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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HYPED: 조 레인(Joe Layne)

title: [회원구입불가]snobbi2021.10.28 21:21추천수 3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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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HYPED:

‘UNHYPED’는 힙합엘이의 언더그라운드 큐레이션 시리즈로, 이 씬 안에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소개한다. 자신만의 위치에서 힘껏 소리를 내고 있지만, 아직 많은 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기회가 없는 그들. 장르, 경력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본 시리즈를 통해 소개될 아티스트들은 몇 년 안에 더욱 큰 주목받을 재능과 가능성을 지녔다. 그런 그들을 미리 발견하고, ‘하이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언하이프’의 상태의 그들이 만들어낸 솔직하고, 대담한 음악이 더욱 큰 울림을 줄지도 모른다.

 

 

 

UNHYPED: Joe Layne

‘UNHYPED’에서 스물여섯 번째로 소개할 아티스트는 조 레인(Joe Layne). 힙합엘이 회원들에게는 비록 그의 이름이 낯설겠지만, 조 레인은 이미 딘(DEAN)의 밴드 활동은 물론 네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탄탄한 커리어를 갖춘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작곡가이자 음악 감독이다. 창모(CHANGMO)가 그의 이름을 샤라웃한 이유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으며, ‘숨은 고수’란 말로 규정하기엔 이미 조 레인은 본인의 것을 만들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나가고 있을 것이다.

 

 

 


 

LE: 일단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조 레인: 힙합엘이 회원분들 안녕하세요. 조 레인이라 불리는 조형주입니다.

 

 

 

 

 

LE: 근황은 어떠신가요? 아무래도 새로운 앨범 작업에 들어가셨을 거 같아요.

 

네. 지금 일단 작업이 되게 많아요. 제 개인 작품도 있지만요. 다른 아티스트와 콜라보하고 있는 곡들도 많아요. 다른 분과 함께 하는 건 크레딧에는 피처링으로 표기될 테지만, 사실은 반씩 작업을 하는 것도 있어요. 또, 많은 분이 저의 개인 활동을 보고 저를 아셨을 거 같은데요. 지금 제가 ‘Joe Layne’이란 이름으로 음악을 하는 건 지금 제가 하는 전체 일의 한 1/4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작곡가, 프로듀서, 공연 음악 감독이나 사운드 엔지니어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LE: 사실 저도 조 레인 님의 이름을 공연 쪽에서 많이 봤거든요.

 

네. 사실 공연 음악이 제가 하는 일의 비중에서 30% 정도를 차지해요. 대부분은 퍼포밍 아트/무용 공연이고, 실험적인 공연이에요. 그런 쪽 음악을 많이 하고요. 그거 외에도 많이 해요. 특정한 회사를 위한 음악은 아니고, 방송이나 영화, 광고에 쓰이는 라이브러리 음악을 많이 작업하거든요. 이런 건 일종의 분산 투자라고 볼 수 있죠. (웃음)

 

 

 

 

 

LE: 그러고 보니 창모 님이 조 레인 님을 SNS에서 샤라웃하기도 하셨는데, 혹시 두 분이 함께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네. 사실 둘이 알게 된 건 올해 초라서, 오래 안 됐어요. 저와 창모는 같이 음악하고, 친하게 지내는 동료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창모랑 저랑은 영향을 받은 인물, ‘리’ 출신이라는 성장 배경, 현재 꽂혀 있는 음악도 그렇고 되게 비슷한 점이 많아요. 어쨌든 음악을 하는 사람끼리 음악을 하려고 만난 만큼, 같이 재미있게 이것저것 많이 하고 있습니다.

 

 

 

 

 

LE: 조금 전에 리 출신을 언급하셨는데요. 사실 조 레인 님이 제주도 출신이신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제주도에는 언제까지 계신 건가요?

 

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서 고3 때까지 있었어요. 2005년에 서울에 와서 2009년까지 살았고요. 2010년에는 영국에 갔고, 2014년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군대를 갔다 왔고요. 2016년부터는 계속 서울에서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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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 Layne: 현재

기준을 잊어버리고, 근본으로 가다 보니까 제가 원하는 게 나오더라고요.

 

 

LE: 어릴 때 흑인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으셨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제주도에서 흑인음악을 접하게 되신 건가요?

 

일단, 제가 살았던 데가 제주도에서도 맨 밑에 있는 시골이었거든요. 그래도 읍내로 가면 비디오 가게가 있었어요. 그래서 다섯 살 때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비디오를 빌려 봤는데,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가 1990년대 초라서, 마이클 잭슨이 “Dangerous”로 활동했거든요.

 

제가 사는 곳이 시골이라서 인터넷 보급이 느린 편이었지만, 형이 부모님을 졸라 컴퓨터를 사서 1999년에 처음 인터넷을 접하게 되었어요. 그 시기에 조PD가 나왔거든요. 형이 조PD를 틀었는데, 저는 노래에서 욕이 나오니까 또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웃음) 또, 같은 해인 1999년에 원타임(1TYM),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 씨비매스(CB MASS) 등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당시에는 힙합이라는 만화책도 나올 만큼 비보잉도 핫했고요. 비보잉도 잠깐 어설프게 했었어요.

 

비슷한 시기쯤에 TV를 켰는데 에미넴(Eminem)이 [The Marshall Mathers LP]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한 거예요. 또, 아웃캐스트(Outkast)의 “Ms. Jackson”이 나왔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음악에 완전히 꽂히게 되었고, 동네 레코드 가게에 찾아가서 위에 언급한 아티스트들 앨범들이랑 투팍(2Pac)의 [Greatest Hits]로 (히트곡들이 묶여 있는) 카세트 테이프를 사고 그랬어요. 이 밖에도 파란색 화면이 뜨던 인터넷에서 그나마 한글로 찾을 수 있는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어요.

 

 

 

 

 

LE: 혹시 제주도에는 힙합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연장이나 클럽 같은 게 있었나요?

 

그때 제주도에 힙합 클럽이 있었어요. 관덕정이라고, 제주도에서도 오래된 문화유산이 있는데요. 거기 건너편 지하에 힙합 클럽이 있었어요. 당시 저는 막 음악을 만들려고 할 때였는데요. 2001년인 중 3때 제 친척 형이 대학을 다니면서 거기서 MC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찾아갔더니 사장 형이 DJ도 하면서 MC를 모아 공연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사장님에게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무대에서 가끔 프리스타일도 하고 그랬어요. 그때 저는 미래에 에미넴이 될 줄 알았어요. 심지어 학교 축제에서 프리스타일로 쌍욕을 했다가, 교장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어요. (전원 웃음)

 

 

https://youtu.be/hTWKbfoikeg

 

 

LE: 그러면 어떻게 악기를 처음 배우게 되신 건가요?

 

그때 컴퓨터에 케이크워크(Cakewalk)랑 쿨 에딧(Cool Edit)을 깔았는데요. 제가 아예 모르니까 뭘 어떻게 못 하겠더라고요. 또, 당시에 방황을 좀 했거든요. 그때 엄마가 “공부는 글렀으니 뭐라도 해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하셔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저는 피아노가 너무 적성이 안 맞아서 못 배우겠더라고요. 그러다 중학교 졸업할 때 즈음에 통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음악의 기본을 알면 힙합 음악을 만들 때 좋을 것 같아서 통기타를 배웠는데요. 고 1때 어느 날 다른 고등학교 다니는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일렉 기타로 너바나(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을 치는 거예요. 저는 앞에서 “이거 뭐야?!” 하고 있었죠. 그때를 계기로 록에 빠져서, 고등학교 때는 쭉 미국의 록 음악을 듣고 그 당시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밴드부에 들어가서 졸업할 때까지 활동하고 그랬죠.

 




 

LE: 대학도 음악 관련 학과를 진학하신 건가요?

 

당시 부모님이 그래도 대학을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태어나서 해본 것 중에서 기타를 제일 빨리 배웠고, 그만큼 제 적성에 맞더라고요. 또, 기타로 대학을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입시 교육을 받고 실용음악과를 들어갔어요. 일단 저의 시작은 이랬고요. 대학에서부터 진짜 흑인음악을 제대로 파게 되었어요.

 

 

https://youtu.be/aXgSHL7efKg

 

 

LE: 사실 학교의 학풍에 따라 실용음악과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다르잖아요. 당시 조 레인 님은 어떻게 흑인음악을 탐구하셨나요?

 

사실 제가 봤을 때 실용음악과에서 교수님들이 가르쳐 주시는 건 흑인음악을 겉핥기, 아는 척만 할 수 있는 정도거든요. 그런데 진짜 운 좋게 당시에 저보다 17살 많은 형님이 동기로 들어왔어요. 그 형님은 이미 음악 활동을 하고 계셨고, 학위를 따러 대학에 오셨거든요. 그런데 그 형님이 (음악적으로) 싹수가 보이는 친구들한테 CD를 구워서 주셨어요. 그 CD에 실용음악과에서 절대 못 배우는 진짜 흑인음악들이 담겨 있었죠.

