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Playlist] Hip Hop과 Rock, 합체하다: Vol. 2
이전에 이 이야기의 Vol. 1을 쓴 적이 있다. 사실 그것도 이번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전초전이었고, 드디어 꾸준히 이야기하고 싶었던 영화 사운드트랙의 이야기를 풀어보게 되었다. 영화 자체는 힙합과의 관련성이 적지만, 그 사운드트랙만은 전무후무한 ‘진정한 힙합과 록의 합체’를 보여준 앨범이다. 물론 힙합과 록이 함께해서 훌륭한 결과물을 생산해낸 경우가 이 O.S.T.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에어로스미스(Aerosmith)와 런 디엠씨(Run DMC)가 함께한 "Walk This Way"도 있고, 1991년에 그 존재를 드러낸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TM, Rage Against The Machine)도 있다. 하지만 이 사운드트랙 [Judgment Night]은 뭔가 한 단계 올라선 랩과 록의 합체를 보여 주었다.
영화 <Judgement Night>의 포스터(좌)와 O.S.T. 재킷(우)
<Judgment Night>은 1993년 스티븐 홉킨스(Stephen Hopkins) 감독이 연출하고, 에밀리오 에스테베즈(Emilio Estévez), 쿠바 구딩 주니어(Cuba Gooding Jr.), 스티븐 도프(Stephen Dorff) 등의 명배우가 참여한 액션 스릴러 영화다. 이 영화에 흑인 음악과 그 문화에 관한 요소가 있었다면 '삼거리 엘이 극장' 시리즈에서 다뤘겠지만, 사실 연관성은 적다. 국내에는 <킬러 나이트>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어 알려져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따로 찾아보기 바란다.
자, 본격적으로 사운드트랙 이야기로 들어가자. 당시 롤링 스톤(Rolling Stone),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 큐 매거진(Q Magazine) 등 유수의 음악 관련 매체에서는 이 앨범을 입을 모아 칭송했다. 여러모로 힙합과 록의 합체에 있어서 모범적이고 화끈한 ‘탁월한 예시’를 보여준 앨범이기 때문이다. 굳이 비평계 칭찬의 권위에만 의존하기보다 우리의 귀로 직접 느끼자.
♪ Helmet & House of Pain - Just Another Victim
O.S.T.의 첫 곡은 1989년 뉴욕에서 결성된 얼터너티브 메탈 밴드 헬멧(Helmet)과 “Jump Around”라는 곡으로 알 만한 분은 다 아는 하우스 오브 페인(House of Pain)이 열고 있다. 시작부터 기타 사운드가 참 시원하다. 적절한 그루브가 넘치는 드럼 비트가 중심을 잡고 진행되는 동안 날카로운 보컬이 꽂혀 들어온다. 록보다 힙합 음악에 좀 더 취향이 기울어져 있는 사람이라면 후반부에 드럼의 분위기가 바뀌며 등장하는 하우스 오브 페인의 랩이 반가울 것이다. 곡의 내용은 제목이 드러내듯, 영화 주인공의 불길한 운명을 설명하고 있다. 영화상에서 또 하나의 희생양이 되었음을 알리는 보컬과 랩이 균형감 있게 전개되는데, 처음 들었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느껴지는 것은 ‘참 잘 배치한 오프닝 곡'이라는 점이다.
♪ Biohazard & Onyx - Judgment Night
두 번째로 이야기할 곡은 이 앨범의 네 번째 트랙인 "Judgment Night"이다. 브루클린 출신으로 하드코어 펑크와 힙합의 요소를 차용한 헤비 메탈 음악을 선보이는 랩코어 그룹 바이오하자드(Biohazard)와 차후에 설명의 글이 꼭 한 번 있어야 할 힙합 그룹 오닉스(Onyx)의 조인트다. 이 곡은 싱글로 풀려서 특유의 스타일을 뽐냈다. 영화의 제목과 같은 싱글로, 확실히 전체 트랙 중에서도 튄다. 개인적으로 광기랄까? 격하게 뿜어져 나오는 ‘무언가 찢어지는 감성’이 참 좋았다. 차후에 이 두 그룹은 오닉스의 굉장한 싱글 "Slam"의 리믹스 버전에서 다시 뭉친다. “Slam"과 오닉스에 관해서는 다음에 꼭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 Faith No More & Boo-Yaa T.R.I.B.E. - Another Body Murdered
다음은 독창적인 메탈 사운드를 꾸준히 추구해왔던 페이스 노 모어(Faith No More)와 미국령 사모아 출신의 묵직한 그룹 부-야 트라이브(Boo-Yaa T.R.I.B.E.)의 "Another Body Murdered"다. 이 곡은 전반적으로 '소리의 배치'가 훌륭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불길한 느낌을 주는 피아노 소리가 먼저 깔리고, 이어서 박력이 넘치는 기타 사운드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치 주술을 외는 소리에 가까운 페이스 노 모어의 마이크 패튼(Mike Patton)의 괴성. 제목이 뜻하듯 '또 하나의 시체가 생긴 상황'을 그려내는 듯한 찢어지는 비명도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앞의 "Judgment Night"과 함께 참 좋아하는 곡이다.
