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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이오공)

Melo2022.05.18 21:56추천수 13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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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은 언뜻만 보면 키치하기 그지없지만, 생각해 보면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는 뽕이란 말을 ‘뽕끼’라는 워딩을 통해 비하적인 의미로, 혹은 뭔가에 깊게 몰입한 상태를 빗댄 말로 사용한다. 프로듀서 250은 어떻게 보면 입체적인 단어인 이 ‘뽕’을 무려 7년 동안 찾아 헤맸다.

 

250의 첫 정규 앨범 [뽕]은 비스츠앤네이티브스(Beasts And Natives Alike, BANA)에서 발매될 앨범으로 전부터 장르 팬의 이목을 끌어왔다. 마침내 세상에 공개된 [뽕]은 그런 장르 팬들의 뒤통수를 때릴 만한 사운드로 채워진 앨범이었는데, 커뮤니티는 오히려 앞서 언급한 ‘뽕’의 확장된 의미처럼 앨범 자체에 깊게 빠진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힙합엘이가 ‘뽕’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로 [뽕]을 발표한 250을 합정의 LP 바 철스뮤직에서 만나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LE: 일단 힙합엘이 회원분들에게 간단한 인사 부탁드릴게요.

 

250: 일단 직접 찾아와 인터뷰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한편으로 이번 인터뷰가 힙합엘이 회원분들이 보시기에는 접점이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과의 인터뷰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그분들에게 너무 생뚱맞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LE: 혹시 힙합엘이에서 [뽕]에 대한 반응도 보셨나요?

 

앨범 발매 이후 인터넷을 거의 들어가지 못하고 있어요. 실제로 앨범 활동을 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그냥 인터넷에 에너지 뺏기는 게 힘들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또, 사실 요즘 NBA 보느라 정신 없어서 거기에 남는 시간을 계속 할애하고 있어요. (전원 웃음)

 

 

 

 

 

LE: 온라인으로 앨범 반응은 미처 보지 못하셨지만, 한정판 CD가 2,000장 예약 판매되었다는 소식은 들으셨을 거 같은데요. 본인은 앨범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연락을 받았을 때 많이 놀랐죠. 사실 앨범을 판매할 때 오래 만든 만큼 천 단위 판매량은 넘었으면 좋겠단 바람은 있었죠. 그런데 한정판으로 앨범을 발매하면 안 될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예약 판매량이 2,000장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이 놀랐죠.

 

 

 

 

 

LE: 혹시 앨범을 바이닐로 발매할 계획도 있으신가요?

 

현재 제가 (앨범과 관련된 마케팅) 기획을 하고 있는 부분은 없어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바이닐 발매에 대한 욕심은 있죠. 생각하시는 분에 따라서 앨범이라 하면 CD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요. 이렇게 바이닐이란 매체에 담겼을 때 좀 더 물리적으로 크고 소중하게 느껴지잖아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고, 앨범 자켓도 크게 나오고요. 그런 만큼 제 앨범이 바이닐 크기로 나오면 (앨범 자켓이) 거의 실제 제 얼굴 크기만 할 거 같은데요. 그걸 보면 진짜 기분이 참 묘할 거 같아요.

 

 

 

 

 

LE: 이따 자세한 이야기를 한번 나눠보도록 하죠. 또, 사실 한정판 CD와 음원 사이트는 각각 마스터링 엔지니어분이 다르잖아요. 250님 본인은 두 앨범이 사운드적으로 어떤 변별력이 있다고 느끼시나요?

 

프랑스 버전을 듣다가 일본 버전을 들으면요. 어떤 소스가 잘 안 들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작은 퍼커션 소리 같은 게 계속 튀어나오기도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두 앨범이 사운드적으로 변별력이 있어요. 저는 끝까지 고민했던 게요. 이 앨범이 댄스 음악이잖아요. 그런 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춤을 추고 싶게 만들지, 아니면 그냥 사운드가 시원하게 사람을 때려서 춤을 추고 싶게 만들지를 계속 고민했거든요. 결국에는 앨범이 한정판과 음원 사이트 두 버전으로 나오게 되었죠. 그러면서 앨범에 대한 마지막 미련 같은 게 다 사라졌어요. 

 

 

 

 

 

LE: 마스터링도 마스터링이지만, 사실 음악 커뮤니티에서는 나이트클럽 비슷한 전단지로 앨범을 홍보해서 화제가 되었거든요.

 

사실 저희 회사가 앨범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저는 전단지로 앨범을 홍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어요. 그러다 저는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누가 그냥 자체적으로 만드신 줄 알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전단지를 할머님들께서 나눠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전원 웃음)

 

 

https://youtu.be/N4_m5mv0xO0

 

 

LE: <뽕을 찾아서>를 보면 이번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교댄스를 배우시는 모습도 얼핏 나오더라고요. 그런 만큼 ‘뽕’을 찾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장소, 혹은 사실 같은 게 혹시 또 있을까요?

 

콜라텍의 존재는 알고 있었어요. 콜라텍에서 그런 음악에 맞춰 사교 댄스를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요. 댄스 교습소에서 콜라텍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체계적이란 사실은 그때 알았어요. 우선 사교댄스를 배우시는 분들은 교습소에서만 춤을 배우시는 게 아니라 어디에서 춤을 추기 위해 배우시는 거잖아요.

 

또, 사교댄스는 춤을 막 추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루틴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교습소에서 루틴을 배우고, 그분들을 버스에 태워서 콜라텍으로 가는 과정까지 서로 연결되어 있더라고요. 어느 교습소는 어느 콜라텍이랑 연계가 되어 있고요. 일종의 카르텔이라고 해야 하나요? (전원 웃음) 그런 건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죠.

 

 

 

 

 

LE: 재미있네요. 그러면 새롭게 알게 된 뽕 음악과 관련된 씬 같은 것도 있을까요?

 

사실 앨범 만들면서 뽕짝이라는 음악을 본격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말이죠. 사람이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그 이후에 길에서 길고양이들이 보이는 것처럼, 저 역시 뽕짝이 사방에서 들리는 경험을 했어요. 이전까지는 뽕짝은 들으면서도 듣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 음악이었거든요. 그런데 의식적으로 뽕짝을 듣고, ‘이거 뽕짝이네’를 한 번 느끼고 나니까요. 뽕짝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음악이란 사실을 깨달았어요.

 

제가 뽕짝 음악을 만들다가 뽕짝에서 벗어나고, 좀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안양천에 가거나 동네 산책을 잠시 했었는데요. 그럴 때 걸으면서 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USB를 꽂는 라디오를 목에 걸고 뽕짝을 들으시면서 지나가거나 저 멀리서 자전거를 타면서도 뽕짝을 들으시더라고요. 이렇게 실제로는 뽕짝이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곳에서, 너무나 많이 들리는 음악인 셈이죠. 요즘도 가끔 ‘어디에 가면 뽕짝 음악을 들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요. 제 생각에는 그냥 귀만 열고 있다면 당장 한강만 가도 생각보다 뽕짝을 많이 들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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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재미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뽕]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앞서서요. 250 님의 개인사와 음악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싶네요. 250 님의 아버님이 음악을 매우 좋아하셨다고 하던데요. 음악을 처음 들은 것도 아버님의 영향이 컸나요?

 

제가 맨 처음 음악을 들은 건요. 어렸을 때 집에 아버지가 들여놓은 전축이 있었거든요. 또, 당시에는 오디오 장비를 사면 점검할 때 이런 걸 틀어보라면서 샘플 디스크 같은 걸 줬어요. 그중에 신해철 2집 [MYSELF]가 있었어요. 저한테는 [MYSELF]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져본 앨범이었어요. 당시에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는데요. 혼자 있으면 무섭잖아요.

 

그래서 집에 아무도 없고 하면 온종일 [MYSELF]를 틀어놨어요. 아마 횟수로 치면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이 [MYSELF] 같아요. 거의 2~3년 정도를 매일 틀어놨거든요. 그런데 바이닐은 너무 많이 들으면 튀어요. 나중에는 튀는 지점까지 다 외워서 따라 부를 정도가 되었었죠.

 

 

 

 

 

LE: 신해철의 [MYSELF]가 250 님의 인생 앨범이군요.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음악 중에서 고상한 발라드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아버지는 발라드보다는 산울림을 많이 좋아하셨어요. 당시 아버지는 이를테면 최성수의 “풀잎사랑”처럼 그냥 발랄하고 해피한 노래들보다 또 다른 감성이 느껴지는 음악을 좋아하셨던 거 같아요. 그중에서 특히 산울림을 많이 좋아하셔서 차에서 많이 들었었죠. 그런데 고속도로만 가면 꼭 박스에서 이박사 테이프를 꺼내서 틀곤 하셨어요. (전원 웃음)

 

 

 

 

 

LE: 또, 학교와 집이 멀어서 한두 시간씩 통학하면서 음악을 되게 많이 듣기도 하셨다고요. 그때는 주로 어떤 음악을 들으셨나요?

 

아마 제가 중학교 1~2학년 때였을 거예요. 그 무렵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를 한 직후였고요. “Come Back Home”이니, 사이프레스 힐(Cypress Hill)이니 그럴 때였어요. 동네 레코드 가게에 가면 한구석에 한글로 사이프레스 힐, 투팍(2Pac)이라고 적힌 앨범이 서서히 들어오던 때였고요. 그리고 퍼프 대디(Puff Daddy)가 “I’ll Be Missing You”로 엄청 팝스타처럼 되었을 때였어요. 그때부터 사이프레스 힐이나 투팍, 퍼프 대디 같은 힙합 아티스트들의 앨범과 나우(NOW) 같은 컴필레이션 앨범을 듣기 시작했어요.

 

 

 

 

 

LE: 힙합을 들으면서는 어떤 생각이나 상상을 많이 하셨나요?

 

당시에 음악을 들을 때 가령 투팍이 누구인지 알고 듣는 게 아니었어요. 그냥 레코드 가게 한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힙합 섹션이 있고요. 거기에 들어온 음악들이 대충 마음에 들었으니 일단 앨범을 사서 듣는 거였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투팍을 듣게 된 건데, 제가 또 영어를 잘하지는 못하니까 가사를 알아듣지는 못하고, 목소리를 들으면서 뭐라고 하는지 내용을 상상하는 거죠. 노래마다 목소리를 들으면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겠고, 또 노래에 따라서 사랑 이야기를 하는지 안 하는지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대충 느껴지고 그런 걸 상상했어요.