 

우선은 시크(Chic), 조지 듀크(George Duke) 같은 거랑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이랑 레이 찰스(Ray Charles) 등 방대한 양의 알앤비/소울이 있었거든요. 이거다 싶어서 빠져 듣게 되었죠. 동시에 저는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흑인음악 역사 관련 다큐멘터리를 많이 찾아봤어요. 그러면서 블루스랑 알앤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파악했고요. 거기에 기타도 치니까 델타 블루스(Delta Blues)까지 이르렀죠. 그래서 20대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완전히 블루스의 끝을 파고들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영국 음악에 빠지게 되었는데요. 당시 저는 록 음악을 되게 잘 안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어요. 그러다가 어느 바에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이 나오는데, (음악의) 차원이 너무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전까지 저는 비틀즈(The Beatles), 오아시스(Oasis), 퀸(Queen), 라디오헤드(Radiohead), 레드 제플린을 진심으로 존경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또, 오아시스는 “Wonderwall” 밖에 몰랐는데, 어느 날 오아시스의 앨범을 들었더니 심장이 막 뛰었어요.

 

 

 

 

 

LE: 그러면 영국 유학을 결심한 것도 이런 두근거림 덕분이었던 건가요? (웃음)

 

일단 제가 영국 문화에 특히나 빠져 있었거든요. 당시에 유학을 딱 가려던 찰나였는데, 처음에는 미국 LA를 가고 싶었어요. 흑인음악의 본토에서 현장을 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학비가 너무 비싸고, 집이 여유 있는 편이 아니라서 미국으로 유학을 하러 가는 게 아예 불가능했어요.

 

반면에 영국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 실용 음악과랑 학비가 거의 똑같았어요. 그리고 알바도 할 수 있고, 여러모로 장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영국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 돈을 모으게 되었죠. 물론, 생각한 대로 돈을 모으지는 못했어요. (전원 웃음)

 

 

 

 

 

LE: 조 레인 님이 영국 유학을 하러 가시기 전에 경리단길의 'RUF XXX'와 방배동의 'FOYER', '두리춤터'에서 공연 활동을 하신 거로 아는데요. 그때는 밴드로 활동하신 건가요?

 

제가 밴드를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쭉 했었어요. 당시에는 홍대에 있는 FB라는 공연장에서 많이 공연했고요. 버스킹도 많이 했어요. 그때는 제가 목소리가 안 잡히고, 모든 면에서 많이 부족했던 시기였어요. 그러다가 저희가 광화문 플리마켓에서 공연했는데, 루프 실장 형이 와서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을 하셨어요.

 

루프가 되게 실험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집단이었는데요. 또, 제가 또 영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마침 실장 형이 영국에서 10년 살다 오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여러모로 배울 게 많겠다 싶어서 같이 하게 되었죠. 루프에서 활동할 때가 영국 유학을 하러 가기 1년 전이었거든요. 그러면서 원래 하던 밴드가 자연스럽게 해산이 되었고, 거기서 1년간 100번 넘게 공연을 하면서 되게 많이 배웠죠.

 

 

 

 

 

LE: 여러 가지를 접목시키는 걸 많이 배우셨을 것 같아요.

 

네. 이전까지는 시노그라피(Scenography), 퍼포밍 아트 같은 걸 할 일이 없었는데요. 루프에서 되게 실험적인 걸 많이 했어요. 또, 근처에 하얏트 호텔이 있었는데요. 크리스마스 파티 때 하우스 밴드를 하던 미국 애들이 루프에 놀러 왔거든요. 그래서 같이 잼을 했는데, 그중에서 드럼치는 애가 너무 드럼을 잘 치더라고요.

 

이게 꼭 흑인이라서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미국 흑인 사회에서 흑인음악을 듣고 자란 흑인 애가 나오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마음에 무척 들어서 맨날 잼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그 친구는 다른 나라 가고, 저도 영국을 가게 되었죠. 그렇게 많이 배웠어요.

 

 

 

 

 

LE: 이야기를 들어 보니 조 레인 님은 진짜 차근차근 바닥부터 배워 나가신 거 같아요. 때로는 현자 타임이나 부닥침을 느끼셨을 거 같은데요. 어떠셨나요?

 

너무 많았죠. 애초부터 저는 음악을 정말 잘하고, 성공하고, 훌륭한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는데요. 그게 20대 내내 진짜 신기할 정도로 계속 빠그라졌어요. 음악이 좋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요. 계속 뭔가 안 되고, 걸리는 일이 생기고, 음반을 만들려고 해도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와서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LE: 다시 돌아와서 2010년 가을에 영국 유학을 떠나시게 되는데요. 당시 학교에서 배웠던 게 있다면 무엇이 있었나요?

 

사실 배운 게 없다고는 말을 못 하죠. 많이 배웠죠. 그런데 음악 이론은 이미 그전에 모든 걸 다 공부를 했고, 흑인음악의 흐름도 전부 이해한 상태였어요. 그러다 보니 1년 동안은 배운 게 별로 없고, 솔직히 말하면 학교에 잘 안 갔어요. 그것보다도 저는 영국을 간 게 영국 음악에 엄청나게 빠져 있던 것도 있지만, 동양인이 이 나라에 가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경험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안 해보면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영국을 갈 때 계획한 게, 우선 좋은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제일 높은 학교로 가자. 단, 너무 비싸지 않다는 가정하에 선택한 학교가 제가 다닌 학교였어요. 실용 음악 학교 중에서 제일 역사가 깊은 학교였거든요. 다음에 학교 애들을 물색해서 가장 최고의 연주자를 모아서 다국적 밴드를 꾸리겠다. 물론, 가끔 저의 실력도 보여줬고요. (전원 웃음) 그렇게 밴드를 꾸려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죠.

 

영국에서는 당연히 영국 음악에 대한 걸 많이 배웠는데요. 대중음악의 흐름에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는 코스 과정이 많이 있었어요. 영국의 학자가 보는 흐름과 미국의 학자가 보는 흐름이 좀 다르더라고요. 가장 흥미로웠던 게 일단 브리티시 블루스 붐(British Blues Boom)이었는데요. 그런 걸 영국에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LE: 재미있네요. 사실, 대중음악에서 영국의 기여도를 빼놓으면 안 되긴 하죠.

 

그게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으로 이어진거고, 같은 시기에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도 미국에서 아무도 안 알아줬는데 영국에서 떠 가지고 역수입된 케이스잖아요 또, 영국 흑인 음악도 질감이 되게 달라요.

 

그런데 제가 느낀 건, 영국은 블루스나 재즈 클럽에 가면 진짜 나이지리아인, 가나인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라틴 애들도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 온 친구들이었어요. 

 

영국의 지리적 위치상 유럽이랑 아프리카에서 이민자들이 오기 쉽거든요. 저도 당시 학교의 기타 선생님 중 한 명이 나이지리아 출신의 영국인이었어요. 그런 분이 블루스를 연주하면 아예 느낌이 달라요. 이쪽은 이런 게 있다고 느꼈죠.

 

 

 

 

 

LE: 뭔가 영국 재즈도 그렇고, 영국 쪽 음악은 용광로처럼 여러 문화가 융합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 같아요.

 

그래서 한 번은 자메이카 형들이 운영하고, 레게를 전문으로 다루는 클럽을 다녀왔는데요. 이게 또 미국화된 흑인 음악이랑 다른 느낌을 받아서 되게 재미있었어요. 재즈나 록 같은 경우도 유럽은 미국과 결이 다르다고 느꼈거든요. 그런 걸 유학에서 많이 배웠죠.

 

또 긍정적인 건, 생각보다 연주나 음악의 격차가 심하지 않다는 거였어요. 레전드, 최고 수준의 아티스트를 기준으로 두면 격차가 현격히 크지만, 평균적으로는 격차가 크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영국에서 (나도) 뭔가 되겠다, 가능성이 있겠다고 느꼈고, 다양한 사람들과 공연을 많이 보고 살면서 배운 점이 되게 많아요.

 

 

 

 

 

LE: 안 그래도 영국에서 조 레인 님이 사나이 그룹(Sanai Group)이란 밴드를 결성한 거로 알고 있는데요. 이전의 밴드하고는 어떤 차이점이 있고,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사나이 그룹 같은 경우는 조금 더 멤버들과 같이 프로덕션을 함께 하는 밴드였어요. 원래는 브리티시 록 계열에서 좀 더 블루스를 많이 가미한 음악을 했는데요. 한 번 일렉트릭 하우스 클럽 밴드(Electric House Club Band)로 이름을 바꾸고 2010년대식 영국 모던 록을 구사했어요. 처음에는 런던의 캠든이라고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 같은 동네에서 평일 공연을 섰거든요. 그러다 운 좋게 주말에 공연을 섰는데 분위기가 좋아서 자주 불러주더라고요.

