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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력의 이야기

title: Kendrick Lamar (4)Alonso20002024.05.10 11:56조회 수 229추천수 4댓글 1

대체적으로 볼 때, 문화예술적 결과물의 목적은 이용자의 설득에 있다. 기술과 기교에 기반한 논리적 접근이건, 언어와 연기를 통한 감정적 접근이건 상관 없이, 얼마나 넓은 이들을 얼마나 깊게 설득시키냐에 따라서 작품의 성패가 판가름나는 것이다. 이는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로고스'와 '파토스'로 정의 내린 바와도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넓이'와 '깊이'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넓이'는 물론 대중성의 일이다. 이를 판단하는 것은 꽤나 쉬운 일이다. 관객의 수, 앨범의 판매량, 수익과 이득, 구독자의 수 등 정량적인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깊이'의 판단은 조금더 복잡하다. 얼마나 장르의 특징을 만족하는가, 얼마나 서사의 얼개가 촘촘한가, 얼마나 표현이 정교한가의 판단은 이용자의 주관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신뢰도 있는, 즉 '에토스'를 갖춘 화자의 발화에 따른 영향력은 더욱 이 '깊이'의 판단을 어렵게 한다. 가령 내가 별로라고 생각한 영화라도 이동진, 박평식 같은 유수의 명사들이 찬사를 보낸다면, 나는 내 자신의 판단력을 돌아보고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음악의 경우도 그렇다. RYM에서, 또 메타크리틱에서 몇 점을 받았다, 또 리드머가 몇점을 줬다의 이야기는 뚜렷한 주관이 없다면 우리가 작품을 판단하는데 영향을 미치기 쉽다. 이렇듯 어느 작품의 깊이를 판단하는 일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소위 '명작', '명반'이라는 칭호가 따라붙는 작품들은 대개는 이 넓이와 깊이를 두루 만족하는, 소위 '부피'가 큰 작품들이다.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를 모두 완벽히 충족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떠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다 보면 자연스레 넓이는 좁아지기가 쉽다. 소위 장르 문학, 장르 음악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특히나, 힙합은 외래 문화인데다, 욕망에 기반한 자기 긍정과 비판 등의 장르 특유의 테마가한국 고유의 정서와 맞부딫히는 경우가 많다보니, 상술된 부피를 확보하기 더욱 힘들다. 생각해보자, 어느덧 이립을 바라보는 한국 힙합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또 얼마나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부피를 만족시켰는가. 또한, 부피를 만족시켰다 쳐도, 에토스를 잃어 그대로 사그라들고 만 작품과 작가들은 또 얼마나 될까. 대개는 넓게 가려다 얕아졌고, 깊게 가려다 좁아지는 폐단이 반복되었다. 이 얇음에 대한 배척이 이 장르를 더욱 좁게 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이 좁은 넓이가 각 구성원들의 에토스의 부재로 인하여 조금 더 위축되었고, 그 결과 작은 말 몇 마디, 트랙 몇개에 장르씬 전체가 흔들리는 작금의 촌극이 빚어진 것이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는다. '깊이를 유지하며 넓이를 넓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사실 모든 대중을 완벽히 만족시킨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특히나 '깊이'라는 정성적인 요소가 개입되는 문제인 만큼, 누군가에게는 설득력이 있는 말이 다른 이들에게는 설득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자명하다. 결과적으로는 각 개인의 진정성, 즉 에토스로 접근하는 것이 빠를 텐데, 이마저도 그간 플레이어 각자의 어이없는, 때로는 해괴하기까지 한 행보들로 인하여 지난 몇년간 크게 훼손되었다. 아마도, 이 진정성들이 회복되는 데는 꽤 오랜 시일이 걸릴 것 같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꽤나 오랜 기간 이 장르가 뿌리를 내리며 '로컬라이징'에 대한 연구와 고민의 데이터가 상당히 축적되었고, 그만큼 해결책에 대한 힌트도 완전히 늦게 찾을 것 같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개중에는 창모, 비와이를 위시한 슈퍼스타들도 있고, 딥플로우, 쿤디판다 등 허리를 굳건히 지키는 이들도 있다. 특히나 올해들어 유독 활발해진 고참들의 활약은 신예들이 힙합을 어떻게 재해석해서 보여줄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것들만이 유일한 해답은 아닐것이다. 아직 서술형 답안의 작성을 위해 플레이어들의 분투가 반복되고 있고, 그 채점은 시대와 역사의 몫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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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title: Kendrick Lamar (4)Alonso2000글쓴이
    5.10 11:57

    며칠 전에 썼다가 묻혔던 글 끌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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