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는 허클베리피(Huckleberry P)도 한때는 나만 알고 싶은 래퍼일 때가 있었다. 2012년, <HI-LITE SUMMER TOUR>가 열렸던 롤링홀(Rolling Hall)에서 그의 무대를 처음 봤을 때가 그랬다. 롤링홀은 1, 2층으로 나뉜 좌석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 공연장 가장 뒷편에서도 그의 얼굴이 잘 보였다. 공연이 끝나면 무대 아래에서 팬들과 직접 만나고 사진을 찍는 시간도 가졌었다. 그때 그시절의 열 배, 스무 배 정도는 되는 팬들이 모이는 지금의 규모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아티스트와 팬 사이에 거리가 있는 큰 공연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예스24 라이브 홀(YES24 Live Hall, 구 악스홀)에서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분신>을 본다는 생각에 이번엔 기대감을 숨길 수 없었다. 누구는 그랬다. '안 그럴 것처럼 구는 애들이 갔다 와서 목이 다 쉬어 있더라?' 이게 웬걸, 목만 쉬었으면 다행이다. 공연에 다녀온 후 며칠간 혹독한 몸살에 시달렸다. 오랜만에 가서 열심히 흔들고 몸져누웠으니 이 정도면 '분신 새끼'로서 1단계는 통과한 건가 싶었다. 다른 공연에서는 이렇게까지 미친 듯 놀지 못할 걸 알기에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려 한다. 이제는 30초 매진이 놀랍지도 않은 지난 11월 24일 <분신 8>을 돌이켜본다. 공연에 가지 못한 이들이라면 이 글로나마 누구도 쉽게 감당할 수 없었던 그 날의 열기, 아니 광기를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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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의 무대 중 가장 파괴력 있었던 무대는 일리네어 레코즈(Illionaire Records)의 더콰이엇(The Quiett)과 도끼(Dok2)가 오랜만에 'Hi-Lite & Illionaire'를 외치며 깜짝 등장했을 때였다. 관객들은 너도나도 환호하며 반겨주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공연장은 곧 '분신'이란 이름으로 이들을 압도해 실수하게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찼다. 결과는 걸그룹이 위문 공연 왔을 때와 견줄 만한 엄청난 떼창이었다. 허클베리피 한 명이 무대에서 가지는 영향력만 생각해도 그 위력이 이미 어마어마한데, 허클베리피의 분신들이 2천 명이나 있다고 생각해보자. 공연장은 당장이라도 용암이 뛰쳐나올 것만 같은 활화산 그 자체였다. 그러니까, 이날 무대에 오른 게스트들 모두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지만, 그중 가장 멋있었던 순간은 단연 '분신 새끼'들의 떼창이 나올 때였다. 아, 물론 이런 굉장한 위력에도 일리네어 레코즈의 두 CEO는 아무런 실수 없이 여유롭고도 프로페셔널하게 무대를 마무리했다. 분발하자 '분신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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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많은 관객을 놀라게 한 건 공연 중반부에 허클베리피의 미공개 신곡을 시작으로 화나, 김태균까지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허클베리피는 아직 제목조차 정하지 못했다는 미공개 곡을 선보이기에 앞서 카메라를 집어넣고 오늘 이 자리에서만 노래를 즐겨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곡이 시작되자 암흑 속에서 시퍼렇고 붉은 원색 조명만이 천둥 번개가 치듯 번쩍였다. 신나게 달려오던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정글과 도시로 비유되는 날카로운 가사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그가 마지막 가사를 뱉었고, 조명이 꺼졌다.
