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HYPED:
‘UNHYPED’는 힙합엘이의 언더그라운드 큐레이션 시리즈로, 이 씬 안에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소개한다. 자신만의 위치에서 힘껏 소리를 내고 있지만, 아직 많은 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기회가 없는 그들. 장르, 경력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본 시리즈를 통해 소개될 아티스트들은 몇 년 안에 더욱 큰 주목받을 재능과 가능성을 지녔다. 그런 그들을 미리 발견하고, ‘하이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언하이프’의 상태의 그들이 만들어낸 솔직하고, 대담한 음악이 더욱 큰 울림을 줄지도 모른다.
UNHYPED: DAUL
‘UNHYPED’에서 열일곱 번째로 소개할 아티스트는 다울. 다울은 2010년대 이태원의 음악 씬에서부터 활동을 지속해 온 잔뼈 굵은 DJ/프로듀서다. 어느덧 9년 차 뮤지션이 된 그는 본인의 음악적 뿌리인 테크노와 하우스에서 힙합/알앤비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점차 확장해 나가고 있다. 미니멀함과 세련미의 멋을 아는 이에게 다울의 음악만큼 더 좋은 건 없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LE: 일단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다울: 제 소개하는 게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전원 웃음) 저는 전자음악, 힙합/알앤비 DJ 겸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다울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EP [Pipe Dreams]를 발매했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LE: 안 그래도 다울 님이 매주마다 소프(Soap)와 팀버하우스(The Timber House)와 같은 바에서 디제잉을 하고 계신 거로 알고 있어요.
요즘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영업 제한 조치가 많이 풀린 편이라, 바에서 디제잉을 하고 있거든요. 제가 칠(Chill)한 음악을 주로 트는 편인데, 소프나 팀버하우스 같이 넓은 장소가 여유롭게 음악을 틀 수 있는 곳이라서 저랑 잘 맞아요.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DJ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어요.
LE: 반가운 소식이네요. 다울 님이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했던 거 같아요. 일단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집에 클래식, 올드팝 컴필레이션 앨범이 있었고, 가족들이 항상 아침마다 클래식 앨범을 들었던 거 같아요. 또 어머니가 교육열이 높으셨던 분이셔서, 덕분에 피아노를 어릴 때부터 거의 7년 동안 쳤어요. 지금은 잘 못 치지만요. 그래도 초등학교 때 콩쿠르도 나가고 그랬어요. 이렇게 음악을 귀에 자연스럽게 익혔죠.
https://youtu.be/CxjuDxRU-t4
LE: 그렇다면 클래식을 들으며 자라 오셨다는 건데, 지금처럼 대중음악에 빠져들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저는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하고, 축구하고 그랬던 모범생이었어요. 중학교 땐 브리티시 록에 빠져서 오아시스(Oasis)나 라디오헤드(Radiohead)를 되게 좋아했고요. 당시가 썸41(Sum41), 린킨 파크(Linkin Park) 같은 록 음악이 유행하고 있을 때였죠. 이런 록 음악을 들으면서 막연히 록스타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만 딱히 음악을 하진 않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요.
고등학교 알게 된 친구가 저에게 처음 힙합을 알려주겠다면서 소울 컴퍼니(Soul Company)의 [The Bangerz]랑 데드피(Dead’P), 피타입(P-Type)의 음악을 보내줬어요. 그때 힙합을 들으면서 ‘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살 수 있구나’란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고, 막연하게 음악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모님께 학교를 자퇴한다고 그랬죠. 물론 집안의 반대가 심해서 당시에도 음악을 하지는 못하고, 막연히 생각만 했었고요.
LE: 그렇다면,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음악을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그렇죠. 대학교에서 비앙(Viann)을 만났거든요. 또, 당시에 알바하면서 DJ 레슨을 받았어요. 그때는 학교 수업도 안 가고 레슨을 가고 그랬었죠.
LE: 아까 전 이야기를 들어보면 랩을 통해 힙합 음악을 처음 아시게 된 거 같거든요. 그런데 랩 레슨이 아니라 DJ 레슨을 받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진짜 웃긴 게, 그때 저는 DJ가 뭔지도 모르고 일단 DJ 레슨을 받으러 갔어요. (전원 웃음) 사실 저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하는 걸 안 좋아하는 편인데요. 그 당시에도 랩 하는 친구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었거든요. 그 때문에 저는 일부러 (친구들과) 다른 걸 하려고 DJ 노아(NOAH) 님에게 레슨을 받으러 갔었죠. 그렇게 DJ가 뭔지도 모르고 믹싱과 스크래치를 배웠어요. 그때부터 비앙과 함께 프로듀싱도 하면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죠.
