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이나 여타 커뮤니티의 릿에 대한 글들과 댓글들을 보다가 생각한건데, 음악, 앨범을 예술 작품이 아니라 오락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한 이들에게 릿은 그저 그런 앨범 중 하나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것 같긴 해요.
어마무시한 청각적 쾌감들로만 구성되어있는 앨범도 아니고, 대중적인 요소는 더더욱 배제되어 있기에 최근의 저스디스에게 더 익숙하거나 음악이라는 창구를 단지 청각적 쾌감만 느끼기 위해 접근하는 이들, 결과적으로 앨범이라는 매개체가 주는 메세지 등을 분석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릿은 저 개인적으로 굉장한 작가주의적 앨범이라 생각하기에 더 좋지 않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당연히 정답은 없고, 이것에 대해 우열을 나누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만 저는 음악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릿이 우리에게 주는 음악적인 쾌감은 kflip에 비해 덜할지언정, 저는 릿을 올해의 앨범으로 뽑고 싶습니다. (물론 저는 청각적인 쾌감 또한 릿이 KFLIP에 꿀리지 않는다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릿을 올해의 앨범으로 뽑고 싶은 이유를 간략하게나마 써볼까 합니다. 식견이 부족한 글이기에 휘뚜루마뚜루로 작성할거니 소정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허승은 이 앨범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고 싶었을까요. 모순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의 계몽? 아니면 나 스스로에게 전하는 자기고백적 참회? 저는 기본적으로 '계몽시킨다'는 워딩이 가지고 있는 은은한 선민의식 때문에 그다지 호의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허승은 'LIT'의 훅에서 '걍 할 뿐이야 display를'이라 말하며 본인 스스로가 계몽시킴의 주체가 되는 면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HOME HOME'으로 귀결되는 이 앨범이 주고 싶은 울림이 단순히 '내가 옳고 너네는 틀렸어'와 같은 이분법적 논쟁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 제시로에 그칠 것이 아니라, 단순히 '너네 이런 거 괜찮아?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해? 이것도 괜찮아?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해?' 와 같이 질문을 계속해서 제공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자기고백적 참회의 경우에도, 허승은 뛰어난 구조 설계로 하여금 이 앨범을 가볍게 듣는 대다수의 리스너들에겐 단지 'Lost', 'Don't cross', 'Curse' 로 이어지는 폭로의 형식을 띄고 있는 곡들이 단지 누군가를 저격하는 것으로 보이게끔 만들었고, 실제로 그런 의도라면 꽤나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롤아웃 과정에서의 허승이 했던 말들도 이에 도움을 주는 브랜딩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직접적으로 의도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허승은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의 참회를 택했다고 느껴집니다. 만약 이 생각들을 리스너들이 알아주지 못하면 어쩔까라는 걱정 때문인지 '돌고 돌고 돌고'에서는 'I just speak my truth'와 같은 라인으로 나름 힌트를 꽤 줬다고 생각하는 쪽이구요. 제 생각이 옳다면 허승은 지금 쯤 엘이에서 많은 분들이 해석해주신 '이 곡들은 자기에게 말하는 것이다.' 라는 주장을 보면서 웃고 있지 않을까합니다. 본래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공감해주는 것만큼 고마운 리스너들은 없으니까요.
허승은 이제 과거의 잡음에서 완전히 탈피한 듯 보입니다. 롤아웃 과정에서 운영했던 계정이 두 개인 것도 그렇고, '친구'에서 '변한 정도가 아냐, 그 새끼 뒤졌어 옛날에' 같은 라인을 봐도 그렇고요. 결국 과거의 자아와 현재의 나로 둘을 나누어 과거의 자아를 스스로 비판하고, 또 과거의 자신과 나도 모르는 새 동화되어 가고 있는 대중들에게도 '너희 그러면 안 된다'며 재고를 요구하는 모습이라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트랙인 'HOME HOME'의 기획과 구성이 더욱 뛰어나게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1번 트랙과 마지막 트랙은 국힙 최고의 앨범 오프닝과 엔딩을 뽑을 때에도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이 다소 두서가 없긴 하지만 대충 알잘딱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릿은 이제 좀 묵혀뒀다가 들어야겠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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