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우즈는 인디 힙합신의 오디세이 여정을 가고 있다
빌리 우즈는 뉴욕시의 끝없이 변화하는 성향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고, 그의 힙합 커리어가 이를 몸소 보여줘왔다.
자메이카인 교수와 짐바브웨인 정치활동가 아들로 태어난 빌리 우즈는 어린 시절을 남아프리카와 미국 동부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즈음 랩을 시작했다. 그는 전설적인 할렘 힙합 듀오 카니발 오엑스의 Vordul Mega와 친해지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쯤, 그는 Backwoodz Studioz라는 독립 레이블을 설립했으며, 이는 2012년에 나온 <History Will Absolve Me>와 2015년에 나온 <Today, I Wrote Nothing> 같은 솔로 명반들도 발매했고, 심지어 퀸즈 출신 베테랑 래퍼 Elucid, 비트메이커 Steel Tipped Dove와 Blockhead, 싱어송라이터 Fielded 등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발표하는 자주적인 레이블이 되었다.
그의 신보 <Maps>는 2019년에 나온 <Hiding Places> 이후 LA 출신 프로듀서 Kenny Segal과 다시 협업한 두 번째 정규 앨범이다. 이 앨범으로 빌리 우즈는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입증했으며, 또한 "랩"이 시나 소설만큼 분석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문학 형식임을 재증명했다.
이 앨범은 지난 2년간 빌리 우즈가 소화해낸 (거의 여행에 가까운) 매우 바쁜 투어 일정에 대한 내면적 성찰일지이며,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우리 모두가 겪어온 엄청난 정서적 불안들에 대한 분석일지다.
그러나 이런 긴 여정의 끝에는 가벼운 순간들도 있다. [NYC Tapwater]는 투어 중인 예술가들이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 속도를 스케줄에 끊임없이 맞춰야 하는 모습을 담은 곡이며, 또 다시 뉴욕의 바쁜 리듬에 맞춰 적응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빌리 우즈는 여유로운 하루 동안에도 끝없이 변화하는 뉴욕에 대해 따뜻하면서도 유머 넘치는 관찰일지를 적었다.
"문틈으로 보이는 건 계단을 오르내리는 새로운 사람들
새로 생긴 건물들
방금 영화배우 돈 치들을 얼핏 본 것 같기도 하고,
쿠키와 대마가 여기저기 보이네. 사워 디젤 브랜드라면 좋을 텐데."
빌리 우즈의 이런 작업물에서는 현실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며, 과거의 고난과 현재의 불확실성을 온갖 비유로 가득한 가사를 통해 인상파적 이미지를 포착해낸다.
<Maps>는 2022년에 나온 <Aethiopes>와 <Church> 이후에 나온 앨범으로, 이 두 앨범은 혼돈으로 가득찬 비트와 온갖 역사적 비극 및 도시 내부의 사회적 혼란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가사로 담아내어 극찬을 받았다.
또한, 2021년 발표된 Elucid와 The Alchemist의 콜라보 앨범 <Haram> 역시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았다.
4월 20일에 이뤄진 이 랩퍼이자 레이블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가 어떻게 그렇게 매번 날카로우면서도 훌륭한 동시에 여전히 다작하는지, 그리고 다른 아티스트들이 그와 같은 수준에 어떻게 도달하도록 돕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했다.
또한 최근 그를 향한 찬사와 주목, 그의 팬들이 그의 얼굴을 밝히지 않으려는 이유를 존중하는 것, 그의 가사가 세밀하고 치밀한 해석을 유발하도록 만드는 방법, 그만의 이런 전반적으로 독특한 커리어를 끝없이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질문했다. 그는 뮤직비디오에서 발라클라바 가면이나, 다양한 카메라 앵글, 모자이크 등등 다양한 효과를 사용해 그의 얼굴을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음악에 집중하도록 더 유도한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질문했다.
빌리 우즈는 오늘날 인디 힙합신의 미래가 의외로 밝다고 말했다.
정작 그의 신곡 [Year Zero]는 그런 낙관적인 발언과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애들아, 너희와 친구들이 다시 시작해야 할 거야
우리랑은 할 수 있는 게 없어
우린 모조리 망가졌기 때문이야
우린 망했어, 손 대는 것마다 독을 묻혔지
말라죽었고, 우리를 안에 둔 채로 불태워버렸어"
이번 신보에 수록된 [NYC Tapwater]라는 노래는 어디 한동안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적응하는 단계, 어디에서도 당신이 오지 않기를 예상하는, 그런 미묘한 상태를 다루는 이야기다. 당신에겐 그게 끊임 없이 반복되지 않는가.
