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장르 음악 씬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몽골은 동유럽권에도 수요가 있는 세계적인 메탈 밴드 더 후(The HU)를 배출한 국가다. 마찬가지로 일렉트로닉 씬과 힙합 씬 역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본과 태국에 이어 몽골의 힙합 아티스트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몽골에서는 어떤 아티스트들이 활약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턴더르(ThunderZ)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요즘 가장 잘나가는 랩 스타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턴더르를 언급한다. 그는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저 수학을 좋아하고, 머리가 영특했기에 중산층이 되는 꿈을 가진 무난한 친구였다. 그렇게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과로 진학한 그는 원하던 대로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2014년, 대학생 우츠랄을 래퍼 턴더르로 다시 태어나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무명 배틀 래퍼로 간간이 활동하던 그가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랩 컴피티션에 나간 것이다. 4회차까지 진출해 매스컴을 탄 턴더르는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된다.
규모가 크다고 보긴 힘든 몽골의 음악 시장 때문이었을까? 그는 음악과 학업, 직장을 병행하며 몇 년을 보낸다. 그런 턴더르가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 건 메이저에 데뷔한 지 채 2년이 넘지 않은 2019년부터였다. 어느 순간 자기 확신을 갖게 된 그는 차근차근 실력을 다듬어 싱글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늦은 시작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참고로 그의 이름을 영문 표기 상 '썬더'로 발음하기 쉽지만, 몽골 현지인들의 발음은 '턴더르' 혹은 '탄다르'에 가깝다. 물론, 번개를 뜻하는 그 영어 단어가 맞다.
https://www.youtube.com/watch?v=WlfahGW_E0A
https://www.youtube.com/watch?v=hjmKgmyy_Lo
긴진(Ginjin)
1992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긴진은 글로벌한 삶을 살았다. 2살 때, 부모님에게 안겨 몽골로 돌아온 그는 뮤지컬과 연극을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한다. 하지만, 여행사를 운영하던 부모님은 긴진이 국제 관광학과에 진학하길 원했고, 결국 대만 가오슝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래도 음악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여가 시간마다 자신이 좋아하던 트랩 뮤직을 만들었고, 타오르는 열정은 믹스테입 [Kaohsiung’s Most Wanted]이란 결실을 맺게 된다. 그렇게 대만에서 발표한 싱글들이 고국에서도 인기를 얻는 것을 확인한 긴진. 그는 2015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몽골 힙합 씬에 출사표를 던진다.
긴진이 몽골 힙합 씬에서 중요한 이유는 음악적으로 문익점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2017년에 발표한 싱글 "Pretty Girls Like Trap Music"의 히트는 몽골 힙합 씬 내부에 트랩 사운드의 수요가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계기가 된다. 추후에도 그는 "Pretty Girls Like Drill Music"을 통해 UK 드릴 사운드 도입에도 앞장섰다. 이후로도 시카고 드릴, 아프로비츠,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긴진은 현재 몽골에서 가장 트렌디한 래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lvEIl0eqy8
https://www.youtube.com/watch?v=TYdCGA2CU94
미세스 엠(Mrs M)
배우를 겸하는 미세스 엠의 별명은 '몽골 힙합 씬의 여왕'이다. 2015년, 혜성처럼 등장한 그녀는 릴 떠그 이(Lil Thug-E)의 지원을 받아 데뷔와 동시에 유명세를 떨쳤다. (참고로 릴 떠그 이는 긴진의 몽골 데뷔를 지원했던 유명 프로듀서다.) 에리카 바두(Erykah Badu), 커렌시(Curren$y), 페기 구(Peggy Gou) 등에게 영향을 받아 팝, 힙합, 소울, 일렉트로닉을 오가는 미세스 엠의 음악에 대중들이 반응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수많은 아시아 힙합 레이블이 러브콜을 보낼 만큼 몽골 힙합을 상징하는 인물로 성장한다.
