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블랙뮤직 매거진 w/HOM #15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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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 Xan - Diego
"Betrayed"로부터 몇 년이 지났나. 꼬마의 치기 어림이 흩날렸을 때. 잡동사니로 가득한 방문을 열어젖혔을 때. 아니 뜯겨나갔을 때. 디에고의 회고록은 그로부터 시작한다. 초입부터 다분히 미화적이다. 오늘에 이르러 거꾸로 굴러떨어진 시간이라 그럴까. 다만 장담하건대, 그 미심쩍게 넋이 나간 상반신이 아니었다면, 정말 그뿐이 아니었다면. 조각상이 조악할지언정 모두가 못질 망치질을 곁들이진 않았을테다. 딱지마저도 아물지 못하게끔 이리 오랜 세월 동안 말이다.
디에고는 제 유년기를 쥐어뜯곤 했다. 디에고에겐 잃어야 할 순간이 있었다. 디에고는 원치 않는 관심과 기억들을 떠나고자 한다. 아쉬울 따름이다. 당사자가 부정할지언정 일말의 불씨마저 없었단 말은 완강히 거부하고 싶다. 호오가 뒤집히긴 했다만, 일종의 흡인력이랄 것이 없었더라면, 디에고에게 숨을 꽂아넣을 이조차 없었을테다. 물론 디에고는 여전히 불확실해보인다. “Not Ready". 아무렴. 근데 준비되지 않은 건 꼬마일지 디에고일지. <Diego>가 지극한 의문문으로 시작된다.
그리하여 <TOTAL XANARCHY 2>가 탄생했느냐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디에고는 네버랜드를 헤맬 생각이 없다. 저를 Lil Xan으로 만든 캐릭터리즘을 완전히 누그러뜨리고, 개성과 몰개성을 넘나들던 꼬마를 옷장에 가뒀다. 여기에 래퍼로서의 능력치를 균등히 분배한, 제법 그럭저럭인 이모 힙합 아티스트가 되었다.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혹은 어떤 미디어에 비췄을 법한. 좋게 말해도 무난. 아니라면 이도 저도 아닌. 언뜻 보기엔 완전한 음악적 변신이다. 과거 굴곡진 믹싱과 무책임한 래핑 속을 넘나들던 그의 시그니처 ‘Xanarchy'. 같은 말을 이리도 평탄하고 매끄러운 마주하기란 심히 어색할 지경이다.
다만 무던한 겉치레와 무던한 음악 장치 그리고 무던한 감정선을 덮어씌운들. 얼굴 위에 새긴 낙서들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꼬마를 괴롭힌 약물과 이별하며 심경의 기복을 밝혔으나, 껍데기는 자존감과 담대함을 한참 잃어버렸다. 전작의 매타작과 왈가왈부를 차마 외면할 수 없는 모양이다. 차이가 있다면 겉과 속이 뒤집힌 마네킹이다. 표출하던 외모와 방황하는 내면. 이번엔 완벽히 뒤집혀있다. 여전한 기저 수준의 능력으로.
결국 디에고의 변화는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다. 다시금 괴작을 돌아봐야 한다. 제법 긱(Geek)스러운 너드의 화법. 은연중에 풍긴 유니크함. 담력도 팔심도 모자라지만 마구자비로 휘둘러대곤 했다. 지금은 아니다. 일종의 토피어리나 키링이 되어버린, 가이드라인을 따라 만들어진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앨범의 첫 감상은 시원하게 뺨짝을 후려갈겼다. 초중반부 트랙들은 밋밋하다. 찌질하고 못난 어리숙함을 뻔뻔한 어쿠스틱 뚱땅 소리 위 철 지난 이모 트랙으로 결부시킨다. 중반부는 일부 트랩 뱅어를 위시한 트랙들이 존재한다. ’그렇구나‘ 이상의 역동적인 답안을 내놓지 못하겠다. 실패다. 잘 쳐줘야 부옇게 뜬 데생. 집에서 내쫓긴 사춘기 학생의 의지가 엿보이지만 그 정도까지다. 고요한 어쿠스틱 혹은 쨍한 기타리프. 감성을 돋구려는 가창. 사랑을 갈구하는 가사. 그렇다. 으레 무상함이 트랩 스타에게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만, 그러지 못할 운명 위에서 더없이 무던해지고 말았다. 여전히 회의적이고 불확실한 마무리 “Nightmares”가 방증이 되겠다.
주유기 기름내마저도 코끝에 힘껏 뛰어들어 지끈거림을 남기고 사라지는데. 어째 유일한 잠재력을 케케묵히고 말았을까. <TOTAL XANARCHY>를 온전한 역겨움으로서 청취했다면 거짓말이다. 갈기갈기 찢은 소묘화보다는 사지가 자유분방한 도화지 위의 크레파스빛 괴물이다. 엄연히 잘 만들려던 작품이다. 조력자들 모두 이름값들을 한다. 육안의 강조만큼 심각하지 않다. 그저 ”Tick Tock“ 속 틱들이, ”Moonlight“속 애드립이, “Slingshot”의 좋아하는 것들이, 싫어하는 배신자 친구들이. 음. 역학관계가 정확한 좌표에 모여든다. 제법 샘통이다 싶다.
근데 그게 없었다면. 그 유별난 하자마저도 없으면 무엇으로 남을 생각일까. 마땅할지 모르는 오명을 그렇게나 외면할 이유가 있을까. 자격이 있을까. 필요가 있을까. 뭔가 변한듯 부르짖지만 여전히 되풀이되는 이야기들 뿐이다. 결국 되돌아간다. 디에고에게 꼬마는 진정 애증의 존재다. 꼬마는 디에고를 살리고 다시 죽인다. 세상에 떠나보내도 몸 안에 남는다. 얌전히 사그라들다가도 길길이 날뛰는, 얼굴 위엔 검게 덮은 상처의 흔적들만이. 뻔뻔한 못남이 알량한 멋들어짐을 꺾어버린다. ‘Xans don't make-'. 알면서도 모른 결론이다. 새로운 나를 찾겠다면서도, 지난 이름을 버리지 못했는데. 음. 이쯤이면 됐다. 잊힌 이들에 묵은 오랜 피력이다.
앨범은 구리지만 리뷰는 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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