 

그러다가 BBC 인트로듀싱(BBC Introducing)이란 게 있는데요. 밴드가 음악을 업로드하면 지역 네트워크 라디오로 음악을 틀어주거든요. 저희가 싱글 3개를 냈었는데, 저희 싱글 세 장이 다 라디오에서 다 소개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런던 내에서 음악 페스티벌을 할 때 자그마한 무대에 불러주거나 마이다 베일(Maida Vale) 스튜디오 세션을 불러주는 식으로 혜택을 주거든요. 그런데 딱 그때 제가 군대에 갔어요. (웃음)

 

 

 

 

 

LE: 와… 국방부 퀘스트(?)는 상상도 못 했어요.

 

언제까지 안 들어오면, 공항에 들어오자마자 수갑 찬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아직 그때 졸업도 안 했고, 논문을 쓰고 있었거든요. 군대 가기 한 일주일 전에도 저희 노래가 라디오에 또 흘러나왔고요. 그러다 입대를 해서 졸업장도 군대에서 받게 되었죠. 당시에는 정말 화가 났죠. 안 가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는 비자랑 학교 졸업 기간도 다 남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공무원 중에서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 있잖아요. 결국, 그렇게 밴드가 멈췄어요. 하지만, 지금 보면 그게 제 운명이었던 것 같고, 만약에 밴드가 더 잘 됐더라면 지금 저는 여기에 없었겠죠. 어쨌든 군대에서 <쇼미더머니>란 게 있다는 걸 알았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되었죠.

 

 

 

 

 

LE: 사실, 조 레인 님이 입대하시기 전에 영국과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강낙현 감독님이 연출한 공연 프로젝트 <드라이브 스루>에 참여한 거로 알고 있어요.

 

이것도 제가 아까 전 말씀을 드렸던 시노그라피의 일환이었어요. 그 형이 제가 영국에 갔을 때 스페인에서 공연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당시에 저는 형한테 배울 점이 많고, 좋은 경험이 될 거 같아서 프로젝트에 한 번씩 참여했거든요. 그러다가 제가 한국에 오면서 뭔가 엮일 일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렇게 같이 여러 번 일했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특히 음악과 전혀 다른 필드에서 사운드를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좋은 경험이었어요. 보통 제가 만났을 때 대부분 음악 하는 친구들은 어떤 틀에 갇혀 있거든요. 자기 말로는 실험적인 걸 한다고 하는데요. 제가 봤을 때는 같은 틀에 있어요. 해도 되는 게 있고, 해서는 안 되는 게 분명히 있거든요. 힙합 음악에서도 금기시되는 게 있잖아요. 이거 하면 힙합이고, 이거 하지 않으면 힙합이 아니다. 이런 게 있잖아요.

 

예를 들자면요. 제가 연주를 기반으로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밴드를 했을 때도 연주를 할 수 있는 범위가 있거든요. 너무 듣기 싫은, 너무 굉음의 사운드 이런 걸 아무도 안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공연에서는 오히려 그런 연주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는 거죠. 음악을 벗어나서 다른 필드로 가면 그런 틀과 금기가 없어지는 거예요.

 

다 필요 없고, 소리로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만 신경 쓰게 되니까요. 그렇게 제가 음반을 만들 때나, 혹은 대중음악 틀 안에 있는 음악을 만들 때는 하지 못할 것들을 할 수 있었고, 많이 배웠어요. 그런 경험이 제가 지금처럼 음악을 하는 데에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LE: 개인적으로 저는 조 레인 님 앨범이 되게 실험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거는 상대적인 거예요. 제 개인 프로젝트는 저한테 제일 대중적인, 그나마 사람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틀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제가 사운드적으로만 이건 꼭 해야겠다 싶은 것들을 가끔 하고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대부분 음악 하면 떠오르는 범위만을 생각하니까 (제 앨범을 듣고)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요. 제가 보기에는 저 말고도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https://youtu.be/NE14c5mEUdU

 

 

LE: 재밌습니다. 이제 전역을 하시고 나서 딘(DEAN) 님과 함께 밴드를 꾸려서 쇼케이스를 비롯해 네이버 온스테이지(Naver Onstage) 무대까지 서시게 되는데요. 어떻게 함께 하신 건가요?

 

일단 저랑 딘이랑 친한 사이는 절대 아니고요. 지금도 따로 연락하진 않아요. 당시에 딘이 혜성처럼 떴잖아요. 그때 제 지인인 딘의 A&R 형이 제가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 전화가 오더라고요. “네가 와서 기타 세션 한번 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을 받았죠. 처음에는 탐탁지 않았죠. 일단 제가 뒤에서 하는 걸 안 좋아하기도 했고, 당시에는 딘이 터지기 전 단계였거든요.

 

물론, 같이 작업하는 건 좋았어요. 음악이 너무 프레시하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그냥 기타만 세션하는 건 싫다고 해서 어떡할까 했거든요. 그래서 어차피 밴드 편곡도 해야 하고, 밴드 구성도 해야 하니까요. 편곡이랑 전체적인 걸 맡아서 하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저는 좋다고 했죠. 그런데 혁이(딘)도 탐탁지 않을 상황이었죠. 이름도 한 번 듣지 못한 사람이 자기 밴드에 참가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웃음)

 

어쨌든 저는 딘의 밴드를 밴드가 구성이 되고, 공연들이 잘 진행되고, 어느 정도 잘 융화가 되면 뒤로 빠진 뒤 가요 쪽에 전념하려고 했거든요. 그러다가 온스테이지랑 [130 mood : TRBL] 앨범 쇼케이스 하고 나서 얼마 뒤에 잘렸어요.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회사를 통해서 통보를 받으니 당시에는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딘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고, 딘의 행보를 응원해요. 그리고 당시 딘의 온스테이지랑 저의 온스테이지 무대를 비교해 보시면, 제 무대에서 기타 치는 친구 빼고는 다 똑같은 친구들인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LE: 또, 이분들이 조 레인 님의 두 번째 앨범에 참여하신 분들이잖아요. 이야기를 들으니 밴드 마스터 역할을 담당하신 거 같은데. 어떤 역할을 하신 거고, 연주자들은 어떻게 선정하신 건가요?

 

네. 딱 그런 역할을 했죠. 저는 프로덕션 기반의 곡을 밴드 포맷으로 라이브를 했을 때 어떤 식으로 곡이 진행됐으면 좋겠는지, 편곡 방향이랑 밴드원 구성 및 기타 연주 등을 맡았었어요.

 

일단 드러머 서주영을 먼저 소개 받았고요. 그리고 그 친구를 통해서 베이시스트, 건반 치는 친구를 따로 소개 받았어요. 그 친구들이 노아스 아크(Noah's Ark)라는 트리오로 활동을 하고 있고, 수민(SUMIN)의 밴드 및 수많은 훌륭한 뮤지션이랑 많은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에요. 
 

퍼커션 치는 곽진석은 따로 소개 받았는데, 진석이도 수많은 아티스트들 퍼커셔니스트로 활동하던 친구고 요즘은 LSV 유니온(LSV UNION)이라는 영상 프로덕션을 하고 있어요.

 

 

 

 

 

LE: 사실 조 레인 님이 2016년 딘 님의 밴드 활동 이후 2019년에 첫 정규 앨범을 내시기까지. 활동의 텀이 있는데요. 이때 가요 작업을 많이 하신 건가요?

 

네. 2016-2017년에 가요 작업이랑 기타 여러 일들 많이 하면서 돈을 좀 모았어요. 그렇게 돈을 벌고 제 걸 시작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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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안 그래도 조 레인 님의 1집 [Yesterdays]를 듣고 ‘아, 이거 되게 제작비가 많이 드셨겠다’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퍼즐이 맞춰지네요.

 

첫 정규 앨범에만 삼천 좀 넘게 썼어요. 쫄딱 망했죠. 앨범 녹음을 2017년 9월부터 11월까지 런던에서 했는데, 원래 계획이었던 2018년 초에 활동 시작하려던 게 점점 뒤로 미뤄졌어요.

 

저랑 개인적으로 친한 애들도 똑같이 이야기하는 부분인데요. 다들 첫 정규 앨범을 만드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도 첫 앨범을 만들 때 뭔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매우 컸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꾸 앨범 작업이 미뤄지면서 만드는 데에 3년이 걸렸죠.

 

 

 

 

 

 

LE: 제가 알기로는 군 복무 시절부터 첫 앨범을 구상하신 거로 알고 있어요.

 

사실, 2013년부터 구상하던 앨범이었거든요. 그렇게 따지면 5년이 넘게 걸린 거죠. 그러다가 군대에 갔고, 군대에서 구상하고, 나오면 바로 작업을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또, 밥을 벌어 먹고살아야 하니 못하다가 작업을 2017년에 끝내려고 했는데요. 결과적으로 능력 부족이었죠. 그러다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2019년 초에 앨범을 내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때 이후로는 음반을 만들 때 절대 심혈을 안 기울여요. 지금은 제가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하니까 상대적으로 더 걸릴 수밖에 없는데요. 송라이팅이랑 프로덕션, 녹음만 했을 때 절대 이틀 이상, 아무리 많아도 삼일 이상 안 써요.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지더라고요. 두 번째 정규 앨범부터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제가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든 걸 마지막 마무리만 신경 써서 내는 식으로 발매했어요.

