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to the G-Funk Era #1
들어가기에 앞서...
히맨님의 반 협박성(?) 강요와 회유정책에 의해 키보드를 꺼내놓긴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야할 지 고민이 큽니다. 과거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힙합 음악은 듀스와 서태지에 의한 한정판이었죠. 더구나 힙합의 한 갈래라 할 수 있는 G-Funk(이후 지펑크)는 소수의, 힙합 듣는다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힙합을 즐겨듣는 인구수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지펑크에 대해서는 '덕후' 수준의 마니아들이 많아진 상황입니다. 때문에 잘 알려진 곡들 위주로 다루자니 진부할 것 같고, 깊게 다루자니 얄팍한 지식이 드러나 괜히 욕만 먹고 퇴장하지는 않을까 겁이 나더군요. 가뜩이나 소심한 성격인데 더 소심해지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글의 방향을 시간 흐름에 따른 여행 형태로 잡아봤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제가 처음 힙합 음악에 빠져들었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 차곡 차곡 얘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웨스트코스트 지펑크 음악을 통해 힙합 음악 듣기를 시작했던 만큼 그누구보다 지펑크에 대한 애정은 크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방대한 지식은 솔직히 장담할 수 없지만,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다룸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만큼 진심을 담아 지펑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회원 분들도 재미와 진정성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딱히 몇 편까지 간다는 그런 제한을 두진 않았고요. 시간 순서대로 차곡 차곡 이야기를 쌓아가볼까 합니다.
N.W.A. 그리고 Dr.Dre
<Fuck Tha Police>라는 곡이 있었죠. 유년기의 저에게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록뮤직을 통해 '반항의 음악적 표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었지만 N.W.A.(Eazy-E, Ice Cube, Dr.Dre, MC Ren, DJ Yella) 이 흑인 래퍼들은 난감하더군요. 어쩜 이리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던지요. "무식해도 보통 무식한 형들이 아니다.", "이건 반항이 아닌 배설에 가깝다."와 같은 비판을 가하면서도 그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훗날 <She Swallowed It>을 들을 땐 거의 수컷 본능에 가까운 희열을 느끼며 혼자 킥킥 대기도 했었죠.
그런 그들 가운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Dr.Dre입니다. 직설적이고 강한 그들의 메시지 만큼이나 탄탄하고 견고한 음악을 찍어내는 그의 손길이 맘에 들었습니다. <Straight Outta Compton>, <Gangsta Gangsta>, <100 Miles and Runnin'>, <Real Niggaz Don't Die>, <Approach To Danger>! 이 곡들을 처음 접하던 그때의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감동이 없었다면 전 아마도 MC Hammer와 Vanilla Ice에서 그쳤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솔로 앨범을 발표하더군요. 지펑크 음악을 버무린 자신의 독집 앨범 [The Chronic](1992)을 말입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지펑크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Dr.Dre의 앨범에 참여하여 트랙들을 '올킬'한 Snoop Doggy Dogg이 누군지도 몰랐죠. 단지 음악의 질이 더 좋아졌다는 것과 랩하는 흑인들이 많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소위 '빽판'이라 불리는 테이프를 듣기도 하루가 짧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가 Snoop Doggy Dogg이라는 신인이 [Doggy Style](1993)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통해 접하게 되었고, 이후 Warren G의 <This DJ> (앨범 [Regulate... G Funk Era](1994) 수록 곡)를 듣게 되면서 아예 록음악이나 가요 음악은 듣지도 않았습니다. 힙합 음악만이 진정한 음악 마니아의 정도란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지펑크를 만나게 됩니다. 미국 흑인 음악 잡지였던 Thr Source 매거진을 통해서였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힙합 음악이라는 것의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잡지를 발견한 것은 거의 '신의 부름'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부모님께 교재를 산다는 거짓말로 용돈을 마련한 뒤 쉴 새 없이 잡지를 모으기 시작했죠. 되지도 않는 영어를 해석하느라 밤을 새워도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기사를 통해 Dr.Dre가 시도한 음악이 지펑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본격적인 지펑크와의 만남이었다고 회상해봅니다.