그렇다. 마치 오디세이 같은 영웅담과도 같다.
앨범은 뉴욕을 다루는 [Kenwood Speakers]로 시작해서 [NYC Tapwater]하고 에필로그격 트랙인 [As the Crow Flies]로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이건 투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은 건데, 여행으로 인해 자신이 변한 동시에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삶이 계속 흘러갔음을 느끼게 되는 그런 이야기다. 마치 움직이는 기차에 다시 올라탄다고 해야 하나.
집에 돌아와서 내 방에서 잠을 자고, 내 침대에 눕고, 대마를 피우며, 고양이랑 창밖을 보는, 그런 것들을 다시 느껴서 좋은 동시에, 마음 한구석은 내가 전혀 다른 멀리 있는 곳에 있는 그런 기분 말이다.
신보가 발매되기 전 몇 주 동안, 이걸 발매하는 레이블의 대표로서 당신은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가.
이번 앨범은 유통 방식이 새로 바뀌었다. 온갖 지루한 행정 업무도 여전히 처리하고, A&R부서 일도 해야 하며, 일정에 따른 스트레스를 미리미리 파악해서 모든 것이 잘 진행되도록 검수하는 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일개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투어 준비, 집을 잠시 떠날 때 고양이 돌봐줄 사람을 구하는 일, 머무를 숙소하고 기타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까지 있다. 앨범 홍보도 동시에 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틈틈이 시간 나면 다른 아티스트들을 위한 피쳐링 작업도 병행한다.
어떻게 이런 일들을 매년에 몇번씩 할 수 있는지.
그게 바로 직업이다. 게다가 항상 솔로 프로젝트만 하는 것도 아니다. 판데믹 때문에 몇 년간 투어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일들이 꽤 빠르고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책 작업도 있다. 지금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항상 이런 상황이 계속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이니까 중요하겠지.
어떻게 케니 시걸과 함께 <Maps>를 만들었는가.
둘다 예전부터 항상 또 다른 콜라보 앨범을 만들 계획이 있었다. 항상 서로 잘 지냈고, <Hiding Places>는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각별한 앨범이었다.
이 신보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딱히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방금 떠오른 걸 분석해서 말해보자면, 이 앨범에는 판데믹의 여파가 매우 컸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집에 박혀있던 상태에서 갑자기, 적어도 여기 뉴욕시에서는 사람이 서서히... 그러다가... 빠르게 이런 판데믹 상황에도 적응하기 시작하고, 스스로 정해둔 제한 안에서도 가능성을 찾고... 이렇게 "포스트 판데믹"의 시대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이런 모든 과정이 정말 원시시대 야생에 던져진 기분과도 같았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해외로 비행기를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 가게 된 거다!!! 갑자기 또 세상에 확 던져진 기분이었지.
나도 그렇게 2020년대를 느꼈다. 판데믹 난장판이 끝나고, 이제야 밖으로 나와서 상황을 확인했을 때, 어떤 것들이 다 망가지고 개판 났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 같은 공연 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중에서 특히 라이브로 음악 관련 일하는 사람들이 2년간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려고 애쓰고 있는 상황이다. 예약 관련 일을 맡는 담당자는 정말로 모든 것을 예약해대는 상황이 온 거지. 나는 그런 방식으로 투어를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내 집에만 2년 동안 콱 박혔던 후라면 더더욱 기괴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내게 다가온 상황을 바탕으로 영감 삼는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내 작품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 어쨌든 그게 우리가 이 시대에 겪었던 상황이었다.
<Maps> 작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LA에 있었고 몇 곡을 작업했다. 그 중 하나가 [Rapper Weed]였다.
나는 공연도 하러 그곳에 갔고, 그 후에도 투어를 계속했다. 점점 그러다보니 나는 그냥 "이런 대로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고, 내가 평소 그러하듯이, 그런 생각과 이런 새로운 유형의 스케줄과 작업방식들을 내 음악에 자연스레 녹여냈다.
