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힙합 클래식 TOP 5
2011년. 한국힙합의 역사도 어느덧 10여년을 훌쩍 넘겼다. 한국힙합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성장해왔고 그 성장의 밑거름이 된 앨범들 가운데, 엄지를 치켜 세우게 만드는 '명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물론 어느 앨범이나 다 그렇겠지만 특히 이 리스트에 있는 앨범들은 듣는 이에 따라 그 반응이 천차만별일 것이요, 심지어는 이게 무슨 명반이냐고 말할 수도 있다. 다음 리스트를 뽑는 기준은 철저히 필자에게 있다. 허나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오래된 앨범들이니 만큼 비판적 시각도 좋지만 좋은 부분에 공감해오며 따라오듯 읽어주셨으면 한다.
Da Crew : City of Soul
- 발매연도 : 2000.10.
- 거친 사운드, 시작의 시작
사실 필자가 이 앨범을 접했을 때는 미성년자였다. 하지만 미성년자 청취 불가라고 해서 정말 그 말을 착실히 따르며 듣지 않았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튼 이 앨범에는 다른 곳을 통해 공개된 <파수꾼>, <갈등극>을 포함하여 엠씨 메타(MC Meta)가 처음으로 피쳐링했다는 전설의 트랙 <용가리>. “결코 조잡한 상술에 지배되지 않는 절대 배합금기 약제”라는 명 훅을 남긴 <Hip Hop 인간형>, 뮤직비디오까지 찍고 BMK의 피쳐링을 받은 동명의 타이틀 <City of Soul>까지. 사실 그 외에 <일탈충동>, <취생몽사> 등 다 크루(Da Crew)의 색채를 보여주는 트랙 하나 하나가 주옥같다. 이종현 씨가 써붙인 “암기랩” 이라는 말처럼 긴 벌스(verse), 그리고 긴 벌스가 지루하지 않은 수려한 플로우, 함축적 의미가 담긴 집약적 가사들은 이 앨범이 명반임을 입증시켜줬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초기 방법론에 있어서 라임에 관한 문제들이다. 필자는 노래를 들을 당시에는 솔직히 그런 것까지 따져가며 듣지는 않았다. 단지 한국어 결과물이라는 것 자체에 감탄하면서 들었던 어릴 적이었다. 이제 와서 냉정하게 평가하기에는 음악들이 너무 귀에 익숙해져버린 탓에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지만, 긴 벌스에 비해 일부 불안정한 호흡과 지금의 기준에서는 상당히 부족한(시기를 감안하면 불안정한) 라이밍이 아쉬움으로 작용한다. 물론 이후의 싱글 [COMA]에서는 이러한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등장하였다.
다 크루의 장점 중 하나는 원엠씨-원프로듀서 유닛이라는 점, 그리고 서로의 기량이 뛰어날뿐더러 서로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세븐(Seven)의 랩이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던 것, 꽤 오랫동안 그의 복귀 여부를 궁금해 했던 것, 아직도 몇 사람들이 세븐의 랩을 칭찬하는 것은 그만큼 그가 명장의 클래스에 서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셈이다. 덧붙여 비트메이커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 앨범을 들어보길 권한다. 2000년에 등장한 이 앨범의 비트들은 지금과 비교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Honey Family : 남자 이야기
- 발매연도 : 1999.10.
- 다소 정제되지 않아도 느낌 하나는 충만한 앨범.
허니패밀리(Honey Family)의 역사는 꽤 오래 되었고, 지금까지 (비록 전전긍긍하는 모습의 안타까운 면도 있지만)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예전 클럽 허니(HONEY)에서 모인 프리스타일 랩퍼들이 모여 주축이 되어 시작한 뒤 엑스틴의 길과 개리를 영입하여 완성한 것이 허니패밀리이다. 1집에는 지금 남아있는 명호, 주라, 그리고 디기리, 영풍, 개리, 길, 수정, 미애가 참여하였다. 워낙 거쳐간 멤버들이 많은 팀이기도 하다. 가장 인지도 높은 사람들은 단연 리쌍과 미료겠지만.