미세스 엠의 커리어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긴진과의 협업이었다. 둘은 10곡이 넘는 콜라보 트랙을 발매했다. 그중 "Boroo"는 330만이 겨우 넘는 몽골의 인구에도 불구하고, 총 1330만 유튜브 조회 수에 이르는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세스 엠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미 그녀는 여러 아시아 힙합 프로젝트들에 참여해 하이어 브라더스(Higher Brothers), 쑤나리(Tsunari), 오즈월드(OZworld)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여담이지만 지난 2월 홍대 클럽에서 열린 미세스 엠과 긴진의 내한 공연에는 서울에 거주 중인 몽골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는 후문.)
https://www.youtube.com/watch?v=Wn9yYRXfoUk
https://www.youtube.com/watch?v=y7xWjL7iXd0
빅지(Big Gee)
에프히로(F.HERO)가 태국 힙합 씬을 대표하는 OG라면, 몽골 힙합 씬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는 빅지다. 울란바토르 외곽의 게르 빈민촌에서 자란 그는 시인이었던 할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했다. 그러나 몽골의 공산 정권이 무너지던 90년대 초중반의 시대 흐름이 빅지의 진로를 바꿔버렸다.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인한 사회 변혁이 그에게 시집 대신 우탱 클랜(Wu-Tang Clan) 카세트 테입을 쥐여준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적던 시를 드럼 위에 읊기 시작한 빅지는 갈고닦은 기량을 발판 삼아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자신의 이름을 몽골 전역에 떨치게 된다.
어느덧 데뷔 13년 차를 맞이한 빅지는 정치 이야기부터 갱스터리즘, 현대적인 하수, 전기 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몽골 하층민의 삶을 적나라하게 가사로 다뤄왔다. 영국의 영상 감독 알렉스 드 모라(Alex De Mora)가 몽골 힙합 다큐멘터리 <Straight Outta Ulaanbaatar>의 주연으로 그를 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해당 작품은 CNN, BBC에도 소개될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몽골 힙합 씬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빅지는 현재도 한국의 매니악(Man1ac), 스컬(Skull), 쿤타(Koonta), 조광일, 일본의 AK-69 등과 협업하며 몽골 힙합의 거목으로써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CDG1yRcySg
https://www.youtube.com/watch?v=Q0H4i3nInjg
영 모쥐(Young Mo'G)
최근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를 기록 중인 영 모쥐 또한 턴더르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18년, 몽골의 싱어 엔클렌(Enkhlen)의 지원 사격을 받아 데뷔한 그의 첫 싱글은 얼터너티브 알앤비에 가까웠다. 그러나 몇 달 후, 영 모쥐는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의 "Coffee Beans" 비트에 랩을 한 영상을 공개하며 자신의 DNA가 래퍼임을 내비쳤다. 이후, 꾸준히 싱글과 뮤직비디오를 발표한 그는 랩과 싱잉의 경계를 오가며 몽골 힙합 씬 내에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몽골 힙합의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그가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 시작한 시기는 2022년이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영 모쥐의 음악에는 과감한 시도가 더해졌다. 예시로 그는 "TVVX"에서 몽골 전통 음악과 힙합을 결합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뮤직비디오에도 몽골인의 정체성을 가득 담았다. 이어 히트곡 "Naadii"에서는 몽골 전통 음악과 하우스를 결합해 결과적으로 유튜브 2,0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는 대성과를 거뒀다. 이런 영 모쥐의 기량을 확인하고 싶다면 가장 최근에 발표된 "Shuniin Gudamj"를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pvfVxc7ixc
https://www.youtube.com/watch?v=wbpBSesCY7g
새쉬(sash.)
새쉬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몽골 힙합 씬의 은둔자'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알려진 정보가 적을뿐더러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일상과 몇몇 작업물을 알리는 포스트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뮤직비디오 조회 수를 살펴보면 낮게는 80만, 높게는 700만에 달하는 작업물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런 상반된 결과의 원인은 새쉬의 음악에서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기존 몽골의 다른 힙합 아티스트들과는 조금 다른 결의 음악을 선보이기에 충성도 높은 마니아층이 형성된 모양새다.
