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HYPED:
‘UNHYPED’는 힙합엘이의 언더그라운드 큐레이션 시리즈로, 이 씬 안에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소개한다. 자신만의 위치에서 힘껏 소리를 내고 있지만, 아직 많은 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기회가 없는 그들. 장르, 경력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본 시리즈를 통해 소개될 아티스트들은 몇 년 안에 더욱 큰 주목받을 재능과 가능성을 지녔다. 그런 그들을 미리 발견하고, ‘하이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언하이프’의 상태의 그들이 만들어낸 솔직하고, 대담한 음악이 더욱 큰 울림을 줄지도 모른다.
UNHYPED: LOLLY
‘UNHYPED’에서 열여섯 번째로 소개할 아티스트는 롤리. “이제는 떳떳하다”부터 신보 [헤이트 모텔]까지, 그는 매순간의 자신을 음악 안에 있는 그대로 녹여내며 만들어낸 프로젝트들을 그의 ‘졸업 앨범’이라 칭한다. 힙합이라는 문화를 향한 애정으로도, 수많은 사운드를 품을 줄 아는 스펙트럼으로도, 아니면 그저 탄탄한 음악적 역량만으로도 롤리의 음악에는 지금보다 더 주목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LE: 일단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롤리: 안녕하세요, 저는 24살 롤리, 인간 김종민입니다. 제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언하입드’가 맞긴 하지만, 저보다도 더 알려지지 않은 고마운 형, 동생들이 많아요. 그런데도 저만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돼서 미안한 느낌이 있는데, 그래도 저 같은 사람이 인터뷰를 함으로써 희망이 됐으면 좋겠네요.
LE: 힙합엘이의 콘텐츠나 커뮤니티를 확인하는 편인가요? 최근 국내 게시판에서는 롤리 님의 신보 [헤이트 모텔]을 샤라웃하는 글들이 게시되기도 했는데요.
원래는 안 보는 편이었는데, 인터뷰 제의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국내 게시판을) 갑자기 좀 보기 시작했어요. (웃음) 절 샤라웃한 글도 봤는데, 사실 저는 저를 조금 다가가기 어려운 아티스트라고 생각하거든요. 음악적으로도요. 그럼에도 (좋게 봐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LE: 랩 네임이 ‘롤리’로 지어진 계기, 그리고 처음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요즘 치고 올라왔던 플랫폼 클럽하우스(Clubhouse)처럼, 음성 채팅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들이 있었어요. ‘게임톡’, ‘토크온’ 같은 거였는데, 제가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서든어택>을 같이 (대화하면서) 하려고 그런 프로그램들을 이용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곳의 방 목록 중 ‘랩 방’ 같은 게 있었어요.
당시는 힙합 음악에 큰 관심이 없던 때였지만, 워낙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그 ‘랩 방’에 입장을 했죠. ‘랩, 뭐 하면 되겠지’ 이러면서요. 그렇게 발언권을 요청하고 마이크를 잡고 랩을 했는데 욕을 개 먹었죠. 제가 승부욕이 센 스타일이라, ‘어, 짜증 나네? 랩 좀 해봐야겠네?’ 하면서 본격적으로 랩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롤리라는 이름도 그때 절 도와주던 형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처음엔 그냥 갑자기 ‘롤리 키드’가 어떠냐고 해서, 괜찮길래 ‘롤리 키드’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음악을 시작하다 보니, 자랄 수록 학교에서 친구들이 “넌 롤리 키드니까, 성인이 되면 ‘롤리 어덜트’가 되는 거냐” 이러면서 놀리더라고요. 그때 뒤의 ‘키드’를 뺐고, 그냥 롤리가 됐죠.
LE: 그러면, 이 ‘롤리’라는 이름의 어원을 직접 아시는 건 아니겠는데요.
