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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Swag, Yes Flex & Drip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9.05.21 00:34추천수 1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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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부터 스웩의 몰락은 서서히 진행됐다.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힙합 음악 안에서 스웩이라는 단어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체할 수 없는 표현으로 여겨졌으나, 트렌드를 주도하며 'Purple Swag'을 자랑했던 에이셉 라키(A$AP Rocky)에게도, 'Future Swag'을 내세우며 그야말로 한발 앞선 행보를 보여줬던 영 떡(Young Thug)에게도 더는 이 말을 들을 수 없다. 스웩이 곧 삶이었던 래퍼들이 스웩을 부리지 않게 된 것이다.

멋을 뽐내는 행위가 없어졌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인류는 항상 자신의 멋을 가장 새로운 표현으로 뽐내기 위해 노력해오지 않았던가. 한참 닳은 표현 대신 우리는 지금 'Flex'와 'Drip'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멋을 플렉스(Flexin')하고, 드리핑(Drippin') 중일 뿐이다. 살짝 늦은 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더 늦을 순 없다. 스웩을 부리면서도 대체 스웩이 뭘까 싶었던 이들을 위한 설명이 필요했듯, Flex와 Drip의 시대에도 정보의 공급은 필요하다. 그 막중한(?) 사명(?)을 갖고 이 세대의 멋을 대변하는 두 단어에 관한 글을 완성했다. 이 글만 읽고 나면 당신은 'Flex의 뜻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Swag으로 Drippin''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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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grab


Flex

이제는 한국힙합 가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그 단어'다. 스웩의 맞후임 격인 ‘대세 슬랭’이기 때문에 비교적 최근에 새롭게 생겨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Flex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됐다. 이 단어는 90년대부터 흑인들의 슬랭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부터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본래는 근육을 자랑할 때 사용되던 슬랭이었기 때문에 갱, 감옥 문화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고. 세월이 지나면서는 유형을 가리지 않고 남보다 무언가가 잘났음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의미를 확장했다. 덕분에 좀처럼 힘을 자랑할 필요가 없는 요즘 힙합 씬에서는 래퍼들의 근육량과는 전혀 무관하게 주로 새로 산 장신구나 의상을 뽐낼 때 사용된다.

90년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Flex의 흔적은 그 시절 음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당시 Flex는 현재의 사용법보다는 단어의 원래 뜻에 충실했다. 아이스 큐브(Ice Cube)의 대표곡 중 하나인 “It Was a Good Day”의 라인이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다.


No flexin’, didn’t even look in a n****’s direction
과시한 적 없는데도, 날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더군”


이후 Flex는 기나긴 동면기를 거치고 나서 2010년대 중반 들어서 다시금 래퍼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Flex의 재등장에 불을 지핀 곡을 묻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No Flex Zone”으로 의견이 모이지 않을까. ‘깝죽거리면 안 되는 구역’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이 트랙의 제목과 훅은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단어의 의미를 각인시켰고, 래 스레머드(Rae Sremmurd)와 Flex의 인지도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이듬해인 2015년에 짭짤한 성공을 거둔 리치 호미 콴(Rich Homie Quan)의 “Flex (Ooh Ooh Ooh)” 역시 이와 비슷한 역할을 맡았고, Flex는 자연스레 힙합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표현이 되었다.

Flex는 음악 안에서의 영향력을 넘어 일반인들의 삶에도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가령, 지금도 미국 현지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밈인 'weird flex but ok'가 있다. 지난 2018년 9월, 미국의 한 공직자가 성폭행 논란을 부정할 때 "나는 고등학교 때도 동정이었고, 이후 몇 년간 쭉 그랬다”는 발언을 뱉은 바 있다. 이를 유명 유튜브 코미디언 사라 샤우어(Sarah Schauer)가 “좀 애매한 Flex인데… 아무튼 그렇구나(weird flex but ok)”라는 멘트와 함께 리트윗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그 후로 Flex라는 표현은 누군가의 어떤 애매한 성과에도 달라붙는 마법의 표현으로 평가받으며 인터넷의 핵심 밈으로 자리 잡았다.

[Flex를 컨셉으로 차용한 대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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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Drip

앞서 언급했듯 한국힙합에서도 곧잘 쓰이는 Flex와 다르게 보다 최신 유행어인 Drip은 상대적으로 그리 익숙하지 않다. 여전히 의미를 도통 모르겠다면 ‘간지’라는 한국 슬랭(?)을 생각하면 된다. 뚝뚝 떨어진다는 Drip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처럼, 한때 한국에서 가장 트렌디했던 '간지가 뚝뚝 떨어진다'라는 표현이 이 슬랭의 정확한 뜻이다. 특히, Drip은 보석과 손목시계를 자랑할 때 최고의 효과를 발휘한다. 미국에서는 보석의 투명함을 빗대어 ‘Ice’, ‘Water’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물처럼 투명한 시계가 간지를 뚝뚝 흘린다니, 그야말로 치맥 급의 환상적인 조합이다.

Drip의 사용은 2000년대의 여러 미디어를 중심으로 쓰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나, Flex가 그랬듯 당시에는 단어 그대로 '가득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쓰였다. 고스트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의 “Nutmeg”을 살펴보자. 2000년에 발표된 해당 트랙에서도 Drip이 쓰였지만, 현재 힙합 씬에서 인식되는 단어의 용례와는 조금 다르게 '보석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라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사용됐다.


Check out the kingpin, summertime, fine jewelry dripping
이 랩 본좌를 봐, 여름날 멋진 보석들을 주렁주렁”


그렇게 정직하게 쓰였던 Drip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간지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기 시작한 건 최근 일이다. 시작은 소스 워커(Sauce Walka)와 그의 크루 더 소스 패밀리(The Source Family)다. “Drip은 단순한 간지가 아닌 최고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소스 워커의 태도처럼, Drip은 비슷한 의미의 ‘Sauce’와 더불어 그들의 음악에서 지겨울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이후, 더 소스 패밀리의 영향을 받은 페이머스 덱스(Famous Dex), 퓨처(Future), 미고스(Migos), 카디 비(Cardi B) 등 메인스트림 래퍼들에 의해 Drip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졌다.

그중에서도 Drip의 유행에 제대로 힘을 실어준 래퍼로는 거너(Gunna)를 꼽을 수 있겠다. 2016년 메이저 데뷔부터 지금까지 앨범 타이틀에 Drip을 빼먹은 적이 없는 그는 “누가 만들었든 간에 Drip을 본격적으로 유행시킨 건 명백히 나”라며 크레딧을 완강히 주장했던 바 있다. 실제로 오프셋(Offset)의 “Ric Flair Drip”, 거너의 “Drip Too Hard”와 함께 단어의 인지도가 월등히 뛰어올랐으니 일리 있는 발언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소스 워커는 “종교인이 신의 존재를 무시하는 격”이라며 Drip 원조 맛집의 자존심을 꺾지 않고 있다. 난리 통 속에서 확실한 사실 한 가지는 각자가 기여도를 주장하는 만큼 Drip이 현재 가장 뜨거운 슬랭이라는 말에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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