 

 

 

 

 

LE: 본인이 상상했던 거랑 나중에 실제로 그 아티스트를 제대로 알게 됐을 때 서로 잘 맞아떨어졌나요?

 

투팍은 분명히 맞았고요. 제이지(JAY-Z)도 그랬던 거 같아요. 제이지는 그냥 들었을 때, 목소리만큼은 이 사람이 제일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면서 가사도 뭔가 되게 세련되고 멋있는 걸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트도 좋았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지-니어스(JEEN-YUHS)>를 보니까요. 당시 제이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거의 신처럼 너무 대단한 존재였더라고요. 

 

 

 

 

 

LE: 레코드 가게도 가게지만, 250 님이 음악을 들을 당시에는 한국에서도 팝 음악을 많이 틀어주는 라디오가 있었잖아요. 그런 만큼 즐겨 들으셨던 음악 라디오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저는 <신해철의 FM 음악도시>. 아마 <신해철의 FM 음악도시>에서 나중에 <유희열의 FM  음악도시>가 됐을 거예요. 이름은 계속 유지가 되고 시간대가 바뀌었던 거 같아요. 어쨌든 저는 주로 <FM 음악도시>를 즐겨 들으면서 음악을 접했고요.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 무렵부터는 라디오를 잘 안 들었어요.

 

 

 

 

 

LE: 레코드 가게와 라디오에서 주로 음악을 들으셨겠지만, 종류를 뽕으로 한정하면 아마 아버님의 차에서 들을 때가 많았겠죠?

 

네, 저는 어떤 용도가 있는 음악에 대한 환상이 아직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때 들었던 뽕짝은 정말 구체적인 용도가 있는 음악이란 생각을 처음 들게 했던 거 같아요. 왜냐하면 뽕짝은 메들리로 되어 있고, 웬만하면 한 시간 동안 노래가 안 끊기고 계속 가거든요. 노래가 나오다가 멈추면 사람이 순간적으로 칠해지게 되잖아요. 그런데 뽕짝 메들리는 그럴 틈을 아예 안 주고 계속 달리게 만드는 거죠. 그런 만큼 뽕짝은 정말 듣는 사람과 만든 사람의 의도가 일치하는 음악이다 싶었어요. 이런 개념이 차에서 뽕짝을 들으면서 머릿속에 생긴 거 같아요.

 

 

https://youtu.be/dy-m2IB0YO8

 

 

LE: 아버님의 “고속도로 운전할 때 이런 걸 들어야 해!”라는 말이 뇌리에 남았던 게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그렇죠. 아버님은 평상시에는 산울림을 들으셨는데, 고속도로만 가면 이박사를 들으셨거든요. 둘은 너무 다르잖아요. 그런데 당시에 저는 뽕짝, 이박사의 음악을 들었을 때 뭔가 너무 빠르고, 사람 목소리도 높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보통 테이프가 빨라지면 피치가 올라가고, 느려지면 피치가 낮아지는데, 제가 테이프로 음악을 들었으니까 그런 감각을 느낀 거일 수도 있지만요. 그러다 보니 저는 이박사를 처음 들었을 때 테이프를 빨리 돌려서 사람 목소리도 높아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이박사를 제대로 들어보니 그 높은 목소리가가 곧 본인 목소리란 사실을 알게 됐죠.

 

 

 

 

 

LE: 이런 부분을 보면 일찌감치부터 음악과 소리 그 자체에 천착하는 성향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90년대 힙합을 좋아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던 것 같아요.) 음악 중에는 악보로 존재하는 음악도 있잖아요. 이를테면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경우는 악곡, 어떻게 보면 악보를 떠올리는 음악인 거 같아요. 그래서 클래식이라 하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당시 저에게 힙합 음악은 두 마디 혹은 네 마디 룹에서 제가 듣고 싶은, 제가 꽂힌 소리가 계속 나오다 보니까 일종의 소리였거든요. 저한테 음악을 듣는 건 어떤 소리를 듣는 개념이었고, 그 소리를 통해 나의 어딘가를 자극하는 느낌이었어요.

 

또, 저에게 당시 힙합 음악은 노래를 만든 프로듀서가 느껴지는 음악이었어요. 이를테면 DJ 프리미어(DJ Premier)의 음악을 들으면 어떤 소리를 기대하잖아요. 저는 그냥 단지 DJ 프리미어의 킥이 듣고 싶어서 DJ 프리미어가 프로듀싱한 앨범을 듣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런 것처럼 저에게 힙합 음악은 하이햇은 여기서 오고, 킥은 저기서 오고, 스네어는 여기서 오고, 샘플, 사운드 소스는 저기에서 오고, 그런 와중에 갑자기 음정이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없는 여자 보컬이 어디선가 들어오고… 그 모든 소리가 조합하는 프로듀서가 느껴지는 음악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음악을 그냥 ‘소리를 듣는다’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LE: 어떻게 보면 프로듀서로서의 행보를 시작하시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네요.

 

이런 요소들 때문에 ‘내가 음악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무렵에는 “너 뭐 노래 잘해?” 이런 대답만 돌아왔거든요. 물론, 그때 제가 ‘난 퀸시 존스(Quincy Jones)처럼 될 거야!’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는 단계이긴 했지만요. 어쨌든 처음 음악 시작할 때 소리를 이렇게 저렇게 다루는 것만으로도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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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때가 언제였나요?

 

아마 고등학교 말이었던 거 같아요. 그 무렵에 냅스터(Napster)에서 닥터 드레(Dr. Dre) 인스트루멘탈을 다운받아 들었는데요. 그게 저를 완전 바꿔놨어요. 사실 저는 제이지나 투팍, 비기(Biggie)를 제외하면 비트를 듣기 위해 힙합 앨범을 듣는 거였어요. 그래서 래퍼가 어떤 이야기를 하냐, 어떤 스토리를 푸냐 이런 거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그냥 ‘누구 드럼이 더 멋있지?’ 이런 게 더 컸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래퍼의 목소리가 사라진 인스트루멘탈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인 일이었죠.

 

그리고 소니의 사운드 포지(Sound Forge)라는 프로그램을 깔아서 인스트루멘탈을 드래그해서 올렸을 때, 음악이 시각적으로 바뀌는 걸 보고 ‘내가 이 파형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음악을 조종할 수 있구나’를 감각적으로 느꼈었어요. 제가 정말 좋아했던 닥터 드레의 노래 속 킥을 자르고, 내 손으로 그 소리를 컨트롤할 수 있음을 느꼈을 때의 쾌감이 엄청나게 컸죠. 그래서 당시 저는 웨이브 에디터를 밤새도록 가지고 놀았고, 그러면서 내가 너무 좋아하는 소리를 소유하고, 그 소리들을 조합해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감각까지 느꼈어요. 음악이 제가 한 번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요.

 

 

 

 

 

LE: 그럼 그때부터 샘플이나 라이브러리를 정리하셨던 건가요?

 

사실 그때는 툴을 어떻게 쓰는지 매뉴얼도 없을 때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냥 진짜 막무가내로 에디팅을 했고, 라이브러리를 정리하는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당시에 프루티 룹스(Fruity Loops, 현재 FL 스튜디오) 1이 나왔거든요. 프루티 룹스 1의 라이브러리에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는 드럼이 있었는데요. ‘이건 제이지의 “Izzo (H.O.V.A.)”에 나오는 클랩인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그 소리들을 들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음악과 소리를 나눠서 들을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이 클랩에 저 림샷을 섞어서 이런 노래를 만들었구나’, ‘이 노래의 하이햇이랑 킥은 같은 악기에서 나온 게 아니네’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서 음악을 나누면서 듣기 시작한 거 같아요.

 

 

 

 

 

LE: 사실 프루티 룹스는 패턴에 집중한 시퀀스잖아요. 근데 힙합 음악에는 퀀타이징으로 해결되지 않는 레이드백 같은 요소처럼 웨이브 파형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측면이 있고요. 그 점에서 프루티 룹스를 접하시면서 힙합을 넘어 전자음악에 대한 관심도 생기신 건가 싶네요.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그 무렵에 저처럼 프루티 룹스를 똑같이 가지고 노는 친구가 있었는데요. 그 친구는 트랜스를 만들고 있었거든요. 당시 트랜스는 제 취향이 너무 아니었어요. 그런데 프루티 룹스가 기본적으로 그런 음악에 특화된 시퀀스라는 건 알겠더라고요. 룹에서 칸이 총 16개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칸을 채워 넣는 걸로는 여태까지 내가 들었던 음악의 그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았던 거 같아요.

 

또, 그 무렵에 MPC는 구하기도 쉽지 않고 너무 비쌌어요.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제가 가지고 있는 툴로 해결해야 하는 핸디캡이 있었는데요. 그런 핸디캡 안에서 오히려 창의력을 발휘해보자는 식으로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뽕]도 악기를 사서 앨범 속 사운드를 해결하지 않고 마우스로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마인드로 만든 앨범이거든요.

 

 

https://www.youtube.com/watch?v=_8Z8_d5pj4A

 

 

LE: 악기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건데요. <뽕을 찾아서>를 보면 서울의 동묘에서 악기를 구입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잖아요. 그런 만큼 250 님의 인생, 음악관에 영향을 끼친 서울의 장소가 있을까요?
 
예전 동묘는 지금처럼 풍물 시장으로 정리되기 전에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었어요. 거기에는 항상 음악이 있었어요. 지금은 음악이란 게 LP 바처럼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장소가 따로 있고, 음악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느 정도 의식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 무렵 동묘에는 테이프도 있고, CD도 있고, LP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동묘에 가면 음악이 물리적으로 존재한다는 감각이 있었어요. LP를 사러 갈 때도 디깅을 하러 간다는 개념으로 간 건 아니었어요. 그냥 음악을 사서 들고 온다는 기분이었죠.

