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Z-Ad7eObLcg
[ABOUT] 조동희 『꽃차례』, 차근차근 홀로 서는 길 거장의 가족이라는 것은 축복이자 그늘이다. 언제나 가족의 이름이 호명된 덕에 경계 없이 환대를 받고, 무엇보다 가족으로서 음악적, 정서적 토대를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축복이다. 어려운 길을 갈 때 어쩌면 덜 헤매고 기댈 곳이 있어 좋았던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론, 든든한 우산 아래 당장의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더라도 악천후를 맞서 뚫고 지나는 방법을 세세히 헤아릴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또한 조동진과 조동익의 세계와 무엇이 비슷하고 다른지, 어떤 것을 받고 키웠는지를 가늠하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눈과 귀들을 마주했을 것이다. 축복의 매혹, 그늘의 무거움 속에 음악의 길을 제법 오랜 시간 걸어가고 있는 조동희는 익숙함에 안주하는 길을 택하지 않기로 한 것 같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었다. 은자의 풍모를 지닌 조동진, 조동익과 달리 조동희는 다양한 사람을 끌어들이는, 열려있는 품성과 매력으로 자신만의 자양분을 부지런히 찾았다. 때로는 음악이고 때로는 책이고 때로는 다양한 예술이고 또 때로는 사람들이었을 테다. 그 사이 자신만의 독창성을 발휘해 기획을 하고 일을 꾸리고 사람을 모으고 무언가를 굴리는 시간이 쉼 없이 흘렀다. 그리고 그 시간은 차근차근 쌓여가고 있었다.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조동희의 것으로. 조동희의 세번째 정규 앨범 『꽃차례』는 4년만에 도착했다. 여전한 것은 그와 공명하는, 익숙하고 믿음직한 이름들, 조동익과 박용준을 비롯한 조력자들이 여전히 이 안에 있다는 것. 새로운 것은 다정한 이름들 사이에서 조동희가 홀로 서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조력자들을 만날 수 있는 축복의 환경은 여전하지만 이제 그는 그늘을 걷고 바닥부터 자신의 손을 움직이기로 했다. 작곡과 작사에 더해 편곡과 프로듀싱에 적극적으로 들어가 그야말로 이 음반 전체의 흐름을 감독하고 있다. 왜 좋았는지 몰랐던 것들의 상세를 알게 되고 지나치기 쉬운 구체를 직접 만지기 시작하면서 음악은 더욱 비워졌다. 더 알게 되면 도움의 방향도 그의 손에 놓이게 된다. 눈에 띄지 않을 작은 것들조차 그가 원하는 결대로 빛이 난다. 애월은 자신에게도, 그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각별한 공간이다. 애월의 바다와 하늘, 달과 바람은 어떤 기억이다. 그곳에서는 “잊혀진 이름을 불러”보고 “그대는 잘 있는지”(「애월에서」) 기다리게 되는 곳이다. 산책은 낮은 첼로 현이 따뜻하게 감싸 안는 소리가 어울리는, 각별한 추억 속에서 시작된다. 그 속의 빛을 그는 잊은 적이 없다. 조바심과 거리가 먼, 느린 속도로 움직여 왔던 그에게도 남들과 다른 보폭과 속도가 마냥 쉬웠을 리 없다. 함께 음악하던 동료들이 바삐 움직일 때 아이들을 갖고 가족을 이루느라 멈춘 시간도 있었다. 많은 여성 창작자들은 비슷한 멈춤을 경험했을 것이고 조동희의 전작 『마더』 프로젝트에서는 그런 동료와 선후배들을 모아 서로를 보듬었다. 비단 육아기가 아니더라도 저마다의 사정으로 멈추거나 느려지는 걸음들이 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위로하듯 모두에게 말을 건넨다. “우린 작고 완전한 우주”이니 “늦게 피는 것이 뒤처진 게 아니”라고, “우리만의 시간을” 살아가며 꽃을 피우는 걸 믿으라고(「꽃차례」). 달콤한 한 시절의 이야기는 역시 발라드가 어울린다. 「연애시」의 달달한 멜로디는 펑크락 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이 작곡했다. 