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Playlist] Hip Hop과 Rock, 합체하다 - Vol.1
1. 당연한 합체
지구 상의 마초, 진짜 상마초(machoism/machismo)의 음악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음악이 바로 힙합과 록이 아닐까 한다. 이 두 장르는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록이 힙합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가던 중,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이르러 서로 합체를 거듭하며 그 경계를 지우는 흔적을 남겼다. 그것은 한 시대를 쥐고 흔들었던 로큰롤(Rock and Roll)이 힙합에 좋은 레퍼런스를 제공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로큰롤은 하드 록(Hard Rock), 헤비 메탈(Heavy Metal), 펑크 록(Punk Rock) 등으로 진화하며 그 위세를 떨쳤고, '록 스피릿'을 외치며 힙합을 한 수 아래로 봤었지만, 어느샌가부터 음악의 왕좌에서 내려와 힙합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일이 잦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힙합과 록은 '거침없고 호쾌한 욕망의 분출'이라는 공통점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컷들이 처음 만났을 때야 '위와 아래'를 정하느라고 신경전도 하고 투닥투닥하지만, 어느 정도의 다툼 끝에는 서로를 인정하고 악수를 나누거나 주먹을 부딪히는 법이니 말이다. 그래서 상징적인 런 디엠씨(Run DMC)와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Walk This Way"를 비롯해 힙합과 록이라는 수컷들이 어깨동무를 한 수많은 '합체곡'들이 나온 것이리라.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기억에 남았던 곡들을 중심으로 몇 곡을 소개하려 한다.
※ 이 글에서 언급된 록 그룹들의 정체성이 모호한 부분은 있다. 하지만 확실히 기타, 베이스 등의 세션 구분이 존재하는 '하드 록(Hard Rock)'으로 구분되는 그룹들이기에 그 트랙 트랙의 탁월성을 감안하여 정리했다. '어떻게 그 그룹이 록이야!'라며 분노하시는 분은 없으셨으면 좋겠다.
2. 멋진 징조들, 아니 좋은 예시들
♪ JAY Z & Linkin Park - Numb/Encore
종종 국내에서 '박린킨'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린킨 파크(Linkin Park). 이들은 2000년 [Hybrid Theory]를 발표함과 동시에 대중들에게 어필을 성공하며 소위 잘나가는 밴드가 된다. 이후 2집 [Meteora]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이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제이지(JAY Z)와 손을 잡고 [Collision Course]라는 EP 프로젝트를 펼친다. 특히 이 EP의 곡 중에서도 "Numb/Encore"는 위 영상의 'MTV Ultimate Mash-Ups' 라이브를 통해 접했던 사람이 많을 것이다. 보시듯이 물건이다. 미드를 좀 보는 사람들은 매시업(Mash-Up), 즉, 곡을 융합하는 이 작업을 <글리(Glee)>라는 뮤지컬 드라마에서 자주 봤을 것이다. 정말 이 "Numb/Encore"는 모범적인 '비빔밥' 작업이었다. 원곡인 린킨 파크의 "Numb"도 매우 좋아했는데, 제이지의 곡을 만나 이런 맛이 나다니. 참 잘 먹은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거장 랩퍼와 패기 있는 록 그룹의 만남. MPC를 두들기는 조셉 한(Joseph Hahn)의 모습부터가 반가운 뮤비이니 직접 느끼시라.
♪ The X-Ecutioners & Mike Shinoda and Joseph Hahn - It's Goin' Down
디 엑시큐서너스(The X-Ecutioners)는 뉴욕 출신의 힙합 DJ와 턴테이블리스트들이 모인 집단이다. 97년도에 발표된 이들의 앨범인 [X-Pressions]도 참 좋았다. 그런데 이어진 2002년도의 [Built from Scratch]는 더 잘 빠진 수작이었다. 앨범에는 상당한 네임 밸류를 가진 랩퍼들이 참여하는데, 그중에는 라지 프로페서(Large Professor), M.O.P., 페로 먼치(Pharoahe Monch), 인스펙타 덱(Inspectah Deck), 빅 펀(Big Pun), 쿨 쥐 랩(Kool G Rap) 등이 있다. 또한, [Built from Scratch]에는 상당히 듣는 재미가 쏠쏠한 히트 싱글이 하나 나오는데, 그게 바로 위 영상의 "It's Goin' Down"이다. 이 곡에서도 린킨 파크의 멤버들이 등장하는데, 마이크 시노다(Mike Shinoda)와 조셉 한의 활약이 보인다. 마이크 시노다가 이 곡을 프로듀싱했다고 하는데, 록과 힙합, 특히 턴테이블 플레이를 록 사운드와 어떻게 섞어야 그루브가 넘치는 트랙이 되는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꽤 괜찮은 기타 리프와 스크래치 사운드의 공존이 아닌가 싶다.