 

당시에는 또 청계천에 가판이 쫙 있었고요. 그 가판에 빽판(가짜 앨범)들이 많았어요. 그런 걸 보는 즐거움도 있었죠. 왜냐하면 정품 앨범의 느낌이랑 빽판의 느낌은 달랐거든요. 허술하긴 하지만 그런 데서 오는 정감이 있죠.

 

 

 

 

 

LE: 요즘 소위 말하는 ‘힙지로’를 비롯해서 레트로, 뉴트로 이런 말들이 주목받고 있잖아요. 250 님은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생각해 보면 레트로가 유행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어요. 어린 시절의 기억은 본인이 뭘 향유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각인되면서 생기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서 그 기억을 가진 사람이 돈을 쓰는 세대가 되고, 뭘 즐길 수 있는 세대가 되면 자연히 요즘의 무언가보다 그냥 본인이 가장 순수하게 좋아했던 어떤 거에 꽂히게 되는 거 같아요.

 

세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서 레트로에 대한 기준은 바뀌지만, 레트로가 유행인 건 계속될 거 같아요. 시티팝에는 1980년대의 향수를 느끼게 만드는 사운드가 있잖아요. 시티팝 쪽을 유행시킨 사람들은 그런 사운드에 자극을 받은 거죠.

 

 

https://www.youtube.com/watch?v=pZ8MY1dgRr0

 

 

LE: 안 그래도 시티팝에 대한 생각도 250님께 여쭙고 싶었어요.

 

사실 시티팝은 마냥 레트로가 아니라 그냥 음악이 좋은 거예요. 실제로 1980년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자들이 가장 돈이 많은 나라에 가서 최고의 연주를 선보였고, 이걸 최고의 믹싱 엔지니어들이 달라붙어 최고의 사운드로 뽑아 놨으니 그냥 좋은 음악인 거죠. 오히려 요즘은 1990년대 레트로 유행이 돌고 있는데요. 저는 을지로보다도 오히려 압구정 쪽에서 그런 레트로를 많이 느껴요.

 

 

 

 

 

LE: 오렌지족 이런 느낌인 건가요?

 

요즘 유행하는 90년대 스타일, 통 넓은 기지바지나 쫄티 같은 게 제 사춘기 때 압구정 스타일이거든요. 그런 게 다시 유행이 되었는데, 압구정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압구정에 가면 제가 사춘기 때 봤던 사람들이 그냥 돌아다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을지로가 레트로의 공간이란 느낌이면, 압구정은 그냥 시대가 한 바퀴 돈 느낌 같아요.

 

 

 

 

 

LE: 사실 을지로는 뭐랄까, 레트로라는 라벨링을 일부러 붙여서 대중적으로 셀링한다는 느낌이 강한 거 같아요.

 

을지로는 어린 사람들이 많이 오잖아요. 그분들은 을지로의 낡은 건물들을 좋아하고, 그런 곳에 가는 것이 일종의 디깅일 거예요. 을지로의 2~3층짜리 허름한 건물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그런 건물이 신기하고, 거리에 인쇄소가 있는 분위기가 낯설겠죠. 그런 점에서 재미를 느끼시는 거 아닌가 싶어요.

 

 

 

 

 

LE: <만선호프> 사태라든지, 을지로의 몇몇 상황만 보더라도 뉴트로, 레트로 같은 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동반하잖아요. 250 님에게도 추억 어린 장소가 없어지는 건 일종의 상실감으로 다가올 거 같아요.

 

서울은 아무것도 그대로 있는 게 없어요. 그냥 다 바뀌는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참 안 좋은 거 같아요. 근데 또 누군가는 필요에 의해서 당연히 그런 거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잖아요. 아까 전에 말씀드린 청계천 거리도 지금 가서 보면 LP를 파는 노점이 있었다는 걸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거든요. 어쩌면 자연스러운 거 같기도 해요.

 

다른 예시로 지금 용산역은 완전 빌딩 숲이 되었잖아요. 가면 ‘여기도 많이 변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변화가 나쁜 거라고 하지는 못 하겠더라고요. 옛날 용산역 앞은 사창가였잖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사창가가 없어지고,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게 나쁜 변화일까 싶기도 해요. 그냥 서울이라는 곳이 그런 곳인 거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나라고, 서울은 그중에서도 제일 바쁜 곳이잖아요. 앉아서 그냥 뭘 두기에는 너무 바쁜 게 어떻게 보면 서울의 문화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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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레트로 이야기를 좀 길게 해봤는데, 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오면요. 닥터 드레의 인스트루멘탈을 받았던 것처럼 250 님의 음악 세계를 넓힌 일련의 사건이 또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스타 프로듀서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2000년대 초반에 힙합을 만들던 스타 프로듀서들이 팝으로 많이 진출하게 되잖아요. DJ 프리미어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랑 작업한 것처럼 말이죠. 또, 당시에는 넵튠스(The Neptunes)가 있었고, 팀발랜드(Timbaland),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 다크차일드(Darkchild)가 있었어요. 흑인음악 기반으로 힙합 비트를 만들던 사람이 그렇게 팝 시장으로 진출하던 모습을 보면서 힙합스러움이 팝이 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특히 저는 팀발랜드를 굉장히 좋아했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팀발랜드의 프로듀싱 방식이 다른 프로듀서들과 굉장히 결이 다르더라고요. 우선 비트 메이킹부터 MPC로 만드는 게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자기가 직접 입으로 소리를 먼저 내서 녹음하는 방식이었어요. 저는 그때 들었던 온갖 희한한 소스들, 예를 들면 알리야(Aaliyah) 노래를 들으면 아기 울음소리 같은 게 나고 그래요. 그런 노래들을 들으면서 마치 누군가 비트박스를 하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알고 보니 팀발랜드가 녹음실에서 진짜 본인의 입으로 만든 소리였던 거예요.

 

저는 사운드를 분리해서 듣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까 그런 팀발랜드의 음악이 너무 재밌게 들렸어요. 통기타로 코드를 치는 게 아니라 그냥 소리의 조합만으로도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런 와중에 당시 넵튠스가 갑자기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의 앨범을 프로듀싱해서 통기타로 노래를 시작하기도 하고요. 또, N.E.R.D.의 1집 유럽반은 미디로 찍은 넵튠스 사운드인데, 인터내셔널반의 경우에는 밴드 사운드예요. 음악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죠.

 

당시에는 그런 스타 프로듀서들의 행보를 팔로우하고, 이들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음악적인 경험을 한 거 같아요. 음악에 대한 가능성이 열리는 느낌인 거죠. 이럴 수도 있구나. 누구는 갑자기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와 작업을 하고, 팀발랜드는 갑자기 누구랑 작업을 하고요. 그러다 제이지 앨범을 들으면 이런 스타 비트 메이커들의 제일 멋있고 쌔끈한 비트가 다 담겨 있고요. 확실히 2000년대는 스타 프로듀서의 시대였고, 프로듀서들이 점차 대두되는 시대였던 거 같아요.

 

 

 

 

 

LE: 방금 말씀해 주신 프로듀서들은 2000년대를 대표하는 프로듀서들이잖아요. 시대를 좀 건너서 2010년대 전후의 프로듀서 중에서 250님에게 가장 영감을 준 존재는 누구인가요?

 

2010년대에는 제가 매드 디센트(Mad Decent)를 엄청 좋아했어요. 지금처럼 EDM이 유행하고, 정형화되기 이전에 막무가내 EDM을 한 단체가 매드 디센트였거든요. 저는 당시 시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쿨하고 멋있는 음악이라고 느꼈어요.

 

또,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 1집을 들으면 2집이랑 많이 다르거든요. 2집은 되게 일렉트로닉한 사운드인 반면에 1집은 정말 대단한 앨범이었어요. 사운드 텍스처는 90년대 힙합에서 들을 법한 좀 낡은 거 같은 사운드인데요. 음악 진행은 전자음악스러운 요소도 있고요. 템포는 하우스인데, 박자는 하우스처럼 정박이 아니어서 독특했어요. 거기다 들리는 사운드 샘플들은 자메이카나 아프리카에서 쓸 법했고요. 또 어떤 사운드 소스는 브라질의 발리 펑크(Baile Funk)에서 온 거 같은데, 조금 더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느낌이기도 했고요. 분명 일렉트로닉 사운드 소스가 들어가는데, 뭔가 프로듀서들이 디자인한 요소들이 들어가 있고요. 이런 음악들이 제 상상력을 엄청나게 자극한 거 같아요. 

 

 

 

 

 

LE: 그렇다면 이어서 2010년대에 EDM 류의 아티스트들을 듣다가 지금처럼 뽕으로 건너오게 된 과정이 궁금한데요.

 

[뽕] 작업에 들어갔을 때, 사실 제가 30대 초반이었는데요. 당시에는 제가 음악을 만드는 기술을 나름, 꽤 많이 갖췄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컨셉을 뭘로 하든 간에 맞춰서 앨범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여겼었죠.

 

그리고 제 취향을 생각했을 때요. 2010년대 초에 매드 디센트를 듣는 게 어찌 보면 힙스터 같을 수 있지만, 당시에 매드 디센트를 클럽에서 틀면 사람들이 정말 좋아했거든요. 좋은 음악이니까 사람들이 좋아했던 거 같아요. 120 bpm이 넘어가는 하우스 음악을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110 bpm의 뭄바톤(Moombahton)은 좋아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냥 저를 생각했을 때 남들 좋아하는 거 좋아하고, 뻔한 거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건 남들이 좋아하겠다 싶었어요. 제 취향이 특출나거나 대단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남들보다 인터넷을 많이 하고,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서 디깅을 하다 보니 그런 좋은 음악들을 찾았다고 생각했고요. 그중에서 제가 유난히 좋아한 음악들은 지금도 클럽에서 틀면 사람들이 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니 독특하거나 희한한 게 아니라 뻔한 걸 좋아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면 되고, 그렇게 마음껏 하면 결과적으로 뽕짝 음악, 뽕이라는 이름으로 카테고리를 묶을 수 있는 음악이 될 거란 생각이 있던 거죠. 자신감도 있었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5BEgJQWH-9s

 

 

LE: 흥미롭습니다. 그렇게 250 님이 [뽕] 앨범 작업에 착수하시고 나서 2년 동안 뽕만 들었다고요. 당시에 어떤 음악가, 음악을 들었는지 기억나시나요?