 

그렇게 작업을 하니까 음악이 너무 잘 되더라고요. 저는 제가 만나는 애들한테도 이렇게 이야기해요. 뭘 하려는 건지 알고, 다 알겠는데 제발 명반을 만들겠다는 개소리하지 말아라. (전원 웃음) 자꾸 네가 남들보다 대단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실력에서 할 수 있는 거를 그냥 즐기면서 하라고요. 이게 다 1집을 만들면서 얻은 교훈이었죠.

 

 

 

 

 

 

LE: 그래도 첫 정규 앨범을 작업하시면서 많이 배웠을 거 같아요.

 

많이 배웠죠. 첫 앨범에 참여한 밴드 연주자들은 대부분 예전에 저랑 같이 밴드 하던 친구들이에요. 건반 연주자 적합한 친구가 없어서 제 친구한테 소개를 해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소개를 받은 친구가 조 프라이스(Joe Price)라는 친구였는데요. 

 

보니까 장난 아니더라고요. 그 친구가 당시에 네이오(NAO)랑 제이미 컬럼(Jamie Cullum)이랑 작업을 했거든요. 실제로도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이 해보자고 했어요. 그 앨범은 되게 프로페셔널하게 친구들하고 회의하고, 제작자로서 제대로 작업한 앨범이에요. 작업하면서 조 프라이스라는 친구에게 배운 것이 좀 많고, 걔 말고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조금씩 배운 게 많아요. 

 

또, 제가 밴드 라이브 레코딩 장소로 선택한 랙 스튜디오(RAK Studios)에서 하우스 엔지니어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보니까 엔지니어 중에서 벡(Beck)이랑 믹 재거(Mick Jagger) 앨범을 작업한 형이 있더라고요. 제가 벡을 너무 좋아해서, 이 형이랑 꼭 작업해야겠다고 해서 날짜도 맞추고 작업을 했죠. 그 형한테도 되게 많이 배웠어요. 

 

 

 

 

 

 

LE: 옆에서 물어보기도 하셨던 건가요?

 

물어보기도 했지만, 옆에서 보고 배웠던 게 많았어요. 특히 세계적인 레전드랑 일하는 사람의 태도가 이런 거란 걸 배웠어요. 일단 그 형은 말 없이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요. 제가 생각한 걸 이미 자기가 하고 있고요. 사실 저는 아무것도 아닌 그냥 동양에서 온 어린 클라이언트잖아요. 그런데도 제가 무슨 말을 하면 바로 되더라고요. 이래서 역시… (전원 웃음) 이런 걸 많이 배웠죠.

 

그래서 저는 만약에 그때로 돌아가서 삼천만 원 아껴서 작업실하고 장비 살래? 아니면 앨범 작업할래? 물으면 다시 똑같은 걸 했을 것 같아요. 그 정도로 되게 많이 배웠어요. 이런 경험이 다음부터 역대급 가성비와 최소한의 제작비로 앨범을 작업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거 같아요. 왜냐면 그때 돈을 썼었기 때문에, 다 필요 없다는 걸 깨달은 거죠. (전원 웃음)

 

 

 

 

 

 

LE: 알기로는 아날로그 테이프에 녹음하셨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비용이 만만치 않잖아요.

 

네. 엄청 비싸죠. 스튜디오 비용은 사실 우리나라랑 별로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스튜디오에 실제 가지고 있는 컬렉션들이랑, 룸 어쿠스틱이랑, 엔지니어의 레벨은 천지 차이예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영국에서 제일 프로듀서들이 많이 쓰는 스튜디오가 이제 에비 로드(Abbey Road), 에어 스튜디오(AIR Studios), 스트롱룸(Strongroom), 처치 스튜디오(The Church Studio). 그리고 제가 썼던 랙 스튜디오까지 다섯 군데거든요.

 

이 정도인데 랙 스튜디오가 제일 싸요.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라디오헤드(Radiohead)의 [The Bends]도 거기에서 녹음했고요. 저도 무조건 거기에서 녹음하겠다고 해서 간 거죠. 테이프 레코딩을 제대로 한 게 그때가 처음이기도 하고요. 빌보드 최정상급 아티스트들을 녹음하는 엔지니어는 어떻게 하나. 이런 걸 보고 많이 배웠어요. 마이크 어떻게 놓고, 세팅 어떻게 하는지, 이런 걸요. 그래서 ‘아! 별거 없구나!’란 걸 알았죠. (전원 웃음)

 

 

 

 

 

 

LE: 정말 큰 깨달음을 얻으셨군요. (웃음)

 

자세와 태도, 커뮤니케이션 말고는 똑같아요.

 

 

https://youtu.be/gl1TQY3Ghak

 

 

 

LE: 그렇다면 첫 정규 앨범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뭔가 본인의 지난날을 정리한다는 느낌이실 거 같아요.

 

20대 때 제가 쓴 수천 곡 중에서 절대 버릴 수 없었던 곡을 모아 앨범으로 발매했어요. 또, 저한테 가장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에 대한 오마주도 있었고요. 첫 앨범에는 저의 뿌리 중에서도 큰 부분을 먼저 짚어 담자는 의도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당시 제 주변에 있던 사람들 100%가 반대했어요. 왜 이런 거 내냐, 왜 트렌드에 안 맞고 유행 아닌 걸 하냐고요.

 

물론, 사실 음악 산업이나 실리를 따지면 그 조언이 맞잖아요. 그래도 저는 저의 디스코그래피를 생각했을 때 더 중요한 것을 제 마음대로 한 거죠. 또, 제가 이런 걸 다 설명해줄 수 없으니 그냥 내버렸죠. 그렇게 되면 마음속에 있는, 제가 하고 싶은 걸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응어리가 많이 해소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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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두 번째 앨범 [Vibration]은 조금 전에 말씀해 주셨던, 딘의 밴드 멤버로 있었던 드럼에 서주영 님, 퍼커션에 곽진석 님, 베이스에 피제이노트레블(PJNOTREBLE), 키보드에 김동민 님과 함께하신 작품이잖아요.

 

제가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적 방향성을 좀 못 잡았어요. 일단은 조 레인으로 포크와 빈티지한 걸 위주로 하고, 노아스 아크 친구들과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로 디안젤로(D’Angelo) 밴드 비슷한 알앤비/소울을 하자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그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되었어요.

 

그러다 제가 1집을 딱 만들고, 두 번째 앨범을 만들 때 사이키델릭 음악에 엄청나게 꽂혀 있었어요. 그런데 1960년대 음악으로 돌아가니까, 사이키델릭을 제 음악에 섞는 방법을 알겠더라고요. 1960년대는 재즈나 소울, 훵크, 록을 구분할 수 있는 지점이 종이 한 장 차이거든요. 

 

악기 구성(Instrumentation)이 똑같고, 레코딩 테크닉도 거의 비슷해요. 재즈나 록, 소울 등 다른 장르 간 차이점이 너무 희미하고요. 이거다 싶어서, 두 번째 정규 앨범에 사이키델릭한 요소를 넣게 되었죠. 

 

어차피 저번 앨범에서 밴드 사운드를 했으니, 이번 앨범에는 1970년대 사운드를 해보자. 그런데 그 시대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해볼 수 있는 것도 시도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제가 스케줄 없을 때 보통 하루에 한 곡 정도 만들거든요. 

 

그렇게 작업을 하다가 색깔 맞는 트랙들을 모았고요. 앞서 말한 친구들에게 “야 이번 앨범은 너희랑 같이 할게, 같이 하자!” 해서 만든 게 두 번째 앨범이었어요. [Vibration]은 제가 작업하는 데 시간이 제일 적게 걸린 앨범 같아요.

 

 

 

 

 

 

LE: 아무래도 [Vibration]을 만들 때는 이전부터 호흡을 맞춘 밴드 분들과 함께 한 만큼 편하게 작업을 하셨을 거 같아요.

 

편하게 했죠. 그전에도 저희끼리 작업을 꽤 했거든요. 제가 아이디어를 제공해서 간단한 데모를 보내면, 그냥 애들이 자유롭게 연주를 하는 식이었어요. 사실 제 데모가 다른 분들에 비해 그냥 이대로 발매해도 되는 정도긴 해요. 그래도 저는 이건 그냥 데모니까 엑센트랑 흐름만 캐치를 하고, 나머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요.

