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ttps://youtu.be/70obFPbyBo0?si=UioHSfkCDTXnS4PR
요즘은 다시금 클래식 음악을 자주 찾아 듣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라디오헤드 같은 아방가르드 음악으로 듣기 시작한 터라,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유명한 작곡가들보다는 펜데레츠키, 리게티 등등부터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고전파 - 낭만파보다는 그 이전 르네상스/바로크나 바르토크/스트라빈스키 같은 1900년대 이후 작곡가들을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 곡의 작곡가는 Jose Maceda로, 필리핀분입니다. 대충 세대로 치면, 윤이상, 토루 타케미츠처럼 나라는 막 독립해서 '민족주의적' 음악은 만들어야 하는데, 서양의 흐름은 이미 아방가르드 음악으로 넘어간, 그런 모순된 시대의 작곡가죠.
다만 이 곡에서만큼은 그 모습이 참 아름답게 들립니다.
필리핀 출신답게, 동남아 전통 음악에서 자주 들리는 금속 타악기 소리들 (흔히 말하는 가믈란 같은 것 - 필리핀에서는 가믈란 전통과는 살짝 다른 쿨리탕이라는 악기가 있습니다)와 함께 선명한 멜로디 감각을 보여줍니다. (아마 프랑스 유학파이니 메시앙이나 드뷔시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독일 현대 클래식 작곡가들을 안 좋아하는 편입니다. 기 승 전 소음이랄까요, 새로운 작곡의 패러다임을 위해 음악의 아름다움을 너무 희생한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들으면서 자주 합니다.
그에 비해 메시앙은 참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아방가르드해서 좋아합니다. 엘이에서 메시앙 이야기하시는 분이 보여서, 이런 주저리주저리도 쓰네요.)
(2)
https://youtu.be/uhXoYfFX6ZA?si=ZVWedOTDYtLDNAhn
이번 건 피터 스컬토프라고, 호주 작곡가의 음악입니다.
이 작곡가 역시 아방가르드와 '호주다운 음악'이라는 요구 사이에 있었던 세대인데, 이 곡 역시 그에 대한 대답처럼 들립니다. 바로 호주를 대표하는 악기인 디제리두를 적극적으로 차용해서 말이죠.
호주 원주민들의 음악도 여러 지역권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에서도 북부 아넘랜드 지역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셈입니다.
(3)
https://youtu.be/zyUsaAcGP1Y?si=5pQ29OtVAhF_COnW
클래식과 함께 다시금 듣기 시작한 장르가 펑크와 포스트펑크입니다. 대학교 신입생 때 꽤 자주 들었다 한 십년 가량 안 들었는데, 요즘 다시 들으니 그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자주 느껴집니다.
예컨대,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탄생에 분명 기여했을 것처럼 들리는 미니멀 신스/댄스 펑크 같은 장르들이라던가, 80년대 중후반 영국 밴드들이 가지고 있는 묘한 '프로그레시브함'과 시티팝/시부야계의 관련성이라던가, 메탈코어와 포스트-하드코어 그리고 클래식과 트랜스 음악이 가지는 '멜로디 전개 중심의 전개'라는 유사성이라던가 등등등.
여튼 젤리피쉬라는 밴드는 80년대 영국 밴드 중에서, 특유의 촘촘한 편곡과 화음으로 유명한 밴드입니다.
위쪽으로는 비틀즈/비치 보이스가 모델일 것이고, 아래로는 플레이밍 립스, 머큐리 레브에서부터 아케이드 파이어 같이 거친 기타 음색과 심포닉한 느낌을 섞으려던 계보의 허리쯤에 위치할 겁니다.
(4)
https://youtu.be/twxtMkIfFrk?si=dHMHgr2NgUXnmggA
디 라이트라는 밴드?의 음악입니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영국 밴드인데, 확실히 포스트펑크와 일렉트로니카 댄스 음악 그리고 랩 사이의 연관성을 잘 보여주는 음악이라 생각합니다.
90년대 영국 음악들은 확실히 동시대 미국 음악보다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둘 다 루프를 중심으로 한 음악인 것은 똑같은데, 영국에서는 루프라는 특징을 제외하면 모든 장르를 뒤섞은 느낌입니다. 기타를 섞어서 락스럽게 만들면 매드체스터나 영국 포스트 락 사운드가 되는 거고, 공격적인 브레이크비트로 만들면 프로디지가 되는 거고, 랩이나 알앤비 보컬을 얹으면 사데이, 디 라이트, 네네 체리 같은 음악이 되는 기분입니다.