"혼자서 할 수 없다면 이 동물을 부르리"
부름에 응답하듯 등장한 건 다름 아닌 화나였다. 날 것의 분위기와 그의 목소리가 너무 잘 어울렸기에 관객들은 그의 무대를 보면서 연신 옳다구나 손뼉을 쳤다. 이어서 “Power”까지 부른 화나의 무대가 거의 마무리된 그때였다. 앞서 허클베리피가 화나를 부른 것처럼 이번엔 반주 없이 화나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꿈꾸는 모두를 집어삼키는 무덤 / 하루에도 몇 구씩 발견되는 싸늘한 주검"
허클베리피의 "Everest" 속 가사였다. 순간 여섯 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며 무대를 메웠고, 어디선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 속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예상하건대, 많은 사람이 여태껏 있었던 "Everest" 무대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느꼈을 것이다. 감정의 폭발이 끝나자 다시 암전됐다. 감동받은 관객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박수로 화답했다. 다시 불이 켜지면 어떤 무대가 펼쳐질 것인가 다들 궁금해하던 찰나에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허클베리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지와 질투, 그리고 시대착오 / 역사적 반동 세력들과 난 닮아있어"
조명이 켜졌을 땐 김태균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암전”이었다. 어느덧 세 번째 부름과 응답으로 이어진 무대의 연속에 탄식을 내뱉는 관객들의 소리가 들렸다. 무대와 무대 사이를 아카펠라로 잇는 놀라운 연출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아티스트의 공연인데도 마치 한 곡을 부르는 듯한 선곡 덕에 더욱 완성도 있게 다가온 무대였다. 세 래퍼 모두 '언더그라운드'의 대명사이기에 이들이 서로 가사를 주고받던 모습은 현장에 있었던 팬들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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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허클베리피가 MC 메타를 보며 꿈을 이뤘듯 허클베리피를 보며 래퍼의 꿈을 키운 꿈나무들이 무대에 함께 서기도 했다. 올티(Olltii)가 그랬는데, 이날도 어김없이 등장해 “Cypherpath” 무대를 완성했다. 이 무대에서는 <고등래퍼>를 통해 헤딘(H2ADIN)으로 이름을 알린 조원우(Jowonu)까지 하이라이트레코즈의 새 멤버로서 <분신>에 처음 출연했다. 프리스타일 래퍼의 과거-현재-미래가 조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깊었다. 허클베리피는 이 무대를 마치며 <분신 1>에서 올티에게 물려주었던 밀짚모자를 이제는 조원우에게 물려주면 되겠다고 이야기했다. 아쉽게도 올티가 그 모자를 잃어버리긴 했지만, 하이라이트레코즈에 입단했으니 조원우는 밀짚모자 백 개는 쓴 마음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어딘가에서 그처럼 '성덕'이 되길 원하는 이들이 <분신>을 보며 꿈을 키워나가고 있을 것이다. 허클베리피를 처음 알았을 때는 그저 공연을 보며 노는 게 좋기만 했던 학생이 이젠 에디터가 되어 그 노는 순간을 이렇게 글로 남기게 된 것도 덕후로서 성공한 것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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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8>이 막을 내린 지도 어느덧 2주 가까이 지났다. 이제 공연이 총 세 번 열렸던 예스24 라이브홀에서 <분신>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악스홀'이라 불리던 이 공연장이 힙합 씬에서 '규모' 그 자체를 상징했기에 여러모로 의문이 남고, 또 아쉽기도 한 소식이다. 그러나 지금껏 <분신>이 이만큼 성장해온 걸 보면, 앞으로 어디서 공연이 열리더라도 걱정될 건 없다. 많은 변화가 있는 와중에도 몇 가지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평소엔 각자 다른 삶을 살다가도 <분신>에 다시 모이기만 하면 관객 모두 “Rap Badr Hari”를 MR없이 완창하리라는 것, 아무리 ‘다음 쇼미 때는…’이라고 물어봐도 허클베리피가 <쇼미더머니>에 출연할 일은 없다는 것, 우리가 이 문화를 함께함에 감사하며 자부심을 느끼리라는 것이다. <분신>이 계속되는 한 비교적 약소했던 과거부터 글에서 언급하지 못한 순간들, 그리고 이 공연이 앞으로 영향을 줄 미래까지, 모든 순간이 최고일 것이다. 몇 달간 온 힘을 다해 공연을 준비한 허클베리피와 DJ 짱가(DJ Djanga), 그리고 무대에 오른 수많은 아티스트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에 여념이 없었을 스태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또, 이날 모든 걸 잊고 함께 달린 '분신 새끼'들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혹 아직 <분신>을 경험한 적이 없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내년에도 여전하지 않을까 싶은 다음 공연이 열리기까지 티켓팅 실력을 늘릴 시간은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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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GABOND, seethe.light (하이라이트레코즈 제공)
뭔 개소리야.. 실수하는걸 누가 좋아해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사 까먹는다고 야유부리던 공연이 어딨냐..그냥 그러려니 하고 웃고넘기는거지
국힙래퍼들 무슨 매 공연마다 가사까먹는데 가사좀 잘 외워라, 티켓값은 외국 래퍼 내한공연수준으로 받아쳐먹으면서
워 위에 너무 진지
뼈때리시네ㅋㅋㅋ첫댓글
분신 공연 영상 몇개 봤는데 개인적으로 "시간통로" 곡에서 실수한거 있었는데 안타까웠음 개인적으로 그 곡 좋아하거든요
영상으로 봐서 좋았는데 실수한 부분은 아쉬웠습니다.
저는 가사 실수가 연달아 계속 나오는 게스트마다 이어지니까 몰입감이 좀 떨어졌던거같아요... 그것도 나름 재밌었지만 ㅋㅋㅋㅋ좀 아쉬웠었습니다ㅠ finder 제대로 듣고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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