LE: 비앙 님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사실, 다울 님은 아이아이아이(I II I)라는 이름으로 비앙 님과 함께 배드애스서울(Badassseoul)이라는 집단에서 활동을 한 거로 알고 있어요. 배드애스서울은 어떻게 결성된 건가요?
배드애스서울은 사실 비앙이 주도적으로 만든 크루였어요. 수원 출신이었던 저를 제외하고, 비앙의 동네였던 목동 출신의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었고요. 배드애스서울에는 비앙과 저를 포함해서 영상하는 친구, 노래하는 친구, 무용하는 친구까지 총 다섯 명이 속해 있었어요. 저희가 음악을 시작하려고 할 때는 전공도 음악과 전혀 달랐고, 주변에 같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비앙이 예술이란 명목으로 자기 동네 친구들을 데려와서 같이 뭔가를 하려고 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어설프기도 하고 웃기지만요.
LE: 이렇게 결성한 배드애스서울이 다른 이들의 가시권에 든 게 2013년 후부(FUBU)의 힙합 아티스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었던 UBK 덕분으로 알고 있어요. 다울 님도 그때 처음 자신의 작업물을 외부에 공개한 건가요?
맞아요. 그때 처음으로 음악을 올린 거였어요. 그전까지는 비앙하고 둘이서만 음악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2013년 초 즈음에, 음악을 다른 사람한테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비앙과 함께 저희 음악을 공개할 만한 곳을 찾고 있었죠. 그러다가 보게 된 게 DJ 소울스케이프(Soulscape) 님이 큐레이팅하는 UBK라는 프로그램이었죠. 그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곡을 들려주고 피드백을 받았는데요. 피드백을 받고 알게 된 사람이 후디(Hoody) 누나랑 사일리(Sailli), 뷰티풀 디스코(Beautiful Disco), 스탈리(Stally), 터널넘버파이브(Tunnelno5) 같은 분들이었어요. 그분들과 SNS에서 교류하다가 당시 열린 아이멧뮤직(imetmusic)의 파티에서 실제로 보게 되었죠.
LE: 안 그래도 다울 님이 아이멧뮤직의 파티에서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수퍼프릭레코즈(SuperFreak Records)에 입단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네. 2013년 초로 기억해요. 제가 그때 사일리 형을 만났고요. 다음 파티 때 제가 비앙이랑 진보 형, 무드슐라(Mood Schula) 형을 비롯해서 한창 활동하고 있던 형들한테 데모 CD를 드리면서 사람들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제가 사일리 형이랑 음악적 색이 잘 맞아서 같이 음악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퍼프릭 레코드에서 컴필레이션 앨범을 같이 참여하게 되었고요. 그때 같이 모였던 멤버들이 비앙, 뷰티풀 디스코랑 250 형, 에이직(Aezik) 형 그리고 레어버스(Rarebirth)가 있었죠.
LE: 말씀하신 것처럼, 2010년대 이태원을 기반으로 수퍼프릭레코즈를 비롯한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한 씬이 생성되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맞아요. 저희 수퍼프릭도 있었고요. 360 사운즈(360 Sounds) 형들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 움직임의 시작은 시모 앤 무드슐라(Simo & Mood Schula) 분들이 앨범을 발매한 후 같아요. 외국도 외국이었지만, 한국에서도 그런류의 비트뮤직 앨범들이 나왔던 때였거든요. 진보형의 [Fantasy]나 섬데프(Somdef) 형 같은 좋은 앨범들이 많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케이크샵(Cakeshop)으로 가서 공연과 파티를 다 보고 그랬죠. 저도 당시에는 그런 음악을 하기도 했고요.
LE: 당시에 기억나는 씬의 모습이 혹시 있으실까요?