<Church>의 초기 컨셉 구상은, 뉴욕에서 긴 역사를 가진 대마초 품종 "Uptown Piff"을 한 묶음 손에 넣으면서 구상하게 된 거다. 그 품종을 "Church"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 그걸 예전처럼 쉽게 구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어쨌든 그 계기로부터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고, 대충 그런 주제로 계속 작업하다가 전반적인 주제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앨범을 작업할 때는 오로지 그 대마초 품종만 피웠다. 그 품종은 이젠 예전 같지 않다. Sour Diesel 같은 품종이 나오기 전 이야기 하는 거다. 그게 나오기 이전에는.... 지역에 따라 Piff, Church, Frankies, Haze 등등 다양하게 불렸던 대마초 품종이 있었다.
이 모든 게 플로리다에 있는 쿠바인들을 통해 들어왔는데, 사실상으론 워싱턴 하이츠의 도미니카인들이 거래를 중개하는 상황이었다. 그게 그땐 뉴욕에서 가장 비싼 대마초 품종이었다. 20달러로 1그램도 못 사고... 아마 0.7그램 정도 살 수 있었다. 대량으로 산다면 한 온스에 550달러 정도였는데, 이윤을 거의 남길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Sour Diesel는 가격이 훨씬 더 저렴해서 점점 주류가 되었다.
그러다 캘리포니아가 대마초를 합법화하면서 다양한 품종들이 여기저기 들어오기 시작했다.
매번 느끼는 건, 당신의 앨범들을 이해하긴 위해선, 역사를 먼저 이해하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뒷배경이나 여러 다양한 컨셉이나 주제를 미리 알고 있으면 내 앨범을 더 깊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분명 100% 사실이다.
하지만 난 항상 그런 걸 몰라도 앨범을 즐기거나 전반적 주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신경 쓰려는 타입이다.
분명 이 앨범 <Maps>를 듣는 사람이 투어를 다니는 뮤지션이라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훨씬 더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당신의 음악은 항상, 특정한 시대나 장소 혹은 문화를 매우 자세하게 다루지만, 동시에 그런 지역색에 마냥 노예처럼 묶이지도 않고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도 있다.
이건 아마 당신이 자라면서 여러 장소를 오갔기 때문이라고 본다.
뉴욕의 밤문화 혹은 매우 세심한 뉴욕 역사들을 디테일하게 담고, 심지어 그런 분석을 이번 앨범에서 더더욱 세계로 확장시켜냈다.
나는 다양한 시간대를 다루며 작사하려고 노력한다. <Church> 같은 경우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를 다뤘다. 아니 그것도 단 하나의 측면일 뿐이고, 분석해보면 다른 측면도 많은 편이다.
다양한 시간대가 겹치는 모습을 정말 볼 수 있는 건 <Aethiopes>라고 할 수 있다. 그 앨범에서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를 연대적으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유럽 역시 이 역사에 포함시킬 수 있다. 유럽과 아프리카는 역사적으로 서로 뗄 수 없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애초에 "아프리카"라는 개념조차 역사적으로 유럽인들이 만든 거다. 아니 심지어 "유럽" 역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지역적 개념이다.
"흑인성"과 "백인성"은 분명 실재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기도 하다. 이번 신보 <Maps>는, 여행과 투어를 많이 다니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한 많은 내용이 녹여져들어 있다. 하지만 어떤 여행담이든, 결국 나는 그 안에 보편적으로 공감할수 있는걸 담으려고 한다.
나는 투어 여행 중에 그 앨범에 수록된 몇 곡을 작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Church> 앨범을 작업하는동안엔 그 Church 대마초 품종만 피웠다. <Aethiopes>를 작업할 때는 역사 관련 서적들을 엄청나게 읽었다.
<Maps>의 경우는, 아마 70% 정도는 투어 도중에 작곡했다. 대충 엇비슷하게 전체 65% 정도는 투어 도중에 녹음까지도 병행했다. 현재 기분을 담으면서도 기존 앨범과 다르게 녹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신보에서 케니가 비트메이킹과 프로듀싱에서 매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멜로디를 중시하는 케니와 작업하면, 당신 음악이 좀 더 직설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창작은 열심히 하지만, 동시에 명성에는 그닥 관심이 없으면서도, 훨씬 더 많은 투어를 하고, 꾸준히 집중하며 예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간의 이런 관계가 정말 흥미롭다고 느낀다.
