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날이 추워짐에 따라 방구석에 박혀있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불 속에 들어간 후 귤 까먹으면서 음악 듣는게 즐겁네요.그런 의미에서 간단하게 최듣앨이나 올려봅니다.
1.Tim Buckley - Lorca
저는 사실 포크 음악에 익숙한 사람은 아닙니다. 기껏해야 아오바 이치코, 팀 버클리 정도밖에 안 들어봤습니다. 그럼에도 한가지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것은, 팀 버클리가 포크라는 장르 자체를 굉장히 뛰어나게 활용한다는 점입니다.이 앨범의 하위 장르는 '프리 포크' 입니다.주로 비구조적이고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메인으로 하며, 멜로디의 반복과 즉흥연주가 특징이죠.즉흥성과 반복이 주된 특징이기 때문에 음악 장르는 본질적으로 몽롱한 특성을 띄게 됩니다.이 점에서 이 앨범이 진가를 발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앨범의 표지와 같이 흰 공간을 초원처럼 광활하게 펼쳐나가는 사운드 스케이프는 그 자체로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심상을 선사합니다.기타, 팀 버클리의 보컬, 오르간 등의 구성이 서로 즉흥적으로 음악을 이끌어가면서 끝없는 무의식의 굴레에 빠지게 되는것이 이 앨범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또 하나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한다면, 버클리의 독특한 보컬 활용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이 앨범에서 버클리는 단지 노래한다고만 하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노래한다기보단 목소리 자체를 공명시킨다고 할 수 있겠네요.그는 음악을 하면서 자신의 진정한 음악적 정체성에 관해 궁리해 왔습니다.그러한 궁리에 대한 해답을 통해, 그는 평범하게 노래부르는것을 거부하기로 합니다.그는 대신 울부짖고, 허밍하며, 단어를 길게 늘어트려 얇게 펴냅니다.그 과정에서 단어 하나하나가 영적인 심상을 얻게 되어 음악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것이죠.개인적으로는 제가 지금까지 들은 사이키델릭 음악 중 최고였습니다.사이키델릭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최애 트랙: Lorca, Nobody Walkin'
2.Vladimir Horowitz - danse macabre
두번째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연주한 '죽음의 무도' 입니다.죽음의 무도는 본래 프랑스의 음악가인 카미유 생상스가 작곡한 음악 중 하나이지만, 유명한 비르투오소인 프란츠 리스트가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하고, 여기에 호로비츠가 어려움을 더 끼얹어서 만들어진 형식입니다.20세기 최고의 레전드 피아니스트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초기 피지컬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음악으로 유명하죠.당대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넘사벽 그 자체였습니다. 미친듯이 정교하게 쪼깨지는 셈여림 조절, 피아니시모부터 포르티시모까지 아름답게 연주해내는 넓은 연주능력, 여러 난해한 패시지들을 가볍게 넘겨버리는 테크닉 등으로 유명하며, 그 중 1920~1950년대까지의 초기 호로비츠는 단연코 테크닉적으로 압도적이죠.그렇기에 그와 비견될만한 피아니스트가 존재할진 몰라도 그를 상회하는 연주의 피아니스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호로비츠가 연주한 죽음의 무도를 통해 위와 같은 점을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보통 피아니스트들은 다음과 같은 템포가 빠른 곡을 연주할땐 힘이 부치기 마련이죠.그렇기에 한가지 방법을 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피아노 페달을 사용하는 것입니다.페달을 통해 음을 흘리거나 템포를 약간씩 낮춤으로써 자체적으로 컨디션 조절을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초기 호로비츠는 이러한 방식을 전혀 쓰지 않습니다. 아예 페달을 쓰지 않고 모든 음들을 하나하나 뚜렷하게 연주하며,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템포를 자체적으로 올립니다.여기에 추가적으로 악보에 쓰여있지 않은 음표들을 프리스타일 형식으로 추가하기도 하며, 왼손은 코드를 연주하고 오른손은 옥타브로 연주하는 절정부를 양손 옥타브 형식으로 바꿔치는 충공깽을 선사합니다.이 모든게 페달 하나 없이 흘러간다는 점에서 인상깊죠.이러한 양손 옥타브는 호로비츠가 편곡한 죽음의 무도에서도 보여집니다.7분 10초의 양손 옥타브 글리산도 연주는 기계같은 속도와 섬세한 셈여림 조절을 통합하여, 마치 옥구슬이 은쟁반에 굴러가는 것 같은 인상을 느껴지게 합니다.스크랴빈과 라흐마니노프도 인정한 피아니스트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뛰어난 연주의 음악을 듣고 싶다면 추천하는 피아니스트 입니다.
