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미적인 예술을 감상하는 것은 힘듭니다.
언어와 의미에서 해방되어 온전히 아름다움만을 위한 순간을 창조하려는 예술가의 자아와
순간을 해체하고, 분석하고, 재조립해 가치를 부여하려는 감상자의 자아가 충돌합니다.
감상이 끝난 시점에 작품은 감각에서 벗어나 표상이 됩니다.
표상은 추억이 되기 위해 언어가 되고 의미가 됩니다.
예술가의 본의를 생각하면 슬프기 짝이 없는 순간입니다.
어쩌면 탐미적인 예술을 존중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순간을 느끼고, 변질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한 뒤, 그대로 놓아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도터 오브 다크니스를 들은 뒤 감상을 정리하다, 이걸 언어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덧없는 짓인지를 고민하며 한 생각이고
롱 시즌을 처음 들은 그 순간을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우울해서 한 생각입니다.
쨌든 그래서, 저는 탐미적인 예술을 감상하고 나면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그냥 좋았다... 내가 사랑하는 작품이다... 정도로 표현하는 게 최선인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하니까 이만큼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글쓰기에선
무의미할 것 같아도 적어도 진심으로 고른 단어를 남기고 싶어져요
즐기는 거랑은 다른 차원일 수 있어도!
언어에 갇힐 수 밖에 없는 게 인간이니까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죠. 그 누구보다 예술가들이 이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진심으로 고른 단어라는 표현이 정말 좋네요. 완전할 순 없어도, 진심이라면 위안이 될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탐미주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만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주목적이니까요
허나 그렇다고 탐미주의에 대한 모든 해석이 의미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만의 정체성이 담긴 해석인 만큼 그것 또한 감각을 전파하는 예술이 되거든요.
그렇죠. 탐미주의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예술관도 결국에는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을 테니까요. 해석에서부터 출발했을 겁니다. 의미가 끼어들어 순간이 박살나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제 욕심인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거죠 사실
저도 ㅇㅈ..
진짜 좋은거 듣고 나면 뭔가 허무해짐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붙들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예술가의 본의에 벗어나는 행위일지라도 그 감동의 트릭을 밝혀내는 과정이 예술지망생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듯. 뭐 물론 그런거 상관없이 직감적으로 해내는 괴물같은 사람들도 있지만요.
모든 예술가가 탐미주의만을 추구하는 건 아니니까요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