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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나는 늘 음악을 듣는다. 적어도 앨범 3개는 나의 스트리밍 앱에 기록으로 남겨져있고, rym에서의 레이팅이 한두개씩 늘어만 간다. 그래서 좀 내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 같기도. 무언가 내가 좀 더 나아지는 것 같기도. 근데 같기도 하고, 어디에도 있지 않으려는 내 태도가 부정한다. 그러면 난 어디에 있는거지? 아, 애초에 다른 곳에, 음악에 있는건가. 그렇다면 나라는 음악은 이제 4’33”을 계속 트는 것 같다. 1초마다 틀든, 4분 33초마다 틀든, 다르면서 달라지지 않는 이 음악. 음악이 음악같지 않다. 그저, 음악이 현실을 잡아먹고 현실을 대체한 것만 같은. 그래서인지 참 모든 것에 족쇄를 걸어둔 현실처럼 싱겁다. 이런 음악 현실은 알 수도 없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음악은 유튜브를 본 것 처럼 사라지고, 예술인 것은 알지만, 예술이 일상이 되었다. 아, 생각을 해야하지. 이 음반은 어떤지, 저 음반은 어떤지. 근데 일상된 모든 현실에 백지로 채우게 된다. 난 불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글쟁이가 생각을 하지않으면 뭘 쓸까. 이런 걸 쓴다. 음악에서 너무 멀어진 것 같네. 어쩌면 너무나 낙원 같기도 하다. 음악 현실은 실제 현실처럼 절망을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의 곡조로 이루어진 현실은 내가 인위적으로 골라놓은,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너무나 뻔한 세계다. 내가 하쉬노이즈를 거르고, 로파이 힙합을 선택했으니 편하겠지. 너무나 당연한걸. 하지만 나는 모르려고 한다. 그래야 음악이 예술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것 같이 오만한, 추태이다. 로파이 힙합을 틀면서 j dilla 같은 인생을 바꿀 프로듀싱을 원하고, 포크를 틀면서 무언가 절륜한 감정을 느끼길 바란다. 물론 가끔씩 놀라는 음반이야 존재한다. 그래서 뭐? 놀라봤자 바뀌는 건 없다. 난 언제 바뀌는 걸까. 그렇게 평상시 처럼 이건 좋네, 이건 구리네 하면서 늙어만 간다. 마치 성장을 마친 성인이 늙어가듯이.
그래도 음악 들을 때 좋으시잖아~
음...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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