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부터 2월 중순까지 진행된 힙합엘이의 새로운 프로젝트 <RESET>이 마무리되었다. <RESET>은 ‘음악의 재구성’이라는 키워드를 테마로 다양한 창작자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캠페인으로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힙합엘이는 확고한 음악 세계를 구축한 프로듀서 드레스(dress), 보이콜드(BOYCOLD), 언싱커블(Unsinkable)을 초빙했다. 세 명의 프로듀서는 각자 '리어레인지 프로덕션', '보이스 리믹스', '취미 생활 리믹스' 등 저마다 보유한 노하우를 살려 기존 음악을 '리셋'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그리고 힙합엘이는 각자가 지닌 가치와 신념을 바탕으로 음악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영상에 담아냈다. 그렇다면, 세 명의 프로듀서는 첫 번째 <RESET>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음악을 재구성했을까?
https://youtu.be/96goJAxcTLI
드레스 – 장르를 재구성하다
드레스는 20대 초반, 메이저 음악 회사에서 송캠프, 송세션 시스템을 익히며 스튜디오 앨범의 퀄리티를 깨우친 프로듀서다. 그의 음악은 다수의 보컬, 음악가가 특정 파트를 나누어 부를 것을 고려한 듯한 노래 구조, 그리고 악기, 이펙터 등 다양한 사운드적 장치를 활용한 노래 속 서사가 특징적이다. 이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장르를 뒤섞어 만든 고퀄리티의 ‘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키드밀리(Kid Milli)와 함께한 합작 앨범 [Cliché]는 이런 드레스의 팝에 대한 음악적 지향점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실제로 힙합엘이와의 인터뷰에서 드레스는 키드밀리를 앨범에서 아티스트로서의 의도를 갖고 앨범 작업에 임했음을 밝힌 바 있다.
<RESET>에서 드레스는 ‘리어레인지 프로덕션’, 타입 비트에 담긴 아카펠라를 활용해 타입 비트와 전혀 다른 음악으로 만드는 과정을 선보였다. 일례로 “Challenge”의 경우 칠한 무드의 원곡과 달리 키드 밀리의 랩을 도드라지게 만들기 위해 리듬에 변화를 주고, 후반부에서는 테크노로 장르를 뒤틀었다. “Cliché”는 원곡에 담긴 목소리를 이펙터로 변형하는 건 물론, 가사에 따라 코드와 테마를 변화시키며 곡에 서사를 부여했다. 더 나아가 “Bankroll”의 경우에는 80 bpm의 트랩을 160 bpm의 록으로 탈바꿈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드레스는 영상을 통해 특정 장르와 사운드에 경도되지 않고 자유롭게 경계를 넘어 하나의 완성된 노래를 만들어 보기를 권유했다.
https://youtu.be/OGGSi4JYeUQ
보이콜드 – 목소리를 재구성하다
보이콜드는 식케이(Sik-K), 빈첸(VINXEN), 릴러말즈(Leellamarz) 등과 함께 작업하며 꾸준히 작업물을 선보이고 있는 프로듀서다. 그가 다른 플레이어와 합작 앨범을 발표해 왔다는 점을 통해서 미뤄 짐작할 수도 있을 텐데, 보이콜드는 주로 아티스트와의 대화를 통해 하나의 아이디어를 빌드업하고, 음악 외적 요인을 함께 조율해 나가며 음악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그는 다양한 음악가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노래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많은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렇듯 서로 다른 환경과 배경을 겪은 이들이 대화하고, 합을 맞추고, 조율하는 과정 속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음악이 탄생되는 법이다.
<RESET>에서 보이콜드는 죠지(george), 미란이, 릴러말즈, 그리고 본인의 목소리를 활용해 “Don’t Cry”를 리믹스했다. 보이콜드를 비롯한 아티스트들은 자유롭고 편하게 대화를 나눈 뒤 목소리를 녹음했다. 이후 보이콜드는 죠지의 목소리에서 샘플을 따 와 일종의 메인 키보드 악기처럼 활용했고, 릴러말즈의 조언을 받아 미란이의 목소리에 딜레이를 걸어 노래에 넣었다. 더 나아가 보이콜드는 릴러말즈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해 리듬 파트로도 사용했다. 영상 속 릴러말즈가 말했던 사운드 소스의 활용도와 소스 자체의 중요성도 좋지만, 그만큼이나 보이콜드가 ‘보이스 리믹스’라는 방식을 통해 협업의 재미를 자연스레 일깨운 점을 주목해봐도 좋을 듯하다.
https://youtu.be/9pFTFKVVFwg
언싱커블 – 환경음을 재구성하다
언싱커블(Unsinkable)은 케이팝 밴드 바밍 타이거(Balming Tiger)를 대표하는 프로듀서다. 그는 애드밸류어(ADDVALUER) 시절부터 힙합 기반의 음악뿐만 아니라 LA의 비트 뮤직 씬에 대한 남다른 이해도를 보여주며 실험적인 사운드를 구사해왔다. 이는 언싱커블의 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된 리믹스 트랙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음계가 없는 소리를 쓰는 걸 즐기고, 악기가 아닌 것을 악기처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런 언싱커블의 작업 방식은 마치 일렉트로닉의 원형이 되는 구체 음악, 그리고 음악과 비음악의 구분을 허물어내는 현대의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의 개념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만든다.
<RESET>에서 언싱커블은 공예를 좋아하는 취향을 발휘해 ‘취미 생활 리믹스’를 선보였다. 그는 터프팅 원데이 클래스를 다녀와 러그를 만들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소리를 녹음했고, 이를 토대로 창의력을 십분 발휘해 “Kolo Kolo”를 재구성했다. 특히 청소기 소리를 신시사이저 소리와 흡사하게 만드는 모습, 터프팅 건에 있는 부속품 소리의 저음역을 깎아 퍼커션 소리로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이처럼 언싱커블은 환경음이 지닌 고유의 텍스처를 살려 노래 속 악기의 역할을 하게끔 했다. 이는 굳이 많은 이들이 인식하는 악기와 장비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소리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방증이었다.
https://youtu.be/nxsyEHVCtNw
이렇듯 세 프로듀서는 <RESET> 프로젝트를 통해 장르, 작업방식의 틀, 그리고 비음악과 음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의 창작 세계를 드러냈다. 영상을 보는 이들은 프로듀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해나가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힙합엘이는 향후 <RESET>의 새로운 시즌을 통해 한국의 프로듀서들을 조명하고, 노하우를 공유해 창작자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예정이다. <RESET>의 영상 속 댓글처럼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프로듀싱과 프로듀서, 그리고 창작에 대한 담론을 나누며 듣는 재미를 널리 공유할 수 있길 바라본다.
Editor
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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