네, 뭐 검색해 보면 대충 ‘돈’, ‘사탕’ 이런 건데... 삶이 참 신기한 게, 제 생일이 화이트데이인 3월 14일이거든요.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생일날에는 별로 친해진 시기가 아닌데도 친구들에게 사탕을 받았고요. 이런 걸 보면, 사탕과 저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긴 해요. 결국 ‘롤리’가 된 것도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https://youtu.be/a35rNEBNiO4
LE: 힙합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좀 전에 말한 방에서 랩을 정말 잘하던 형이 있었어요. 그 형이 저한테 항상 호되게, “랩은 이거고, 힙합은 이거야”라며 모든 걸 가르쳐 줬어요. 그때 처음으로 접하게 된 힙합 곡이 릭 로스(Rick Ross)의 “Aston Martin Music”이에요. 실제로 그 곡을 듣고 나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뮤직비디오 초반부를 보면, 아이들이 막 ‘드림카’를 보면서 부러워하고 있고 릭 로스의 어린 시절로 보이는 아이가 “Boss!”라고 외치거든요. 이후에 나오는 장면들을 보면, 그 꿈을 이룬 듯한 릭 로스의 자신감이 뿜어져 나와요. 거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 같아요. 아, 나도 저렇게 랩스타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LE: 어떻게 보면, 롤리 님의 음악 안에서 ‘야망’이라는 키워드가 짙은 건 랩 음악의 시작을 릭 로스 같은 ‘야망가’와 함께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네, 맞아요. 이후에 도끼(Dok2)도 접했고. 별개로, 저는 ‘힙합’을 하려는 래퍼가 있고, ‘랩스타’가 되려는 래퍼가 있다고 생각해요. 둘 중에 우열을 가릴 생각은 없지만요. 어쨌든 저는 어릴 때부터 보스, 랩스타가 되고 싶었죠. 지금도 그렇게 (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LE: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로는 누가 있나요?
우선 음악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은 사실상 없어요. 영감을 받는 것과 영향을 받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저의 음악적인 영향은 제가 스스로 만들어 왔어요. 오히려 영향을 주려는 음악을 만들어 왔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게 사운드 쪽으로 많은 걸 가르쳐준 사람은 태균이 형(테이크원)이고, 저한테 그러한 부분을 많이 알려 줬어요. 삶에 대한 영향은 크라운 제이(CROWN J), 도끼(Dok2)였던 것 같아요.
LE: 소셜 미디어의 피드나 “GIVE UP”의 사운드, 커버 아트 같은 요소를 보면 텐타시온(XXXTENTACION)의 영향을 받으신 걸까 싶기도 했는데요.
많이 좋아하죠. 근데 음악적인 영향을 받았다기보단, (텐타시온을 지켜보면서) 저랑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저는 텐타시온과 ‘같이 걸어가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언젠간 분명 마주칠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텐타시온이 시작했을 때의 사운드, 그러니까 찢어지는 사운드의 로파이 트랩이 처음에는 완전 언더그라운드의 유행이었단 말이에요. 스키 마스크 더 슬럼프 갓(Ski Mask the Slump God)과 함께한 “TAKE A STEP BACK”이 터지고 난 다음에 힙합 씬의 주류로 흘러들어왔는데, 저는 그보다 전부터 사운드클라우드에서 그런 음악을 다루고 있었거든요. 오리지널 갓(Original God) 같은 친구와 함께하면서. 실제로 이번 [헤이트 모텔]의 “이불”이란 트랙은 지금은 이쪽 씬에서 많이 유명해진 프로듀서 제로기(XEROGI)가 프로듀싱해줬어요.
LE: 현재 본인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어떤 곡들이 있나요?
제 스포티파이(Spotify) 계정에 ‘Inspiration’이라는 플레이리스트가 있는데요. 거의 이 플레이리스트만 들어요. 영 머니(Young Money)의 “BedRock”, 티페인(T-Pain)과 루다크리스(Ludacris)의 “Chopped N Skrewed” 등이 있는데, 여기 공유해 드릴게요. (링크)
LOLLY: 현재
“매년 제 음악을 통해 졸업 사진을 찍는 거라고 생각해요.”