 

사실 유튜브에 들어가서 고속도로 메들리를 치면 뽕짝 음악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그런데 그런 노래들은 아무리 들어도 누가 부른 건지를 알 수 없죠. 이를테면 주현미의 [쌍쌍파티] 같은 경우에는 보존이 잘 된 음악이지만, 유튜브에는 정말 무수히 많은 타입의 고속도로 메들리가 있거든요. 저는 그런 걸 많이 들었어요.

 

 

 

 

 

LE: 어떻게 보면 당시에는 뽕의 맥락을 정리하기보다 일단 뽕을 귀에 꽂는 단계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누구의 어떤 음악이란 생각보다도요. 일종의 힙스터 기질이 발휘되어서 그런지 저 아니면 안 듣고 있을 음악을 일부러 찾아 들었던 거 같아요. 뽕짝 음악 중에서도 가장 뽕짝인 음악 같은 거 말이죠. 또, 그때는 일종의 디깅 개념으로 생각해서 사운드 소스를 찾아보고 싶던 거 같아요. 그래서 가장 구석에 있는 뽕짝을 찾아보기 시작한 거죠.

 

 

 

 

 

LE: 그래서 앨범 초기에는 EDM 공식에 철저한 뽕 앨범을 만드셨다고요.

 

딱 “Spring” 같은 앨범을 만든 거 같아요. 이박사의 목소리를 샘플링한 EDM스러운 사운드. 딱 사운드클라우드용 음악이죠.

 

 

 

 

 

LE: 그러다 앨범을 작업하면서 큰코다치셨다고요.

 

그냥 그렇게 뽕짝을 하려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혀 뽕짝이 아닌 음악을 하면 타이틀이 뽕일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뽕이기도 하지만, 뽕짝이 아니기도 한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하루종일 뽕짝을 들었는데요. 노래를 들으면서도 심리적으로는 뽕짝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어요. 저는 뽕짝을 사운드 소스로 생각했고, 소스로 접근해 뽕짝을 만들면 “Spring”이 되는 건데요. “Spring”같은 곡만 10곡 모아서 [뽕]이란 앨범을 내는 건 좀 아닌 거 같았어요. 여기에서 조금 더 뽕짝스러운 뭔가가 있어야겠다. 그런데 뽕짝을 만들면 너무 뽕짝이었고, 뽕짝이 아닌 걸 만들면 너무 아니더라고요. 결국 그 부분에서 왔다 갔다 한 거 같아요.

 

 

 

 

 

LE: 아무래도 [뽕]이란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는 본인 역시 뽕을 내재화해야 하는데, 알게 모르게 뽕을 피하고 계셨던 거군요.

 

저에게 뽕이 있는 줄 알았던 거죠. 저는 그냥 뽕을 만들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뽕짝을 그냥 만드는 건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또 마음이 끌려야 만들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일단 완전 뽕짝을 몇 곡이라도 만들려고 했는데 손이 잘 안 가고, 마음도 동하지 않더라고요. 

 

 

 

 

 

LE: 아직 뽕과 동기화되지 않았던 시점이었군요. 그러다 제주도와 안면도에 칩거하면서 ‘뽕 캠프’를 여셨다고요. 캠프에서는 뭘 하셨나요?

 

주변 환경을 비우는 느낌이었어요. 컴퓨터 하나 들고 안면도에 혼자 좀 있자. 일단 맨날 있는 곳에서 벗어나서 좀 프레시한 환경에서 뭘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제주도에서는 큰 소득이 있지 않았지만, 안면도에서는 “Bang Bus”와 “로얄 블루”가 나왔어요. 제가 안면도에서 한 달 정도 있었거든요. 한 달 동안 노을 지는 수평선을 매일 보면 정말 우울해지거든요. 텅 비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안면도에 있을 때 “이창”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고, 앞서 말한 두 곡도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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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뽕’의 정서를 간파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맨 처음에 “Bang Bus”를 만들었을 때요. 어떤 측면에서는 “Bang Bus”는 만들기 싫었어요. 왜냐면 너무 뽕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Bang Bus”는 에라 모르겠다면서 만든 노래였어요. 일단 뭐 만들지 고민을 하다 메인이 되는 룹과 멜로디가 떠올랐고요. 룹을 찍고 난 후 코드를 입혀보자는 생각으로 건반을 쳤어요. 거기서부터 저 스스로 이 노래가 너무 뽕짝이고,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노래가 만들어지는 거 같으니 이런 느낌을 쫓아가 보자’라는 식으로 그냥 쭉쭉 만들었던 거 같아요. ‘하기 싫지만, 할 수 있다’, ‘이거 너무 뽕짝인데, 이거 너무 뽕짝이 아닌데’ 이런 식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만든 앨범이 [뽕]이었어요.

 

 

 

 

 

LE: 그러면 수록곡 단위로 서로 만든 시간의 간극이 있겠네요?

 

곡별로 시간 간격이 꽤 있죠. “사랑 이야기”는 거의 맨 마지막에 만들어진 노래 중 하나예요. 그 무렵까지도 이박사 안 한다, 안 만든다 이러고 있었는데요. 이런 고민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해보되 제가 이박사의 목소리에서 느꼈던 걸 담자는 식으로 접근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G1nUhIx-Jo8

 

 

LE: 재밌네요. 뽕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뽕을 찾아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면요. 일단 합천 바캉스 축제의 모습이 재밌더라고요.

 

합천 바캉스 축제에서 저는 ‘되게 한국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합천 바캉스에서 튼 음악이 사실 뽕짝도 아니고, 완전 빅 룸 하우스 같은 거였거든요. 거기서 누군가는 물을 뿌리고 있고, 비키니 입은 댄서들은 춤을 추고 있고, 아주머니는 애를 데리고 춤을 추고 있었어요. 그냥 엉망으로 다 같이 노는 느낌인 거죠. 그런데 그런 걸 보면서 뽕이든, EDM이든 어쨌든 큰 소리로 쿵짝쿵짝하면 다 신나는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LE: 어떻게 보면 댄스 음악의 본질을 알게 된 경험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그런 음악적 탐구 과정에서 뽕과 비슷한 결이 있다고 느꼈던 다른 나라의 장르 음악으로는 어떤 게 있었을까요?

 

드라마 <더 와이어(The Wire)>를 보는데 너무 멋있는 음악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OST를 검색해서 찾아낸 게 로드 리(Road Lee)의 “Dance My Pain Away”였어요. <더 와이어>를 보면 볼티모어라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거든요. 그전까지 저는 볼티모어가 어떤 곳인지 대충 알았지만, OST를 듣고서는 볼티모어의 댄스 음악이 이렇다는 사실에 굉장히 꽂혔어요. 이 동네에서 분노의 갱스터 힙합이 아니고, 댄스 음악이 파생된 게 정말 신선했거든요. 

 

또, 볼티모어 댄스 음악은 저지클럽(Jersey Club) 사운드와는 다르다고 느꼈어요. 저지클럽은 조금 더 파티 음악에 가깝고, 감성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느낌이라고 하면요. 볼티모어 댄스 음악은 코드도 없고, 베이스라인도 없고, 베이스 대신 엄청 큰 사운드의 킥 드럼이 있거든요. 그리고 킥 드럼도 사람들이 춤을 추게끔 하는 친절한 느낌이 아니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엇박의 킥이 계속 나와서 사람들을 점점 들끓게 만드는 요소가 있어요.

 

거기다 노래 가사는 또 ‘누가 나에게 청구서를 줬는데, 나 돈이 없어서 죽겠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볼티모어 댄스 음악에는 행복해서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인생이 너무 안 좋고 힘드니까 춤을 춰서 빨리 나쁜 감정을 털어버리고 싶으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까 춤을 추는 거구나’ 이런 느낌을 받게 되더라고요.

 

 

 

 

 

LE: 어떻게 보면 봉준호 감독의 <마더> 마지막 장면 같은 느낌이네요. 남미권 음악 중에서는 볼티모어 댄스 음악과 비슷한 게 혹시 있을까요?

 

저는 빈민가의 댄스 음악이란 키워드에 꽂힌 거 같아요. 정서적으로 보면 춤이 가장 필요한 빈민가 지역에서 댄스 음악이 나오거든요. 브라질의 리오 음악도 그렇고요. 그게 또 매드 디센트하고도 접점이 있고요. 디플로(Diplo)는 뉴올리언스에 가서 닉키 다 비(Nicky da B)를 만나고, 바운스(Bounce) 음악의 요소를 가져와서 리믹스를 하기도 했거든요. 그 점에서 빈민가의 댄스 음악에 매력을 느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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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뽕]을 만들다 그만두려고 할 때가 있었는데, “이창”을 기준으로 앨범에 기준점이 생겼다고요. “이창”으로 [뽕]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다시 생긴 건가요?

 

포인트는 멜로디였던 것 같아요. ‘멜로디 위주로 풀어가도 괜찮겠구나’ 싶더라고요. “이창”이 앨범의 기준이 됐던 건 ‘내가 멜로디를 써도 나쁘지 않고 괜찮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였던 것 같아요.

 

 

 

 

 

LE: “이창”도 그렇고, “뱅버스”도 그렇고, 첫 번째 파트에 나왔던 악기가 두 번째 파트에서는 빠지고 나중에 다시 또 나오는 곡 구성이 재미있었는데요. 그런 부분이 메인 멜로디를 짜면서 이렇게 만들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데서 비롯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지 싶고, 만약 그렇다면 멜로디를 착안하게 된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멜로디를 만드는 건 너무 쉬웠어요. 대신에 뭐랄까, 자신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원래 내가 그거 하는 사람이 아닌데. 팀발랜드가 멜로디를 짜면서 프로듀싱하는 느낌은 아니잖아요.

 

어쨌든 제 포지션을 생각하면 멜로디를 연주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에 (“이창”이나 “뱅버스”를 만들 때) 가능하면 마우스로 만든 것에 가깝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요.

