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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able Planets - Blowout Comb

title: [로고] Wu-Tang Clan예리6시간 전조회 수 156추천수 7댓글 5

(본 리뷰는 블랙뮤직 매거진 w/HOM #15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https://hiphople.com/fboard/2955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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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able Planets - Blowout Comb


르네상스는 혼란과 격동의 시기에서 태어났다. 대제국 비잔티움의 멸망이 곧 이탈리아를 일깨운 기폭제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후로는 부패한 교회가 루터와 칼뱅을 불러냈으며, 침략의 장터였던 물길은 은화 수급의 전쟁을 벌이는 교역로가 되었다. 몇백 년에 걸친 치열한 호흡들은 매순간 들끓고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이리 넘실대는 파상적 물결은 곧 인류를 관통해온 이치와도 같다. 모든 이탈은 구속에 이끌려 언제나 중심으로 돌아오려 했고, 세상의 문제들은 팽팽한 활시위의 탄성처럼 되돌아오는 부메랑의 모습이 된다.


헤겔의 변증법이 그렇듯 균형은 줄곧 양 끝단이 서로에게 물들며 제 자리를 찾는다. 샤리아와 수피즘. 아나키즘과 팔랑스테르·오로르빌. 그리고 빛과 그림자가 뒤엉키는 황혼과 새벽의 절경. 모두가 숨을 죽인 묵상의 순간은 제 꽃을 피워내고자 수많은 봉오리들이 몸을 일으키는 시간이다.


타성은 점진적인 경화증을 일으킨다. 정형화된 어여쁨의 뒤꽁무니만을 쫓기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왕족들은 그들의 삶에 웅장한 아름다움을 흠뻑 적시며 살았겠지만, 그 장대함에 흠이 갈까 마땅히 둘 곳 없던 오물을 암암리에 쏟아낸 뒤뜰 정원의 나날마저 들여다볼 이유는 없었겠다. 모두가 외면한 응달에서는 곰팡이가 피고 상처가 곪기 마련인데, 그 상처를 일말의 거리낌 없이 맨눈으로 들여다볼 용기를 가진 이는 몇이나 될까. 이면에 둘러싸인 그림자로부터 스파크를 튀기며 영감을 솟구치게 한 낡고 더러운 요람은 누구의 것일까.


골든 에라. 오늘날에 비견하기 어려울만큼 당시의 힙합은 너무나 깨끗하고도 선명한 언어였다. 그 언어는 거리의 규율을 집필하고 집단의 결집을 도모하지만 때때로 어절을 겨누는 이에게 다시금 되돌아왔다. 진딧물을 양껏 잡아먹은 무당벌레는 사방을 에워싼 개미들의 경계에 휩싸이기 마련인 것처럼 말이다. 싸우고자 하면 싸웠고, 쏘고자 하면 쏘았으며, 죽이고자 하면 죽였다. 그 누구도 함부로 거짓을 내뱉지 않았다. 총칼을 쥔 손은 가벼이 맞잡기에 너무도 뜨거웠으니.


허나 범죄와 폭력에 물든 온정의 고갈 속에서 어떤 이들은 누구보다도 사려깊었다. 이방의 브루클린 속 포트 그린으로 모여들고는 자신들을 묘사하기로 가장 작은 곤충들의 이름을 빌려쓰는 그들. 박식하게 재치를 뽐내며 친구들을 끌어안는 그들. 방아쇠가 아닌 말솜씨를 당기며, 우상의 가르침보다는 오랜 친구로 점점 스며드는 그들. Butterfly. Ladybug. Doodlebug. 그리고 이 모두를 이르는 이름, Digable Planets(디거블 플래닛).