LE: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삶을 살고 계셨나요?
저는 공부를 되게 잘했었어요. 중학생 때는 전교 3등도 해보고, 항상 100점을 맞으려고 노력했던 학생 같아요. 사실 사운드클라우드에 처음으로 올렸던 곡인 “학교”도 공부에 관련된 곡이거든요.
굳이 과목을 내세우자면 한국사,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과를 선택한다면 역사와 관련된 과를 선택했을 것 같아요. 아무튼 공부를 꽤 괜찮게 했어서, 엄마가 항상 타블로(Tablo)처럼 음악도 하고, 공부도 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죠.
LE: 그렇다면, 대학교 진학에 대한 욕심은 없으셨나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그랜드라인쇼> 무대에 서게 되어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부모님께) 직접적으로 얘기했었어요. 멋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과 같이 무대에 서기도 했고, 이제는 음악에 전념하고 싶다. 결국 타협을 봤죠. “저는 음악을 하겠습니다. 공부는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LE: 말씀하셨듯, 본격적인 커리어의 시작 전부터 <그랜드라인쇼>의 무대에 오르셨잖아요. 어떤 계기로 기회를 얻게 된 건가요?
제가 어렸을 때 버릇이 있었어요. 눈앞에 래퍼가 보이면, 달려가서 그 래퍼한테 랩 좀 해보겠다고 하는. 빅 션(Big Sean)이 칸예 웨스트(Kanye West)에게 다가가서 프리스타일 랩을 하고, 굿 뮤직(G.O.O.D. Music)에 들어갔다는 일화가 너무 판타지 같았거든요.
저도 그래서 뭔가 크게 바라지는 않더라도, 래퍼만 보이면 앞에서 프리스타일 랩을 했어요. 그렇게 지낼 때 저한테 처음으로 돈을 준 사람이 긱스(Geeks)의 루이였어요. “나는 음악을 들으면 무조건 대가를 지불한다”라면서. 수중에 있는 주머니에서 꺼내진 유일한 돈인 500원을 저한테 주시더라고요. 이후에 비싼 음식도 엄청 사주셨고요.
거기다가 저와 같이 프리스타일 랩을 해주기까지 하시더니, 이후에 번호도 주시고, (무대에 설) 기회를 주신 거죠. 루이 형이 [靈感 (영감)] 앨범을 내고 롤링홀에서 공연을 하셨을 때, 저희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주셨어요. 혹시 관객석에 있는 (아마추어) 래퍼 있으면 올라와서 프리스타일 랩 해도 된다고, 올라올 사람 있으면 올라오라면서 저와 눈을 마주치고 올려주셨어요. 그 자리에서 제가 테이크원한테 랩 배틀을 신청한 거죠. (웃음) “제가 형보다 랩 잘해요” 이러면서.
정리하자면 루이 형이 제 랩에 귀를 기울여 주셨고, 자신의 무대에 올려 주신 덕분에 태균이 형에게까지 닿을 수 있었던 거죠. 지금도 유튜브 채널에 그때 <그랜드라인쇼>에 올랐던 제 영상이 있어요. 루이 형이랑 태균이 형 두 분 다 저에게 너무 고마운 사람이죠.
https://youtu.be/OZC8UZOuUeg
LE: 그때의 연결고리 덕분에, 2015년 싱글 “이제는 떳떳하다”에까지 참여하실 수 있었던 거군요.
네. 최대한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제는 떳떳하다”에 관한 재밌는 기억이 하나 있어요. 그 곡에서 제가 마지막에 “1년이면 돼!”라고 소리치고 나면 바로 MC 메타(MC Meta) 님이 “한 길을 걸어가라”라고 이어받으시는데, 그게 꼭 저한테 말을 건네시는 것 같아서 인상 깊었어요. 어린 롤리와 MC메타의 주고받음? (웃음) 태균이 형도 많은걸 알려주려 노력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멋진 형이에요. 태균이 형만의 능력이 한국에서 빛을 더 보았으면 좋겠어요.
