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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탄 게츠가 힙합이 된 순간 5

title: [회원구입불가]LE_Magazine2019.06.09 22:59조회 수 2142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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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감사하게도 스탄 게츠(Stan Getz)의 평전 <Nobody Else But Me>를 번역 출간하게 됐다. 스탄 게츠는 보사노바(Bossa Nova)와 쿨 재즈(Cool Jazz)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색소포니스트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유행하던 보사노바라는 브라질 음악을 세계인이 즐기는 음악으로 만든 것이 스탄 게츠고,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Bill Evans), 트럼페터/보컬리스트 쳇 베이커(Chet Baker)와 함께 서정적인 쿨 재즈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것도 스탄 게츠다.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개막식에 울려 퍼진 보사노바 명곡 “The Girl From Ipanema”를 세계인의 음악으로 만든 것까지도 스탄 게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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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4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100장이 넘는 앨범을 발표한 다작의 사나이다. 그런데 그의 곡을 샘플링한 힙합 트랙은 터무니없이 적다. 수많은 명곡을 녹음했고, 그중 다수가 힙합 샘플링에서 즐겨 사용되는 서정적이고 대중적인 멜로디를 지녔음을 고려한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몇몇 곡을 추려 다섯 곡을 소개해본다.




XXXTentacion - Infinity (888)

sampled Stan Getz & Bill Evans Trio - The Peacocks


“Infinity (888)”은 요절한 스타 래퍼 텐타시온(XXXTentacion)의 2집 앨범이자 생전 마지막 앨범인 [?]의 수록곡이다. 힙합 씬의 어린 리더이자 트렌디한 래퍼인 그의 앨범에서 붐뱁 트랙인 이 곡은 다소 이질적이다. 조이 배대스(Joey Bada$$)가 객원 래퍼로 함께하며 붐뱁의 정통성을 강화한다. 규칙적인 박자 아래 나른한 연주가 깔린다. 색소폰 연주자는 스탄 게츠고, 피아노 연주자는 빌 에반스(Bill Evans)다. 머리말에서 소개했던 쿨 재즈의 아이콘이다. 이 둘의 합작 앨범 [But Beautiful]에 실린 “The Peacocks”가 이 곡에 사용된 샘플이다. [But Beautiful]에서 합작하기에 앞서 두 아티스트는 1964년 앨범 하나를 같이 녹음했는데, 퀄리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발매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음반사는 상업성을 고려해 1973년 'Stan Getz & Bill Evans'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 앨범은 그로부터 1년 뒤인 1974년에 네덜란드의 나렌, 벨기에의 앤트워프에서의 공연을 녹음한 라이브물이다. 결과적으로 작품은 스탄 게츠의 사후인 1996년에 발매됐으니 발매가 늦은 편이다. [But Beautiful]은 [Stan Getz & Bill Evans]에 비해 구하기 쉽지 않으나, 연주만 보았을 때는 훨씬 더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Infinity (888)”에 만족한 사람이라면 원곡도 들어보기를 바란다.






The Pharcyde - Runnin’

sampled Stan Getz & Luiz Bonfa - Saudade Vem Correndo


1990년대 서부 힙합에는 갱스터 랩을 중심으로 한 시류가 있었다. 지역마다, 그리고 시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서부를 관통하는 하나의 굵은 흐름이 있었다. 서부에서 재즈 랩을 선보였던 그룹 파사이드(The Pharcyde)는 그런 흐름과 전혀 상관없는 팀이었고, 1992년 [Bizarre Ride II The Pharcyde]라는 재즈 랩 앨범을 발표했다. 파사이드의 2집 [Labcabincalifornia]은 그보다 더 나아간 작품이다. 재즈 샘플링이란 기반을 유지하면서 더 세련되게 마감했다. 그중 “Runnin’”은 스탄 게츠와 루이스 봉파(Luiz Bonfa)의 보사노바 곡 “Saudade Vem Correndo”의 기타 리프를 샘플링한 곡이다. 사실, 스탄 게츠가 보사노바를 연주한 것은 자의가 아니었다. 브라질에 다녀온 동료 쿨 재즈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Charlie Byrd)가 모든 것을 준비하고, 스탄 게츠는 사실상 숟가락만 얹으면서 시작했다. 이 둘의 합작 앨범 [Jazz Samba]가 대히트를 기록했고, 1960년대 미국 팝 시장을 휩쓴 보사노바 열풍을 일으켰다. 그런데 스탄 게츠는 찰리 버드를 내팽개치고 브라질 연주자들을 대동해서 [Jazz Samba Encore!]라는 앨범을 만들어서 발표하고 말았다. 음악만 따지자면야 너무나 멋진 재즈 보사노바 앨범이지만, 실은 스탄 게츠의 ‘통수작’이다. 찰리 버드가 준비했던 앨범의 제목까지 이어갔으니 조금 너무하기도 하다. 뭐,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Pete Rock & C.L. Smooth - Tell Me