 

제가 연주자 출신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는 이렇게 해야 하고,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디렉션을 내리는 걸 안 좋아해요. 그냥 계속 시도해 보다가, 딱 꽂히는 이거다 싶은 걸 가져다 쓰는 느낌으로 작업을 했어요. (당시 함께 했던) 친구들하고는 앞으로도 작업할 예정이에요. 원래는 [In My Mind]도 같이 할까 했지만, 마음을 바꿔서 혼자 하겠다고 애들한테 말하고 혼자 작업을 했죠.

 

 

https://youtu.be/KAf434cVm_0

 

 

 

LE: 또, 작업기를 보니까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식으로 적혀 있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그렇지만요. 특히 한국 사람들이 장르로 구분하는 게 심한 것 같아요. 결국, 뿌리는 다 하나인데 말이죠. 당시엔 저도 장르 음악을 깊숙이 파다 보니까 ‘알앤비는 이래야 한다, 블루스에서 이게 빠지면 블루스가 아니다.’ 이런 식의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기준을 잊어버리고, 근본으로 가다 보니까 제가 원하는 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장르로 나누는 게 다 필요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예를 들면, 우리가 네오 소울(Neo Soul)이라고 부르는 음악이 있잖아요. 그런데 디안젤로를 비롯해서 네오 소울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다 똑같이 이런 말을 하거든요. 우리는 우리 음악을 네오 소울이라고 부른 적도 없고, 네오 소울이란 말을 좋아하지도 않는다고요.

 

 

 

 

 

 

LE: 맞아요. 본래 네오 소울은 음악 레이블의 A&R이자 마케터가 아티스트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던 용어잖아요.

 

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카테고리를 분류해서 듣게 되면 편하잖아요. 사실, 소울, 훵크(Funk), 로큰롤도 그런 식으로 붙여진 이름이고, 로큰롤도 그냥 리듬이랑 사운드가 센 알앤비일 뿐이고요. 어쨌든 앨범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이나 깨달음이 유기적으로 일어나서 뭔가 된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Vibration]을 만들 때 온갖 거를 섞어서 만들어버리면, 다음 앨범부터는 어떤 스타일이나 장르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이게 이후에 발표하는 [In My Mind]까지 이어지는 생각이었어요.

 

 

 

 

 

 

LE: 또, 두 번째 앨범 소개 글을 보면 포지티브 에너지, 자기 수양에 대해 쓰여 있는데요. 이것들이 1집을 내면서 깨달았던 점일까요?

 

두 번째 앨범을 만들면서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어요. 즐기면서 하고, 증명하려고 하지 않고, 명반. 이런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그냥 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죠. (전원 웃음) 또, 개인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긴 했는데요. 무슨 장인 정신 이런 헛소리를 안 하고, 합리화를 하지 않고, 그냥 놀듯이 하는 자세로 작업을 하니까 모든 게 편해지더라고요.

 

기대치를 좀 낮추고,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서 빨리빨리 내자. 그러면 순환이 계속되거든요. 그때부터 영감을 딱 받았어요. 이런 워크플로우를 익히고, 발전한 게 [In My Mind]라는 앨범이었죠. 그 앨범도 편하게 만든 앨범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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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렇다면 [In My Mind]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 앨범도 이전과 작업 방식이 많이 달라지신 거 같아요.

 

저는 일단 작업 방식을 계속 바꾸는 편이에요. 최대 6개월, 짧으면 진짜 몇 주 단위로도 바꾸거든요. 저는 계속 새로운 걸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어떤 방식이나 스타일을 차용했는데, 그게 잘 먹히고 잘 맞는다는 이유로 거기에 갇히는 걸 되게 안 좋아해요. 제가 딘을 응원하는 이유도 그거거든요. 딘이 초기에 발매했던 비슷한 스타일로 마음먹고 더 많은 돈을 벌려면 진짜 벌 수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고,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게 느껴졌어요. 물론 앨범이 너무 안 나오긴 하지만요.

 

저는 그게 너무 멋있는 거예요. 계속 새로운 걸 하려 하고, 주변에 같이 작업하는 분들도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게 계속 음악에서 느껴지잖아요. 그런 아티스트들이 너무 좋더라고요. 저도 계속 시도하려고 하는 아티스트고, 비슷한 아티스트를 응원해요. 만약에 새로운 걸 시도했는데, 결과물이 구리다고 해도 저는 그거 자체를 되게 응원해요. 그래서 저는 칸예 웨스트(Kanye West)랑 차일디시 감비노(Childish Gambino) 같은 아티스트를 되게 좋아해요.

 

 

https://youtu.be/AKI-0kvhFb4

 

 

 

LE: 말씀하신 아티스트를 들으니 조 레인 님의 음악적 지향점을 알 것 같아요.

 

사실 [In My Mind]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계속 해왔던 스타일의 음악을 딱 그 시점에 냈을 뿐이고, 새로운 걸 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Joe Layne’으로 저를 아는 사람들이 봤을 때는 1집과 2집을 그렇게 내고, 이런 걸 냈으니까 새로운 걸 시도한 것처럼 보이잖아요. 하지만 그 앨범은 제가 이제까지 해온 거에서도 일부분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는 한 번쯤 되게 듣기 좋고, 그루브는 흑인음악의 근본까지 가서 디안젤로의 그것, 그리고 뮤지크 소울차일드(Musiq Souchild) 류의 음악을 섞어서 한번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항상 기회가 없었다가, 이때 이런 걸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앨범을 만들게 되었어요.

 

[In My Mind]가 8월에 나왔는데요. 원래는 한 6월 중순쯤에 한 열 트랙 정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듣기엔 너무 뻔한 거예요. 물론, 이건 제 기준이고 아마 사람들은 더 좋아했을 거예요. 그대로 나왔으면 되게 대중적이고, 뮤지크 소울차일드의 히트곡 같은 것들이 몇 개 더 있었겠죠. 근데 못 참겠더라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앨범의 절반만 남기고 새로운 곡들을 작업했어요.

 

그때 새로운 걸 작업하면서 넣게 된 곡이 “Forget It All!”, “Go With the Flow”, “And Time Goes By”, “In My Mind” 였어요. 이 곡들은 개인적으로 알앤비/소울, 네오 소울, 얼터너티브 알앤비하면 딱 떠올릴 법한 그런 틀을 좀 깨는 트랙인 거 같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트랙을 넣길 잘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마 대중적인 걸 좋아하는 리스너들 입장에서는 애초에 있었던 트랙리스트를 좋아하셨을 거 같아요.

 

 

https://youtu.be/Qo0w_ZwBtNE

 

 

 

LE: 개인적으로 “Because This Is How We Live”에 담긴 테이프 리와인드 소리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느 날 되게 기분 좋은 트랙을 만들고 싶어서 작업한 트랙이거든요. 처음에는 그런 약간 알앤비/소울, 가스펠 같은 요소가 없었고, 오히려 본 이베어(Bon Iver) 같은 느낌의 곡이었어요. 그러다 이런 쪽으로 빼고 싶었고, 첫 트랙이니까 샘플링한 걸 넣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작비를 0원으로 책정을 했기 때문에 샘플 클리어는 할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스플라이스(Splice) 샘플을 쓰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찾다 보니, 예전 여자친구가 자기 영어 공부하려고 쓴 카세트 테이프가 집에 있더라고요. 안에 윤선생 영어 교실 테이프가 있었는데, 그걸 막 리와인드하고, 스피드 조절해서 튼 걸 마이크로 녹음을 해서 썼어요. 그리고 제가 지금 샘플링 계열의 음악을 한 미발표곡이 있는데요. 또, 이 곡은 스플라이스 샘플이 들어가 있어요. 그걸 또 샘플링해서 섞어 그런 소리를 만들었어요.

 

 

https://youtu.be/xv7ZQR-TnNg

 

 

 

LE: 앨범을 내시면서 출연하셨던 네이버 온스테이지 무대도 너무 멋있었어요. 저는 특히 “Heaven”의 편곡 버전이 너무 좋더라고요.

 

사실은 온스테이지 훨씬 전에 다른 공연 섭외가 들어왔을 때, 라이브로 해보고 싶은 곡으로 이게 떠올랐어요. 그런데 그 공연은 무산이 되었어요. 그러다 온스테이지에 섭외가 되었고, “Heaven”을 선보이면 좋겠다 싶었죠. 원래부터 노래 뒤쪽에 사이키델릭 소울의 느낌을 편곡에 많이 넣고 싶었어요.

 

제가 밴드 애들한테는 데모를 만들어서 딱 보내줬죠. 노래는 데모와 거의 비슷했지만요. 디테일한 다이나믹은 없는 상태에서 마무리를 밴드 애들이랑 완성했어요. 함께하는 밴드 애들이 워낙 실력이 너무 뛰어나고, 창의적이거든요. 그래서 그 온스테이지 버전은 밴드 애들하고 같이 만들었다고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LE: 사실, 조 레인 님의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과 “Because This Is How We Live” 라이브 영상에서는 ‘도덕쌤’으로 불리는 강원우 님이 출연해 화제가 되었는데요. 강원우 님은 생기 스튜디오에서 아시게 된 건가요?