LE: 이후 2016년 말에 열아홉의 나이로 첫 정식 싱글 “Damn Yes I Can”을 발표하셨어요. 최신작인 [헤이트 모텔]과 비교하자면 훨씬 공격적인 사운드를 지향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어떤 바이브를 추구하셨던 걸까요?
사실 제가 추구하는 사운드라는 건 없었어요. 그냥 비트 위에 랩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죠. “Damn Yes I Can”은 그저 스티치(STXXCH)라는 친구가 비트를 줬고, 그 위에 랩을 했는데 제 기준에서 잘한 랩 같으니까 낸 거죠. 사운드나 랩이 지금보다 공격적이었다는 건 지금 들었을 때 저도 느껴요. 근데 그때는 그런 게 괜찮았던 시기인 것 같고. 지금은 성향이 바뀌었을 뿐이고요.
https://youtu.be/Tg8_2Av2CGk
LE: “Damn Yes I Can”은 음악적인 방향을 굳이 잡으려 하지 않고 낸 싱글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네요.
네. 근데 전 각각 나오는 앨범이나 싱글이 모두 그 제목에 관한 음악일 뿐이지, (음악적인 방향을 잡으면서) ‘내가 걸어가는 사운드’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LE: 그렇다면, 프로젝트의 성향이나 분위기를 좌우하는 데에는 그 프로젝트의 제목과 테마의 영향이 크겠네요.
그것도 그렇지만, 굳이 따지자면 먼저 곡을 만들어 놓고 나열한 뒤 테마를 정하는 편이에요. 제가 수원의 ‘박지성도로’를 뛰면서 망포고등학교를 다녔거든요. “Seagull” 뮤직비디오에서 저보고 생긴 게 박지성이라 놀리기도 했는데. (웃음) 그 박지성도로를 건너는 망포고 학교 가는 버스의 배차간격이 1시간이거든요.
그래서 한 번 놓치면 그 도로를 뛰어가야 하는데, 통학하면서 포기하고 걸어다닐 때마다 온갖 앨범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했어요. 유명한 앨범이든, 댓피프(Datpiff)에 있는 무명 뮤지션들의 믹스테입이든. 그렇게 많은 앨범을 듣다 보니까, 한 앨범의 유기성과 흐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그래서 1번 트랙을 정해 두면, 자연스럽게 2번 트랙, 3번 트랙의 갈피가 잡혀요. 오히려 앨범 제목은 때마다 변하는 것 같아요. 만들다가 변할 때도 있고, [헤이트 모텔]도 (제목을) 바꿀까 하다가 그대로 낸 경우에요.
LE: “Damn Yes I Can”과는 다르게, 몇 달 뒤 발표한 첫 EP [Eros]는 조금 더 미니멀하고 유해진 프로덕션과 랩이 돋보였었어요. 이 몇 달 사이에 겪었던 변화가 있는 건가요?
그때 제 음악이 유해진 이유는, 전 한 아티스트가 하나의 사운드만 고집하는 게 안 좋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짜놓은 틀에 갇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냥 (음악이란 것도) 사람이 만드는 거기 때문에, 그때그때 받은 영감을 녹여내는 게 맞다는 거죠. [Eros]도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고요.
[Eros]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에 영감을 받았던 프로젝트에요. 3권이었던 것 같은데, 에로스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들의 사랑에 영감을 받은 거죠. 결국 이러한 테마로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My Psyche”라는 곡이 나왔어요. 나머지 트랙은 자연스럽게 뒤따랐고요.
LE: 이후 발표한 프로젝트 [From WEBSIDE]는 새로 출범한 한국 애플뮤직(Apple Music) 앨범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었는데요. 감흥이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사실 1위라는 성적은 중요하지 않고요. 한국 애플뮤직이 런칭되지 않았을 시기에, 다들 해외 계정으로 애플뮤직을 사용할 때 제가 전략적으로 [From WEBSIDE]를 만들었어요. 수록곡 “NIKE”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는데, 그 곡을 더 많은 외국인에게 들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거든요.