당시의 케이크샵은 지금의 클럽들이랑 분위기나 느낌 자체가 매우 달랐죠. DJ들도 ‘너희들 이거 알아?’ 하면서 새로운 거 틀어 주면, 음악 들으러 온 사람도 ‘아, 이거 진짜 좋다!’ 이러고요. (전원 웃음) 그리고 또, 제가 기억하는 건 진보 형과 무드슐라 형이 잠깐 했던 다운링크(DNLNK) 라는 팀의 쇼케이스가 있었는데요. 영국에서 조이 오비슨(Joy Orbison)의 “HYPH MNGO” 이라는 유명한 트랙이 있었는데, 당시 다운링크 쇼케이스에서 그 노래를 처음 듣고 진짜 너무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당시가 한국에서 UK 음악이랑 비트 뮤직 씬이 다 합쳐질 때라서 너무 재미있었죠. 분위기도 좋았고요. 어찌 보면 그런 케이크샵 등지에서 열렸던 파티가 우리나라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이 교류하는 신의 기본이 된 거 같아요. 그전에도 이태원 신은 있었겠지만, 지금 말하는 이태원 신이 완전히 시작하는 단계였던 생각이 들어요.
DAUL: 현재
“지금 해야 할 고민은 미리 다 해 놓았다고 생각해요.”
LE: 2013년 당시 다울 님이 아이아이아이란 이름으로 짰던 셋과 리워크, 리믹스들이 수퍼프릭레코즈의 사운드클라우드에 남아 있기도 해요. 그때가 다울 님이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인가요?
그런데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요. 저는 아이아이아이로 활동하면서 거의 작업물을 못 냈어요. 왜냐면 수퍼프릭레코즈에서 [Freakloud]라는 첫 컴필레이션 앨범이 2013년 10월에 나왔는데요. 제가 거의 10월 말에 군대에 갔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이아이아이로 활동을 한 게 없었고, 저 대신 비앙이 활동을 열심히 했죠. 그래도 그때 믹스처(Mixture)에서 음악을 틀었고요. 이태원 지구촌 축제가 처음 열릴 때라서, 사일리랑 같이 음악을 틀었어요. 그렇게 시작을 하다가 입대를 하게 되었죠. 그렇게 보면 음악가로서의 첫 시작은 2013년이 맞는 거죠.
LE: 제대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시게 된 건 전역 후 부터겠네요. 그렇다면 그 때의 아이아이아이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꾼 이유가 특별히 있었나요?
사실 아이아이아이는 이름부터 말이 안되잖아요. 그런데 어릴 때 저는 사람들이 안 좋아하고 모르는 음악을 하자는 가치관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름부터 이상하게 짓고, 음악도 테크노나 UK 개러지(Garage) 음악만 만들었거든요. 또, 이전에는 이태원에서만 계속 있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태원에 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들,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 같은 음악 이야기만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군대를 가니까, 진짜 제가 듣는 음악이나 플레잉하는 음악을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그렇게 제가 저만의 세상에 너무 빠져 있었다는 걸 느끼면서, 점점 다른 사람들이 듣는 음악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죠. 사람들이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구나. 또 음악가가 사람들이랑 소통하기 위해서 음악을 만드는 것인 만큼, 사람들이 느끼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물론, 소통하지 않더라도 그런 음악만의 가치가 있긴 하지만요. 어쨌든 군대를 갔다 와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LE: 그렇다면, 다울로 활동명을 바꾸면서 음악 스타일도 변하게 된 건가요?
흠… 음악 스타일의 변화가 왔었는데요. 가장 컸던 이유가요. 제가 고민이 많던 시기에 한 달 정도 영국이랑 네덜란드를 갔다 왔고, 어느 날은 영국의 패브릭(fabric)에서 열리는 테크노 파티에 갔거든요. 거기서 느낀 게, ‘영국에서의 테크노는 그만큼의 수요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유행하고 씬이 돌아가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음악을 하는 환경이랑 음악을 떨어뜨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죠.
물론, 한국에도 지금은 리스너들도 많아졌고 테크노 클럽들도 많아졌지만, 그 때는 정말 몇 안 되었거든요. 그러다가 한국에 오니 ‘여기서 테크노를 하는 게 맞나?’란 생각이 들었고, 대신에 제가 할 수 있는 음악이 뭔가를 고민하게 되었죠. 남에게 무조건 들으라고 강요하면서 어려운 음악을 하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그러면서 제가 원래 하고 있던 하우스나 테크노와 한국에 있던 팝이나 가요, 알앤비와의 접점을 찾아 지금의 제 스타일을 만들게 되었고요. 결국, 예전의 아이아이아이 시절과 지금의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이 달라지면서 이름도 새롭게 만들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22VMYkTkAsg
LE: 그렇게 다울이라는 이름을 쓰시게 되었군요. 그런데 음원사이트를 찾아보니, 지금의 이름으로 외부인과 공식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건 2017년 리코의 “마지막이야”로 나와 있어요. 맞나요?