새로운 시대: G-Funk Era
George Clinton의 밴드 유니온이던 Parliament와 Funkadelic의 음악 활동을 통해 창조한 funk의 한 갈래가 P-Funk 였는데요. 이들의 음악을 샘플링하거나 비슷한 코드 진행을 시도하고 그 위에 드럼 세팅을 덧붙인 것이 Dr.Dre였습니다. 그는 이 음악을 지펑크(Gangsta-Funk의 약자)라 명명하였죠. 그리고 그런 지펑크 음악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어 활용한 것이 Dr.Dre의 이복동생이었던 Warren G였습니다. 이후 웨스트코스트 힙합은 규칙적인 베이스라인을 토대로 소프트한 Funk 연주가 샘플링된다는 정의 아닌 정의가 세워집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웨스트코스트 힙합 뮤지션들이 이러한 형태의 음악을 발표했으며, 다들 이러한 음악을 가리켜 지펑크라 불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냥 지펑크는 웨스트코스트 힙합 그 자체 내지는 대표성을 지닌 상징적 키워드로 자리잡게 됩니다.
Dr.Dre나 Snoop Doggy Dogg, Warren G 말고도 비슷한 시기에 웨스트코스트 힙합을 대표한 뮤지션들은 많습니다. Eazy-E, 2pac, DJ Quik, Tha Dogg Pound, Domino가 그들인데요. Eazy-E의 경우 워낙 잘 알려졌지만 다시 다듬어 보면, 과거 Dr.Dre가 몸담고 있던 N.W.A.의 리더이자 레코드 레이블(Ruthless Recrods)의 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Dr.Dre가 그룹을 탈퇴하고 갱단 멤버이자 알앤비 그룹 New Edition의 보디가드였던 Suge Knight과 함께 Deathrow Records를 설립하면서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The Chronic]의 싱글 커트 곡이었던 <Fuck Wit Dre Day>는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던 Eazy-E를 겨냥한 디스곡입니다.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조차 Eazy-E를 닮은 배우를 등장시켜 완전히 '병신'을 만들어 버릴 정도였습니다. 이에 격분한 Eazy-E는 아예 Dr.Dre를 디스하는 컨셉트 앨범 [It's On (Dr.Dre) 187um Killa](1993)을 발표하였고, 수록 곡 <Real Muthaphukkin G's>는 미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후에는 Eazy-E가 에이즈에 걸리고 죽기 직전 Dr.Dre와 화해를 하게 됩니다.
2pac이야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의 Deathrow 이적 후 삶입니다. 폭행죄로 구치소에 수감되었을 당시 Suge Knight은 보석금을 지불하고 그와 계약을 체결하였는데요. 그 이전까지 부조리한 세상에 직설적이면서도 은유적인 화법을 통해 반항하던 2pac이 손가락으로 '웨싸이드' 모양을 만들며 폭력적이고 저돌적인 뮤지션으로 변신하였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Suge Knight이 의도한 대로 연출된 이미지가 아니냐는 의견이 분분하였는데요. 어쨌든 2pac이 Suge를 통해 Dr.Dre와 만나게 되면서 탄생한 <California Love>나 <Can't C Me>는 그의 디스코그래피 가운데 가장 빛나는 G-Funk 클래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래퍼겸 프로듀서인 DJ Quik은 Dr.Dre와 같은 Compton City 출신입니다. 그는 유난히 자신의 소속 갱단인 블러드(Blood)를 강조했는데요. 앨범 재킷이 대부분 빨간 색이라는 점이나, 영단어 Quick에서 상대 갱단인 크립스(Crips)의 첫 단어 'C'를 빼고 Quik을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한 점이 그렇습니다. 1991년 데뷔 작인 [Quik is the name]을 시작으로 최근 [The Book of David](2011)까지 총 8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가 하면, 자신의 프로덕션 지휘 아래 Hi-C, Mausberg, 2nd II None과 같은 동료 뮤지션들의 활동을 돕기도 하였습니다. Funk 음악의 특징적인 부분을 자신만의 독자적인 샘플링 방식과 믹싱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기술은 타 뮤지션들에게도 귀감을 사게 되어, 전혀 성향이 다를 것 같은 Tony! Tony! Tone!