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Coming Home
02. Better Man
03. Brown Skin Girl
04. Smooth Sailin'
05. Shine
06. Lisa Sawyer
07. Flowers
08. Pull Away
09. Twistin' & Groovin'
10. River
내가 리온 브릿지스(Leon Bridges)를 처음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그가 50, 60년대 음악의 어법을 정말 완벽하게 구사한단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그의 음악을 조금 더 알게 되었을 땐 콜롬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가 그의 캐릭터와 음악을 정말 치밀하게 기획했단 인상을 받았다.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60년대와 동기화된 듯했다. 사진과 영상 속에서 발견한 그의 모습은 대부분 흑백이었다. 흑백 처리된 이미지를 제하더라도 그의 행색은 역사책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다. 단정하게 다듬은 머리 모양부터 한껏 추켜올려 입은 바지, 어색하게 기른 콧수염까지. 그 당시의 것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의 외모는 60년대에 완벽하게 부합하지만, 이건 단순히 외적인 꾸밈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연하게도 주목해야 할 건 그의 음악이다.
그가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은 50년대 리듬앤블루스와 60년대 소울 음악이고, 그 근간을 이루는 가스펠 음악이다. 그 시절의 흑인음악가들은 대부분 흑인교회 성가대원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었는데, 리온 브릿지스에게도 종교는 자신의 삶과 밀접한 존재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세례받는 모습을 그린 "Lisa Sawyer", 신을 향한 찬미를 담은 "Shine"와 "River"는 자신의 신앙심을 가감 없이 투사한 곡이다. 꼭 직접적인 묘사를 하지 않더라도 가스펠의 영향은 앨범 전체를 아우른다. 백업 보컬을 활용한 [Coming Home]의 전반적인 사운드는 가스펠 코러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초기 형태의 소울을 연상시킨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은 샘 쿡(Sam Cooke)이다(샘 쿡은 인기 가스펠 밴드 소울 스터러즈(The Soul Stirrers)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실제로 샘 쿡은 리온 브릿지스와 꾸준히 비교되는 인물이기도 한데, 샘 쿡의 느낌이 짙은 "Coming Home"을 쓸 때까지만 하더라도 리온 브릿지스는 샘 쿡의 음악을 잘 알지 못했다고 하니 참으로 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 Leon Bridges - Smooth Sailin'
그렇다고 이 앨범이 차분하고 경건한 음악만으로 채워진 것 아니다. 악센트를 준 발성을 내지른 뒤에 한 박자 쉬고 탄력적으로 내달리는 "Smooth Sailin'"이라든지, 리듬앤블루스 넘버 "Twistin' & Groovin'", 서던 소울 넘버 "Flowers"는 남부 음악의 흥겨운 리듬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곡이다. 그는 그러한 질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Coming Home]의 모든 녹음을 아날로그 레코딩으로 진행했으며, 미디를 사용하지 않은 건 물론이고 오버더빙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매끈한 음질이 아닌 소리에 다소 거친 질감을 입힌 것은 반 세기 전의 시대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외모와 음악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그의 음악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그의 출신지이다. 그는 조지아 주 애틀란타 출생으로 텍사스 주에서 자랐다. 수많은 초기 흑인음악의 발원지인 미국 남부 출신인 그가 소울 음악을 추구하게 된 것은 상당히 필연적으로 보인다. 그가 태어난 애틀란타는 소울 음악 시대에 미국 남부의 중심지로 군림했으며, 수많은 흑인 음악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텍사스는 블루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리온 브릿지스가 그의 고향 음악인 리듬앤블루스/소울 음악을 추구하는 것은 제법 설득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소울 음악에 흥미를 느끼게 것은 대학교 재학 시절로 상당히 늦은 시점이었고, 본격적으로 소울 음악을 추구하게 된 것도 불과 1, 2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 남부 지방에 있기에 소울 음악을 일상적으로 접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가 자란 텍사스 주의 포트워스(Fort Worth)에는 소울 음악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심지어 그가 즐겨 들었던 음악은 힙합이었다고 한다. 랩을 시도해봤다고 하는데, 본인의 랩 실력이 형편없음을 자각했던 그는 얼마 가지 않아 그만둔다.
그의 데뷔 전 활동에 관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리온 브릿지스가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음악 활동도 아마추어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텍사스의 로컬 밴드 화이트 데님(White Denim)의 기타리스트 어스틴 젠킨스(Austin Jenkins)가 그의 음악 스타일에 관심을 두게 됐고, 그의 동료 조슈아 블락(Joshua Block)과 함께 리온 브릿지스를 지원했다. 이 둘은 리온 브릿지스의 곡을 프로듀스했고, 그렇게 완성한 두 싱글 "Coming Home"과 "Lisa Sawyer"를 음악 블로그에 게시했다. 이 두 싱글은 의외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텍사스의 로컬 라디오 방송사인 KKXT는 물론 영국에서까지 전파를 타며 그는 수많은 레이블의 관심을 끌게 된다. 그때 그에게 접촉한 레이블이 무려 40개에 달했다고 하는데, 리온 브릿지스는 콜롬비아 레코드와 계약을 맺는다. 그게 2014년 말이었고, 그로부터 약 반 년이 지난 현재 정규 앨범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작업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은 내용과 컨셉 면에서 모두 꼼꼼하게 기획됐다. 앨범 디자인에서는 60년대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앨범 표지에는 흔히 눈(Eye)이라 불리는 콜롬비아의 레이블 로고가 삽입됐다. 레이블 로고를 앨범 표지에 삽입하는 건 과거 LP 시대에 한정되기에 꽤 상징적이라 할 수 있겠는데, 더 재미있는 건 디스크 디자인이다. 이번 앨범의 디스크는 CD와 LP 모두 식스 아이(Six Eye)로 디자인됐다. 식스 아이는 콜롬비아가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에 발매한 LP의 중앙 라벨지에 삽입된 여섯 개의 레이블 로고를 의미하는데, 이 시기는 리온 브릿지스가 추구하는 음악과 시대가 겹치기에 매우 유의미하다.
말하자면, 콜롬비아는 리온 브릿지스가 추구하는 음악이 효과적으로 돋보일 수 있는 장치를 곳곳에 심어둔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콜롬비아가 음악 작업에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레코딩 작업을 마친 리온 브릿지스가 레이블에 음원을 들려주며 '수정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고 하는데,이런저런 개입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레이블 측은 그것 그대로를 원한다며 반색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리온 브릿지스에게 작업할 수 있는 자율권을 주고, 레이블은 그들이 완성한 음악을 전달받아 그 외적인 것들을 기획한 것이다. 이 모든 건, 확실한 음악적 색깔과 컨셉, 그리고 높은 수준의 음악적 완성도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기존의 작품들이 음악만 복고풍으로 제작했다면, 리온 브릿지스의 [Coming Home]은 음악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 컨셉과 앨범 패키징도 그 시대와 발맞추었다. 모든 요소들을 60년대와 견고하게 엮어낸 덕분에 감상 지점이 확연하게 넓어졌다. [Coming Home]은 올해 발표된 알앤비/소울 앨범들 중 흥미로운 구석을 가장 많이 지닌 앨범이다.
글 | greenpla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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