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블랙뮤직 매거진 w/HOM #15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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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 - The Thief Next To Jesus
태초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균열은 전조 없이 피어났고, 강한 이끌림에 도리어 튕겨져나온 자그마한 입자들만이 여백의 바깥으로 떨어져나오며 발뻗은 빗금을 고쳐세웠다. 세계가 그리 몸을 뉘었기에 광시곡의 악조들은 검은 도화지 위 먼지들을 밟고 뛰쳐나가며 곳곳의 국지에서 요동칠 수 있었다. 티끌은 감히 왕좌를 우러러볼 수도 없었으나, 눈에 띄지 않더라도 그 자취를 즈려밟을 뿐이었다.
목회자들의 그릇됨을 목도한 성도들은 설교의 연민을 되찾아야했다. 아케디아, 즉 권태로운 게으름은 영(靈)에 반하여 죄악시되는 행동이었기에, 언제나처럼 무상하고도 덧없는 존재였던 KA는 다시금 성경으로 귀의하였다. 일찍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았고(<Descendants of Cain>), 순교자들의 결실을 되뇌었으며(<A Martyr's Reward>), <The Thief Next to Jesus>는 회개한 도둑으로 일컬어지는 성 디스마스를 전면에 내걸기에 이른다.
그가 성경의 우화를 제시한 순간은 처음이 아니지만, 명명백백한 가톨릭 소스들로 빚어낸 음악적 기틀의 확립을 보면 본작이야말로 진정 민족주의와 공동체의 연대를 위해 신앙의 힘을 빌려온 듯하다. 수많은 교리와 규율로부터, 성가를 부르짖는 합창단의 조화로부터, 일제히 영적인 감각을 이끌어내는 피아노와 오르간의 가스펠 선율로부터, 그 장대한 포도밭 위에 묵묵히 고개를 조아린 미약한 자신과의 조율로부터. 수없이 되새긴 재해석에 이르며 그의 영성은 옥죄면 옥죌수록 더욱 독실해진다.
허나 <The Thief Next to Jesus>는 그저 드높은 존재들을 예찬하기 위한 작품이 아니다. 겉으로는 그리 위장하려는 듯 그간 지향해온 무던한 미니멀리즘을 일부 배반하는 장엄하고 창대한 샘플들이 채택되었지만, KA는 그 신성한 폭풍의 눈 안에 숨어들어 주위를 둘러보는 자신에게 활시위를 겨눈다. 또한 자신을 둘러보는 주위 모두에게 빗발치던 살촉마저 떨어뜨릴 매서운 칼바람을 일으킬 뿐이다.
줄곧 체스 게임(<The Night's Gambit>)이나 중세 봉건의 일본(<Honor Killed the Samurai>) 등 다양한 관념으로부터 주제를 빌려온 그가 다시금 성경을 집어들었지만, 본작은 답습으로 늘어뜨린 페르마타의 흐릿한 향취보다는 다 카포로부터 새로운 피네를 긋고자 함에 목적이 있다. 디스마스의 이야기는 KA 자신과 진정 깊이 엮여있기 때문이다.
어느 래퍼에게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KA 역시 과거 범죄와 약물에 휩싸이며 브라운스빌의 무질서함을 정처 없이 부유하던 이였다. 랩에 대한 열망이 그를 구원하였으나, 그 문화를 낳은 흑인 공동체 사회의 현주소는 야욕을 품은 애먼 자들에게 휘청이고 휘둘리는 가냘픈 존재에 불과했다. 역사의 흐름에서 증거를 되짚자면 특히나 과거 백인 중심의 기독교도가 성경을 힘입어 와오된 패권을 휘두르고, 권위를 앞세워 십자가의 이름으로 흑인들을 무릎 꿇린 순간. 어쩌다 그들은 교인으로서 교인을 부리게 되었는지. 과거의 위선자들을 조망하며 과거의 자신을 씻어내는 KA의 언약은 그 순간으로부터 시작한다.
공허와 아우라. 상충하는 두 탐미적 요소들의 공존은 아스라이 흐려지는 퍼커션의 공간 위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목화밭처럼 황량하고 드넓은 버려진 땅을 만들어준다.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수평선의 경계를 바라보며 맞물리지 않는 정경의 가르침 속에서 고뇌한 찰나들을 고스란히 적어내려간다. 고요하고도, 침착하게, 불필요한 여백의 낭비 따위 없이. 다분히 비평적인 이 얌전한 읊조림은 더없이 미천한 제 위치를 은유적으로 강조한다. 한 명의 신자로서 그러하고, 세상 위에 홀로 선 인간으로서 그러하다. 역사의 죄를 함부로 누군가의 등에 짊어지도록 할 수 없는 노릇이다만, 그렇다면 어느덧 잊힌 꿈들에겐 무슨 위로를 할 수 있을지.
밀레의 붓끝이 천지의 창조나 영들의 축의 대신 한없이 보잘것없는 여인들의 추수를 그려냈듯, KA의 독실함은 스테인드 글라스를 거친 햇빛이 아닌 브루클린을 넘어선 어느 뉴욕 길거리의 잿빛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종교가 낳은 폭력의 잔혹한 참상. 분란의 자멸 속에서 되새겨야 할 민족주의의 부흥. 죄인으로서 임해야할 마음가짐.
그의 가사들을 곱씹으면 진정 잃어버린 설교의 연민을 되찾은 듯하다. 그릇된 위선자들은 나약한 민족의 내분을 일으켜 저들의 배를 불리고, 언감히 신구약을 고쳐쓰며, 저와 같은 디스마스들을 거리낌 없이 부리다 끝끝내 처형시켰으리라. 그러니 모두들 더 이상 서로를 겨누지 말아야 한다. 가짜들의 꼬임과 언감생심에 희롱당하지 말아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죗값을 치르기 전 어서 구원받아야 하리라. 허나 그의 깨우침이 세상을 뒤바꾸기엔, 세상이 그를 짓누르는 무게에 비해 너무나 미약하기 그지 없어 가엾을 따름이다.
별은 영원한 잠에 빠지는 순간 가장 눈부시고 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머나먼 땅에서 이 과거의 사그라듬을 알아차리기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별이 탄생한 그 순간, 머나먼 땅에서 지금의 환한 아름다움에 닿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이 지든, 혹은 피든, 닿지 않는 머나먼 곳에서는 어느덧 잊힌 순간들만이 숨을 죽이며 다가온다. 별은 어디에서나 피어나고 스러지지만, 그 찰나가 언제나 찾아오지는 않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간 지향해온 무던한 미니멀리즘을 일부 배반"한다고 하셨지만, 초면인 입장에서는 아직도 꽤나 간소하게 느껴지네요. 그게 무척 깊이있기도 하고요.
우연히 피치포크 들어갔다가 사망 기사를 보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부디 편히 쉬기를...
별은 영원한 잠에 빠지는 순간 가장 눈부시고 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이 문장이 가슴에 와닿네요....
최고의 리릭시스트 중 하나였죠.
이번 신보도 좋게 들었는데 안타깝네요..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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