공식적으로 나온 건 “마지막이야”가 맞을 거예요. 당시에는 사운드클라우드 활동만 할 때라서, 뭔가를 공식적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있었어요. 그때는 제 음악색에 대한 확신이 많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혼자 제 색깔을 만들고 있었을 때, 리코 씨가 연락하셔서 작업까지 이어지게 된 거고요. 생각보다 둘의 합이 잘 맞았어요. 그렇게 처음으로 다른 보컬이랑 같이 작업을 하고, 프로듀서로서 첫 단계를 시작하게 된 셈이죠.
LE: 이후 2019년에 본인의 이름으로 된 첫 싱글 “In Touch”와 “Moongch!”를 발표하셨어요. 보면 2년간 활동의 공백기가 있는데, 이때는 DJ로서만 활동하신 건가요?
사실, 제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공백기를 가졌거든요. 2016년, 2017년에는 제 색깔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 저 만의 색을 만들어가는 시기였고요. 2018년은 잠시 아이돌 음악을 했어요. 처음에는 돈도 벌고 싶고, 활동도 계속하고 싶어서 아이돌 음악을 만들었는데요. 계속하다 보니 저랑 너무 음악 색도 안 맞고, 아이돌 음악을 만드는 게 진짜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그리고 다른 사람이 제 음악을 판단하는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어요.
저는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학창 시절을 모범생으로 살았거든요. 그러다가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남의 눈치를 안 보면서 살려고 음악을 시작하게 된 건데요. 막상 아이돌 음악을 하니까 회사에 다니는 거랑 별반 다름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고요. 이런 점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병이라도 걸리겠다 싶었어요.
그러다가 하루는 제가 만든 음악을 들려주려고 작업실에 갔는데요. 담당자분에게 “이건 너무 세련되었는데?”란 피드백을 받게 되었어요. 저는 세련된 걸 만들고 싶어서 음악을 한 거였고, 패션쇼에서 영감을 얻어서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었던 거였거든요. 그런데 그런 피드백을 받으니 제 음악 자체가 아예 부정당하는 느낌이 든 거예요. 그래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란 걸 깨닫고 그만두게 되었죠. 이후에 내 색깔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만든 게 첫 싱글 “In Touch” 였고요.
https://youtu.be/PNfFMvbAiz4
LE: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In Touch”는 확실히 다울 님만의 색이 잘 드러나는 거 같아요.
맞아요. 진짜 내 색깔, 스타일로만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작업해서 나오게 된 게 “In Touch”였던 거죠. 그게 저만의 색깔인 거 같아요. 사실 이번 EP [Pipe Dreams]는 제가 얼마큼 다양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도전적인 작품이고, 제가 가장 잘하는 것만 해보자 해서 냈던 게 “In Touch”였어요.
LE: 맞아요. “In Touch”부터 신스음을 활용하는 다울 님의 작법이 드러나기 시작한 거 같아요. 이런 스타일에 가장 영향을 끼친 레이블이나 아티스트가 있을까요?
신스 활용의 경우에는 지미 에드가(Jimmy Edgar)나 디스클로저(Disclosure) 같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어요. 여기에다 저는 또 퍼커션을 많이 쓰는 편인데요. 이런 건 마운트 킴비(Mount Kimbie)나 머신드럼(Machinedrum) 같은 뮤지션에게 영향을 받은 거 같고요. 한 뮤지션이나 음악을 꼽기는 뭐하지만, 여러 뮤지션에게서 영향을 받아오면서 저만의 음악 색을 만들게 된 거 같아요.
재밌는 건 제가 하우스(House)나 테크노를 기반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보니, 힙합 트랙을 만들 때도 하우스, 테크노의 작법을 녹여내는 거 같아요. 테크노는 빌드업하고, 룹처럼 돌리고, 다시 그 룹을 빌드업시키는 과정이 깃든 음악이거든요. 제가 만든 “Time Never Waits” 같은 경우를 자세히 보면 “In Touch”랑 구성의 거의 같아요. 장르가 다르지만요. 이런 식으로 작법이 잡히면서 저만의 색이 나오는 거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J-gE6-I_a1E
LE: 이후, 2020년에는 소프레코즈(Soap Records)에서 싱글 “For Us”를 발표하셨어요. 우선 소프레코즈에 어떻게 합류하게 되신 건지 궁금해요.
