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ed Hazel - Don't Let My Music Die
켄드릭 라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옷도 안 갈아입었고, 땀 냄새가 진하게 풍겼지만, 도저히 일어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대체 며칠째일까. 계속되는 밤샘작업, 진전되지 않는 작업속도. 이래서야 정규 앨범은커녕 살아생전에 싱글 한번 내볼 수 있을까? 칸예 웨스트의 'spaceship' 후렴구가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간만에 CD를 꺼내서 들어볼까, 했으나 지독한 피로는 그에게 지긋이 눈을 감는 것 이외의 자유 따위는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켄드릭이 생각하는 '성공'이란 곧 컴튼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날마다 총성이 울려 퍼지고, 친했던 친구의 이름을 전화번호부에서 지워나가는 고통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 따위는 없을 테니까.
그는 올랜도 매직의 Arron Afflalo의 얼굴을 떠올렸다. 컴튼 출신의 NBA 플레이어. 모두가 술을 마시거나 마약 따위를 하며 바닥을 바라볼 때, 고개를 들어 밝은 빛을 바라봤던 유일한 사람.
그는 Jayceon Taylor, 지금은 'Game'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덩치 큰 남성을 떠올렸다. 그는 항상 자신감과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가 믿어왔던 모두가 그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러나 도시는 그에게 그런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두 명이 해냈단 것도 전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세 명이 해내다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잖아.
켄드릭 자신에게 그들과 같은 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도시의 흐름을 거부하고, 맞서기는커녕, 미친 도시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착하고 어린 꼬마. 컴튼의 인간 희생양. 그것이 자신이었으니까.
"뭐가 그렇게 심각해?"
투팍의 목소리가 켄드릭의 뇌에 또렷이 그려졌다. 두껍고 호소력이 있는 저음.
켄드릭이 생전 만나본 인물 중 가장 위대했던 남자. 서서히 사그라지기보단 한번에 불타 없어진 영웅. 투팍은 21살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그때는 아마 92년이었겠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고?"
뭔가 이상한 느낌에 켄드릭은 조심스레 눈을 떴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떠올리기도 전에 켄드릭은 놀라 뒤집어졌다. 힙합 사상 가장 위대했던 남자가 10년 이상의 시간을 초월해 자신의 앞에 나타났으니까. 투팍은 그런 켄드릭의 심정을 이해는 못 하겠다는 듯, 태연하게 시가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서로 멀뚤멀뚱 바라보기를 수 초, 투팍은 그 유명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물었다.
"너도 필래?"
켄드릭은 대마초를 돌려서 피운다는 게 흑인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기에 살짝 망설였지만, 첫 대마초가 입에 거품을 물게 했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정중히 거절 의사를 표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봐."
전설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혹은 대마초의 영향인 것인지 입에서 미소를 도무지 떼어놓지를 않았다.
"죽었어요? 안 죽었어요?"
"죽었지."
그렇구나. 결국 죽은 거였구나. 한때 투팍의 죽음에 관한 음모론을 진지하게 믿었던 그이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워낙 노골적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던 것인지, 투팍은 말을 덧붙였다.
"L.A에서 죽었던 건 아니야. 쿠바에서 살다가 풍토병으로 죽은거지. 만족스러운 삶이었어."
과연. 96년의 총기 사건은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그다음으로는 뭘 물어볼까. 노토리어스 B.I.G와의 비프에 관한 당사자의 이야기? 사후세계의 존재? 아니, 더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었다.
"저.. 저는 혹시 죽은 건가요?"
투팍은 시가를 내려놓은 뒤 한동안 껄껄대며 웃기만 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 것인지 눈물까지 한 방울 찔끔 흘리더니 기침까지 했다.
"헤헤. 이봐, 왜 그렇게 생각한 건데? 걱정 마. 한참 멀었으니까. 난 힙합을 구원할 사람을 찾으러 온 것 뿐이야"
개꿈이구나 그냥.
켄드릭은 될 대로 되라는 듯 고개를 뒤로 젓혀버렸다. 힙합을 구원할 사람을 찾아왔다고? 근데 왜 내 앞에 나타난 거야? 대체 얼마나 피곤했으면 꿈에 투팍까지 나와선 이런 소리를 해대는 걸까.