친구들이 모두 해외 애플뮤직을 이용하길래, 제가 유통사에 직접 물어봤었어요. 애플뮤직 메인에 뜨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때 마침 애플뮤직이 한국으로 넘어올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요. 덕분에 한국 애플뮤직에서 메인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죠.
그래서 당시 해외 애플뮤직의 K팝 탭에서도, 태양(TAEYANG)과 <쇼미더머니> 음원, 그리고 제 앨범이 메인에 걸려 있었어요. 모바일 애플뮤직이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둘러보기’ 탭을 확인하면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 옆에 제 앨범이 있었고요. 다 전략적으로 준비한 결과였어요.
LE: 2019년과 2020년에 각각 발표한 [Asian Star Hogwart Avenue, 이하 ASHA]와 [No Suicide]는 각각 로파이 사운드와 트랩의 영향을 짙게 받은 프로젝트였던 것 같아요. 조금 늦었을 수 있지만, 두 앨범에 관한 소개도 직접 들어보고 싶어요.
우선, [Asian Star Hogwart Avenue (ASHA)]와 [No Suicide]까지는 전부 실험작이었어요. 어쨌든 제 정규 앨범으로 나왔기 때문에 듣는 분들이 제 커리어의 일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실험(을 위한 앨범)이었던 거죠. 저는 각 앨범을 하나의 ‘졸업 앨범’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전 매년 제 음악을 통해 졸업 사진을 찍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ASHA]와 [No Suicide]도 당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프로젝트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완벽한 앨범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각 앨범에 대한 소개를 하자면, [ASHA]는 로우디(Rowdee, 로우 디가) 님이 도와주신 프로젝트에요. 제가 아무것도 없었을 때, 제 가능성을 보시고 커버 아트 작업, 스튜디오와 사진 촬영 같은 걸 전부 사비로 도와주셨어요. [ASHA]가 [Eros]를 잇는 판타지 콘셉트의 앨범이라면, [No Suicide]는 당시 힘들었던 감정을 극복하고자 했던 앨범이에요. 그때 제가 죽고 싶어 했거든요. (웃음) 다 포기하고, 내가 지금 죽어야만 사람들이 더 놀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던 때였죠. 음악적으로도 성장이 더디고, 인간관계에, 돈 문제도 해결되지 못하니까 자꾸 죽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거에요. 다행히 기도를 하면서 다짐하게 된 게, [No Suicide]라는 제목의 앨범으로 내 커리어 안에서 ‘나는 죽지 않는다’라고 얘기해야겠다. 따지자면 저 자신에게 하는 위로였던 거죠. 동시에 나를 보고 같이 죽지 않을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고요.
LE: 3월 말 발표한 신보 [헤이트 모텔]은 지금껏 선보였던 스타일을 총집한 프로젝트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우선 앨범의 작업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우선 유통을 담당해준 형한테 정말 미안한 게. 두 곡 남았다, 세 곡 남았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하루하루를 미뤘거든요. 근데 [헤이트 모텔]은 사실 18곡 전체를 4일 만에 완성한 앨범이에요. “사랑”이라는 곡에 많은 시간이 들어갔는데요. 밴드 사운드에, 편곡에, 드럼에, 제가 원하는 기타 사운드를 넣고 싶어서 공부를 엄청 열심히 했어요.
LE: 발매 날짜에 맞춰서 빠르게 작업을 마무리하신 게 놀라운데, 마무리 과정이 조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나요?
급하게 만들었다고 얘기하면 사람들이 좀 별로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 그렇게 생각하진 않거든요. [헤이트 모텔]에는 분명 (본격적인 작업 전부터) 형체가 있었고, 원하는 방향과 사운드가 있었어요. 저는 공부 중이었던 거죠. 그리고 그 공부가 끝나고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걸 (4일동안) 실질적인 앨범으로 만들어낸 거고요.