소프가 2017년에 생겼거든요. 그런데 제가 소프에서 음악을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많이 틀었어요. (전원 웃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프 사람들하고 친하게 되었죠. 제가 원래 있던 수퍼프릭레코즈가 회사이긴 하지만, 크루적 성향이 강한 레이블이다 보니 저도 완전 회사처럼 활동하고 있는 건 아니었고요.
그러다 2019년 즈음에 소프가 레이블을 준비하니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저도 당연히 친구들이랑 같이 하는 거니 환영이라고 했죠. 소프 레코즈가 지금도 너무 회사 같진 않고, 친구들이랑 같이 크루 활동 하는 느낌으로 운영을 하고 있거든요. 의견 전달도 너무 편하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앨범 발매까지 하게 된 케이스인 거 같아요.
LE: 또, 당시에 유라, 에이민 님을 비롯해 크로메오(Chromeo)의 리믹스 앨범에 참여하고, 노에어(NOAIR) 님과 함께 합작 싱글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여러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저는 이전까지 음악에 대한 고민을 진짜 길게 했던 거 같아요. 방황도 많이 했고 음악을 시작한 지 9년 만에 첫 앨범을 냈으니까요. 그 대신에 저는 지금 할 고민을 미리 다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협업이든 뭐든 음악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은 다 해보려 하는 거 같아요. 제가 아티스트처럼 한 가지 색을 가질 수도 있지만, 저는 프로듀서로서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제는 주변 친구들이 같이 하자고 했을 때 거절 안하고, 무조건 해보면서 맞춰가는 거 같아요. 그리고 이제 하다 보니까 어느 때부터 제 색깔이 잡히기도 하고, 이런 것도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점점 생기면서 많은 작업을 하게 된 거 같아요. 집에서 혼자만 있었다면 배우지 못했을 것들을 협업이나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서 배우게 되고, 결국 저를 성장하게 만들었고요.
지금처럼 많은 활동을 하게 된 계기를 짚어 보자면요. 지금은 바나(BANA)에 계시는 250 형이 저한테 만나서 직접 해 주셨던 이야기가 있는데요. “음악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때그때 찍는 사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야 음악을 쉽게 내고 잘할 수 있다.”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이 말이 저에게 굉장히 크게 와 닿았던 거 같아요. 너무 마스터피스만 만들어내려 하기보다도,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음악을 하면 된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제 친구 수민(SUMIN)이도 비슷한 말을 해줬었거든요. 결국, 음악은 네가 배 아파 낳은 자식 같은 거라고요. 못생겨도 결국 내 자식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요. 저도 그랬지만 생각보다 이런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주변에 정말 많더라고요. 이걸 냈는데 사람들이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 그런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겪은 바에 의하면 무조건 내는 것이 답이었어요. 음악이 나와야, 사람들이 욕을 하든 칭찬을 하든 피드백이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앞으로 저는 무조건 음악을 더 많이 낼 예정이에요. (웃음)
노에어랑 앨범을 내는 과정도 비슷했던 거 같아요. 한창 이태원이 인기 많던 시절에, 노에어랑 제가 주말에 나와서 디제잉도 하고 자주 놀곤 했거든요. 그러다가 너무 놀지만 말고, 작업 좀 한 다음에 놀자 해서 정말 가볍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막상 작업을 해봤더니 생각보다 서로 잘 맞았어요. 추구하는 스타일도 비슷하다 보니 의견 충돌도 없고요. 지금도 노에어랑 작업은 그냥 좋은 음악 만들자는 생각으로 계속하고 있고요. 플랜에잇(Theplan8), 엘라이크(L-like)와 같은 친구들도 함께 작업실에서 재밌게 작업하고 있으니까 기대해주세요.
LE: 3월에는 데뷔 EP [Pipe Dreams]를 발표하셨는데요. 우선 EP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조금 전에 잠깐 이야기했지만요. 이번 EP는 제 색을 보여준다기보다, 제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에 임했어요. 나만의 하나의 스타일보다는 이 사람이랑 했을 때 어느 곡이 나오고, 저 사람이랑 하면 어느 곡이 나오고. 그런 걸 모아 놓은 거죠. 그 때문에 제 색이나 스타일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보면 다채로워서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EP인 거 같아요. 어쨌든 감독은 저니깐요. 제가 프로듀서로서 할 수 있는 방향성을 많이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LE: [Pipe Dreams]란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된 건가요?