마냥 그러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분명 전보다 훨씬 더 많은 투어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훨씬 더 비평적으로 주목받는 프로젝트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더 멜로디적으로 직설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건 그냥 하나의 앨범일 뿐이다. 꽤나 성공적이었던 <Aethiopes>도 내 앨범 중에서 꽤 독특했다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해야지 같은 어떤 계획이 있었다고 보진 않는다. 반드시 뭔가를 강박적으로 이뤄야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케니랑 같이 음악을 만들었을 뿐이다. <Aethiopes>도 같은 방식으로 작업했다.
우리가 앨범 작업을 시작했을 때... 사운드나 주제 등등 여러 면에서 내가 독재식으로 이끌어간 부분도 많았고, 그리고 세부적인 아이디어나 주제 같은 것들은... 그의 피드백과 우리 둘의 세심한 대화에 의해 결정되었을 뿐이다. 단지 그뿐이었다. 이해가 되셨기를 바란다.
당신이 더 접근성 대중성 있는 앨범들을 만들어간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 이전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게 얼마나 복잡한 기분인지 설명해달라.
사실을 말하자면, 누군가 날 알아보는 일은 정말로 드물다.
공연장 바로 밖이거나, 호주의 비교적 작은 도시에서 공연을 하고 있을 때, 내가 Elucid랑 같이 머리를 땋은 채로 돌아다니고 있으면 누군가가 나타나서 공연 기대된다고 말하는 정도, 그게 다일 뿐이다.
그런 지역에는 흑인이 많지 않으니, 게다가 날 알아보는 사람들도 공연을 보러 오기 위해 그 지역에 있는 것이니 쉽게 날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딱히 복잡한 기분 같은 건 느끼지 않는다.
당신의 그런 워라밸을 존중한다. 그걸 굳이 "이분법"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바쁘고 활동적이면서도 모든 사람 앞에선 얼굴을 보이지 않는 그런 밸런스는 나도 추구하고 싶다.
눈에 띠지 않으려고 하는 성격이다.
눈에 띠지 않으려고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주제를 앞장서서 얘기하고 있다.
그게 단점도 일부 있지만 장점도 생각보다 많다.
그 중 하나는 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태도를, 내 팬들도 존중해주고 선을 넘으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다른 레이블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만의 레이블이 있으니까.
내가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스케일도 커지면서 내 레이블을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성공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면서 생긴 이득 중 하나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전혀 안해도 된다. 내 레이블이니까 그냥 안하겠다고 하면 그냥 어느 누구랑도 싸울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이득은, 누군가를 디스하려는 건 아니지만, 내 성공은 매우 천천히 자연스럽게 성취되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지 나 스스로 잘 알고있다. 만약 내게 최악의 나쁜 상황이 오더라도, 내가 여기까지 온 커리어를 다시 반복 하면 난 문제가 없을 거다.
당신의 레이블 Backwoodz는, 뉴욕시의 인디힙합신의 유산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힙합신의 첫 번째 부흥기 시절보다 지금이 더 성공하기 쉽다고 생각하는가.
비트메이킹, 녹음, 엔지니어링 등등... 아니 심지어 음악을 배급하는 과정까지 분명 많은 것들이 쉬워졌다. 당연히 훨씬 더 성공하기 쉽다. 논쟁의 여지조차 없다.
근데 그런 현상에 숨겨진 단점도 있는가.
그건 굳이 "좋다" 혹은 "나쁘다"로 답하고 싶진 않다. 상황은 예전과 달라졋다. 모든 것이 많이 변했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는 각 사람들 관점에 따라 다르다.
분명 음악은 훨씬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음악을 듣거나 디깅하는 것에 훨씬 더 적은 시간을 보내게 된 것 같다.
심지어 이건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뮤지션들은 전보다 훨씬 더 적은 시간을 들여서 만드는 것 같다.
아니 이게 굳이 좋다 혹은 나쁘다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켄드릭 라마 같은 주류 뮤지션들은 앨범을 거의 5년 간격으로 발표한다.
예전엔 전성기 주류 뮤지션들은 그렇게 길게 쉬지 않았다. 나스도 5년을 쉬지 않았고, 제이지도 5년을 쉬지 않았다.
신중하게 대답하셨다.