이 공부 과정 역시 작업 과정의 일부였다고 생각하고, [헤이트 모텔]은 적게는 아쉬워도 충분히 만족해도 될 만한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헤이트 모텔로는 제가 원했던 바의 95% 정도를 이뤄냈다고 여기고 있어요. 다음 앨범에는 정말로 제가 만족하는 100%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파격적인 앨범이 될 거예요.
LE: 롤리 님의 앨범 안에는 항상 ‘사랑’, ‘야망’, ‘회의’, ‘울분’ 등의 감정이 대표적으로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을 만들 때 가장 우선시되는 감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ASHA]를 완성했을 땐, 제가 공부를 다 끝냈고 (음악적으로) 완성됐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위험한 것 같아요. 이후에 다시 돌아보고, 제가 좋아했던 음악들을 듣고 나니까 또 느낌이 달랐거든요.
그래서 저는 항상 자신에게 묻고, 아무리 더 완성되고 유명해지고 잘 되더라도 스스로 채찍질을 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결론적으로 제 음악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감정은 ‘사랑’보다는 ‘외로움’이 아닐까 싶네요. 저는 혼자 다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들었을 때 느끼길 원하는 감정도 ‘외로움’ 이었으면 좋겠어요.
LE: 여러 작업물을 통해 지금의 힙합 씬의 모습을 풍자하는 듯한 모습을 내비쳐 오셨는데요. 현 국내 힙합 씬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사실 “노 코멘트 하겠습니다.”라고만 할까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음원을 발매할 때, 장르를 ‘코리안 힙합’이라고 내지 않잖아요. 힙합/랩으로 내잖아요. 그럼 힙합이라는 장르가 어디서 왔는지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힙합은 블랙 커뮤니티에서 내려온 흑인들의 것이었잖아요. 물론 한국 힙합도 있다, 서태지부터 내려온 우리의 흐름이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할 말이 없고, 그래서 더 조심스럽지만. 저는 우리나라에서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시 한번씩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흑인이 아니라 아시아인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흑인 커뮤니티 안에서는 모두 명분이 있어요. 바지를 내려 입는 것도, 듀렉을 쓰는 것도요. 근데 아시아인이 듀렉을 쓰고 뮤직비디오에 나온다거나 하는 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흑인들에겐 명분이 있지만, 우리는 ‘멋있어 보이려고’라는 이유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걸 싫어할 수도 있고, 자신들을 따라 하려 한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거잖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한국 힙합’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한국 힙합과 외국 힙합이 나누어져 있다는 근거는 없어요. 그냥 ‘힙합’이라는 흑인들의 문화 안에 들어가려 할 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랩을 하지만, 힙합 음악을 한다고 말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한국에서 힙합 음악을 하려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아시아인이라는 걸 이해하고, 블랙 커뮤니티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멀리 봤을 때 더 나은 교류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우리가 힙합을 좋아한다면, 문화적인 측면에서 흑인 커뮤니티를 이해하는 게 필수라고 생각해요. 그걸 이뤄낸 좋은 예가 에미넴(Eminem)이라고 생각해요.
아시아인으로서 흑인들의 장르에 뛰어들 때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그리고 리스펙과 함께 우리만의 것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랬을 때 듀렉을 쓴다던가, 드레드락 머리를 한다는 건...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 글을 보는 분들이 한 번쯤은 생각했으면 좋겠는 거죠. 오히려 우리 문화의 수준을 낮추는 행동일 수 있어요.
흑인이나 백인이 동양인을 더 심하게 차별해서 피해를 보신 분들 또한 계시기 때문에 사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하지만 힙합이라는 문화를 존경하고, 좋아하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얘기하는 거예요. 한쪽이라도 깨어있지 않으면 분쟁밖에 남지 않잖아요.
결론적으로 ‘한국 힙합’을 하는 우리는 흑인을 따라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문화에 침범하지 않고 한국인만의 멋을 연구하려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게 지금 한국 힙합 씬에 대한 제 생각이에요.