"너 말이야. 괜찮은 랩을 하던데."
'그래 봤자 어떤 대형 기획사에서도 눈독 들이지 않는 흔한 아마추어일 뿐이죠.'
"반면에 요즘 라디오에서 나오는 힙합곡들을 들어보면 다 쓰레기 같은 곡들밖에 없더구먼."
'그건 당신이 너무 예전 사람이라 그래요. 아니 그보다 유령이 라디오를 어떻게 듣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이상한 일이지. 거리의 범죄, 10대 임신, 인종차별, 공권력의 횡포, 많은 사회 문제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론 데 이제 더는 그런 얘기를 하는 랩퍼들은 없다는 게.. "
"지금은 Brenda's Got a Baby 같은 곡이 차트에 오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니까요."
투팍의 얼굴에서 어느새 웃음기는 사라져있었다. 아까의 장난스럽던 모습은 어디 가고 'Hit em up' 뮤직 비디오에서나 보던 심각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시대 같은 건 상관없어. 어떤 때건 간에 사람들은 좋은 곡에 자연스레 끌리는 법이니까. 중요한 건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일들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켄드릭은 더이상 그와 대화하는 게 무의미하다 느꼈다. 어차피 개꿈에 불과하겠지만, 이 꿈속의 투팍이 하는 소리들은 하나같이 자신과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예예. 당연히 그렇겠죠.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자신의 얘기를 진실하게 담아내면서 차트까지 석권하고, 나아가 이 시대의 힙합을 구원할 사람이? 릴 웨인? 에미넴? 칸예 웨스트? 나스? 제이지? 누가 됐건 간에 저와는 전혀 관련 없는 얘기네요."
투팍은 진지한 눈빛으로 켄드릭의 눈을 노려다 보았다. 켄드릭의 비꼬는듯한 말투에 화가 나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를 깜빡임이나 약간의 미동도 없이 압도하듯, 노려보는 그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던 건지 켄드릭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네가 하고 있는 걸 계속해."
"내 음악을 죽게 놔두지 마."
위대했던 서부의 전사는 그 형체가 이내 흐릿해지더니 마침내 사라졌다. 켄드릭의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한줄기 소름이 쫙 돋으려 하는 순간, 그는 마침내 눈을 떴다.
너무나도 익숙한 엄마의 소파. 어제 집에 들어올 때의 차림 그대로인 옷. 아직도 그 여한이 가시지 않은지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 줄기. 시곗바늘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오니 켄드릭의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오래된 오디오로 힙합 음악을 듣고 계셨다.
'Study your lessons, don't settle for less. Even tha genius asks questions.'
지금까지 최소 300번은 들었을 익숙한 라인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켄드릭의 아버지는 요즘 왜 이렇게 늦게 싸돌아다니느냐는 고리타분한 말 대신에 좀 더 참신한 이유로 켄드릭을 쏘아붙였다.
"너 이 녀석아, 트립 뮤직인지 뭔지 하고 다니지 말고 이런 걸 하란 말이야! 투팍같은거. 알겠느냐?"
"아빠, 트립 뮤직이 아니라 트랩 뮤직이에요."
"하여튼!"
켄드릭은 창 밖을 내다봤다. 그가 봐왔던 어느 때보다도 눈부시게 컴튼의 해는 그를 비췄다.
'네가 하고 있는 걸 계속해.'
켄드릭의 시선은 이내 책상 위 낡은 물체로 옮겨져 고정됐다. 그것을 바라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긴 켄드릭의 미소에 배시시, 하는 미소가 번졌다. 꿈속에서 보았던 투팍이 그리하였듯이.
"아빠, 이 사진 제가 가져도 되죠?"
대답을 듣기도 전에 켄드릭은 지갑에 사진을 넣었다.
뭐, 투팍같은걸 하라고 하신 건 아버지니까 설마 싫다고 하시지는 않겠지.

이걸 바탕으로
당신같은 사람들이 소설을 써야하시는데
잘읽고 스웩드리고 갑니다~ 수고많으셨음다
뭔가 확실히 와닫네요 소설로풀어내니까 리얼 씯 리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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