 

네. 사실 저의 라이브를 촬영해 준 LSV 유니온이라는 영상 프로덕션이 퍼커션을 치는 곽진석이란 친구가 하는 거거든요. 그 친구가 원우랑 친해서 오랫동안 밴드도 했고요. 또, 원우가 생기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라이브 영상을 찍게 되면서 원우를 알게 되었고, 그날 플랫샵(Flatshop)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는 누기(Noogi)도 만났어요.

 

그런데 제가 나갈 때 동시에 온스테이지에서 10주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거든요. 그 때문에 당시에 온스테이지에 올라온 아티스트가 다 묻혔어요. 저도 그냥 나가면 묻힐 거 같으니, 강원우를 이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전원 웃음) 진짜 원우가 나오는 순간 조회 수가 올라갈 거란 걸 감지하고 함께 하게 되었죠.

 

 

https://youtu.be/q-cepjDdgOc

 

 

 

LE: 노림수가 정확히 먹힌 거 같아요. (웃음) [In My Mind] 수록곡을 하나 짚어본다면요. 개인적으로 “And Time Goes By”를 듣고 정말 반했거든요.

 

저도 앨범에서 최애곡이예요. 그 곡을 만드는 걸 시작해서 믹싱까지 딱 24시간 걸렸어요. 그때 제가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앨범을 작업하다 제주도에 다녀왔거든요. 그런데 타이밍이 맞았던 게, 조금 전에 말씀드린 드러머 주영이랑 누기가 있는 무리가 제주도를 갔더라고요. 그렇게 제주도에 있는 해수욕장에서 만나게 되었고, 저는 이미 수영을 한 뒤라 앉아서 놀고 있었거든요. 그때 갑자기 뭐가 떠올라서 그 자리에서 메모해 놓았어요.

 

그리고 서울에 올라온 날 밤에 트랙을 만들고요. 자고 일어나서 프리스타일로 송라이팅을 했거든요. 제가 조 레인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한 이후로 아예 곡 전체를 프리스타일로 작업한 게 처음이었어요. 그전까지는 중간중간 프리스타일로 가사를 바꾸고, 멜로디를 바꾼 적은 있었지만요. 거기에다 시간도 24시간밖에 안 들였는데, 결과물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런 과정을 작업 중간중간마다 차용했고요. [DREAM] 앨범의 70% 정도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 봤는데, 저는 프리스타일로 만드는 방식이 되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 노래가 저한테 그런 방법을 깨닫게 해 준 만큼 되게 소중한 곡이기도 하죠. 좀 더 길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거 같긴 하지만요. (웃음) 그래서 나중에는 파트 투도 만들어 볼까 생각 중이에요. 노래가 차일디쉬 감비노의 “Redbone” 느낌이 나듯이, 길이도 비슷하게 해볼까 싶어요.

 

 

 

 

 

 

LE: [In My Mind]가 정말 지금의 조 레인 님에게 여러모로 좋은 영향을 끼친 거 같아요.

 

네. 어떻게 보면 [In My Mind]가 좋은 기점으로 작용을 했죠. 그 앨범을 딱 내고 나서부터 같이 작업하자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졌고요. 음악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음악 산업에 일하시거나 기획자분들에게 연락도 오면서 새로운 인맥과 기회가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저는 여기에서 스테레오타입이 생기기 싫었어요. 원래 제가 지금 이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은 [In My Mind]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서 터뜨려 버리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제일 안 하려고 하는 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DREAM]은 저를 [In My Mind]로만 알았던 분들에게 뒤통수를 날리는 앨범이죠. (전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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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렇다면 네 번째 앨범 [DREAM]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DREAM]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요. 제가 처음 랩을 하고, 비트를 만들면서 음악을 시작했을 때. 한 20여 년 전의 저로 돌아가서 그때 하고 싶었던 것들의 기억과 감정을 최대한 끌어내는 거였어요. 제가 이제까지 해왔던 것들보다 다소 유치해 보이거나 좀 더 일차원적인 요소가 있다고 해도, 그냥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NIRVANA”와 “MAGIC”을 비롯해 올해 발표한 모든 곡은 이런 생각의 일환으로 만든 작업물이었어요. 물론, 두 곡은 원래 앨범 수록곡이었는데 중간 10초, 15초가 마음에 안 들어서 앨범에서 뺐지만요. 사실 (아티스트가) 매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자기의 꿈을 이루는 거잖아요. 그런 만큼 저도 어렸을 때의 꿈, 초심을 이 시점에서 기억해 두면 좋을 거 같았고, 지금 아니면 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또, 지금이 이런 앨범을 발표하기 좋은 시점이고, [In My Mind]와 비슷한 음악을 기대했던 사람들의 뒤통수를 때리기도 딱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했어요. (전원 웃음) 그리고 저는 저의 디스코그래피를 봤을 때 항상 록이랑 사이키델릭적인 요소를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록, 사이키델릭, 그리고 힙합의 요소를 뒤섞어 만든 작품이에요.

 

 

 

 

 

 

LE: 이번 앨범의 타이틀과 트랙 이름은 다 대문자로 기재되어 있더라고요. 혹시 ‘이 녀석들!’ 하고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있던 건가요? (전원 웃음)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데 뭔가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LE: “NIRVANA”와 “MAGIC” 외에도 앨범에서 빠진 곡들이 있는 거 같은데, 특별히 이유가 있을까요?

 

들으시는 분들이 어떻게 느끼셨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저의 앨범 단위의 결과물은 트랙 수가 현저히 적은 대신에 완성도가 높고, 앨범을 들었을 때 서사가 강하게 느껴지는 편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이번 앨범도 그렇게 나온 거 같아요.

 

사실 완성도도 높고, 훌륭한 곡이 몇 개 만들어져 있었는데요. 제가 그냥 앨범에서 뺐어요. 곡의 완성도가 높다고 해서, 곡이 앨범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건 아니거든요. 저의 시간과 능력 부족도 한몫 했지만요.

 

 

 

 

 

 

LE: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을 들을 때 음악의 연결성도 있지만, 뭔가 음악적인 서사가 느껴졌어요. 이게 구체적인 건 아니고, 약간 정신적인 느낌이었는데요. 의도한 바가 있을까요?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을 처음 시작했던 당시에 만들고자 했던 걸 만드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 당시의 기준을 지금 기준이랑 100% 맞출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이나 칸예 웨스트처럼 누구든 내 앨범, 내 음악을 들었을 때에만 받을 수 있는 느낌을 주고자 되게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어요.

 

저는 사람들이 20여 분 정도 되는 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을 때의 경험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일종의 트립(Trip)인 거죠. 그런데 그걸 굳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들었을 때는 ‘이거 뭐야?’ 이렇게 느낄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사실 [DREAM]은 장르를 굳이 따지면 사이키델릭이에요.

 

 

 

https://youtu.be/nhZ1cYCyw8Y

 

 

LE: 이전에는 조 레인 님이 앨범을 발표하실 때마다 작업기가 공개되었는데, [DREAM]의 경우에는 그러지 않으셨더라고요. 그런 만큼 이번 인터뷰에 [DREAM]의 작업기를 담고 싶어요. “DREAM”부터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DREAM”은 어느 날 일어나서 떠오른 곡이에요. 자주 그러는 편인데, 저는 그냥 후렴구가 통째로 머릿속에 딱 쓰이거든요. 그래서 이 후렴구를 까먹으면 안 되겠다 해서 그대로 녹음해 놓고 발전시켜 만든 곡이죠.

 

아까 전에 말씀드린 이야기처럼, 앨범은 이 앨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이게 일반적으로 우리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고, 굿이나 최면, 병에 걸리거나 꿈을 꾸거나 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스피리추얼(Spritual)한 거예요. 실제로 제가 그런 경험이 많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걸 어떻게 앨범의 첫 트랙으로 만들지를 고민했는데요. 호불호가 많이 갈리겠지만, 미니멀한데 신비스러운 걸 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만든 게 “DREAM”인 거죠. 이 트랙은 가사를 미리 라이팅을 한 거지만, 말이 라이팅이지 거의 프리스타일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써내려간 노래에요.

 

악기는 드럼, 베이스, 기타가 들어가는데요. 주 악기는 구쟁이라는 악기예요. 예전에 로직(Logic) 안에 있는 루프를 듣다가 쟁이라는 악기를 알게 되었는데요. 쟁이 뭐지, 하고 찾아보니까 가야금이 쟁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악기란 걸 알게 되었어요. 왠지 가야금보다 소리도 좋아서 끌리던 차라 노래에 넣게 되었죠.

 

 

 

 

 

 

LE: 가사도 말씀하신 영적인 이야기와 맞닿은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프리스타일로 녹음한 부분을 제외한 가사는 제가 지난 1년간 언어, 문화, 음악의 기원, 다양한 과학과 역사들을 공부하면서 배우게 된 것들, 그리고 제가 실제로 경험하고 느낀것들의 종합체라고 보시면 될 거예요.