이나 Raphael Saddiq과 같은 뮤지션들과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Tha Dogg Pound는 Snoop Doggy Dogg과 함께 활동을 하던 동네 친구들 Dat Nigga Daz(현재는 Daz Dillinger로 이름을 바꿨음), Kurupt입니다. 같은 Long Beach City 출신으로 앞서 언급한 DJ Quik과는 다른 갱단 크립스(Crips) 출신이죠. 때문에 이들의 앨범에는 파란색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데뷔 앨범인 [Dogg Food](1995)는 Dr.Dre와 Suge Knight의 합작 회사 Deathrow Records에서 발매가 이뤄졌는데요. 의아한 것은 Dr.Dre의 프로듀싱 비트가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대신 그룹 멤버인 Daz가 대부분의 곡들을 프로듀싱하였고 Dr.Dre는 믹싱 부분에 힘을 써줬습니다. 앨범은 Dr.Dre와 Snoop Doggy Dogg의 지원 사격 아래 빌보드 앨범차트 1위로 입성하는 데 성공하였고요. 당시 200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Domino 역시 Snoop이나 Tha Dogg Pound 처럼 Long Beach City 출신이자 크립스(Crips) 멤버인데요. 당시 루머에 의하면 Snoop 패거리와 10대 시절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Snoop 스타일을 흉내내며 떴다는 혹평 때문에 생긴 얘기인 듯한데 딱히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그는 데뷔 앨범 [Domino] (1993)로 핫샷(hot shot) 데뷔를 했죠. 특히 리드 싱글이던 <Geto Jam>은 빌보드 싱글 차트 7위까지 달성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는데요. 안타깝게도 두 번째 앨범부터 흥행에 실패하면서 아예 언더그라운드로 밀려나게 됩니다. 그래도 그의 데뷔 앨범 전반을 지휘했던 프로듀서 배틀캣(DJ Battlecat)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G-Funk Era #1 추천 곡들 (순서는 글 언급 순서)
N.W.A - Straight Outta Compton, Fuck Tha Police, Real Nigga Don't Die, 100 Miles and Runnin', The Dayz of Wayback
Dr.Dre - Fuck Wit Dre Day, Let Me Ride, Nuthin' But A "G" Thang, Deeez Nuuuts
Snoop Doggy Dogg - Who Am I, Gin And Juice, Serial Killa, Murder Was the Case
Warren G - This DJ, Regulate, So Many Ways
Eazy-E - Real Muthaphukkin G's, Eazy Duz It, Boyz N Da Hood, Ole School Shit, Just Tah Let U Know
2pac - Brenda's Got a Baby, Keep Ya Head Up, I Get Around, Me Against The World, Dear Mama, California Love, Can't C Me, Life Goes On, Got My Mind Made Up, 2 of Amerikaz Most Wanted
DJ Quik - Sweet Black Pussy, Tonite, Jus Lyke Compton, Summer Breeze, Somethin' 4 Tha Mood
Tha Dogg Pound - What Would U Do, Let's Play House, Smooth, Dogg Pound Gangsta, Domino Geto Jam, A.F.D, Sweet Poatoe Pie
글 | 김현준 (vallah@naver.com)
정말 잘 읽었습니다 . 쏙쏙 빠져드네요
정말 유익한 글이네요 거기다 쉬워서 더 읽기 쉬워요 잘 읽었습니다!
역시 요즘같은 날씨에는 다시 지펑에 손이 가더라고요. 좋은 글 잘봤습니다 !
쥐 펑크 계절이내요 ㅎㅎ 학 지-펑크로 정정 ㅋㅋ 쥐는 괜히 싫내요.
정말 윗분들 말마따나 지펑크 계절이네요 차에 크게 틀고 달리면 지펑크 따라올 음악 아무것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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