3.Patricia Taxxon - TECHDOG 5
세번째는 인디 음악가인 택손이 작곡한 다크 앰비언트 음악입니다.독특한 전자적 느낌이 특징인 음악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이 앨범은 도입부 부터 특이하게 존재감을 뽑냅니다.무엇인가가 지지직 거리고, 튀어오르고, 패닝 되고, 폭발합니다.이후 특정한 시간이 흐르게되면 격동은 더욱 더 심해지고 특유의 음산한 기운을 발산하게 되죠.이 앨범에서의 감상 포인트는 이러한 전자기적 사운드가 어떻게 튀어오르고 음악을 구성하는지 입니다.어떨때는 스프링같이 바닥에서 튀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되기도 하고요, 벽끼리 튕기면서 리듬감을 만들기도 합니다.또 어떨때는 조용한 앰비언트처럼 잔잔한 느낌을 만들기도 해요.사운드 스케이프를 한가지로 고정시키지 않고 다양하게 구성한 것이 맛있습니다.개인적으로 집중하기 좋은 음악이라 수능공부 할때도 듣던 음악이에요.앰비언트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한번 시간을 들여 음미해 보는것도 좋을것 같네요.
-최애트랙:
CGCTCGCHCGTGOGTHTDTHOHEHODOEODEDEDE, GOGCGOGHGOCOEOCHCDCHEHTHEDETEDTDTDT
4.The caretaker -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
최근에 엘이에 얘기가 많이 나오게 되면서 다시 들어본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 입니다. 케어테이커는 정말 들어도 들어도 느껴지는 점이, 소리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것 같습니다.자신이 원하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왜곡해야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요.이렇게 정교한 음향적 체계가 6개의 시리즈 형식을 만들게 되면서,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냅니다.1~3스테이지까지 왜곡과 원본을 점진적으로 섞는것을 통해 부분적으로 기이함을 느끼게 한다면, 4~5스테이지 까지는 음향적 맥시멀리즘을 통해 치매 환자의 정신적 세계를 효과적으로 구성해냅니다.이게 정말 대단한것 같아요.4,5스테이지의 노이즈 같은 소리들이 하나하나 정교한 레이어층으로 이루어진다는것을 처음 알게됐을때의 느낌은 정말 감탄적입니다.이어서 6스테이지에 이르게 되면, 맥시멀리즘에서 미니멀리즘으로 넘어가 유종의 미를 이루게 되죠.1~5스테이지에서 쌓아올린 빌드업이 존재하기에 6스테이지의 미니멀리즘이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케어테이커의 이러한 음향적 조작 중 참 기억에 남는게 하나 있습니다. 3스테이지에서는 'Long term dusk glimpses'라는 제목의 트랙이 존재합니다.이 트랙에서 언급된 'dusk' 즉, 황혼은 치매 환자들이 겪는 '일몰 증후군'을 의미합니다.이는 치매를 비롯한 여러 환자들이 낮에는 상대적으로 멀쩡하다가도 밤이 되면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는 현상이며, 치매 환자의 경우는 쉽게 불안해지거나 예민해지며 기억의 혼란도 심해지게 된다고 해요.일몰 증후군이라는 컨셉에 맞게 음향적으로 조작한 케어테이커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지점입니다.앞선 트랙은 루프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본 트랙의 루프 막바지인 1분 30초쯤에 사운드에 살짝 왜곡을 가함으로써 밤을 나타냅니다.그 후 노래가 툭 끊기고, 다시 왜곡이 줄어들면서 반대로 아침또한 상징성을 가지게 되는것이죠.6스테이지에서의 또 다른 예시도 존재합니다.6스테이지의 'Place in the World fades away'는 소름돕게 치매환자의 임종을 표현해냅니다.6스테이지의 미니멀리즘에 의해 드론소리가 계속 이어지다가, 소리가 점점 선명해지면서 회광반조를 표현해내는 것이죠.긴 드론소리 이후에 오르간이 툭 끊기더니, 누군가가 계단을 오르락하는 소리가 들립니다.이로써 사람들이 급하게 모여드는것을 표현하고, 후에 장송곡과도 같은 화음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노랫소리 뒤에서 천천히 눈을 감는 환자는 의식이 천천히 몽롱해짐을 느낍니다.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고, 생각이 파편화되며 앞이 흐려집니다.이후 1분간의 정적이 앨범을 감싸면서 시리즈가 막을 내리게 되죠.소리의 왜곡 및 변형을 사용하여 주제를 표현하다가 마지막에는 최종적으로 소리의 부재인 '침묵'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거대한 온점을 찍는것이 참으로 인상깊습니다.그것은 아마 치매와 소리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겠죠.
-최애 트랙: It's just a burning memory, Long term dusk glimpses, Place in the World fades away
글을 쓰다가 너무 길어져서 4개짜리로 끊도록 하겠습니다.이게 정보글 쓰던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세세하고 장황하게 설명하게 되네요.그래도 유저분들에게 좋은음악을 공유 할 수 있으면 그걸로 최고입니다 ㅎㅎ 다들 좋은 주말 보내시고, 올해 연말을 행복하게 끝마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당
앨범 느낌과 딱 맞는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 리뷰글이네요ㅋㅋㅋㅋ
앨범 짧은 리뷰까지 너무 좋아요 1,3번 줍줍해갑니다
죽음의 무도 음악 시간에 듣고 집에서 찾아본 곡중 하난데 줍줍해갑니다
back there benjamin이 EATEOT 최고트랙인건 유명한 사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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