제가 앨범을 구상하면서 점점 곡들이 나오고 있었는데, 함께하는 친구 중에 영상 찍는 빈 킴(Vin Kim)이라는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가 영화를 전공해서 그런지 아이디어가 매우 많고 뛰어난 친구거든요. 그 친구랑 둘이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자가 격리를 하는 시대에 되게 (서로가) 잘 어울릴 거 같다는 아이디어가 나온 거예요. 각자 격리되어 있으니깐, 각자의 색이 나올 수 있다. 이 개념이 말이죠. 여기서는 이런 색이 나오고, 저기서는 저런 색이 나오고 다 다른 거죠. 그러면은 이걸 하나의 저택이라 생각하고, 어느 방에는 누가 있고, 다른 방에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이미지를 구상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저희의 구상안을 소프의 메인 디렉터인 얀 카바예(Yann Cavaille)에게 던져 줬어요. 얀이 이걸 가지고 3D로 이미지화 했는데, 기다란 파이프 모양의 집을 보여줬어요. 그때 얀이 집의 모양도 그렇고 ‘Pipe Dream’이라는 단어를 제시했어요. 담배 연기가 흩날리듯이 결국 이뤄질 수 없는 꿈을 뜻하는 말이에요.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이고,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시점이잖아요. 우리가 다 같이 모여서 함께 할 수 없다. 참여 아티스트도 대부분 해외에 있으니 함께 하는 건 헛된 꿈이다. 하지만 다 같이 이 앨범 안에서는 함께 하는 모습을 담자. 이런 메인 개념이 생긴 거죠.
LE: 실제로 트랙마다 색다른 프로듀싱 스타일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거 같아요. 특히 첫 트랙 “Dancing on My Own”은 뷰티풀 디스코 님의 색도 느껴지더라고요.
“Dancing on My Own”는 뷰티풀 디스코와 함께 만든 트랙이에요. 뷰티풀 디스코랑은 알게 된 지 벌써 8년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둘이서 작업을 같이해 본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저는 무조건 음악을 만들 때 깔끔하게만 만드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러다가 작년에 앨범을 만들겠다고 생각할 때, 저랑 정반대인 사람과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뷰티풀 디스코는 저랑 친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로우파이(lo-fi)한 질감에 있어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완전 장인 같은 친구예요. 재미있는 게, 처음에 뷰티풀 디스코가 핸드폰 앱으로 드럼을 찍어서 스케치를 만든 거예요. 그렇게 찍은 드럼을 가지고 와서 저랑 함께 레이어를 쌓고, 악기를 넣어서 완성을 시켰죠. 그래서 진짜 몇 시간도 안 될 정도로 금방 만들었어요.
그렇게 나온 트랙에 누구를 피처링으로 쓸지 고민했는데요. 하우스 장르의 음악이다 보니 외국 여자 보컬리스트가 곡에 참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이전부터 제가 루비 프랜시스(Ruby Francis)의 팬이었는데, 션(Sean)이라는 영국 디제이 친구가 연결을 시켜줬어요. 루비 프랜시스도 제 트랙을 듣고 너무 좋다고 해줘서 엄청 수월하게 작업까지 이어졌어요. 결과적으로 뷰티풀 디스코와 저의 스타일이 정말 적절하게 잘 섞인 트랙이에요.
https://www.youtube.com/watch?v=eOEi-i1t0VE
LE: 나머지 트랙에도 구현하고 싶었던 음악 장르 혹은 스타일, 중점에 뒀던 악기 표현이 있다면 소개해 주셔도 좋을 거 같아요.
“Blink of an Eye”는 제가 처음에 스케치를 만들고 뷰티풀디스코가 함께 드럼 편곡을 더 했어요. 저랑 함께 마이더스 허치(Midas Hutch)의 EP에 참여했던 로빈 예라(Robin Yerah)라는 네덜란드 친구가 있는데요. 처음에 저는 그 친구가 기타리스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보컬도 너무 잘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트랙을 보냈더니, 거의 바로 멜로디를 쓰고 보컬을 보내줬어요.