sampled Stan Getz - Keep Dreaming


스탄 게츠는 보사노바와 쿨 재즈에 한정해서 설명할 수 없는 음악가다. 1940년대에 스윙과 비밥으로 재즈를 시작해서 쿨 재즈와 보사노바, 퓨전 재즈, 포스트 밥까지, 사실상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모든 재즈 장르를 아울렀다. 1970년대에 그는 이미 기성 연주자였다. 하지만 같은 연령대의 연주자 중 '꼰대'와는 거리가 가장 먼 인물이었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신예들을 대동했으며, 그들이 말하는 음악 트렌드를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Keep Dreaming”은 스탄 게츠가 전자악기를 받아들이고 실험했던 1970년대의 음악이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 [Another World]에는 전통적인 어쿠스틱 악기뿐 아니라, 일렉트릭 피아노, 미니무그, 일렉트릭 베이스 등 전자악기가 사용됐다. 그런데도 하나 분명한 것은 그의 연주는 늘 서정적이고 따뜻하다는 점이다. 프로듀서 C.L. 스무스(C.L. Smooth)는 이 곡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사용했다. 프레이즈를 루핑하는 전통적인 방식부터 음 하나를 따로 잘라내서 울리게 하는 방식 등 복합적으로 접근했다. 샘플링이 기존 곡 우려먹기나 재사용이 아닌 하나의 창조적인 작법임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순간이다.







Blu - Silent

sampled Stan Getz & Astrud Gilberto - Corcovado (Quiet Nights of Quiet Stars)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Astrud Gilberto)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서문에서 소개했던 스탄 게츠 버전의 “The Girl From Ipanema”에서의 여성 보컬리스트가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다.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는 이 곡에서 노래한 남성 보컬리스트 주앙 지우베르투(Joao Gilberto)의 부인이었다. 녹음 당시 대부분은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의 참여에 반대했다. 영어가 서툴렀고, 무엇보다도 전문 가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어눌함은 매력이 되었고,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가 스탄 게츠와 바람이 났다는 것이다. 1960년대 초반 내내 보사노바를 연주했던 스탄 게츠는 보사노바에 다소 지친 상태였다. 그는 브라질인 연주자들과 결별하고, 미국인 연주자들과 활동했다. 그 와중에도 브라질인 음악가가 있었으니 바로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다. 이 앨범을 녹음할 당시엔 서로 대화하지 않았을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다고 하는데, 그런 불편한 기류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연주와 노래는 너무나 아름답다. 블루(Blu)는 이 곡을 컷 앤 페이스트(Cut & Paste) 작법으로 새롭게 만들었다. 브라질 음악에 흐르는 우수를 말하는 사우다지(Saudade)는 새롭게 탄생한 곡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한다.






Sound Providers - Pacific Vibrations

sampled Cal Tjader & Stan Getz Sextet - Big Bear


원곡을 연주한 밴드는 그야말로 올스타 밴드다. 피아니스트 빈스 과랄디(Vince Guaraldi)는 ‘스누피 만화’로 알려진 <피너츠(Peanuts)> 시리즈의 사운드트랙으로 유명한 연주자다. 베이시스트 스콧 라파로(Scott LaFaro)는 빌 에반스 트리오(Bill Evans Trio) 소속이었는데, 사고로 요절하자 빌 에반스가 식음을 전폐하고 음악을 접다시피 했을 정도로 굉장했던 연주자였다. 드러머 빌리 히긴스(Billy Higgin)는 리더로도 활약했지만, 세션 드러머로 더 유명하다. 1960년대부터 수많은 앨범에 참여하며 명반들의 탄생을 함께한 레전드다. 여기에 거장 비브라포니스트 칼 제이더(Cal Tjader)와 스탄 게츠가 공동 리더로 자리하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직관적이고 서정적인 재즈 샘플링으로 잘 알려진 사운드 프로바이더스(Sound Providers)는 칼 제이더와 스탄 게츠의 “Big Bear”를 샘플링했다. 정확히는 칼 제이더의 솔로 도입부 프레이즈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스탄 게츠의 연주가 전혀 담기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쉽지만, 이렇게나 투명하고 맑은 비브라폰 연주를 어떤 힙합 트랙에서 또 만날 수 있을까?


*관련링크
Nobody Else But Me – A Portrait Of Stan Getz (데이브 젤리 지음, 류희성 옮김)


CREDIT

Editor

류희성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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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2019.6.11 10:51 댓글추천 0

    와 요즘 보사노바에 빠져서 마침 스탄게츠도 알아보고있었는데 너무 양질의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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