일단 오티스 림, 히코 님의 노래를 아직 못 들어 본 힙합엘이 유저에게 곡 하나만 추천한다면요?
O: 저는 “우리 집 강아지 귀여워”를 추천하고 싶어요. 꼭 뮤직비디오랑 같이 보시고, 저희 시엘이도 많이 귀여워해 주세요.
H: 저는 “시간이 지나서”를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노래를 듣는 분들이 지나간 사랑을 한 번 떠올려보면서 피식 웃어 보시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LE: 같이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를 한 명씩 뽑아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H: 저는 너무 많아서 한 명을 뽑는 건 절대 불가능이지만, 그래도 한 명만 꼽아보자면 지소울(G.Soul) 님. 지소울 님 음악을 정말 좋아하고, 언젠가 꼭 작업해 보고 싶어요. 이번에 앨범을 들으시고, 팔로우도 오셔서 엄청 가슴 뛰고 기뻤어요.
O: 저는 나잠 수님. 이번에 나잠 수 님이 [Walkin!]의 전곡을 믹스, 마스터링해 주셨는데요. 뮤지션 대 뮤지션으로서 만나 작업해 보고 싶어요.
LE: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O: 저는 싱글과 EP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고요. 그리고 유튜브를 운영할 예정이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바인을 비롯한 여러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어요. 기대해 주셔도 좋을거 같아요.
H: 저는 음악 작업은 당연히 꾸준히 할 계획이고요 그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영상 콘텐츠들도 계획 중입니다. 일단, 가장 빠른 시일 내에는 싱글로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드릴 거 같아요.
LE: 곧 나올 두 분의 콘텐츠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힙합엘이 유저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O: 힙합엘이 유저 여러분들! 사실 제가 힙합엘이에 제 이야기가 없어서 자주 들어가지는 않는데요. 자주 들어갈 수 있게 제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H: 네. 힙합엘이 유저분들 안녕하세요. 저는 히코라고 합니다. 오늘 저를 처음 알게 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너무 반갑습니다. 귀엽게 많이 봐주시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이야기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LE: 인터뷰 고생하셨습니다.
Editor
INS
시트콤 배우가 되고 싶다는건 진짜 특이하네요ㅋㅋㅋㅋ
알찬 내용 잘 읽었습니다!!
휴 드디어 다읽었다 관심있는 뮤지션의 스토리를 듣는거 너무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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