여기에다 누기(Noogi)가 멋들어지게 베이스를 쳐 줬죠. 누기는 일단 사람도 너무 쿨하지만, 누기의 베이스 스타일이 한국에서 유일무이한 거 같아요. 제가 누기에게 참여를 부탁하니, 누기가 거의 원테이크로 미친 듯이 베이스를 쳐 줬어요. 듣는 분들은 누기의 베이스랑 로빈의 보컬 조화를 잘 귀 기울여 들어주시면 더 재밌을 거 같아요.
“Time Never Waits”는 카페 테이프의 믹스테입을 만들 때 리믹스로 만들었던 트랙이었거든요. 당시에 나지(Naji)에게 보컬을 써도 되냐고 연락을 하게 되었죠. 그랬더니 나지가 당연히 괜찮다고 해서 그다음에 올렸던 건데요. 많은 사람들이 트랙을 언제 오피셜로 발매하는지 물어봤어요. 그래서 이번 EP에 트랙을 수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누기가 베이스를 치는 식으로 편곡을 다시 하게 되었죠.
또, 워낙 나지도 소프 친구들하고 친하기도 해서 그런지 흔쾌히 오피셜 발매를 허락했어요. 저도 제 노래지만 “Time Never Waits”를 진짜 좋아해요. 베이스도 그렇고, 드럼도 제가 치고 싶던 패턴인데요. 딱 아이즐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부터 썬더캣(Thundercat)까지 가는 그런 느낌을 잘 담아낸 거 같아요.
“For Us” 같은 경우에는 제가 요즘 믹스를 엄청 신경 쓰고 있거든요. 이전 버전 같은 경우에는 조금 팝스럽게 나왔는데요. 지금 버전의 경우에는 이전보다 조금 더 로우파이한 느낌을 내보려고 했고요. 따마(THAMA)의 보컬 믹스 버전을 섞어서 따뜻한 느낌을 좀 더 냈어요. 그런데 두 트랙의 차이점은 저밖에 모를 수도 있어요. (전원 웃음)
https://www.youtube.com/watch?v=q-M6oBOr-6Y
LE: 그러고 보니 다울 님이 지니 매거진에서 “Push Off”와 “Wendy, 1953”에 참여한 으네(UNE)를 자신이 밀고 있다고 소개했는데요. 으네 님의 보컬이나 멜로디 메이킹에서 어떤 매력을 느껴 같이 작업까지 하게 되었나요?
일단 저는 으네랑 같이 작업을 하는 이유가요. 저는 으네가 ‘국힙 원탑’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하거든요. 제가 남들과 다른 걸 무조건 좋아하거든요. 그래야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 워낙 노래 잘하는 사람들 많잖아요. 그중에서 저는 특이하게 잘하는 사람을 찾았는데, 으네가 딱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으네가 자기 보컬을 활용하는 것도 잘하고, 자기 목소리를 소스로 써서 장난도 잘 치고, 아이디어도 잘 던져주고, 사람도 너무 좋고요. 그렇게 서로 합이 잘 맞았어요. 둘이 하는 EP도 올해 말 목표를 예정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Push Off”와 “Wendy, 1953”의 경우에는 앞 트랙들과 달리 로우파이 하지 않고 조금 더 깔끔한 저의 색이 많이 들어간 편이죠.
LE: 두 트랙에 참여한 분들도 함께 소개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Wendy, 1953”는 저랑 같이 작업을 가장 많이 하는 박현이라는 친구와 함께 이건 무조건 해보자. 둘이서 진짜 낑낑거리면서 만들었던 곡이에요.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써보고자 했고 다양한 소스들도 넣어봤고 거기에 천재 음악가이신 밀레나(Milena)가 오케스트라 편곡에 참여해서 지금의 곡이 나오게 되었어요.
트랙에 참여한 메사니(Mesani) 님도 워낙 잘하고요. 메사니 님의 경우에는 저도 으네가 소개해줘서 알게 되었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목소리만 듣고 한국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만큼 정말 특이하게 자기 색깔을 잘 내시는 분이고요. 결과적으로 다 같이 너무 재밌는 작업을 하게 된 거 같아요.