♪ Sonic Youth & Cypress Hill - I Love You Mary Jane
사이프레스 힐(Cypress Hill)은 이 앨범에 록 밴드 파트너를 바꿔가며 두 곡이나 참여했다. 그 중 "I Love You Mary Jane"은 1980년대부터 얼터너티브 록계를 풍미했던 소닉 유스(Sonic Youth)와 함께했다. 뭔가 죽 끌어당기는 소리에 이어서 "Sugar come back, Get me high"라는 문장이 반복되는데, 이 곡은 대한민국 실정법상 긍정할 수 없는 마리화나(Marijuana)를 향한 찐한 사랑을 노래하는 곡이다. 메리 제인(Mary Jane)은 마리화나의 속어이다. 상당히 몽환적인 곡이고, 곡에서 확실히 사이프레스 힐의 특징적인 사운드가 느껴진다. 요즘의 사이프레스 힐을 보면, 뭔가 록 사운드가 더욱 진한 방향으로 가는데, 그들의 전성기에 나온 앨범에서 들을 수 있던 얄궂은 느낌의 독특한 사운드가 가끔 그립다. 비-리얼(B-Real)의 특유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참 맛깔나다.
♪ Pearl Jam & Cypress Hill - Real Thing
이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 역시 사이프레스 힐의 작품이다. 록을 좋아하고 뭔가 좀 안다 싶은 사람이라면 잊지 못할 얼터너티브 록 그룹 펄 잼(Pearl Jam)과 함께한 곡이다. 시작인 "Just Another Victim"도 굉장했지만, 이 앨범을 마무리하는 "Real Thing"도 문자 그대로 '제대로 된 물건'이다. 펄 잼이 깔아놓는 잘 다듬어진 기타 리프를 타고 비 리얼과 센 독(Sen Dog)의 랩이 견고하게 펼쳐지며 곡의 완성도를 높인다. 역시 앨범 내의 다른 곡들처럼 힙합은 힙합의 특징을, 록은 록의 특성을 잃지 않고 잘 섞여 있는 '굿 트랙'이다.
이 다섯 트랙 외에도, 슬레이어(Slayer) & 아이스-티(Ice-T)의 "Disorder", 느긋한 느낌을 주는 틴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 & 데 라 소울(De La Soul)의 "Fallin'" 등 11곡이 꽉 차 있다. 그야말로 45분 11초의 '힙합과 록이 제대로 섞인 폭탄주'를 음미하는 시간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굉장했던 이 앨범, 또 들어도 참 압도당한다. 이런 강렬한 프로젝트를 '명반'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마무리로, 흑인 음악과의 연관성이 애매해서 따로 다루지는 못하겠으나, 이 [Judgment Night] O.S.T.와 같이 유의미한 장르의 합체를 한 앨범 두 개를 소개하고 싶다. 일단 영화는 정말 한숨이 나왔지만, 그 사운드트랙은 막강했던 [Spawn: The Album] (영화 <스폰(Spawn)>의 O.S.T.), 개인적으로 참 재미있게 봤던 <블레이드 2(Blade II)>의 사운드트랙. 모두 협력/협조의 미덕을 보여주는 명반이다. 음악과 함께하는 인생을 살아오며, 깊고 울림이 큰 인상을 받은 '장르의 콜라보레이션'이 끝내주는 세 앨범, 그중에 [Judgment Night] O.S.T.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기뻤다. 앞으로도 이런 탁월한 음반을 만날 기회가 더 많아지길 기원하며 이만 글을 닫는다.
글│Mr. TExt
편집│soulitude
워덥!
으으 반성하고 좌절합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들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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