 

마우스로 인한 에디팅, 에디팅으로 인해서 모듈레이션값이 변화하는 식이죠. 그게 아니라 모듈레이션 휠로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느낌은 자칫하면 좀 일회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그 순간의 느낌이니까.

 

근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단순하고 딱딱하게 그냥 이 마디에 정박으로 딱 딱 딱 이렇게 들어가고, 그냥 마우스질로 만든 게 느껴지길 바랐어요. 그러면서도 멜로디가 주는 어떤 감흥은 있길 바랐고요.

 

 

 

 

 

LE: 댄스 음악이라든지, 역사적으로 음악에서의 혁명은 거의 리듬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서 일어났던 것 같은데요. 그 과정에서 뉴잭스윙 같은 새로운 시류가 탄생한 거고요. 근데 사실 대중들이 기억하는 건 멜로디잖아요. 그런 부분이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네, 맞아요. 특히 힙합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더 그랬죠. 힙합을 좋아했던 이유도 드럼이 제일 멋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서였기 때문이에요.

 

 

 

 

 

LE: “이창” 이야기를 계속 해보면 판소리에서 꺾는 소리, 떠는 소리를 신시사이저로 표현한 것 같다는 의견도 있던데, 실제로 이런 의도가 있었나요?

 

꺾는 소리는 당연히 의도한 게 맞고요. 근데 제가 판소리에서 착안했다기보다는 판소리에서 (뽕으로) 이어지는 무언가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멜로디가 그냥 아름답게 쭉 나오는 게 아니라 어딘가 꾸부정하고 뒤틀린 상태에서 토하듯이 나오는 건 사실 나운도 씨 연주만으로도 알 수 있어요.

 

그 점에서 제가 <뽕을 찾아서> 1화에서 갖고 싶었는데 못 갖게 된 악기가 탐났던 것도 모듈레이션 휠 때문이었어요. 모듈레이션 휠이 보통은 건반 옆에 달려 있는데, 그 악기는 건반 아래 롤 바로 달려 있어서 연주를 하면서 밀게끔 되어 있더라고요. 좀 더 액티브하고 감성적인 거죠. 

 

우리가 노래를 부를 때 똑같은 노래더라도 소몰이 창법으로 부를 때랑 트로트 창법으로 부를 때랑 아니면 오페라 가수가 부르는 게 전부 다 다르잖아요. 그런 느낌 중에서도 뽕짝스러운 소리의 변화는 어떤 걸지에 대한 탐구 같은 걸 좀 했죠. 그래서 나운도 씨 음악을 엄청 많이 들었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l3cWP3AmUSc

 

 

LE: “이창”에서는 이박사 님 목소리를 샘플링하셨는데, 이전까지 ‘이박사 안 할 거야, 이박사 안 할 거야’라고 생각하다가 이 곡을 만들면서 이박사스러운 걸 해도 상관없다는 걸 인정하게 된 셈이라고 봐야 할까요?

 

그 노래를 만들었을 무렵에는 사실 앨범을 어떻게 만들지 정말 헤매고 있을 때였어요. 그 구간에 이박사의 목소리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음악인지 스스로 감을 잘 못 잡겠더라고요 근데 이박사의 목소리가 들어가니까 어떻게 해도 뽕이 되는 거죠. 아무렇게나 해도.

 

 

 

 

 

LE: 뮤직비디오 이야기도 해보자면 “이창” 뮤직비디오 감독님이 1980년대 한국 영화, 즉  ‘방화’의 캐릭터를 상상하고 그걸 작품에 담았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250 님의 경우에는 <진짜 진짜 좋아해>라는 영화를 많이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는 우리나라 영화를 ‘방화’라고 부르고, ‘최루탄 영화’라고 했을 거예요. 극장에 최루탄 터뜨린 영화라고. 그냥 맥락 없이 일단 울리려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영화. 그게 90년대 초반의 한국 영화였거든요.

 

<투캅스> 같은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한국 영화라는 게 기본적으로 멜로물이고, 마지막에 누가 죽고 그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단지 슬픔을 쥐어 짜기 위한 도구로서 영화가 쓰인다고 해서 비하의 뉘앙스로 ‘최루가스 영화’라고 했던 거죠. 어떻게 보면 그게 언어적으로 뽕짝 음악, 트로트와 뽕짝의 관계이기도 해요.

 

 

 

 

 

LE: 약간 신파라고 해서 폄하됐다 이거네요. <진짜 진짜 좋아해>의 경우에는 음악 감독을 길옥윤 선생님이 맡으셨잖아요. 한국 영화 음악 감독 중에 뛰어난 분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전 한국 영화 OST 같은 게 있을까 싶어요.

 

시대적으로 얼마나 비슷한지는 모르겠는데 <서편제>. 아마 김수철 씨가 음악 감독을 맡으셨을 거예요. 그 앨범이 굉장히 근사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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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다른 인터뷰에서 김수철 선생님 음악을 되게 좋아하셨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나네요. 맥락적으로 봤을 때, “로얄 블루”에 참여하신 이정식 선생님이 앞서 언급한 길옥윤 선생님에게 사사하셨잖아요. 이런 부분으로 한국 가요 역사의 맥락을 반영하려고 시도하신 건지도 싶더라고요.

 

의도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건 우연히 그렇게 된 거죠. 사실 이정식 씨와 작업하고 싶었던 게 저한테 색소폰 연주자 당장 한 명만 바로 얘기하라고 하면 첫 번째 떠오르는 게 이정식 씨거든요. 제 노스탤지어에 존재하는 분이 이정식 씨였던 거죠.

 

저는 이정식 씨 하면 떠오르는 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의 애절한 색소폰 연주. 거기에 딜레이와 리버브가 엄청 걸려 있는 서태지의 애절한 소년 같은 목소리. 근데 그런 서태지와 아이들이 막 춤을 추고 있는데 옆에서 이정식 씨가 막 색소폰 연주를 하고 있고 날린 글씨로 ‘색소폰 이정식’ 쓰여 있던 그 기억 때문에 작업하고 싶었던 거였어요.

 

 

 

 

 

LE: “모든 것이 꿈이었네”에 김수일 선생님이 참여한 건 이박사 님의 주요 앨범에 김수일 선생님이 참여한 걸 알고 엄청 꽂히셔서인 거로 아는데, 나머지 세션 분들의 참여는 그보다는 250 님의 노스탤지어에 바탕을 뒀던 거네요.

 

김수일 선생님은 재발견을 한 케이스였어요. 이박사 음악을 보면 90년대와 2000년대 사운드가 달라요. 일본에 갔다 와서 월드컵 맞춰서 냈던 그런 앨범들은 사운드가 되게 2000년대스러워요. 날카롭고 뾰족하고.

 

저는 그보다 90년대 사운드를 원래 더 좋아했었어요. 그 음악을 김수일 선생님 혼자서 다 만들고, 이박사와 녹음실에서 서로 주고받으면서 호흡을 맞춰 만들었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이박사를 좋아하는 이유의 절반 이상은 어쩌면 이분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LE: 이중산 님 같은 경우에는 <EBS 스페이스 공감>을 보시다가 알게 됐다던데,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끼신 걸까요?

 

그건 연주를 보시면 아실 것 같아요. 그냥 기타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그분이 워낙 깡마르시기도 해서인지 사람이 기타를 들고 연주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그냥 기타 같은 느낌이에요. 자기가 편하게 자기 언어로, 딱 정해져 있다기보다 대충 곡의 가사에 대한 아이디어만 있는 채로 즉흥적으로 하는 거예요. 저는 그게 진짜 블루스 같았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xICSRpVzATI

 

 

LE: 참여진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 다시 돌아와서 “모든 것이 꿈이었네”가 친숙하게 느껴졌던 게 학창 시절 국어, 문학 시간에 무조건 배우게 되는 “구운몽”의 느낌을 받았어요. 몽유 소설같이 꿈꾸는 듯한 가사나 사운드가 인상적인데,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처음에는 김수일 선생님의 목소리를 사운드 소스처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시 들으니까 녹음 상태도 영 안 좋지만, 노래는 너무 좋아서 원래는 재녹음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재녹음까지 하는 건 또 다른 결의 작업인 것 같았어요. 

 

그럼 거꾸로 이 음질이 별로 좋지 않은, 그렇기에 뒤에서 설거지하는 소리까지 들리는 이 오디오 소스를 그대로 두고 상상을 해봤어요. 김수일 씨가 어디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목소리가 담긴 그 영상을 보면서 원래 반주는 이랬을 거라고 제가 거꾸로 상상하면서 작업을 진행했어요.

 

 

 

 

 

LE: 김수일 선생님의 목소리에 되게 입체적이라고 느꼈는데요. 감정이 뒤섞여서 슬픔과 기쁨이 함께 녹아 있는데, 실제로 녹음하는 모습을 봤을 때 감정적으로 와닿는 바가 있었을 것 같아요.

 

미발표곡이 있으시냐고 여쭤봤더니 있다고 하셔서 한번 불러주실 수 있느냐고 해서 제가 마이크를 들고서 현장에서 녹음을 받는데요. 건반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시는데, ‘모든 것이 꿈이었네’라는 가사를 들었을 때 너무 놀랐어요. 정말 충격. 뭔가 갑자기 쾅 하고 내려앉는데, 제가 뭘 느끼는지 잘 몰라서 막 혼란스러워했는데 집에 돌아오는 차에서 <뽕을 찾아서>를 찍어주시는 영상 감독님께서 갑자기 그러더라고요. “모든 것이 꿈이었대…” 아무 말이 없었거든요. 그때 같이 있던 사람들이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이러면서 다 거기에 꽂혀 있었어요.

 

일본까지 갔다 오고, 무도관에서 이박사랑 둘이서 공연도 하고, 그 모든 걸 다 했던 사람이 다 지나고 보니까 꿈이었다고 하다니. 그래서 그때 그 노래에서 뭔가를 느꼈죠. 저는 시로 치면 마치 천상병의 <귀천>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 뭉클함에 너무 놀랐어요. 마이크를 들고서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요.

 

 

 

 

 

LE: 현장에서의 느낌은 뭔가 또 달랐을 것 같긴 했어요. 그러다가 “뱅버스”에 들어서면 약간 현실로 빡 돌아오는 느낌이에요. 천상계에서 인간 감정을 초월한 느낌이 들다가 갑자기 고속도로를 달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우선 그런 구조를 염두에 두신 게 맞나요?