 

이번 앨범 속에서 저의 가사들을 보시면 ‘In The Zone’, ‘Into The Zone’이나 ‘Flow’ 같은 표현이 자주 나올 거예요. ‘Flow State’는 한국어로 표현하면 무의식, 무아(無我) 상태를 이야기하거든요. 이 앨범 전부가 무의식의 경계선, 시간이나 자아의 감지가 아예 없는 무아의 상태에서 만들어진 거에요. 믿으실진 모르겠지만요. (웃음)

 

 

https://youtu.be/S-aSIoJ4o0U?list=PLObD2f24lUzotAmEYfpwjF2q6nkhcMszR

 

 

 

LE: “WITHIN YOU”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세요.

 

“WITHIN YOU”가 처음으로 만든 트랙이에요. 이 노래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무의식 상태에서 슥 만들었고, 이번 앨범의 신호탄이 된 트랙이었어요. 여태까지 제가 했던 거랑 바이브랑 모든 게 다른 노래기도 하고요.

 

물론, 노래가 아무래도 촌스러운 면은 있긴 해요. 저는 노래가 중고음역대로 갈 때 세련되게 가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요. 이 노래는 그냥 투박하게 갔어요. 가사도 네가 원하는 모든 건 네 안에 있다는 식으로 썼고요.
 

 

https://youtu.be/K_GJEcfORTU?list=PLObD2f24lUzotAmEYfpwjF2q6nkhcMszR

 

 

 

LE: “REALISE”도 너무 재밌는 트랙이었어요.

 

“REALISE”도 거의 3/4 이상을 프리스타일로 작업한 트랙이에요. 심지어 트랙도 프리스타일로 작업했어요. 핸드폰에 녹음한 비트박스에다 드럼을 넣었고, 일본 악기 중에 다이코라는 (우리나라의 대고 같은) 북이 있는데 그걸 넣었어요. 거기에 멜로디랑 가사를 전부 프리스타일로 녹음했고요. 심지어 코드도 제이콥 콜리어(Jacob Collier)처럼 생각하지 않고 보컬 음 하나하나를 즉흥적으로 쌓아가면서 만들었고요.

 

베이스도 일렉트릭 베이스나 가상악기로는 제가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없을 거 같아서 그냥 입으로 녹음했고요. 그걸 이펙팅을 엄청나게 해 놔서 신스 베이스 같은 소리를 만들었어요. 다양한 이펙트 효과도 많이 넣었고요. 덕분에 “REALISE”가 앨범에서 제일 사이키델릭한 곡인 거 같아요.

 

원래는 이 곡도 그렇고, 앨범 대부분 곡을 심오하고, 엄청나게 소름이 끼치는 느낌으로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만들다 보니까 사람들이 아예 못 받아들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 그래도 멜로디는 넣어주자” (전원 웃음) 해서 만들어진 곡이고,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이에요.

 

 

https://youtu.be/t8lAJBv8goU?list=PLObD2f24lUzotAmEYfpwjF2q6nkhcMszR

 

 

 

LE: “HIGHER”는 힙합과 록을 잘 융합시킨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는 클래식 힙합과 록의 좋은 점을 잘 섞어서 이번 앨범의 중심 사운드로 잡고 싶었거든요. 이런 걸 이제까지 해낸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힙합 아티스트 중에 록 사운드를 잘 표방한 예도 있고, 록 밴드 중에서 힙합을 한 예도 있지만, 이걸 완벽하게 해낸 건 없었어요. 저는 그 정도에서 끝내고 싶지 않고, 그거 이상으로 하고 싶었거든요.

 

일단 드럼은 클래식한 붐뱁 스타일로 가되, 타격감은 좀 더 록 정도로 가고요. 그래서 록의 가장 기초가 되는 백비트(Backbeat)의 느낌이 딱 들게. 나머지 악기들은 2000년대 초반 얼터너티브 록에서 나올 법한 사운드로 갔고요. 그렇다고 트랙에 랩을 너무 해버리면 억지로 하는 거 같아서 플로우나 라임은 넣지만, 일종의 싱잉 랩 느낌으로 풀어놓았어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그냥 들으면 록 음악인데, 좀 더 리드미컬한 음악이라고 느끼실 거 같아요.

 

생각해보면 모든 곡이 조금 전에 말씀드린 이야기와 연계되어 있어요. 약간 신들린 사람처럼, 저세상과 이세상의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하는 거예요. 원래는 후렴구에 “HIGHER”라는 문구를 넣고 싶지 않았어요. 이 문구가 들어간 유명한 노래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딱히 대체할 게 없어 넣게 되었죠. (전원 웃음)

 

 

https://youtu.be/x_Q881MPUfU?list=PLObD2f24lUzotAmEYfpwjF2q6nkhcMszR

 

 

 

LE: “EUREKA”는 아마 칸예 웨스트의 노래를 떠올릴 분들이 많을 거 같아요.

 

일단 “EUREKA”는 원래 퍼커션으로만 이뤄진 트랙이었어요. 주 악기는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쓰는 북을 잘라 구성했고요. 바로 전트랙 “HIGHER”가 끝나고 나서 갑자기 템포가 빨라지면서 확 나오는 느낌을 주려고 했는데요. 여기에다가 어쿠스틱 드럼 킷을 넣고 랩을 넣어 보니깐요. 이대로 가면 사람들이 나를 미쳤다고 생각할 거 같다고 해서 “아, 그래도 멜로디는 넣어주자” 하고 넣게 되었죠. (전원 웃음)

 

또, 오토튠을 켜 놓고 녹음을 한 뒤 기타를 넣게 되었는데요. 아마 곡을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칸예 웨스트의 “Black Skinhead”에서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많이 가져왔어요. 그런데 록 음악이나 다른 얼터너티브 음악을 많이 들어 보신 분들은 이런 스타일이 칸예가 처음 시작한 게 아니란 걸 다 아실 거예요.

 

그래서 “EUREKA”는 칸예 웨스트가 했던 방식에서 좋아하는 걸 가져오고, 이전의 많은 사람이 비슷한 걸 시도한 음악에서 좋아하는 걸 가져와서 제 식대로 만든 트랙이에요. 특히 보컬 면에서 많은 시도를 했어요. 정말 낯 뜨거운 시도를 많이 했거든요. 이를테면 소리 지르는 거 말이죠. 그렇게 만들어야 다른 게 나올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런 소리 역시 즉석에서 녹음했어요.

 

 

https://youtu.be/Tt8w_32j6b0?list=PLObD2f24lUzotAmEYfpwjF2q6nkhcMszR

 

 

 

LE: 개인적으로 저는 이번 앨범에서 “RISE”가 최애 트랙이었어요.

 

저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에요. 사실 앨범에 그런 곡을 넣을 생각이 없었어요. 이번 앨범 작업이 한 2주 정도 걸렸거든요. 앨범의 절반 정도는 아주 오래전에 해 놓은 트랙들이 있었고, 송라이팅 같은 게 2주 걸렸거든요. 그리고 “RISE”는 마감 열흘전 쯤 시점에서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곡이었어요.

 

“EUREKA”가 끝났을 때 뒤이어 뭔가 수분 가득한 사운드가 나오면서, 갑자기 템포가 급다운되고 타임 시그니처가 바뀌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작업을 했는데요. 그날 밤에 세네 시간 작업을 해서 끝냈고, 나온 트랙이 마음에 무척 들더라고요. 특히 기타 같은 부분이 말이죠.

 

그리고 앨범의 한 곡 정도는 전 앨범과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디안젤로 같은 그루브가 나와주면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RISE”를 만들었고, 이건 일단 반드시 앨범에 넣자고 생각을 해서 앨범에 넣게 되었죠. 사실 제가 송라이팅을요... (웃음)

 

정확히는 무슨 요일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요. 마지막 자료 넘기기 며칠 전에 네 곡을 썼거든요. 하루라는 시간 동안 노래를 네 개 쓴 거예요. 그중에 하나가 “RISE”였고, “FOREVER”도 같은 날에 만들어진 트랙이었어요. 가사나 보컬도 보면 꼭 들어가야 하는 거 빼고는 대부분의 표현은 프리스타일로 한 거예요.

 

진짜 “RISE”는 모든 면에서 음악적으로 정말 매우 만족스러웠던 작업이었어요. 기존 형식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걸 시도하기도 했고요. 특히 이번 작업을 통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소리를 마음껏 질러서 앞으로는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전원 웃음) 

 

 

 

 

 

 

LE: 재밌어요. 사실 이런 작업 방식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 스피리추얼스라 부르는 음악과도 일맥상통한 것 같아요.

 

맞아요. 일단 저는 미리 멜로디랑 가사를 다 정해 놓고 그대로 퍼포먼스를 하는 작업 방식에 질린 거 같아요. 그것보다 큰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은 상황에서, 자기가 느끼는 걸 그대로 표현하는 게 좀 더 진실한 표현 방식에 가깝다 생각을 해요.