개인적으로 나는 분명 문화가 번창하는 현상을 보고 있다. 하지만 그게 굳이 환경이 좋아서 인디힙합이 번창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
힙합신은 항상 압박을 받고 있다고 본다. 다양한 세력의 원한과 공격에도 어찌저찌 힙합신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지역적인 측면에선 힙합신의 현재 상태에 대해 나름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폴로 같은데서 드레이크 콘서트 중에 NYPD가 막 관중의 얼굴을 촬영해대는 것에 대해서는 그닥 기분이 좋지 않다.
맞다. 우린 분명 경찰들이 힙합을 탄압하는 시절을 겪었기에 더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근데 지금은 음악을 만들기 쉬워졌다. 그래서 그냥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음악은 단지 부가적인 취미 활동에 불과하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은 사실 랩/힙합과 아무 관계 없는 직업을 갖고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냥 다들 주변에 랩을 하니까 자기들도 진지하지 않게 랩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걸 다시 말하자면, 나는 어떤 시대라도 다 각자만의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뉴요리칸 문화가 꽃핀 카페 같은 곳에 가면 거기서 싸움이 엄청 터졌다.
알파벳 시티 지역은 과거엔 엄청 다른 모습이었다.
그 시대를 떠올리면, 매우 보헤미안적인 면도 있었고, 온갖 훌륭한 예술적 주제와 이념들이 꽃피던 시절이었다. 그와 동시에 거기엔 거친 면도 있었다. 방랑적이고 자유로운 모습도 많았지만, 동시에 싸움도 자주 일어나곤 했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였다.
"그때가 더 좋았다"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내심 있다.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은 가급적 경계하고 싶다.
도심 쪽에서 생활을 길게 안 해본 사람들은 그런 끝없는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동네의 대부분 거리에서는 지금도 한참 건설작업 중이다. 외형적인 깨끗해지고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총격 사건도 꽤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도 창문들은 항상 깔끔하다.
동의한다. 뉴욕은 수십 년넘게 인구의 상당 부분을 끝없이 비워나간 도시였다. 난 브루클린에서 같은 지역에만 17~18년 넘게 살았는데, 그 지역은 수차례의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어온 것이다.
그런데 젠트리피케이션이 항상 주민들을 무조건 쫓아낸 건 아니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상당히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많은 경우에는 비어 있던 부지에 건물들이 들어서는 걸로 끝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옛날 그레이엄가 부근에 있던 한층짜리 건물들, 하나의 상점만 있던 곳들이었는데, 아파트 건물로 모조리 대체되었고, 1층에는 새로운 상점들이 입주해갔다. 임대료 역시 올랐다.
처음에는 예술가들이나 젊은 전문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대체적으로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 처음 왔을 때, 내가 사는 구역에서 헤로인과 크랙 같은 마약 팔던 사람들은 17~18년 후에도 여전히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반대로 완전히 변한 곳도 있었다.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북쪽 지역처럼 말이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곳이 대부분 예술가들이 사는 로프트 공간이었고, 빈 산업건물들이 많아서 대체가 쉬운 편이었다.
나는 그 시절,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Vice에서 일하면서 도시 풍경이 정말 빠르게 변하는 걸 주욱 지켜봐왔다. 워터프론트 근처에 건물이 올라갔지만, 반대 방향으로 몇 블록만 가면 사람들도 많고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 주거 지역이 있엇다.
그렇다. 오늘날까지도 윌리엄스버그 남쪽 지역은 완전히 변하지는 않았다. 90년대 뉴욕에도, 그곳은 사람들이 적은 편이었다. 지금도 전혀 안쓰는 버려진 건물들이 있지.
내가 자랐던 지역은 일부는 그냥 아예 폐허였다.
내가 살던 건물 역시 정말로 상태가 형편 없었다. 추측건데, 아마 집주인은 35년 전에 8만 달러 정도로 그 건물을 샀을 거 같다. 아마 90년대 초에 샀겠지.
심지어 그때 그 건물은 여전히 지금도 있다. 다만 차이점은 많은 부동산이 개발됐고, 다른 건물들은 내부를 다 뜯어고쳐서 리모델링했고, 새 건물들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입주민들이 대거 유입된 거지.
당신이 몇년전 쓴 에세이 <Witness>를 지금도 기억한다. 당신의 에세이에서는 할렘에서 택시기사가 아이를 치고 나서, 나중에 죽임을 당한 사건에 대해 다뤘었다. 나도 그 날을 기억한다.