LE: [Eros]부터 [헤이트 모텔]까지 커리어를 쌓아 오며, 음악을 포기하고 싶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냥 매 순간 포기하고 싶었어요. [헤이트 모텔] 작업까지도. 끝내고서도. (LE: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을까요? 아니라면, 원하는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일까요?) 다 맞는 얘기죠.
LE: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욱 알려진 뮤지션이 된다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실 것 같다고 생각하나요?
모르겠어요. (개인적인) 성공의 기준을 저는 사실 모르겠어요. ‘보스’가 되고 싶은 건 맞아요. 릭 로스처럼, 도끼처럼. 근데 그렇게 됐다고 해서 마음 안에 모든 게 풀어질 것 같진 않아요. 단지 제가 릭 로스나 도끼 같은 사람이 되어있을 땐, “너의 길을 가, 모두 널 지켜보고 있어. 언젠간 알아줄 거야, 근데 그 길은 옳은 길이었니?” 라고 묻는 음악들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도 제 음악 안에 그런 물음이 담긴 것 같아요.
결국 인류가 조금 더 서로 사랑하고, 중국도 미워하지 말고, 일본도 미워하지 말고, 흑인들이 이뤄내서 그들이 가진 목걸이나 비싼 차를 자랑하는 명분들을 알았으면 좋겠고. 사대주의를 없애고, 문화적으로 동등하게 같이 교류하며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세상이 된다면 저는 행복할 것 같아요.
Next Chapter: LOLLY
“아직도 주변에서 힘들게 노력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요.”
LE: 아직 롤리의 음악을 못 들어본 유저에게 자신들의 음악을 추천할 수 있다면, 어떤 곡들을 추천해주고 싶으신가요?
[헤이트 모텔]의 타이틀곡인 “사랑”을 들으시면 돼요. 우리가 왜 서로 사랑해야 하고, 왜 태어났는지에 관한 진리를 담고 싶었던 곡이에요.
LE: 본인 외에 또 많은 리스너들이 들어줬으면 하는 아티스트가 있을까요?
여기서 샤라웃을 진짜 많이 하고 싶은데... XXX의 프랭크(FRNK) 형이 우선 더 잘 돼야 해요. 많이들어주셨으면 좋겠고, 어릴 때부터 먼저 제 실력을 알아봐 주고 17살에 저를 강남에 불러서 비싼 똠양꿍 사준 얌모(Yammo) 형. 이번에 비트 많이 만들어 준 프로듀서 YNSK 음악도 들었으면 좋겠고, 스티치 앨범도 자기가 직접 전부 프로듀싱하는데 너무 좋아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오고 좁은 방에서 순수하게 기타치며 이번 “사랑” 곡에도 도움을 준 밴드셔츠 보이 프랭크(SHIRTS BOY FRANK) 앨범도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고, 모스 오멘(MOSS OMEN) 음악도 너무 좋고요. 세이프(S+FE) 크루도 들어봐 주셨으면 좋겠고요.
이외에도 UNE, 야간캠프, 캐시 뱅(Kash Bang), 릴 구압(Lil 9ap), UNO, 쿄와(Kyowa), 네이키드(Nvked), GGM 베이비고트(GGM Babygoat), 소년소년소년 등. 마음이나 몸은 서로 멀어지게 되어 있을진 몰라도, 저에게는 포기하지 않은 그들이 소중해요. 다 잘 됐으면 좋겠어요.
LE: 언젠가는 꼭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 한 명을 꼽자면요?
래퍼들은 사실 래퍼끼리 작업하는 걸 그렇게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어울리는 곡에 어울리는 사람을 쓸 뿐이지. 그래서 제가 엄청 작업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멋있게 보는 뮤지션들은 많아요. 근데 그분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조심스러워요. 그럼에도 꼽을 수 있다면, 전 나얼이요. 1지망으로. 꼭 한번 작업해보고 싶고, 김종민 씨와도 작업해보고 싶어요.