 

진짜 근본적으로 보면 재즈도 그렇고, 사이키델릭도 그렇고, 프로그레시브 록도 그렇고요. 안 그런 장르가 없었거든요. 아티스트나 연주자가 완전 흥에 젖어가지고 연주나 가창을 즉흥적으로 하는 요소가 노래에 들어가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라이브를 꼭 봐야 한다는 말을 하게 된 거고요.

 

저는 음반에도 그런 요소가 있는 게 나은 거 같고, 지금 시점에서는 확실히 그런 게 가장 좋은 거 같아요. 요즘 릴 베이비(Lil Baby)가 되게 핫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걔가 최근까지 발표한 노래 대부분을 프리스타일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수긍이 가더라고요. 

 

사람들이 릴 베이비를 좋아하는 이유도 프리스타일로 만든 작업물에서 뭔가 묘하고 새로운 느낌에 중독성을 느끼는 거 같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이런 걸 앨범에서 많이 녹여내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래서 앨범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부터 최대한 프리스타일로 많이 녹음했던 거 같아요. 물론 가사를 쓸 시간이 부족했던 이유도 있지만요. (전원 웃음)

 

 

https://youtu.be/noJE4Nb_3SE?list=PLObD2f24lUzotAmEYfpwjF2q6nkhcMszR

 

 

 

LE: 마지막 곡 “FOREVER”는 정말 앨범의 마지막 트랙 같아서 좋았던 거 같아요.

 

저도 마지막은 마지막처럼 끝나는 느낌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영화를 봐도 마지막이 찜찜하면 정말 싫어해요. 이번 앨범은 아무래도 주가 된 음악도 힙합이다 보니, 뭔가 샘플링한 느낌의 곡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어요.

 

저는 스플라이스를 들어가서 종종 사두는 편이거든요. 스플라이스는 샘플링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은 트랙을 만들 때, 샘플 클리어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어서 유용하거든요. 그렇게 사둔 샘플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코드 진행이 있어서 얘로 하기로 마음을 먹고 작업을 시작했죠.
 
거기에 멜로트론, 플루트, 기타랑 베이스를 추가하고요. 비트는 진짜 완전 클래식 힙합 스타일로 했고요. 얼터너티브 록에서 나올 법한 터치 감을 좀 줬어요. 원래는 노래를 보컬로 좀 더 채워 넣으려 했는데요. 마지막까지 너무 꽉꽉 채워 넣으면 부담스러울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에는 가사와 멜로디도 반복되는 식으로 공간을 비워 놓고, 음악이 끝나는 느낌이 들게끔 하였죠.

 

제가 앨범 단위의 결과물을 만들 때 자주 쓰는 트릭이 있는데요. 앨범을 만들 때 항상 겹치는 가사랑 멜로디가 곡마다 한두 개씩은 무조건 있거든요. 그게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앨범으로서 하나의 유기체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거든요. 그래서 노래가 끝나고 다시 첫 곡으로 돌아갈 때, 뭔가 연결이 되는 느낌을 주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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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Chapter: Joe Layne

“정의가 안 되는 완벽히 자유로운 아티스트이고 싶어요.

 

 

LE: 그렇게 만들어진 이번 앨범은 어느 정도로 만족하시나요?

 

아쉬운 부분은 당연히 있죠. 그래도 제가 원하는 대로 앨범의 전체적인 흐름이랑 느낌이 나와서 마지막 자료를 유통사에 보내는 날은 진짜 행복했고, 너무 만족했어요. [In My Mind]를 넘길 때는 ‘조금 행복한데?’ 이런 감정을 느꼈는데요. 이번 앨범은 ‘나는 완성됐다!’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여기서 완성됐다는 표현은, 제가 되고 싶은 아티스트가 되었다는 거였어요. [In My Mind] 때는 어떤 장르,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언제, 어디서, 뭘 가지고서라도 나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DREAM]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발전된 느낌을 받았고요. 

 

그런데 요즘은 앨범을 발매한 지 조금 되었는데 그런 생각도 안 들어요. (전원 웃음) 그래도 완성도나 깊이 자체는 제가 만든 것 중에서 가장 높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제가 좀 더 커리어나 레거시가 쌓였을 때는 [DREAM]이 제일 주목을 많이 받게 될 앨범 같아요. 느낌이나 가사나 전체적으로 만족하는 앨범이에요.

 

트랙 수가 적은 건 좀 아쉬워요. 원래는 아홉 곡으로 끝내고 싶었거든요. 앨범에 수록된 일곱 곡은 제가 생각하던 100에서 99.9까지 간 곡인데, 나머지는 그 정도까지 못 간 것 같아서 앨범에 빼 버리게 되었죠.

 

 

 

 

 

LE: 남은 곡들은 나중에 공개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공개는 하려고 하는데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2022년에 저는 최소 일곱 트랙이 수록된 앨범을 아무리 못해도 두 장 내려고 하거든요. 그 앨범에 수록되거나 싱글, 혹은 콜라보 형식으로 나올 거 같아요.

 

 

 

 

 

LE: 기대 많이 하겠습니다. (웃음) 이제 마무리 질문 몇 개가 남았는데요. 조 레인 님이 그리고 있는 앞으로의 행보는 무엇인가요?

 

저는 어떤 틀이나 형태, 스타일, 정의가 안 되는 완벽히 자유로운 아티스트이고 싶어요. 그게 제가 원했던 거고, 실제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 앞으로의 제가 해 나갈 것도 그럴 거예요. 굳이 예를 들면 데이빗 보위(David Bowie) 부류의 사람들? 다음의 행보가 예측이 안 되고, 계속 새로운 걸 하고, 새로운 걸 만드는 사람. 저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편안함을 주기보다도,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고,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활동을 이어갈 거 같아요.

 

 

 

 

 

LE: 아직 조 레인 님의 음악이 낯선 힙합엘이 회원 분들에게 본인의 어떤 앨범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음. 우선 [In My Mind]부터 들으세요. 1번 트랙을 들으면 2번 트랙을 안 들을 수가 없고, 2번 트랙을 들으면 3번 트랙을 안 들어볼 수 없는 앨범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DREAM]을 안 들을 수가 없을 거예요. (전원 웃음)

 

 

 

 

 

LE: 언젠가는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혹시 있을까요? 오늘 이야기를 들어 보니깐 왠지 칸예 웨스트일 거 같아요.

 

(칸예 웨스트와는) 그냥 무조건 작업할 거예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3년을 목표로 잡고 있어요. 이 밖에도 퍼렐(Pharrell), 벡, 테임 임팔라(Tame Impala), 앤더슨팩(Anderson .Paak), 차일디시 감비노. 저는 이런 사람들이 지금 크리에이티브의 정점을 찍고 있을 때 작업을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미 작업하고 있는 것도 많고, 또 연결되고 있는 분들이 많아서 스포를 하고 싶지는 않네요.

 

 

 

 

 

LE: 지면에는 담지 못하겠지만, 아까 전에 이야기해 주신 것만 들어도 되게 재미있는 작업물이 많이 나올 거 같네요.

 

네. 아마 2021년 말이나 내년 중? 제 이름을 달고 나오든, 콜라보 형태로 발표되든, 아니면 제가 피처링으로 있을 수도 있고요. 어쨌든 힙합엘이 회원 분 혹은 힙합 리스너 분들에게도 익숙한 아티스트들과의 작업물이 나올 거라서 제 이름을 자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LE: 곧 국내 게시판에 조 레인 님의 이름이 언급되기를 바라봅니다. (웃음) 음악 외에도 또 다른 활동 계획은 없을까요?

 

계획은 너무 많죠. 저는 이미 10년, 20년 계획이 있거든요. 그렇게 맞춰서 가기보다도,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흐름에 맞추는 건데요. 5년 뒤에는 제가 하는 일에서 음악이 20% 비중 정도만 차지할 거 같아요. 음악을 덜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음악 외에도 제가 하려는 게 많고, 이미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음악으로는 일단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거고, 1년 안에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을 목표로 두고 있어요. 안 되면 그 다음 연도에 하면 되는데요. 될 거 같아요. 어쨌든 확실한 건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을 계속 갈 겁니다.

 

 

 

 

 

LE: 인터뷰 고생 많으셨습니다.

 

 

 


CREDIT

Editor

INS & snobbi

 

신고
댓글 4
  • 10.28 23:16

    저도 창모 추천으로 알았는데 인터뷰로 어떤 아티스트인지 많이 알아가네요!

  • 10.29 00:03

    딘 관련 부분 전말이 궁금하네....

  • 11.3 21:24

    잘 읽었습니다 언하이프 인터뷰중 제일 길었던거 같네요 ㅋㅋㅋ

  • 11.20 14:52

    아 창모 피처링에서 참 좋았었는데...제주도 분이셨구나 ..

     

    관덕정 얘기 보고 디게 반가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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