♪ Eminem & Limp Bizkit - Turn Me Loose
랩 메탈(Rap Metal), 특히 핌프 록(Pimp Rock)이라는 장르에서 제법 재미를 보고 잘나갔던 림프 비즈킷(Limp Bizkit). 그들의 2집 앨범인 [Significant Other]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할 일은 아니고, 아쉽게도 이 앨범에 수록되지 않았던 에미넴(Eminem)과의 콜라보 트랙이나 듣자. 이 곡에서의 에미넴 벌스의 첫 라인은 차후에 그의 앨범인 [The Marshall Mathers LP]의 "Who Knew"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다.
I don't do black music
난 흑인 음악을 하지 않아
I don't do white music
백인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지
I make fight music
난 ‘싸우는 음악’을 해
For High School kids
고딩들이 좋아할 만한 것 말야
- Eminem "Who Knew" 中
어지간히 마음에 든 라인인가보다. 곡은 상당히 묘한 분위기에서 까부는 느낌으로 진행된다. 장난스러운 기타 리프가 얄궂은 멜로디를 만들어내는데, 가사도 그 당시 백인 망나니의 대표 격이었던 림프 비즈킷의 보컬 프레드 더스트(Fred Durst)와 에미넴답게 맛이 갔다. 잘 지내다가 싸우고 그러던 두 사람 사이인데, 제법 어울리는 트랙을 만들었다. 약간의 뽕끼(?)도 느껴지는데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Method Man & Limp Bizkit (with DJ Premier) - N 2 Gether Now
위의 곡 역시 림프 비즈킷의 2집에서 나온 곡이다. 림프 비즈킷은 완전히 힙합 음악인 곡을 해 보고 싶었고, 메쏘드 맨(Method Man)도 록 밴드와의 콜라보를 하고 싶다는 의도가 있던 중, 이들이 의기투합하여 이 트랙이 나왔다고 한다.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의 "Get it Together"를 주요 리프로 샘플링을 한 이 곡은 무려 DJ 프리미어(DJ Premier)의 손길이 닿았다. 경쾌한 진행이 좋은데, 뮤직 비디오 또한 당시 세기말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장난스럽고 재치 있다. 원래 제목은 "Shut the F**k Up"이었는데 프로모션을 위해 "N 2 Gether Now"로 바꾸었다는 후문이다. 뭔가 정말 "Shut the F**k Up"스러운 '까불이' 트랙이다. 흥겹게 감상하시라.
3. 합체는 계속되리
의도하지 않게 이야기가 길어진 것도 있고, 언젠가 다루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던 '어떤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 이야기도 같은 제목으로 이어서 하고 싶기 때문에 일단 첫 번째 편은 여기까지 하겠다. 사실 록과 힙합이 만난 케이스가 어디 하나 둘이겠는가? 위의 곡들의 선정에는 나 개인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어 있기에 힙합 음악이 록보다는 조금 더 강한 곡들이 많다. 패기 강한 사운드와 가사를 통해, '수컷'임을 뿜어내는 두 음악, 힙합과 록. 서로 안 맞는 듯한 '합체'가 잘 묘사되고, 소개가 적절했는지 모르겠다. 비슷한 이야기를 이어볼 테니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자. Rock & Roll (and Hip Hop) Baby!
Faint를 기반한 곡에서는 간만에 Jay의 속사포를 들을 수 있었죠ㅋ
Linkin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자주 듣습니다.
그나저나 Shinoda는 왠만한 흑형들보다도 랩을 잘 하는 것 같아요ㅋ
요즘은 좀 랩실력이 준듯 하지만 과거에는 apathy, celph titled와 꿀리지않는 실력을 보여줬죠
록 밴드에 있는 랩퍼라서 그런지 저평가 받는 느낌 ㅠㅠ
에미넴과 림프 비즈킷의 콜라보 곡 소개를 읽다보니
에미넴과 절친(이였던) 키드록이 함께한 Fuck Off가 생각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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