 

일단 “모든 것이 꿈이었네”는 앨범 구성에서 첫 곡 아니면 반드시 마지막 곡 둘 중 하나지 중간에 낄 수가 없는 노래라고 생각했었어요 첫 번째 곡으로 배치한 것도 여러 의미가 있는데요. 이 앨범이 제 앨범이지만, 제가 이박사 같은 대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란 말이죠. 따지고 보면 전 김수일 같은 사람인 거죠. ‘난 가수가 아니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지 않을 거야 지금부터는 연주 음악만 계속 나올 거야. 왜냐면 나는 가수가 아니니까’(를 말해주고 싶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aunbwaZ7Q1o

 

 

LE: 확 와닿네요. “뱅버스”는 또 재밌는 게 칼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데 샘플에서 따오신 건가요, 아니면 직접 녹음을 하신 건가요?

 

녹음을 한 건 아니었고요. 무슨 홍콩 영화? 더빙된 싸구려 칼소리를 쓰고 싶었어요. 옛날 우탱 클랜(Wu-Tang Clan) 음악에도 나오는 되게 허접한 휙휙하는 소리들. 그 소리가 필요해서 진짜 옛날 카시오(CASIO) 건반을 사야 되나 생각도 했었어요. 근데 그걸 또 들어볼 방법이 없는 데다 검색해도 안 나오더라고요.

 

 

 

 

 

LE: 사운드가 좌우로 번갈아 가면서 들려오다가 클락션 소리가 삐 하고 들리는 구성도 재미있었는데요. 어쨌든 계속 고속버스를 연상케 하는데, 고속버스에서 뽕을 보신 적도 있으신가요?

 

있죠. 제가 그 모습을 봤을 때 법적으로는 금지였는데, 암암리에 그냥 커튼 쳐놓고 했었던 거 같아요. 제가 어느 지역에 가려고 지방분들이랑 같이 버스를 탈 일이 있었는데요. 그분들은 자기네 고향으로 가는 길이었고, 저는 그냥 얼떨결에 낑겨 가는 상황이었어요. 그냥 출발하기 전부터 바로 뽕짝을 틀고 이미 춤을 추고 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걸 보고서는 그다음 주인가 다다음 주가 아마 <글로벌 게더링(Global Gathering)>이라는 패스티벌이었을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글로벌 게더링>을 보는데 똑같다 싶더라고요. <글로벌 게더링>에서는 백인들이 와서 위스키를 마시고 춤을 추지만 결국은 같은 거거든요. 페스티벌이 열리는 주변에 사는 인근 주민인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그냥 왔다 갔다 하시는데, 사실은 다르지 않은 거예요.

 

시골에 가서 어디 스피커를 설치해 놓고 트랜스를 틀어놓으면 아마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나와서 춤을 추실 거예요. 그 점에서 대단히 나누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근본적으로 BPM 120이 넘는 빠른 소리에 킥이 쾅 쾅 쾅 대면 뭘 해야 하는지 우리는 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거죠. 근데 만약에 그게 160을 넘어버린다? 그럼 사람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지죠. 심지어 출 수 있는 춤도 몇 개 없죠. 아마 아프리카 가서 뽕짝을 틀어도 사람들이 우리나라 아줌마, 할머니들이랑 똑같이 춤을 출 거예요.

 

 

 

 

 

LE: “뱅버스” 뮤직비디오는 첫째로 불륜을 담아냈다는 점이 인상적인데요. 예전부터 구상해오신 게 아닌가 싶은 게 “이창” 관련해서 과거에 인터뷰하셨을 때 다음 뮤직비디오에서는 불륜 산악회 같은 걸 담아내고 싶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연결되어서 “뱅버스”까지 온 건가요?

 

‘불륜의 정서가 뽕의 정서다’ 이런 건 당연히 아니고요. “뱅버스”의 뮤직비디오는 불륜이 소재라기보다는 이 남자가 달리는 게 소재죠. 남자가 달리는 뮤직비디오. 근데 달리려면 달릴 이유가 필요한 거잖아요. 죽어라 뛸 만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인 거고요.

 

불륜 자체가 꼭 중요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다만, 동기가 중요한 거죠. 불륜 산악회에서 뽕짝 틀어놓고 노는 것도 그분들한테는 빨리 춤을 추고 놀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돌아가는 길이니까 빨리 해야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제가 볼티모어 사운드에 꽂혔던 것도 그 조급함, 빨리빨리 아드레날린을 쥐어짜야 될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런 부분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13NjdILxipg

 

 

LE: “사랑이야기”로 넘어가가면 “사랑이야기”는 진짜 제목이 사랑 이야기인 것 빼고는 사랑 이야기가 아닌 노래예요. 그런 부분도 의도하신 걸까요?

 

그냥 이박사가 사랑 이야기라고 했기 때문에 사랑 이야기인 거죠. 듣는 사람은 제목이 사랑 이야기인 노래를 틀었는데, 그런 노래가 나오고 있으면 어쨌건 사랑 이야기라고 했으니까 이게 왜 사랑 이야기인지를 생각해야 하잖아요.

 

EDM도 보면 마틴 개릭스(Martin Garrix)인가, “Animal” 이런 노래 들으면 왜 제목이 그건지 별로 모르겠어요. DJ 스네이크(DJ Snake)의 “Propaganda” 이러면 이게 왜 프로파간다인가 싶은데, 생각해보면 프로파간다라고 외칠 뿐인 거예요. 그냥 그런 거였던 것 같아요. 대신 이박사를 집어넣는 이유가 설명은 되어야 하니까 사운드적으로 풀어보려고 했죠.

 

 

 

 

 

LE: 약간 귀가 찢어질 듯한 사운드는 저스티스(Justice) 같은 팀이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이박사의 목소리가 제 귀에는 그렇게 들렸어요. 그냥 노래를 부를 때가 아니라 중간에 막 소리 지르고, 추임새를 넣다가 너무 격렬해질 때 순간적으로 귀를 찢는 것처럼 들린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분은 그런 목청을 가진 분이고요. 근데 역시 마찬가지로 제가 이박사는 아니지만, 프로듀서로서 그런 느낌이 들게끔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C-qBHpaG08U

 

 

LE: 또 다른 트랙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제목부터 쓸쓸한 느낌이 드는데요. 어떻게 보면 “이창”에서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다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나오니까 일종의 ‘현타’처럼 다가왔는데요. 뒤에 깔린 ‘우우우’ 하는 코러스도 있고, 곡에 담으려고 했던 정서라든지, 소개하고 싶은 디테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보컬 소스를 집어넣는다든가 이런 게 되게 EDM스러운 아이디어들인데요. 보통 EDM에서는 보컬 소스가 “Turn Down For What” 같은 곡에서처럼 노래를 신나게 만드는 요소로 쓰이지만, 거꾸로 보컬 소스를 허전하고 쓸쓸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쪽으로 쓰면 어떨까 했어요.

 

그런 무드에서 “On & On & On”이라는 구절을 듣고 있으면 그게 노래 가사처럼 와닿는단 말이죠. ‘그렇지, 맞아. 계속되는 거야’ 막 이러는 거죠. 각자 알아서 상상하게 하는 거예요.

 

 

https://www.youtube.com/watch?v=7EYMZ1MQYaQ

 

 

LE: 얘기를 들어보니까 “바라보고”에 담은 햇 소리라든가, 엠비언스 효과가 옛날에 주차장에서 각설이들 풍물 마당 하는 느낌이 떠올라서 재미있더라고요.

 

아프리카 부족들이 구호 같은 걸 외치는 그런 사운드였어요. 거기에 뽕짝 사운드를 그냥 집어넣어 버리니까 거기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들이 또 재밌더라고요. 지하 공간에서 발 쾅 쾅 하는 소리는 제가 스텀프 사운드 같은 걸 일부러 집어넣은 거고요. 그냥 뭔가 쾅쾅거림과 동시에 돌면서 강강수월래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LE: “바라보고”에는 나운도 선생님의 가야금 소리가 들어가 있는데, 가야금 소리 하니까 2000년대 한국 가요 중에 뽕짝 테크노 사운드가 떠오르더라고요. 당시에 최준영이라는 작곡가가 많이 시도했던 사운드였는데 말이죠. 원래는 데이비드 포스터(David Poster)류의 음악을 만드시던 분이기도 하고요. 그때 250 님은 뽕짝 테크노를 어떻게 생각하셨던 것 같나요?

 

돌이켜보면 최준영 그분은 음악을 굉장히 잘 만드는 분이었어요. 뽕짝 테크노가 유행할 때면 제가 그런 걸 싫어하던 나이였겠죠. 그때는 의식적으로 ‘가요는 왠지 듣기 싫어, 우리나라 노래 안 들어’ 약간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노래들을 따라 부르라고 하면 얼마든지 따라 부를 수 있죠. 좋고 싫고랑 듣고 안 듣고는 또 다른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런 노래들을 좋아하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싫다고 했겠지만 어떻게 보면 좋아했으니까 외웠겠죠. 정말 싫었으면 빠른 속도로 넘겨버렸겠죠.

 

 

 

 

 

LE: 결과적으로, 내가 뭘 세련되게 생각했고, 생각하냐, 일종의 호오를 떠나서 [뽕]이라는 앨범 자체가 곧 그냥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던 거네요.

 

그렇죠. 내가 뭘 좋다고 느끼고, 뭘 싫다고 느끼는지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그걸 좇는 게 어떻게 보면은 앨범을 만드는 과정이었고, 만들고 난 다음에 가장 후련해진 부분이에요.

 

 

https://www.youtube.com/watch?v=CnZy5st_veY

 

 

LE: “나는 너를 사랑해”로 건너오면 풋풋한 감정이 느껴졌어요. 앞에서 한바탕 감정 푸닥거리를 하고 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찾아오는 사랑의 풋풋함 같았어요. 250 님은 이 곡에서 어떤 걸 표현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그냥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이 주는 그 강력함이 좋았어요. 거기에 그 사실을 발견하기까지의 제 개인적인 여정도 있었고요.