지금 와서 보면 “Wendy, 1953”이 제일 어렵게 나온 트랙이고요. 나머지는 정말 빠르게 나온 트랙이네요. “Push Off”에 참여한 카키(Khakii)도 거의 한 달 안 되는 기간에 자기 파트를 보내줬고요. 제이슨 리(Jason Lee) 형도 같이 작업실 가서 바로 연주한 다음에 끝냈어요. 다들 쉽고 재밌게 해줘서 정말 고맙고요. 덕분에 좋은 곡들이 나온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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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유행을 만드는 게 아니라, 평생 좋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LE: 본인의 이름을 건 첫 번째 EP의 만족도는 어땠나요? 점수를 매기자면요?
저는 한 70점…? 사실 이번 앨범을 정말 감사하게도 다른 분들도 좋게 들어 주시고 최근에 좋은 피드백을 받은 것도 있는데요. 아까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이번 EP는 온전한 제 색깔을 담기보다는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저 자신에게 보여준 앨범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100% 만족할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다울이 감독을 맡고 함께 많은 친구와 재밌게 풀어낸 앨범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에게는 70점 정도 주고 싶습니다.
LE: 이런 다울을 정의할 수 있는 키워드가 있을까요?
깔끔함, 아니면 미니멀함, 혹은 세련됨? 이거인 거 같아요. 저는 항상 이미지를 보면서 음악을 만들거든요. 특히 패션 룩북이나 브랜드, 런웨이를 보는데요. 제가 만드는 음악이 그런 브랜드나 런웨이 같은 데에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작업을 해요.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세련된 느낌을 줄 수 있는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LE: 아직 다울 님의 음악을 못 들어본 유저에게 곡 하나만 추천한다면 어떤 곡을 추천해주고 싶으신가요?
최근에 나온 거로는 “Wendy, 1953” 추천해 드려요. 제 평소 스타일과는 다르게 정말 많은 소스와 다양한 편곡들이 들어가 있어서 재밌게 들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정말 열심히 만들기도 했고요. 그리고 제 사운드클라우드에 있는 리믹스로는 포니 피플(Phony PPL)의 곡을 리워크한 트랙이 있는데요. 그것도 원곡이랑 비교했을 때 굉장히 재밌는 편곡 포인트가 있어서 한번 들어 봐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LE: 언젠가는 꼭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 한 명을 꼽자면요?
칸예 웨스트(Kanye West). 제가 정말 리스펙하는 아티스트가 퍼렐(Pharrell), 디플로(Diplo) 같이 몇 명이 있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되고 싶거든요. 시대에 따라서 프로듀서가 한 색깔을 유행시키고 사라지는 경우가 되게 많잖아요. 하지만 저는 잠깐의 유행을 만드는 게 아니라 평생 좋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디플로나 퍼렐 같은 경우를 보면 그 시대의 스타일에 맞춰서 음악을 계속 만들잖아요. 그래서 저도 나중에 칸예 웨스트, 디플로와 같이 작업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너무 꿈같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꼭 이뤄낼 수 있게 해보려고요.
LE: 올해, 혹은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사실 이번 EP를 통해서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를 저 자신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렸으니까요. 정규 1집 앨범을 완전 제 색깔로 채워서 내보고 싶어요. 그게 사실 지금 가지고 있는 큰 목표이고요. 지금부터 구상하고 있긴 해요. 올해 안에 앨범을 완성하는 건 힘들 거 같고, 우선 으네랑 같이 하는 앨범을 낼 거 같아요. 또한, 제가 계속해서 외국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요. 그게 아마 제일 먼저 나올 거 같아요. 올해는 그 프로젝트와 으네랑 함께 하는 앨범이 나올 거 같네요.
LE: 그렇다면 프로듀서로서 5년 뒤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의 최종 목표는 제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를 받는 거예요. 5년안에는 받을 수 있겠죠? (전원 웃음)
LE: 마지막으로, 힙합엘이 유저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감회가 새로워요. 저도 고등학교 때 힙합을 진짜 좋아해서, 힙합엘이랑 힙합플레이야를 많이 봤던 생각이 나요. 또, 힙합엘이 초창기에는 해외 뮤지션들에 대한 정보가 많았잖아요. 그렇게 봐왔던 곳과 인터뷰를 하니 너무 좋고, 감사하네요. 어쨌든 제 EP 많이 들어 주시고, 모두 건강하세요!
LE: 오늘 인터뷰 고생하셨습니다.
Editor
INS
엄청 오래 활동하신 분이군요 앨범 꼭 들어보겠습니다!!
되게 좋아하는 DJ님이신데 이렇게 인터뷰를 볼 수 있다니 너무 좋네요
힙합엘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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