다시금. 오늘날에 비견하기 어려울만큼 당시의 힙합은 너무나 깨끗하고도 선명한 언어였다. 그래서일까. 이 명료한 아우성은 줄곧 추상성으로부터 상상력의 폭발력을 일으켰다. 그 뿌리는 흔히 통용되곤 하는 문화와 전통을 꿰뚫은 혈족의 근간과도 같다. 역사는 Q-Tip으로부터 Pete Rock을 지나 Madlib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움을 위해 이끌어낸 재즈 장르의 차용은 그리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재즈‘와 ’힙합’이라는 두 걸출한 이름값의 융합을 짚어볼 때, 디거블 플래닛의 수수하고도 아련한 곡조들은 여타의 화합과는 명백히 다른 성격을 보인다. 으레 다수의 힙합 그룹에게서 기대하는 기라성들의 디너 타임 갈라쇼는 모두 변두리에 가둬진다. 대신 본래의 자리는 캠프파이어의 불결과 함께 남은 이들이 무던하고 단란하게 이루는 담소들의 연속이 된다.


이 자리엔 비밥의 즉흥연주, 즉 임프로바이제이션에서 느끼는 부조화의 무지갯빛 같은 혼미한 황홀감도 없고, 디제이의 스크래치나 무분별히 남발되곤 하는 스킷 트랙의 저의로부터 빌려온 노이즈마저도 찾을 수 없다. 분명 빼곡한 가사들은 담대히 ‘The Five Percent Nation’을 외치며 민족주의를 제시하는 컨셔스를 녹여냈는데, 이리도 부드럽고 얌전히 일침을 가할 수 있는 법인가.


디거블 플래닛의 이 역설적 방법론은 어쩌면 모두가 놓친 이면으로부터 잃을 수 없는 한 줄기의 따스함 찾아낸 게 아닐까 싶다. 62분의 러닝타임 내내 모두가 숨을 죽여야 하던 거리 위 미물들의 연대를 표현하기라도 하는 듯, 작은 소망들과 함께 몽롱하다고 여겨질만큼 여유로운 풍조만을 잔잔히 채워낸 본작은 곧 디거블 플래닛의 철칙이다. 세 곤충 친구들은 그저 얼룩진 도시의 한복판에 놓인 턴테이블 위에 자그마한 베르사유를 빚어내려 하지 않았을까.


간혹 황금기란 단어의 본질은 당시의 숨결 자체보다 그 순간을 오늘날로 당겨오기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낯빛만으로 얽히고서 결코 벗어날 수 없던 핍박이란 어떠하였는지. Malcolm X와 Martin Luther King Jr.의 발자취는 흐릿한 흑백 필름과 열악한 녹음 장비를 거쳐야만 전해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쉬울 따름인지. 짙게 깔린 안개는 충분한 가시거리를 확보할만큼 걷힌 뒤지만 진정 제련하기 전부터 탁한 빛에 머무는 광택을 알아차리기란 이리 힘든 것일까.


지난 날의 노스탤지어를 머금은 향수들. 지금의 우리는 쾌적한 실내에서 고가의 청취 장비로 맑고 깨끗이 정제된 장및빛 내음을 맡아대지만, 작디 작은 카세트테이프에 최고의 음성을 담아내고자 삶과 죽음의 경계 주위를 둘러싼 가시밭길을 거닐기란 얼마나 쓰라린 일이었을지. 문화를 퍼뜨린 그 파생과 파생의 연속은 보잘것없는 초파리처럼 무(無)에서 피어나듯 자연히 발생한 게 아니기에, 한낱 청취자의 입장에서 결과물을 낳기까지의 풍파들을 되짚기란 언제나 마음 아프고도 즐거운 일이다.


물에 잠겨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숨을 쉬러 수면 위로 뛰어올라야 하는 돌고래처럼, 우리들 모두는 지친 하루를 거치고 새로운 햇살에 닿기 위해 꿈을 꾸며 고난을 딛고자 한다. 거친 비바람에 맞서 싸움과 동시에 몸을 뉘이며 다음 뜀박질을 디디는 모두들. 디거블 플래닛은 그런 이들에게 <Blowout Comb>를 통하여 따스한 악수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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