 

저는 사실 원곡인 신중현과 엽전들의 “나는 너를 사랑해”가 그런 노래인 줄 몰랐어요. 들을 땐 몰랐고, 그냥 단순하게 사운드가 재밌고 좋아서 샘플링을 한 거였어요. 샘플링을 하고 이렇게 저렇게 만들다 보니까 “해랑사를 너는나”라는 가사가 ‘나는 너를 사랑해’를 뜻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럼 이걸 나중에 발견한 사람으로서 제 방식대로 해보려고 했어요.

 

거꾸로 “해랑사를 너는 나”를 ‘나는 너를 사랑해’로 바꿔놓는 그 과정이 말이죠. 그렇게 바꿔놓으면서 어떻게 보면 가사가 생긴 거잖아요. 그와 동시에 멜로디를 잘라서 뒤집었기 때문에 멜로디도 생긴 거고요. 저는 마치 샘플링을 두 번 한 기분이었어요.

 

 

 

 

 

LE: “주세요”는 싱코페이션이라고 해야 하나요? 리듬이 정박으로 안 나오고 조금씩 다른 느낌인데, 이런 부분으로는 어떤 걸 표현하려고 하신 걸까요?

 

저는 사람이 울컥하는 순간이 일종의 엇박이라고 봐요. 어택이 정해져서 딱딱 나오는 게 아니라 계속 엇박으로 나오는 순간만이 사람에게 주는 느낌이 있거든요. 울컥하는 느낌은 딱 떨어지는 게 아닌 느낌이 들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7wbFtmax3A0

 

 

LE: 그런 부분이 약간 제이 딜라(J Dilla)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요. 이 곡을 기점으로 사운드에 현대적인 요소가 녹여져 있다 싶었어요. 그 점에서 “레드 글라스”는 딱 들었을 때 케이트라나다(KAYTRANADA) 같은데, 소스는 뽕이란 말이죠.

 

앞부분에 나오는 똑딱거리는 소리가요. 숟가락 장단이라는 게 있어요. 어른들이 노는 문화에서 숟가락 장단이라는 장르가 있더라고요. 한국의 리듬 이런 걸 생각해 보다가요. 한국인의 술자리를 생각하면 보통 병에다가 숟가락 꽂고 노래하는 식이잖아요. 그런 걸 찾아보다가 숟가락 장단을 찾은 거예요.

 

숟가락 2개를 들고서 따라락 따라락 대면서 맞부딪치기도 하고, 바닥에다 치기도 하는 거예요. 근데 그걸 정말 잘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너무 기가 막히게 잘하는 분의 영상을 보고서는 멋있다고 느꼈어요.

 

저는 이런 게 한국인의 리듬 중에서도 가장 아래에 있는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뭐 없이 할 수 있는 거죠. 전 그런 거에 꽂히더라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YJEwhAWdwCk

 

 

LE: “로얄 블루”로 넘어오면 히트 소리의 경우에는 테디 라일리(Teddy Riley)가 쓸 법한 오케스트라 히트 스타일이었는데요. 생각해보면 사실 뽕 음악도 사운드적으로 80년대에 전자 악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할 때 등장했던 스타일이잖아요. 이런 맥락에서도 소리적인 의도가 담겨 있는지 싶더라고요.

 

저한테는 테디 라일리이기 전에 90년대의 싸구려 신시사이저 있잖아요. 거기 보면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는 소리가 몇 개 있거든요. 창문 깨지는 소리, 총 쏘는 소리, 경적 소리, 되게 허접한 박수 소리 그런 것 중에서 꽝 하는 오케스트라 힛 같은 악기가 있었어요. 그 오케스트라 힛을 갖고 만든 멜로디가 저한테는 뽕짝의 기본 멜로디 같았어요. 그래서 이 오케스트라 힛을 멜로디 악기처럼 쓰고, 그걸 뽕짝의 전형적인 멜로디를 연주하니까 ‘이런 소리가 나네, 재밌네’ 싶으면서 일단 저는 재밌었어요.

 

 

 

 

 

LE: 뮤직비디오의 경우에는 일본스러운 분위기가 있으면서도 한국스러운 면도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한국 특유의 무맥락적이고 혼합적인 성격을 기반으로 이런저런 요소가 뒤섞여 나오는 느낌이었는데요. 그런 점에서 250 님은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냥 뒤죽박죽인 것 같아요. 비빔밥 같다고 해야 하나요?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상수동 밖의 거리만 봐도 건물에 별로 맥락이 없잖아요. 에펠탑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져 있는 프랑스 파리 같은 도시는 한 사람의 의도가 담겨 있거든요.

 

근데 서울이라는 도시는 당장 우리 눈앞에 보이는 이 건물들이 한 10년 후에는 웬만하면 더는 없을 거란 말이죠. (한국은) 그냥 그런 곳인 것 같아요. 뭘 계속 해야 하는 곳, 바삐 움직이는 곳, 아무도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곳. 바삐 움직이는 것도 이를테면 뉴욕의 바쁜 움직임과 또 다른 거 같아요. 거긴 증권가든 뭐든 그런 게 있지만, 서울은 각자 도생하면서 서로 치고 올라오는 분위기죠. 그 과정에서 마구잡이로 섞이는 거고.

 

보통 이런 걸 동경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탈리아의 어떤 도시는 하얀 색으로 잘 통일되어 있다든지. 근데 거기서 살라고 하면 전 못 살 것 같아요. 좋은 곳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여기서 자라서 여기 정서에 길들여진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아무 일도 안 일어나서 심심할 거예요.

 

 

 

 

 

LE: 다른 인터뷰에서는 그 한국적임을 매콤함으로 표현하기도 하셨는데, 관련해서 부연해주신다면 어떨까요?

 

외국이 얼마나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한국은 매운 음식을 뜨겁게 먹잖아요. 그런 음식이 많이는 없을 것 같거든요. 매운 음식을 뜨겁게, 식기 전에 빨리. 그렇게 먹는 나라가 또 얼마나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한국인은 뭘 먹을 때 그런 걸 먹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야 한 끼 먹었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제가 매운 음식을 평소에 잘 안 먹는데, 얼마 전에 육개장 칼국수를 먹고 땀을 한번 제대로 흘렸었어요. 근데 흘리고 나니까 시원하더라고요. 정말로 뭔가 해소된 것 같고요. 아마 그 느낌까지 포함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먹은 한 끼의 기억을 가져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dAV5u-GOHJ4

 

 

LE: “휘날레”의 경우에는 작사가 양인자 님과의 작업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휘날레”라는 곡이 앨범 마무리 단계에서 완성된 곡이었는데요. “모든 것이 꿈이었네”에 오승원 씨가 잠깐 나왔기 때문에 저는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10초 정도만 쓰고 말기보다는 그분도 자신의 오리지널 곡이 있는 건 아니다 보니까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대신 가사를 누가 쓸지가 고민이었어요. 처음 떠오른 건 일단 김국환의 “타타타”였어요. 그 곡을 너무 좋아했었고, 작사가를 찾아보니까 양인자 선생님이었어요. 양인자 선생님의 성함은 원래 알고 있었고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리고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제가 “사랑의 미로”를 정말 좋아했는데, 그 노래는 우리 엄마들이 다 좋아하는 노래잖아요. 진짜 우리 세대 엄마들의 앤썸(Anthem)이거든요. 그것도 양인자 선생님이 쓰신 걸 알고서는 당시 기준으로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였지만 된다면 한번 시도해보자고 해서 그분에게 한번 들어봐 주실 수 있냐고 여쭙고, 멜로디만 찍어놓은 반주를 보내드렸는데, 들으시고서는 노래가 산뜻하다, 좋다고 하시고 참여하셨어요. 의외로 별로 어려움이 없었어요. 만나뵈었을 때 되게 소녀스러우시다고 해야 하나? 눈빛도 너무 초롱초롱하시고.

 

 

 

 

 

LE: 그렇게 양인자 님에게 받은 “휘날레” 가사를 부른 오승원 님 같은 경우에는 유튜브 영상 보시다가 알게 되셨잖아요. 존재 자체는 원래 알고 계셨는데, 계속 활동을 하고 계신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신 건가요?

 

그것도 아니었어요. 어느 날 가장 어린 시절에 슬픔을 느꼈던 기억을 생각해 보니까 <아기 공룡 둘리>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둘리가 돌아가서 엄마를 만나서 이제 나 여기 있을 거라고 했는데, 거기서 희동이가 둘리 꼬리를 잡고서는 질질 끌고 가서 도로 돌아가 버리는. 그걸 보고서 너무 슬펐단 말이죠. 그러고 나서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니까 <아기 공룡 둘리>를 볼 때마다 뭔가 짠하고 슬픔을 느꼈던 이유는 그 주제가 때문이었고, 그 주제가가 왜 슬프냐. 애초에 가사가 슬프거든요. 뭘 해도 둘리는 엄마를 잃고 헤매는 아이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회차인데도 볼 때마다 슬픔을 느꼈던 게 그런 이유였던 거죠.

 

그래서 이분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찾아야 하겠다고 해서 한 3년을 찾은 거였어요. 같이 오리지널 곡을 만들되, 어떻게 보면 그분과 양인자 선생님이 시대적으로 비슷한 지점이 있으니까 이분에게 양인자 선생님 작사의 곡을 드리는 게 그거대로 또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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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양인자 선생님, 오승원 씨를 포함해 앞서 언급한 참여진분들이 전부 한국 음악의 OG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분들을 실제로 만나 뵈면서 음악적 가치관 측면에서 변한 지점이 있는지 싶어요.

 

태도를 배웠어요. 이 앨범이 만드는 저도 되게 엉뚱한 앨범이었는데, 그분들 입장에서는 더했을 거예요. 이중산 선생님한테 노래를 들려드렸을 때는 이미 나운도 선생님이 부른 버전이 있는 상태였고. 그분이 뽕짝 트로트 가수 나운도가 노래를 부르는 곡에 기타를 친다는 건 사실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접점이 너무 없으니까요.