물론 이 앨범에도 <우리 같이 해요>, <랩교 1막> 등 선공개 되었던 곡들이 일부 포함되어있다. 또한 JU(재유)가 참여한 <엉터리 학생>, <둥둥>을 포함한 전 곡에 명호와 주라가 주축이 되어 앨범을 만들었다. <남자 이야기>를 포함하여 메인스트림을 겨냥한 트랙들을 포함하여 <종군위안부>와 같이 [1999 대한민국]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암울함을 이어서 가져온 부분도 있다. 워낙 프리스타일로 유명한 팀이라서 그런지 인트로 역시 프리스타일로 하였고, <랩교 1막>, <랩교 2막> 같은 트랙도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가벼움과 무거움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곡의 다양한 색채와 동시에 앨범이 쥐고 있는 유연함, 그리고 중독성 있는 훅이 특징이다. 지금은 추억의 이름이 되어버린 리듬의 마법사 디기리와 리쌍의 어린(?) 시절도 맛볼 수 있다.
물론 이 앨범 역시 앞에서 언급했던 앨범과 같은 약점을 지니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 기울었다고 볼 수 있는 명호만의 라임 방법론이 지적의 요소일 수 있는데, 당시에는 방법론 자체도 크게 성립되지 않았지만 반대로 듣는 이들도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 한국 힙합 초기, 어쩌면 언더에 그 뿌리를 두고도 언더도 메이저도 아닌 곳에 위치한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지 않았을까 하며, 고민의 치열함이 느껴지는 이 앨범을 조심스레 꼽아본다.
DJ Soulscape : 180g beats
- 발매연도 : 2000.10.
- 프로듀서의 앨범, 프로듀서의 색채, 뛰어난 퀄리티
여전히 세련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디제이 소울스케입(DJ Soulscape), 에스피오네(Espionne)로도 활동했던, 지금은 360 sounds를 대표하는 그의 첫 데뷔 앨범이다. 동시에 마스터플랜 레코드에서 나온 첫 데뷔 앨범이기도 하다. 물론 빠른 출시의 배경에는 그의 입대 역시 한 몫 하였다. 이 앨범은 아직도 한국 힙합 명반을 꼽을 때 많은 사람들이 꼽는 앨범 중 하나이며, 재발매까지 절판되었던 앨범이다. DJ Soulscape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그는 인지도와 능력이 충분히 검증된 사람이다. 최근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가 360 sounds의 [Sound of Seoul]을 소개하는 영상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의 방대한 이력을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라니 추후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언젠가는...).
랩이 있는 트랙과 인스트루멘탈 트랙이 공존하는 이 앨범에는 엠씨 메타와 L.E.O.가 각각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부초>, <Story>, 진지하고 정제된 느낌의 트랙인 MC 성천이 함께한 <숨과 꿈>, 다 크루의 세븐이 함께한 <일탈충동>, 그리고 대팔이 함께한 <선인장>까지, 모두 당대 쟁쟁한 MC들을 모아서 120%의 효과를 내었다. 그 외에도 <음악시간>, <보통 빠르기 / 느리게> 같은 독특한 디제잉 트랙부터 <Candy Funk>, <Piano suite/Loop Of Love>와 같은 소품집 느낌의, 부드러움과 아기자기함이 공존하는 트랙들을 포함하여 앨범을 마무리 짓는 <Summer 2002>까지. 어느 하나 버릴, 아니 아쉬운 트랙이 없다. 앨범 전체의 흐름을 놓고 보았을 때도 곡의 배치가 인상적이며 그야말로 소장 가치를 느끼도록 해준다.
앞의 두 앨범이 다소 투박하고 거칠다면, [180g beats]는 반대로 시대보다 앞선 사운드를 들려준다. 다른 수식어도 많이 붙일 수 있지만 ‘세련되었다’는 단어 하나가 가장 적절하게 느껴진다. 힙합으로 시작하여 라운지 스타일까지 그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기반들을 이 앨범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엄청난 수의 가지들을 보는 듯 하는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생각하며 들어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CB Mass : Mass Matics
- 발매연도 : 2001.10.
- 한국 힙합의 바람직한 이지리스닝적 접근
물론 1집 역시 시기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앨범이다. 하지만 필자가 2집을 꼽은 이유는 1집에서 가지고 있는 장점이나 특징보다 2집이 가진 것들이 더욱 뛰어나다고 판단되며, 씨비매스(CB Mass)라는 이름의 세 명이 낸 앨범 중 가장 좋다고 느꼈다. 2001년에 나왔다고 하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의 깔끔한 사운드, 그리고 대중적으로 먹히는, 하지만 그것이 결코 가요와 타협한 모습이 아닌 자생적으로 나온 ‘듣기 쉬운 힙합’이라는 점에서 망설임 없이 2집을 꼽았다.