LE: 2021년의 계획도 궁금해요.
새 앨범을 내고, 독립하는 거요.
LE: 롤리를 정의할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양면성’입니다. 사탕도 달콤하지만 많이 먹으면 이가 썩듯이.
LE: 5년 전의 롤리와 지금의 롤리를 비교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많이 날카롭게 갈고 닦아왔다고 생각해요. 혼자서도 잘하게 됐고요. 근데 외로워요.
LE: 또, 지금으로부터 5년 뒤의 자신에게 2021년 3월의 롤리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롤리야, 잘하고 있고. 너의 길을 가. 좋은 아빠가 될 거야.
LE: 마지막으로, 힙합엘이 유저들에게 한마디 부탁할게요.
최근에 커뮤니티를 봤더니 아이유 씨 같은 분들을 ‘국힙 원탑’으로 치켜세우시고 하는 걸 봤는데요. 물론 커뮤니티 안에서 재밌으라고 하는 말들이지만, 우리가 정말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물론 아이유 씨 저도 좋아합니다.
이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뭉친 곳에서 이미 영향력을 갖고 있는 힙합 씬 밖의 분들을 다룬다는 것. 이미 바깥세상에서도, 팬카페에서도 어느 커뮤니티에서도 언급되는 영향력을 가진 분들이잖아요. 정말로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분들 대신, 저 같은 사람처럼 미디어가 비추지 않는 친구들 얘기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서브컬쳐 커뮤니티 유저들이 항상 가져야 할 좋은 방향성이라고 생각해요.
또, 딥플로우(Deepflow) 씨를 싫어하는 분들이 계신 걸 알고 있어요. 누군가와의 불화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힙합 음악을 그저 음악 감상으로 즐기는 팬분들의 입장과 다르게 제가 두 눈으로 어릴 적부터 공연장에서 직접 바라봐온 딥플로우 씨는요. 끝까지 신예 래퍼들을 위해서 모든 공연장에서 끝까지 모든 라인업의 자리를 지켜봐 주던 사람이었어요. VMC의 '보일링 포인트' 같은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인 것 같고요.
인간적으로 모든 관계에 서로 흠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 업계 안에서 모든 걸 걸고 지금도 지하 개미 작업실에서 열심히 음악하는 친구들에게 힘을 써오신 분들이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이에요. 루이도, 테이크원도, 딥플로우도, 로우디도 저에겐 그러하구요. 유튜브에서 음악들 들어주시고, 피드백 남겨주시는 컨텐츠 하시는 팔로알토(Paloalto), 기리보이 등 모두들 그러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관계에 대한 부분이나 ‘노선 바꾼 뱀새끼’ 라는 논란은 이제 너그럽게 봐줄 수 있지 않을까요. 코로나로 모두가 힘들잖아요. 노선도 못 올라타 보고, 아직도 주변에서 힘들게 작업실에서 노력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요. 그에 비하면 ‘언하입드’여도 저는 너무 큰 복 받은 거죠. 응원해주는 좋은 형 친구들이 많으니까. 씬의 생태계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 신예 래퍼들에게 새로운 자리를 내주려는 분들이 더 언급되고 리스펙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LE: 오늘 인터뷰 수고하셨습니다.
Editor
snobbi
마지막 인터뷰가 기억에 많이 남네요. 헤이트모텔 한번 돌리고 오겠습니다. 사실 잘 알지 못하는 아티스트였는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되어서 좋네요!
생각이 깊은 사람같네요. 헤이트모텔 앨범 너무 잘 들었습니다.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생각과 굳은 고집을 가진 아티스트네요!
너무 멋있다
'결론적으로 ‘한국 힙합’을 하는 우리는 흑인을 따라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문화에 침범하지 않고 한국인만의 멋을 연구하려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게 지금 한국 힙합 씬에 대한 제 생각이에요.'
오호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옛날에 웹사이드 H1Z1 노래 너무 좋아서 가끔 또 찾아 들어요! 양질의 좋은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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