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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기

title: SCARING THE HOES율무김치2025.06.01 00:35조회 수 98댓글 2

 

중학교 2학년 이전의 나에게 음악에 관한 생각은, 없는 편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디지털 미디어를 많이 안 쓴 입장에서 그냥 눈앞에 보이는 것들(가령, 인기 순위나 조회수) 따위로 음악의 미추를 결단하는 게 내 일상인데, 이 행동을 하고 내가 음악에 조예라도 있는 것처럼 알고 다녔으니 말이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이런 생각으로 유명한 “요즘” 힙합 노래들을 들으며 쓸데없는 자부심에 젖어 아이돌 노래를 이유 없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때는 나 자신에 음악을 투영하지 않고 남들이 같이 듣는 음악에 나 자신을 맞추고 있었다. 그렇게 찾은 몇 개의 노래들을 반복하며. 물론, 그런 음악으로 쌓아 올리던 감상들은 전부 허상이었다. 내가 음악을 주체적으로 듣는다고 생각했지만, 단 한 번도 그러지 못한 남에게 드러내지만 않은 부끄러운 시기였다.
이를 깨닫는 데에는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중학교 2학년, 원격 수업이었기 때문에 유튜브를 실컷 보고 있을 때였다. 볼 게 없어 심심해하고 있을 때, 알고리즘에 ‘오마이걸’의 영상이 갑자기 잡혔다. 한창 그들이 뜨고 있을 시기였기 때문에 그것까지는 그냥 일어난 일이다. ‘오마이걸’의 2020년 히트곡 2개는 알고 있어서 별생각 없이 누르고 보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옆에 있는 추천 목록에 ‘오마이걸’의 다른 노래가 계속 게시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돌 노래이니 어차피 그렇게 좋지 않을 것이니 굳이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갈수록 뭔가 시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확한 동기는 기억도 안 나지만, 결국은 계속 게시되던 노래를 재생하였다. 생각보다 그 멜로디가 흥미로워서 컴퓨터 스피커로 자그마하게 나오던 노래를 더욱 선명하게 듣고자 집의 헤드셋을 재빨리 가지고 와서 듣게 되었다. 노래의 제목이 “불꽃놀이”였는데, 노래 제목처럼 마음속에서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본 것 중에 제일 커다란 꽃”

특히나 이 가사가 3개월 동안 내 생각에서 떠나지 않았고, 나는 더욱 그 노래 안에 깊이 빠져들었다. 보통은 이런 일들이 있으면 학업을 놓고 성적이 떨어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일 이후로 기존에도 괜찮은 편이던 성적이 더 크게 오르는 신기한 일을 경험했다. 그 상황은 선순환을 일으켜 한동안 학업에 매진해 단순히 공부를 좀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교내에서 가장 잘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불꽃놀이가 영원하지는 않은 것처럼, 2학년 2학기에 되어서 갑자기 지난 학기에는 그렇게 신나던 노래 듣던 일이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전혀 안정감을 받을 수 없었다. 학습의 즐거움이 무뎌지고, 성장이 더디어졌다. 갈수록 미끄러지는 순간이 늘어나며 불안했고, 나아가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듯한 감각이 나를 엄습했다.

이는 서울과고 1학년까지 비슷한 흐름이었다.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고, 불안해지니 익숙한 음악만 들으니, 기분은 일시적으로 좋았지만, 나는 계속 정체되어 있었다. 눈앞의 공부가 모든 것을 압도하여 음악도 그저 나에게 배경음이었다. 한 해가 흐르고 나서야 뒤늦게 나에게 필요한 건 익숙함이 주는 위안감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들이었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음악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익숙한 노래들에서 벗어나면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정의하였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바는, 나와 내가 아는 정보의 양은 이 세계 전체의 아주 작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새로운 정보를 맞닥뜨리게 되면, 나는 무조건 찬양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실패하지만, 그 실패 속에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음악이나 학업이나 마찬가지이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탐색하며 나아가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길이었다.

혹자는 이렇게 논할 수도 있다.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버텨나갈 수 있는 것인가?” 하지만 단순히 내가 생각을 유연하게 바꾼다고 내가 확신이 없고 불안한 건 아니다. 내 마음속의 확신은 단 하나뿐이다. ‘나는 절대적 위치 따위는 없는 세상 속의 아주 작은 점일 뿐이며, 계속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수동적으로 떠밀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찾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음악은 그 좌우명을 가장 선명하게 투영한다. 비슷한 노래들만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새로운 음악을 찾아 나선다. 과거의 나와 같은 자리에서 머물러 있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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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6.1 00:42

    니체적이네요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의 우리들의 사상도 계속해서 변하겠죠.

  • title: SCARING THE HOES율무김치글쓴이
    6.1 00:43
    @FluxㅣLight

    니체를 읽어봐야겠어요. 계속 머무르고 같은 것을 계속 동일하게 바라보는 것은 결국 안 좋은 결과라고 믿는 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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