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1 / E L U C I D / Experimental Hip Hop
https://www.youtube.com/watch?v=pf5C0-erJ0c
2023년 힙합씬은 billy woods의 것이었다. Kenny Segal과 함께한 <Maps>는 많은 이들에게 찬양의 대상이 되었고, Armand Hammer 명의로 발매한 <We Buy Diabetic Test Strips> 역시 앱스트랙 힙합 씬의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다. 엘루시드(E L U C I D)는 그의 조력자였다. 그는 <Maps>에서는 피처링 아티스트로서, <We Buy Diabetic Test Strips>에서는 메인 아티스트로서 엇나가지 않는 준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준수하기만 한 퍼포먼스라는 표현이 맞겠다. billy woods의 아성에 가려져서일 수도 있겠지만, 엘루시드는 두 작품에서 모두 항상 자신의 전부를 담아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항상 billy woods의 뒤꽁무니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의 랩과 가사, 결정적으로 음악은 다른 앱스트랙 힙합 아티스트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고 기본적인 수준이었고, 또 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9번째 정규 앨범, <REVELATOR>는 다르다. 본작에서 그는 완전히 자유로워진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일종의 해방감까지도 느끼게 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듬뿍 담아낸다.
<REVELATOR>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봐도 더욱 거칠고 어둡다. 본작에서는 강렬한 인더스트리얼 사운드가 가장 눈에 띄는데, 노이즈가 한껏 가미된 텍스처와 음산해진 분위기로 말 그대로 청자를 압도한다. 이런 부분이 특히 두드러지는 트랙은 오프너 "THE WORLD IS DOG"이다. 엘루시드가 직접 프로듀싱을 맡은 본 트랙은 인더스트리얼 힙합과 드럼 앤 베이스, 또 록을 결합해 과거가 자신들을 먹어치울 것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그의 래핑은 마치 무너진 도시를 묘사하듯 음울하고 냉철하며, 잿빛과도 같은 본 앨범에 어두움을 한껏 더해준다.
엘루시드가 그의 솔로작에서 가장 많이 받아왔던 비판은 바로 욕심이 너무 과했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직접적인 방향성을 추구하기보단 여러 장르와 음악들을 혼합해 하고 싶은 말들을 잔뜩 푸념해놓던 전작과는 달리, <REVELATOR>의 송라이팅과 리릭시즘은 더욱 간결해졌다. 본작은 그의 실험성이 최고조에 달한 작품이지만, 동시에 이전에 불필요하게 복잡했던 곡 구성에서 벗어나 보다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에 집중한다. <REVELATOR>의 가사는 함축적이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그리며,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혼란들을 그대로 담아냈다. "YOTTABYTE"나 "VOICE 2 SKULL"과 같은 트랙들에서 그는 짜임새 있는 라임 배치와 함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어두운 감정들을 파고들며, 이전의 그에게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게끔 한다.
수많은 프로듀서들이 참여했음에도 <REVELATOR>와 엘루시드가 자신만의 색을 찾고 흔들림 없이 앨범을 이끌어 나간다는 점 역시 인상적인 부분이다. Jon Nellen, DJ Haram, August Fanon, Saint Abdullah, Samiyam, Andrew Broder, The Lasso, Child Actor, 그리고 엘루시드 자신까지. 많은 프로듀서들이 힘을 보태 제작된 <REVELATOR>는 앰비언트, 드론, 노이즈, 글리치, 앱스트랙 힙합 등 수많은 장르들이 왜곡된 상태로 섞여져 있으나 엘루시드의 래핑, 또 다른 세션들의 연주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SLUM OF A DISREGARD"에서 그는 클라우드 랩과 사운드 콜라주 기법을 결합하여 앨범의 실험성을 더욱 부각시키는데, Luke Stewart의 단단한 베이스 라인과 그루비한 엘루시드의 래핑이 함께 해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한 엘루시드의 경험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간을 날카롭게 담아낸 가사와 그 위에 얹힌 바리톤의 보컬 역시 <REVELATOR>만의 색을 추가하는 지점이다. 그는 본작에서 특유의 추상적인 표현들을 통해 억압과 불안, 저항의 정서를 담아내며 청자에게 여러 질문들을 내던진다. "RFID"에서 그는 권력의 남용과 감시 체제에 대한 불안들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IN THE SHADOW OF IT"에서는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끈질긴 인간의 모습을 그리며 자신만의 방식대로 감동을 선사한다.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닌 그는 자신이 느꼈던 소외감을 앨범 전반에 걸쳐서 구체적으로 풀어내며, 그의 보컬 역시 앨범에서 하나의 악기와 도구로 작용하며 비극적이고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REVELATOR>은 결론적으로 그가 지금까지 이뤄낸 최고의 성취이다.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단박에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더욱 간결해졌고, 동시에 여전히 흥미로운 음악들을 선보이며 자신의 새로운 면모들을 양껏 뽐냈다. <REVELATOR>는 엘루시드의 돌파구와도 같은 작품이며, 여러 드라마와 스펙터클한 이야기들을 담아내며 심도 있는 감상을 유도한다. <REVELATOR>는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이들, 이를 위해 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이들, 또 끈질기게 희망을 좇고 있는 이들을 위한 양식이 되었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REVELATOR>는 충분히 가치 있는 작품이다. Light 8
본 리뷰는 힙합 유저 매거진 w/HOM #16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보러가기 -> https://drive.google.com/file/d/1vElwXaI1wM3Ivi95-5-uuqgY_LdiChmB/view
내일도 5개 올릴게요 호호
추천도 누르셈
님 폭주 뭐임;;;;
감사함니다 글 다 읽어볼게요
이거 진짜좋음
이야
리뷰글들 하나하나 다 좋네요
깜빡하고 안 들었는데 빨리 들어야겠네요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올해 완전 초인지 작년 완전 말인지에 밴캠으로 낸 한곡짜리 그거 어떠셨는지도 궁금하네요
리뷰 급발진 뭔데
와 엄청 많이 쓰셨네요 양질의 글 잘 읽었습니당
I feel like everybody knew but me...
미친 허슬러 사랑해요
와 리 뷰 가 5 개 나 !
다 들어보고 다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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