무언가 락, 알앤비, 힙합, 일렉트로니카 사이의 경계가 없다는 느낌입니다.
(이에 비해 미국은 힙합과 일렉트로니카 음악, 뉴메탈의 경계가 꽤 명확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같은 장르 파괴의 시대, 90년대 영국 음악이 하나의 훌륭한 아카이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대로 미국 힙합에서는 점점 메탈코어나 뉴메탈, 하드코어 펑크, 포스트 하드코어의 영향이 강해지고 있네요. 카티의 미공개곡들이나, 페기도 그렇고, 릴 우지도 그렇고 말입니다.)
(5)
https://youtu.be/OMEcEBYe3jw?si=fgT44IuktbNczzEJ
마지막은 케이팝 아이돌 곡으로 끝낼까 합니다.
항상 소개하고 싶었던 곡인데, 막상 소개한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베이스와 단초로운 드럼 비트 위로 랩과 보컬로만 요리한 미니멀한 곡인데, 이런 스타일 중에서는 가장 완성도가 높은 곳 같습니다.
외힙이든 한국이든 이런 단조로운 비트는 보컬이나 랩 차력쇼로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야 하는데, 케이팝 아이돌이 다인원이라는 점을 활용해서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일대일 비교는 어렵겠지만, 일종의 우탱클랜 같은 '떼거리 힙합'만이 만들 수 있는 매력일까요?
그런게 케이팝 특유의 깔끔한 프로덕션을 만난 느낌입니다.
끄읏.
모르는거 진짜 많네요 배우고갑니다 개추
아이고 감사합니다!
경계가 없다는 말 공감합니다 영국 음악이 동시대 다른 나라의 음악들보다 장르가 뒤섞여있는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했어요 빅비트나 트립합 같은것만 봐도 그렇죠. 이외에도 트랜스와 클래식, 메탈코어 등이 곡 전개 방식이 유사하다는 것도 상당히 재밌네요.
(1)
빅비트, 트립합, UK 포스트락, 슈게이징, 매드체스터, UK 스트리트 소울, 애시드 재즈, 라가 정글, 스트리트 랩 등등.
확실히 90년대 영국 음악은 섞어 짬뽕인게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더 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요.
(쓰다보니 든 생각인데, 이렇게 장르 섞어 짬뽕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케이팝이 90년대 영국 음악과 비슷한 위치에 있지 않나...싶기도 하네요 ㅋㅋㅋ)
(2)
트랜스, 메탈,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를 더하자면 기승전결이라고 해야할까요?
멜로디에 따라 (화성이든 악기 편성이든 이펙터든) 음색이 변하고, 리듬/음량 등의 변화 (드랍 같은 것)를 통해서 곡이 전개되는 느낌입니다.
이에 비해 포스트펑크나 힙합, 요즘 팝 등은 매우 일정하고 귀에 박히는 루프를 중심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는 방식 같습니다.
한편 재즈나 세계 여러 지역의 타악 중심 음악(특히 인도와 중동, 아프라키)은 루프와는 좀 구분되는, 그루브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통해 진행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나중에 공부를 더 해서, 보다 적확한 언어로 풀 수 있으면 좋겠네요.
오오 2번째 문단, 예전부터 종종 떠올렸던 생각이었는데 깔끔하게 글로 정리해주셨네요. 저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익숙해서 그런지 몇개의 멜로디/샘플 루프의 반복을 중심으로 한 음악이 더 쉽게 다가오고, 멜로디에 쉴새 없이 변화를 주는 음악들은 들으면서 집중력이 딸리더라구요..
귀한 음악들 항상 너무 감사합니다!!!!
편안해지고 화창해지는 음악들이네요
호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짤막하게 나마 주기적으로 들은 앨범 소개를 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ㅋㅋㅋ
디라이트 2집 상당히 좋음..
2집은 안 들어봤는데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알았는데 디 라이트 미국 그룹이였네요;; 왜 영국으로 알고 있었지 @.@
유익한 밤이 될 거 같네요 보석을 알려주셔서 감사 합니다 잘 듣고 갑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조금 더 주기적으로 들은 앨범 소개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ㅎㅎ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항상 글을 너무 쉽게 써주셔서 잘 보고 있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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