우선 첫 곡은 디제이 렉스(DJ Wreckx)와 함께한, 그 유명한 “혼자보단 둘, 둘보다는 셋”의 <행진>으로 시작한다. 전작의 힙합 느낌을 다소 쥐고 있으면서 보다 여유로워진 모습을 보여주는 트랙을 지나서 다음 곡은 타이틀곡인 <휘파람>이다. Interude를 지나 역시 가벼운 트랙 <CB Mass는 내 친구>가 나오는데, 물론 <진짜>와 같은 트랙들도 이전에 존재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무브먼트(Movement)의 단체곡 <Movement III>가 나오는데, 이는 아직까지 명곡으로 회자되고 있다. 벌스들도 모두 뛰어나며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T의 파트가 아닐까 싶다. 이후 이상은이 함께한 <흔적>, 린과 함께한 <셋부터 넷> 같은 감성적인 트랙들부터 당시 디제이 혼다(DJ Honda)와 PMD가 참여하여 주목받았던 <New Joint>, <Sunshine Seoul>같은 힙합 트랙, <Gentleman Quality>, <Watch out>을 지나 앨범은 끝난다. 물론 앨범이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New Joint>에서 <Movement III>와 같은 비트를 사용한 점, 그리고 일부 트랙에서 흔한 샘플을 사용한 점은 문제의 여지가 있지만 지금의 다이나믹 듀오가 있기까지의 밑거름 중 가장 뿌리가 되는 앨범이 아닌가 한다.
앨범이 전작에 비해 날카로움이 덜하다는 점, 그리고 프로듀서로서의 커빈은 어느 정도의 기량을 지니고 있지만 그의 랩은 여전히 앨범에서의 단점으로 적용한다. 그렇지만 개코와 최자의 랩이 있기에 곡의 색깔도 충분히 살아나며 ‘역시’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것 아닌가 싶다.
P-type : Heavy Bass
- 발매연도 : 2004.05.
- 정석 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을까.
이 앨범에 대해 내가 많은 설명을 할 필요가 있을까? 같은 명작이라도 더 많은 요소들을 설명해서 그 가치를 발견해주고 싶은 작품이 있는 반면, 그 자체가 가진 깊이와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는 작품이 있다. 아마 피타입(P-Type)의 [Heavy Bass]는 후자가 아닐까 한다. 물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져있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실제로 그런 반응을 보았고, 필자에게는 충격이었고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한국 랩이 방법론적으로 갈증을 느낄 때 확실한 틀을 제시해 준 것이 피타입이었고, 아마 방법론적 이야기가 가장 많이 회자된 이가 아닌가 싶다.
앨범 전체에서는 그만의 랩이 묻어나온다. 묵직한 목소리로 찍어주는 리듬감이 그가 말했던 방법론 중 ‘랩은 또 다른 드럼’이라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한글 가사들과 정교한 라이밍, 그리고 자연스러운 내용까지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충실하였으며, 그래서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곡이 다 같은 것이 아니라 각각 변화와 구성을 보여준 점 역시 완성도에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장르적 전환이나 다른 시도들을 하고 있는 피타입이지만, 한국 힙합 전체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게다가 단 두 장뿐인 정규앨범이지만 모두 호평을 받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고 이 앨범 역시 재발매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 있다는 것이다.
안그래도 오늘 다듀1집이랑 리쌍2집 들었는데 그 시절의 열정이 다시 떠오르내요. 노홍철과 길과 개리 김범수 BMk 를 만났던 그때 지금 같이 알려질지 몰랐내요.
오 hiphople에 첫 한국 관련 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전 그렇게 오래된 리스너는 아니지만
여기 있는 음반은 다 들어본 듯하네요. 특히 피타입은 전율 그 자체
여기중에 하나만꼽으라면 씨비메스!!!
진짜 얼마나 들었는지..
커빈은 싫지만 셋의 밸런스는 마음에 들었떤 ㅎㅎ
씨비매쓰 말고 하나도 안들어보았네요. 역시 한국힙합에 무지한 나...ㅠㅠㅠ
오! 드디어 한국힙합 첫글이 떳군요! 앞으로도 기대합니다ㅋ
최고는 진짜 헤비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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