천하의 캡틴락이 발라드를 작곡하게 된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낭만의 대표 한경록에게 낭만을 되찾을 노래를 만들자’는 조동희의 제안이 만들어낸 사건. 고즈넉한 듀엣 곡이 이번에는 박용준의 편곡으로, 혼자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났다. 기타의 찰랑임 속에 주고받던 달콤한 대화가 묵직한 베이스 라인의 두근거림 속 독백으로 바뀌었다. “이 세상 한 번쯤은 그 모든 걸 바쳐 아무 남김없이 사랑을 해요”라고 외치는 순간, 캡틴락의 기개와 조동희의 가사가 낭만을 전령 삼아 한 몸처럼 어울렸다. 서늘하게 바스락거리는 그의 음성은 설렘만큼이나 쓸쓸함에도 어울린다. “너는 말할 수 없이 외로웠구나, 너는 벼랑 끝처럼 힘들었구나”라며 조용히 이야기하는 음성(「너는」)은 데뷔 앨범 속 「그게 나예요」를 떠올리게 한다. 싱글로 발표했던 트랙에서 드럼 소리가 거두어지고 더욱 적요해졌다. 찬 바람을 뚫고 들어와 앉은 작은 방에서 오롯이 마주한 눈길처럼 쓸쓸한 목소리지만, 어깨를 어루만지듯 따뜻하게 위로한다. “모든 건 반드시 지나간다”고. 고요 속의 집중이 주는 힘을 알고 건네는 온기다. 이어지는 담담한 낭독 「시절사전」은 얼핏 단어의 나열이지만 듣고 나면 한 시절의 이야기다. 만남, 고백, 사랑, 희망, 이별, 아픔, 추억, 시간 그리고 사랑. 두 번 등장하는 하나의 단어 ‘사랑’은 “잠든 얼굴, 햇빛을 가려주는 손차양”에서 “니가 더 빛나고 편해지길 빌어주는 것”으로, 그것도 “아무 상관없이” 빌어주는 것으로 되어간다. 노래가 되는 시를 사랑한 그는 시가 되는 노래를 쓰고 부른다. “우리만의 시간”(「꽃차례」)을 이야기하던 그의 위로는 “시간만이 답을 주었네”(「시간에게」)라는 당찬 응원으로 조응한다. 째깍대는 시계 소리는 조급하게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경쾌하고 꾸준하게 걷고 뛰는 소리다. “서툴렀던 나를 안아 줘 / 그 어떤 모습도 모두 나였으니” 힘차게 외치는 음성은 듣는 모두에게 들려주는 응원가가 된다. 꾸준한 걸음 안에는 가만한 시간을 잊어서는 안된다. 거기, 천사가 머물고 있으므로. “침묵 속에 더 많은 것을 들으며” 귀를 열고 “깃털처럼 내려앉는 평화”(「천사가 머무는 시간」)를 맞는다. 먼 길의 여행자처럼, 기나긴 걸음 가운데 문득 갖는 침묵의 시간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어쩌면 그가 가진 축복 속 조동진과 조동익이 모두 공유했던, 닮은 마음이다. 앨범을 닫는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나절」이다. “등을 달구던 붉은 해 / 서쪽 하늘로 떠나가고” 도래하는, 그림자가 길어지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시간. 짤막한 말들은 향수가 어린 클래식 기타 선율 속에 피어오른다. 아기에게 낮게 불러주는 자장가처럼 밥 짓는 냄새 너머로 퍼지는 따스함처럼 아늑하게 소리들이 사라진다. 그가 프로듀싱했던 기타리스트 드니성호의 음반에 수록되었던 곡을 새로운 마스터링으로 담았다. 이번 음반에 새롭게 합류한 조력자, 마스터링 엔지니어 황병준은 미국에서 활동하며 클래식 음반 작업으로 그래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걸출한 소리의 장인이다. 선선한 애월 해변의 산책에서 시작된 걸음이 추억과 독백, 위로와 응원을 거쳐 해가지는 저녁, 집으로 돌아와 아늑하게 마무리되는 내내, 깨끗하고 편안한 균형을 맞춰내고 있다. 조동희의 『꽃차례』에는 화려한 요리로 현혹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성들인 따뜻한 밥 한 공기 같은 슴슴한 소리가 담겼다. 무한화서의 꽃들처럼 위계도 방향도 정해져 있지 않지만 자신의 시간이 되면 피어나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 음악을 들을 때만은, 팽팽하고 날이 선 마음을 풀어 놓고 소박하고 편안해지면 좋겠다. 2024년 11월 신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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