우리 동네에서 택시가 파손되는 걸 본 건 딱 그때 두 번 뿐이었다. 또 다른 거는 누군가가 주차된 차에 M-80 폭죽을 터뜨린 거였다.
맙소사. 우리가 이웃이었다고?
그 동네는 내가 살아본 동네 중 가장 험한 곳 중 하나였다. 다른 곳들도 좀 그러긴 했지만, 아마 그 동네가 역대 최악이었을 거다.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 단지 중 하나가 바로 맞은편에 있는 그 작은 블록에 있었지.
2020년대로 넘어와서 상황이 점점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지금 여기 힙합신에서 창의력이 많이 샘솟는다는 것이다.
여기 언더그라운드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말 흥미로운 일을 하고 있다.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지.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말 멋진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에 대해서는, 이런 것들은 예측하기 너무 어렵다, 특히 우리가 기술들이 점점 더 빨리 발전하는 시점에 있고, 심지어 그 발전속도조차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난 현재 사업적인 관점에서 뭘 말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분명 다양한 목소리들이 여기 신에 존재하고 있다. 나는 지금 Backwoodz 레이블이 지금 정말 독특한 사운드들을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분명 꽤나 밝은 미래라고 보고 좋은 예감이 들지만, 나는 그저 우리의 다음 프로젝트와 아티스트들에 집중하려고 하고 있다. 내 앞에 있는 것에 보려고 할 뿐. 왜냐하면 나조차 이것들이 어디로 갈지 모르니까.
MIKE나 Mavi 같은 사람들이 이런 언더신에서 나오고 있고, Akai Solo 같은 아티스트도 관심을 받고 있고, 그와 관련된 크루도 주목을 받고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런 다양한 일들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가 해내지 못했던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일을 해나가는 걸 보는 건 흥미롭다.
여기 언더힙합신에서 매우 젊은 뮤지션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만든 음악들 말이다. 훨씬 더 다양한 계층에 포용적이고 마초적이거나 가부장적인 요소가 덜한 언더그라운드 힙합 그런거.
나는 음악팬들의 장르부심 게이트키핑이 강했던 시대를 살아왔다.
이쪽 음악신의 진정한 팬 혹은 아티스트라면,
언제나 그저 유행이란 이유로 음악을 들어댄 사람들에게 항상 도전하는 것이 진정한 팬이다.
만약 1997~1998년 시절 언더그라운드 힙합 공연장에 가서, 언더그라운드 힙합 복장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 사람이 나타나면, 경계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때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지.
하지만 지금은 여기가 훨씬 더 포용적인 환경인 것 같다. LGBTQ 개인들에게도 훨씬 더 포용적인 환경이 된 것 같아서 참 좋다.
분명 어느 정도는 많이 변했다.
많이 달라졌다. 예를 들서 Black Moon 같은 공연에 갔을 때 팀바랜드 부츠나 후디 같은걸 입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동성애혐오와 여성혐오가 심각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물론 지금 그게 다 사라졌다는 말도 아니다.
그래도 현재 세대의 뮤지션들은 분명 달라졌다. 이제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음악에 대한 통제권을 가질 수 있는 더 좋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고, 인디 레이블과 더 나은 계약을 맺을 수 있으며, 선택권도 더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점들도 생겼다. 스트리밍도 장점이 있고, 커리어가 잘 풀린다면 장점이 많이 적용된다. 여기 인디급 레벨에서도 커리어가 정말 잘 된다면 스트리밍은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팬들이 적다면 스트리밍으로는 실질적으로 돈을 전혀 벌 수가 없다.
예전에 CD를 사람들이 많이 샀을 때는 이런 스트리밍의 문제점이 그닥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젊은 세대가 현재 인디 힙합을 이끌어가는 방향에 좋은 점들은 꽤나 많다.
중간까지 읽었는데 무거운 내용이네요 낼 회사가서 마저 읽어야징
벌쳐 인터뷰는 항상 수준급
다른 섹션은 별로 안좋아하지만 (특히 코미디 섹션은 최악)
음악 섹션 인터뷰는 양질이라서 저도 좋아해요
빌리우즈 앨범 감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읽었습니다
감사용
Ekqhd
dh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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