여기서 '다른 결의 음악'의 음악이란 2010년대 사운드클라우드 랩을 의미한다. 그의 초창기 커리어에는 스페이스고스트펄프(SpaceGhostPurrp)와 레이더 클랜(Raider Klan)의 영향이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며 스타일이 변화된 현재의 작업물에서도 근본적인 색깔은 여전하다. 음울하고 미니멀한 사운드가 돋보이는 "TWICE"의 경우 릴 핍(Lil Peep)의 "Lil Jeep"을 샘플링했고, 듀오 반데보(Vandebo)와의 협업 트랙 "Suicide"에서는 자신의 색에 맞춰 곡을 주도했다. 과거 코홀트(The Cohort)나 멤버스 온리(Members Only)를 좋아했다면 새쉬의 노래 역시 취향에 잘 맞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WeoM2_bgmk
https://www.youtube.com/watch?v=l9-gXgDoBSk
데상트(Desant)
빅지, 카(Ka) 등과 커리어를 시작한 데상트 역시 몽골 힙합 씬의 손 꼽히는 OG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은 서부의 고립무원, 그것도 겨울에는 영하 50도까지 떨어질 만큼 혹독한 지역인 자브헝이었다. 유목민 가정에서 말을 타고 초원을 뛰놀며 살았던 데상트는 학창 시절 울란바토르로 이사를 가고 나서야 힙합을 접했다. 이때 그는 몽골 힙합 1세대 크루인 다인 바 엔흐(Dain Ba Enkh), 투팍(2Pac), 에미넴(Eminem), 닥터 드레(Dr. Dre), 더 게임(The Game) 등에 매료되어 꿈을 키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데상트의 음악에서는 웨스트 코스트의 레이백 리듬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데상트는 힙합 레이블 투낫 레코즈(Toonot Records)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해당 레이블에는 제이슨(Jason), 빌갱(Bilgang), 오지(O.Z) 등의 래퍼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랩 스타 턴더르가 소속되었다. 이렇듯 투낫 레코즈는 몽골 힙합 씬을 견인하는 한 축으로서 자리매김했고, 글로벌 시장으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일례로 데상트와 투낫 레코즈는 지난해 공연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고, 대한민국의 제과 회사 오리온(Orion)의 협찬을 받아 사회 참여적인 메시지를 지닌 단체곡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veGF9_sLhA
https://www.youtube.com/watch?v=F0pOnKmv0tw
반데보(Vandebo)
반데(Vande)와 에보(Ebo)가 뭉쳐 반데보. 상당히 직관적인 팀명을 가진 이들은 2017년에 결성된 듀오다. 각각 1998년, 1999년에 태어난 두 래퍼는 울란바토르에서 멀지 않은 공업 도시인 다르항에서 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성인이 된 둘은 홈 스튜디오에서 시작해 열정 하나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데보는 2018년에 트랩 사운드가 메인이 된 첫 앨범 [Munkhud21]을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데뷔한다. 이후 이들은 꾸준한 작업량과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통해 몽골 힙합 씬의 젊은 세대를 이끄는 그룹으로 성장한다.
반데보의 존재감은 콜라보레이션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앞서 언급한 턴더르, 영 모쥐, 새쉬, 데상트 등의 대표곡에 이들의 이름이 함께 적힌 것을 보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반데보는 AM-C, 포우(FOUX), 더 와사비스(The Wasabies) 등 몽골의 일렉트로닉, 알앤비 아티스트들과도 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두 멤버가 가진 뛰어난 랩 스킬과 멜로디 라인을 짜는 능력은 타 장르 뮤지션들에게도 분명 매력적인 요소다. 이런 능력을 기반으로 반데보는 몽골 장르 음악 씬의 감초로 활약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GuEJOuFKj0
https://www.youtube.com/watch?v=bg22pMVa2FA
Editor
Destin
90년대의 붐뱁시대가 2010년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다
19년까지 트랩이 유행을 했지만
19년을 기준으로 몽골에서도 한 장르만 파는 것이 아닌
다양한 스타일에 젊은 아티스트들이 많이 생겼어요.
확실히 몽골에도 힙합 열풍이 한참 불고 있네요.
본글에 추가로 중저음의 영어 가사로 랩하는 Arman bakhytbyek와 금요힙합에서 오메가 님이 추천한 young lean과 노래를 낸 wondha mountain, 몽골의 블랙넛 168과 싱잉 랩 둘다 되는 290, 몽골의 크러쉬 davaidasha 까지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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