 

근데 그런 상황에서도 ‘너가 뭘 하려는지 내가 아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일이고 뭔가 그래도 재밌는 걸 하려고 하는구나’ 그런 태도로 임해 주시는 것, 그런 부분들이 되게 멋있었어요. 나운도 선생님도 완성된 곡을 들려드렸을 때,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려고 하시는군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자기는 할 수 없는 음악이라고 하신 적도 있는데요. 한번은 택시를 타고서 나운도 선생님이 일하시는 콜라텍으로 이동하면서 장은숙 씨의 “춤을 추어요”라는 노래를 아시냐고 했더니 “아 장은숙 씨 노래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거 한번 불러주실 수 있느냐고 여쭸더니 알겠다고 하고 도착해서 악기를 딱딱 켠 다음에 리허설도 안 하고 바로 그냥 불러버리더라고요. 그분은 맨날 하시는 거니까 연습도 안 하는 거예요. 머릿속에 이미 그 노래가 다 있는 거죠. 

 

근데 그분은 그때 자기가 한 노래가 그렇게 만들어질 거라고 아예 생각하지도 못했을 거 아니에요. 나중에 블루스 록 스타일로 “춤을 추어요”을 만들어서 들고 갔는데, 이게 정통 블루스 록도 아니고 하니까 그분 입장에서 ‘이건 무슨 음악이네’ 하면서 사이즈가 나올 리 없거든요. 애초에 저도 무슨 음악인지 모르는 음악이었고요. 그런 음악을 되게 열린 마음을 갖고 들어주시는 거. 다 듣고 나서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네요. 이건 제가 못 하는 음악이네요.” 그러면서 그냥 좋아해 주시는 게 너무 멋있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분들은 제가 걱정했던 거랑 달랐어요. 그분들도 마찬가지로 소리로서 듣고 있던 거죠. 나운도 씨를 딱 만나뵈고 느낀 게 소리에 대한 어떤 고집이 있는 분이라는 거였죠. 그래서 여전히 악기도 막 다 바꾸고 계시더라고요. 최근에 제가 완성된 음악을 들려드리러 만나뵀을 때도 더 좋은 사운드를 위해서 얼마 전에 악기를 싹 다 바꿔버리셨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글로벌 게더링>과 뽕짝 버스 사이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거죠. ‘본질은 그냥 똑같구나. 소리구나.’

 

 

https://youtu.be/itYj75SBgpw

 

 

LE: 아마 대부분 참여진분들이 작업 당시에는 완성될지 몰랐다가 앨범이 완성되고 나서 음악을 들어보셨을 텐데, 기억에 남는 참여진들의 피드백이 또 있을까요?

 

아무래도 앞서도 말씀드린 나운도 씨가 좋아하셨던 게 가장 기억에 남죠. 정말 보람됐었거든요. 왜냐하면 그분은 당장 뽕짝 음악을 하고 계신 분이잖아요. 근데 그분께서 “이건 새로운 영역의 음악이군요”이라고 하시면서도 자신의 목소리가 그렇게 쓰인 것에 거부감이 전혀 없으시고, 오히려 바꿔버린 버전을 재밌고 신기해하시더라고요.

 

흔히 말하는 ‘선배 뮤지션’ 이런 느낌이 아니라 완전 동등하게 ‘당신의 음악에서 내가 많은 영감을 얻었다’라는 식으로 대해주셨어요. 근데 저 또한 그분의 연주와 음악에서 너무 많은 영감을 얻어서 만든 곡이 “이창”이었으니까 이렇게 서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죠.

 

 

 

 

 

LE: 인터뷰가 막바지인데, 몇 가지 질문을 더 하자면요. 마지막으로 직·간접적으로 영감을 준 음악가분들에게 헌사의 메시지를 띄우자면요?

 

제가 [뽕]을 만들고, 뽕짝 음악을 한 건 제 귀에 뽕짝이 더 멋있게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누군가 ‘왜 트로트가 아니고 뽕짝이냐’라고 묻는다면 저는 순수하게 뽕짝 사운드가 더 멋있기 때문이라고 답할 거예요. 그래서 뽕짝을 해온 그분들이 남긴 무언가가 소리적으로 너무 멋있기 때문에 제가 그걸로 뭔가를 또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거죠. 그 점에서 그냥 ‘당신들은 정말 멋있는 소리를 남겼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나운도 씨를 만나 뵙고 ‘내가 이분의 연주하는 사운드가 멋있다고 느낀 게 허투루 느낀 게 아니구나’라고 느꼈거든요. 왜냐면 그분은 정말 멋있는 사운드를 내기 위해서 노력을 하시거든요. 이중산 선생님 댁에도 한 번 간 적이 있었는데, 기타가 여기 저기 걸려 있어요. 기타를 집에서 직접 만들고 계시더라고요.

 

“나는 너를 사랑해”도 저는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이 있는 줄도 몰랐고, 그냥 짤랑짤랑하는 종소리 사운드가 너무 멋있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당신들이 남겨놓은 사운드는 너무 멋있었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양인자 씨에게도 ‘양인자 선생님께서 쓴 가사는 너무 멋있었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타타타”의 가사는, 노래가 나온 당시에 초등학생이었던 저조차 충격과 감동을 받을 정도로 멋있었고. 김수일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었던 것도 그분은 평생 악기를 하나만 쓰셨거든요. 그분은 그 사람이 곧 하나의 악기인 거예요.

 

당신들이 만들어낸 소리들은 너무 멋있었고, 계속해서 이어질 만한 가치가 정말 있습니다.

 

 

 

 

 

LE: 너무 좋은 말이네요. 이번 앨범이 또 후대에 영향을 미쳐서 전해지면 좋겠네요.

 

그렇기 때문에 마스터 두 버전이 다 나온 것에 너무나 만족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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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뽕]이 30대를 모두 녹여낸 앨범이라고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신 바 있는데, 돌이켜보면 30대의 250 님은 어떤 사람이었고, 또 그 시기를 어떻게 보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앨범을 만들었던 시기가 대부분 30대였고요. 맨 처음에 ‘형 앨범 ‘뽕’ 어때요?’라는 카톡 메시지를 받았던 그때까지 포함하면 거의 7년, 8년. 제가 82년생이니까 사실상 30대 초반부터 마흔이 되기까지의 시간이었죠. 

 

이 앨범을 날마다 만든 건 아니지만, 이 앨범 생각을 하루도 안 한 날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시기를 보냈냐고 하면 이 앨범에 들어가는 여러 소리를 찾아다녔고요. 어떤 소리가 나를 끌리게 하는지를 고민했었고, 찾아서 그 소리들을 모았고요. (그 사이에) 제가 할 줄 알게 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할 줄 알게 됐던 것들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서 그것들을 집어넣어서 짜고, 만들어내면서 보냈죠. 그러는 동안의 인생을 생각하면 딱 그냥 이 앨범 같았어요.

 

제가 원래부터 기본적으로 좀 꿀꿀한, 그러니까 항상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 정서가 10대, 20대 동안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그냥 이 앨범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고, 그래서 돌이켜보면 딱 이래요. 내가 쓴 가사 한 줄도 안 들어가지만, ‘이 앨범 안에 내가 들어 있구나’라는 생각이 저도 들 정도로 지금 생각하면 (제 삶이) 그냥 이 앨범 같았던 것 같아요. 

 

 

 

 

 

LE: [뽕]을 내기까지 7~8년이 걸렸다 보니까 다음 앨범 구상은 아직 조금 힘들겠지만, 그래도 생각 중인 다음 음악적 방향이 있을지 싶습니다.

 

어차피 [뽕]을 만들면서 앨범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단 말이죠.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 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대로, 대신에 최선을 다해서 할 거예요. 근데 이번에 어떻게 보면 제가 저 스스로의 허들을 올린 거잖아요. ‘이렇게 하면 앨범이 나온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까지 해야 내 앨범을 낼 수 있다’라는 기준이 저한테 생긴 거잖아요. 그 나를 중심으로 생긴 기준으로 (다음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쨌든 내 음악을 처음 듣는 건 나니까 ‘내 귀에 만족스러우면 사람들도 좋아하던데?’ 정도의 기준이 생겼으니까 그걸로 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 그리고 다음 목표라면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지 말자’예요. 프로듀서로서 나의 앨범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게 갈피가 너무 안 잡혔었거든요. 전 옛날부터 앨범을 만들 때 제가 비트메이커이자 프로듀서이긴 하지만, 래퍼나 노래하는 사람들한테 전화 돌리지 않고서 내 앨범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충분히 개인적이어야 하고, 기술적인 면과 함께 정서적인 면에서도 나의 앨범이어야 하고. 그 방향 자체를 너무 못 잡겠어서 걸린 시간이 되게 길었어요. 근데 이제는 내 앨범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내가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무식하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 같아요.

 

 

 

 

 

LE: 장르적으로 또 [뽕] 같은 앨범을 하시게 되진 않겠죠 아마도? [뽕 2]인 거죠.

 

그런 건 있어요. 이 앨범을 놓고 봤을 때 만약에 마스터링까지 다 끝내고서 회사에서 앨범 제목 바꾸고 싶냐고 했으면 저는 바꿀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250 1집이라고 하자고 해도 그냥 OK. 그냥 뭐라고 해도 상관없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확실하게 뽕짝 음악이기도 하겠지만, 저한테는 ‘이건 내 음악이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LE: 인터뷰하는 오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해제되었어요. 그만큼 올해는 아마도 작년이나 재작년이랑 분위기가 다를 것 같은데요. [뽕]을 출산하듯 어렵게 발매하셨으니까 남은 올해 동안 바이닐 발매, 공연, 파티 등 계획되어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릴게요.

 

사실 구체적이진 않은데요. 앨범에 관한 고민이랑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이를테면 ‘뽕을 낸 사람으로서의 공연은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나는 디제잉이나 공연을 할 때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라는 생각을 일단 먼저 정하고 그 세팅에 맞춰서 뭔가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면서 제가 재밌어야 하니까.

 

 

 

 

 

LE: 그럼 올해 여름에 뵐 수 있겠죠..?

 

그때까지는 고민을 끝내야죠.

 

 

 

 

 

LE: 올해는 페스티벌, 파티가 진짜 열릴 거 같으니까 뵐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긴 시간 인터뷰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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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INS, melo, ATO(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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